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앞으로 100년의 시간이 주어져야 해.  90년전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다.
 100년의 시간이 필요한 그녀는 세익스피어의 누이다. 세익스피어와 똑같은 재능과 열정을 지니고 태어난 세익스피어의 누이가 같은 세익스피어가 쓴 글과 같은 글을 쓰기 위해 인류에겐 100년이 필요하다고 했다. 세익스피어의 시대에는 같은 재능, 같은 열정, 같은 가정 환경을 가진 그의 누이가 작품을 쓰는 것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 90년 전, 세익스피어가 죽은 지 300년이 넘는 시점, 직업적인 글쓰기가 사회적으로 가능해진 새 시대에, 그녀는  재능있고 열정으로 가득한 당대의 여성 문학 지망생들에게 아직도 멀었다고, 10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문화와 사회 제도, 가치와 관습 전반에 걸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헤밍웨이가 세계를 여행하며 경험을 쌓는 동안 스타킹을 깁고,  제인 오스틴은 시끄러운 거실 한편에서 차를 대접하며 틈틈히 상상력을 옮겨적는동안 처했을 여성으로서의 어려움을 헤아렸다. 

가상의 세계에서 캠브리지 캠퍼스 잔듸 위를 걷는 것을 저지당하던 그녀, 도서관 출입을 금지당하던 그녀는 자신이 걷고 있는, 걷게 될, 여성 작가의 길이 폭신폭신하고 말끔하게 깎여진 잔듸길이 아닌 이곳 저곳 돌뿌리가 발길을 방해하는 자갈밭임을 알았다.  90년이 지났다. 지난 90년동안 인류 전역사에 걸친 변화만큼 커다란 변화를 겪으면서 세계는 하나가 되고 풍성한 문화적 교류를 이루고 평화와 자유의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음을 우리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고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누구나 울프가 이야기한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누구나 자신 스스로를 부양할 수 있도록 법적, 사회적 제도가 마련되었다. 

사회는 이제 여성의 특권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 여성이 결혼하면 가정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직장 남성들은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고, 하릴없는 맘충들은 남편이 뼈빠지게 돈벌며 고생하는 동안 한가하게 비싼 커피 마시고 다닌다고 이야기한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이야기하는 소설들은 대개 우리에게 조금은 이질적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역동의 근대사를 온몸으로 통과하는 이야기, 불의에 저항하거나, 복수하는 이야기. 그렇지 않고 우리에게 가까운 이야기들은 적어도 어떤 드라마가 담겨 있다. 그러나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에는 드라마가 없다.  

역사도, 고통도, 분노도, 복수도 없다. 
매일매일 여성으로서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일 뿐이다.  
매일매일 겪다보니 드라마가 되지 못하고 일상이 되어 버린, 이야기가 되지 못한, 일상 중 부딪치는 미세한 차별이 낳은 작디 작은 슬픔들의 합이 만들어낸 갑작스런 환기가 있을 뿐이다.  

양성 평등 조항이 법적으로 명시되어 있는 훌륭한 헌법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미국에서도 유래가 없던 여성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는 국민들이 모여 사는 나라에서 차별을 이야기하는 일은 과잉 은 일상중 일어나는 그 미세한 작은 차별들에 일일히 대응하고 따지고 분노하면 벽에 부딪혀 되돌아오며 커져버린 반향의 힘에 부딪혀 무기력해지고, 무기력해지고, 또한 무감각해진, 그래서 김지영은 자신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인격이 되는 길을 택했다. 82년생 김지영이 말이다. 72년생 이미영보다는 조금 상황이 나아졌는지 모르겠지만, 92년생 유진과 2002년생 보람의 삶이 72년생 김지영과 얼만큼 더 달라졌을지...

또... 조남주가 새로 쓴 사하 맨션은 어떤 드라마를 가지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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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에 미국의 아주 작은 도시에서 잠시 살 기회가 있었었는데, 그곳은 집집마다 지하실이 있고, 그 지하실에는 여러가지 잡동사니와 세탁기/건조기를 두고 사용한다. 그래서 저녁 산책을 하다보면, 한국에서 밥냄새를 맡듯 열어둔 지하실 창문 위로, 혹은 후드를 통과해 퍼지는 여기 저기서 빨래 돌리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한 마디로 내가 기억하는 미국의 냄새는 대표적인 세재 냄새, 대표적인 섬유 유연제 냄새다. 한국에서 한 때 유해하다는 소동이 있던 다*니 냄새이기도 하다. 이 냄새가 문제가 되면서 우연히 인터넷에서, 우리나라가 개도국이었던 시절 한 때에는 부자집 애들한테 나는 냄새였다는 얘기를 읽을 수 있었다. 내 기억에도 어릴 때는 훨씬 더 코가 예민했고, 이런 저런 냄새들을 잘 맡았다. 하지만 그 때에 맡은 갖가지 냄새들은 삶의 계급을 분리하는 것들이라기 보다는 그저 다양한 이런 저런 삶의 냄새였다고 할 수 있다. 


