황금 당나귀 현대지성 클래식 22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지음, 장 드 보쉐르 그림, 송병선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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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전쯤 루키우스 아폴레이우스가 쓴 산문 방식의 소설로 세계 최초의 산문 방식의 장편 소설이라고 한다. 작가가 살았던 시대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시대였다고 하고 공간적 배경은 그리스에서 시작하여 지중해 연안 이곳 저곳을 떠돌다가 로마로 간다. 장편 소설이라고 하지만 소설 속에 여러 다른 소설들이 비중이 별로 없는 작중 인물들을 통해 전달되는 천일야화와 비슷한 형식이다. 주 스토리의 드라마틱함과 주인공의 고생담의 비중이 전체 이야기들 중 가장 크므로 장편 소설의 범주라규 해도 큰 무리는 없다. 돈키호테를 비롯한 여러 근대 소설들이 이 소설 속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고나 차용했다고 한다.

호기심 강한 루키우스가 마법 덕후여서 덕질하다가 당나귀로 변해 온갖 구박에 맞아가며 이리 저리 팔려다니면서 겪는 잔혹사에 가까운 모험담이다. 하인들을 거느리고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고생모르고 살다가 갑자기 당나귀로 변한 루키우스는 무거운 짐을 나르거나 하는 일상적 노동이 몹시도 서툴고 괴로와 게으르고 못되먹은 당나귀라는 오명을 쓰며 팔려가는 곳마다 죽을 고비를 맞는다.

로마 시대이긴 하나 그리스 신화적인 세계관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음이 곳곳에서 드러나는데 특히 주이야기를 포함한 모든 이야기들의 주제는 파괴적이고 신화적 방탕함에 기초하고 있다. 애욕이 엄치는 여인들은 남편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정부를 집안으로 들이고 정숙한 여인이라 할지라도 황금에 눈이 멀어 쉽게 자신을 차지하려는 방탕한 이웃을 집에 들인다. 양아들을 사랑하다 상사병에 걸리는 엄마가 있는가 하면 이 주인공 당나귀가 유명해지자 당나귀에 정욕을 느껴 큰 값을 지불하고 육욕의 하룻밤을 보내는 귀족 부인도 있다.

아름답고 부자인 이 부인과 당나귀가 보내는 정욕의 하룻밤이 상세히 묘사되고 있는 것도 모자라 주인은 이 신기한 행위를 만인에게 공개하면 큰 돈을 벌게 될거라 생각하고 사자밥이 되기로 되어 있는 사형수와 원형극장의 무대에 펼쳐진 침대에서 정사장면을 연출하도록 계획을 세운다. 꽉 들어찬 인파 한 가운데서 사람과 당나귀가 정사한 장면이라.. 이건 현대식 포르노에서 조차 꿈도 못꿀 금기 아닌가. 어찌어찌 위기는 모면하지만 하나의 위기가 끝나면 늘 다른 더 큰 위기가 기다리고 있는 큰 줄기 서사는 변하지 않는다. 이집트의 여신 이시스가 그를 구해주기 전까지는.

주인공이 당나귀로 변한 건 여행인지 모험인지로 타지에 와서 어느 집에 묶고 있는데 이 집 하녀와 엮여 매일 정사를 벌이며 쑥덕거리다가 집 주인 마님이 부엉이로 변하는 마법을 보고 자신도 한 번 변해보게 그 마법 연고를 빌려달라고 부탁부탁해서 자초한 일이다. 그 집 하녀가 실수로 부엉이가 아닌 당나귀로 변하는 엉뚱한 연고를 가져왔던 것이다. 다시 사람으로 변하려면 장미꽃을 따먹어야 하는데 밤은 늦고 어디 장미꽃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말과 그 집 당나귀가 있는 마굿간에서 잠을 청하면서 고난의 길은 시작된다. 이 말과 당나귀는 그들 눈에 주인이 아닌 신참으로 보이는 당나귀가 자기 구유에서 먹을 걸 먹자 마구 못되게 굴었던 것. 마침 그 집에 든 도둑들이 이 당나귀와 말들에게 이 집에서 훔친 값비싼 물건들을 잔뜩 싣고 가게 되었으니 무거워 죽을 지경이지만 맞아가며 짐을 싣고 가는 당나귀 신세를 면할 수 없다.

결말 부분에 가서 완전히 톤이 달라지는데 고생고생하다가 도망쳐서는 신들을 부르며 온 마음을 바쳐 기도를 드리니 아름다운 여신이 나타나 그를 인간으로 바꾸는 신탁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장미꽃 화관을 먹고 사람으로 변하게 한다. 이 일을 전후로 해학과 위트로 넘쳐나던 글의 스타일이 갑자기 신을 찬양하는 신전 모드로 바뀌는데 저자가 북아프리카에서 지중해 일대를 돌아다니며 살면서 알게 된 신들에 대한 지식이 망라된 듯하다. 그 모든 신들은 각기 다른 지방에서 각기 다른 이름으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숭배되지만 결국은 하나로 모아지는 듯하며 이집트 신화의 요소와 기독교적 세계관이 배합된 느낌이다. 천일야화에서 느낄 수 있는 동양적 느낌도 든다.

무엇보다도 1800년 전에 쓰인 소설 형식이라는 점은 당대 사회를 알 수 있는 신뢰있는 사료라 할 수 있다. 성서만 해도 이야기가 너무 압축되어 있어 그토록 다이나믹한 그토리임에도 문학적 접근은 어려운데, 이 글은 애초부터 이야기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글이다 보니 자연스레 일상적 모습이 엿볼 수 있다. 그리스 신화의 영향인지 남녀노소 할것 없이 자유분방을 떠나 결혼 후에도 방탕을 즐긴 듯이 보이며 여성의 성적 욕망을 남성들보다 더 크게 부각시킨 것이 인상적이다. 노예와 하인이라는 말이 섞여서 쓰였는데 어떤 구분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노예들은 적어도 스파르타쿠스(드라마)나 독립전쟁 전 미국남부의 노예들처럼 비참하거나 핍박받지 않은 듯하고 무엇보다 자유로운 상업의 발달이 천일야화의 동양적 분위기를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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