어릴 때, 학교에 들어가기도 아주 한참 전의 어릴 때 냄새에 대한 기억이 하나 있다. 학교 선생님이었던 엄마를 따라 버스를 타고 아주 한참동안 어떤 시골에 있는 어떤 집에 갔는데, 집에서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흔히 시골에서 맡을 수 있는 외양간 냄새로 아직도 기억난다. 하지만 나는 처음 맡아보는 냄새였고, 그런 말을 하는 게 실례라는 사실을 몰랐을테고, 그래서 엄마에게 냄새난다고 말했는데, 그 때 엄마는 무섭게 눈을 호라리며 절대 그런 말 주인 앞에서 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 때의 기억이 엄마가 무섭게 화를 내서였는지 냄새가 강해서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냄새라는 게 어떤 사회적 혹은 물질적 위치를 살그머니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채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비슷한 기억이 남편에게도 있었다. 어린 시절을 잘 기억 못하는 그는, 초딩 1학년 때 짝꿍 여자애에게서 고등어 냄새가 나서 선생님에게 짝을 바꿔달라고 했다가 호되게 혼나고, 선생에게도 내내 미움을 받았다고 한다(내가 보기엔 그래도 쌌지). 가난의 냄새와 부자의 냄새로 무 자르듯 딱 잘라서 구분할 수는 없지만, 냄새들은 삶의 패턴을 반영한다. 왜냐하면 



" 코는 아주 예민해서 공기 중에 떠도는 냄새들을 금방 알아차리지.

300억 개의 공기 분자 속에 냄새 분자가 한 개만 있어도 냄새를 맡을 수 있어."






인도 파키스탄 계열의 인종이 많은 런던에 있을 때 일인데, 누가 왜 그런 말을 했고, 어떤 경위로 그런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카레 냄새가 난다고 했다. 어쩌면 TV 드라마에서였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들은 늘 카레 냄새를 달고 다닌다고 했다. 어딜가든 어떻게 입든, 무엇을 하든, 항상 카레 냄새가 따라다닌다는 거였다. 나는 움찔했다. 내게서 김치 냄새가 나지는 않을까. 사실 김치 담그기 힘들어서 잘 못먹기는 했지만 식생활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몸에서 다른 냄새가 날 거고, 그들이 느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미치기도 했다. 


단편 소설들을 읽고 토론하는 영어 클래스를 담당하던 교수가 한 학기 동안 육아 휴직을 내는 바람에 캐나다인 여성이 대신 한 학기를 맡았었는데, 이 사람은 영어를 가르치러 온 건지, 아니면 혼자 있기 심심하고 수다 떨 사람도 없어서 그냥 수다 떨러 온 건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자기 얘기만 하다 가는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이 했던 냄새에 대한 얘기 역시 한참동안 기억을 떠나지 않았다. 자기 옆사람(역시 외국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 로 시작해서. 오 누구나 다 자기 특유의 냄새가 있지 않나? 하더니.. 집집마다 특유의 냄새가 있다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낯선 곳에 들어가면 늘 특유의 냄새가 나고, 특히 집집마다 들어갈 때 특유한 냄새들이 있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나 할까. 그 선생 왈, 자기 집에서 나는 그 특유의 냄새를 사람들이 다 몸에다 묻혀서 나오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서는 그 집안의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그 날 집에 들어가서 문을 여니 과연 집에서 우리집 냄새가 났다. 유쾌하지도 불쾌하지도 않지만, 우리집 냄새다. 저 냄새가 나에게서도 나겠다는 거지? 내 남편에게서도, 내 자식에게서도? 그것은 오래된 집 가구들과 옷들과, 빨래 세제의 향들과 요리할 때 날아다니다가 어딘가 구석에 붙어 숨어 있는 각종 분자들과 몸에서 나온 여러가지 분자들의 유니크한 배합일 터다. 내가 그녀에게 불쾌했던 점은, 그가 서양백인으로서 한국에서 한국인과 결혼하여 살면서 느꼈을 그 이질적인 냄새들이다. 그녀가 시작한 옆자리 여성의 냄새는 물론 서양 백인의 냄새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토록 냄새에 예민한 그녀가 한국서 가장 많이 부딪혔을 냄새들은 단연코 한국인과 한국 공간에서 나는 냄새일 것이다. 그때 느꼈을지도 모를 어떤 감정, 혹은 어떤 감각. 이것이 나는 불쾌하다. 


그래서 나는 송강호가 마지막에 한 그 순간적인 행동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만일 어떤 관람객이 자신이 반지하에 살지 않아서 지하철에서 나는 냄새가 나지 않을 거라고 안심했다면, 그는 반지하에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이 냄새나지 않는다고 믿는 그 1%의 최상위 계급일 듯하다. 우리 모두는 고유의 냄새를 가진다. 그것을 어렴풋한 다양성으로 이해했던 나는, 엄마에게 된통 혼나고 냄새에 대한 감각을 함부로 표현하면 안된다는 커다란 교훈을 배웠지만, 여전히 나는 그 다양성을 믿고 싶다. 외국에 있던 그 1년동안, 한 때 개도국 시절 미국의 냄새, 부자의 냄새라 알려진 그 다*니 향에 진저리를 치며, 향 없는 세제를 찾아서 코스코까지 다녔던 나는 그 인위적 부의 위장의 냄새 역시 마찬가지로 싫다. 


기침이 끊이지를 않아 알러지 검사를 했더니, 꽃가루와 과일 등 아주 여러가지 항원들에 반응하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코 집먼지 진드기가 1위였다. 나는 조금씩 집안을 구석구석 청소하기 시작했다. 침구를 홀라당 벗겨 90도 물에 빨고 쨍쨍한 햇볕에 말리고, 솜은 햇볕에 말렸다가, 이불청소기로 빨아들이고 또 빨아들이고, 말려 빨은 껍데기에 남아 붙어있을지 모를 진드기 사체를 위해 다시 청소기로 빨아들이고..거실의 보이지 않는 구석의 먼지들도 가구와 일상용품들을 드러내며 청소했다. 먼지는 한도 끝도 없이 나온다. 저 먼지가 품고 있었을 냄새들...아직도 벽이며 천장이며 붙어있을 집안의 냄새들...아무리 빡빡 닦고 빨고 씻었다 한들, 단 한 개의 분자가 머리카락, 옷자락 어딘가에 붙어있다가 후루룩 떨어져 상대방의 코에 닿는 순간, 그의 어두운 일상의 배경은 까발려진다. 


미국의 냄새, 아시아의 냄새. 그런데 ... 그게 어때서? 알러지만 아니면, 불쾌하지만 않으면 괜찮지 않아?


물론 송강호의 가족에겐 괜찮지 않았다. 그 냄새가 가난의 냄새, 지하실의 냄새, 홍수가 나면 가장 먼저 오수가 가정을 덮치는 종류의 씻을 수 없는 가난의 냄새라는 걸 모두가 알고 맡을 수 있을 때, 그 냄새를 아무리 씻어도 절대로 절대로 지우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 그 냄새는 우리 사회의 냄새는 괜찮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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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다섯 번째 계절 부서진 대지 3부작 1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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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을 명심하라. 한 이야기의 끝은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    

모든 일은 전에도 있었던 일이다. 사람은 죽는다. 옛 질서는 무너진다.   

 새 사회가 탄생한다. “세상이 끝났다”는 말은 대개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행성은 변함없이 존재하기에.    

하지만 이것이 바로 세상이 끝나는 방식이다.    

이것이 바로 세상이 끝나는 방식이다.    

이것이 바로 세상이 끝나는 방식이다.    

완전히.


왕좌의 게임을 보면, 특히 대격돌이 벌어지기 전 시즌 전반에 걸쳐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ing)'는 말을 경고와 각성으로 자주 듣는다. 겨울을 춥고 혹독하다. 안그래도, 이미 배경은 얼음 방벽은 눈덮힌 겨울이 자주 나타나기에 매번 존 스노우와 스타크 가문의 사람들이 이 말을 할 때마다,  앞으로 올 겨울은 대체 어떤 종류의 겨울일지 얼마나 혹독하고 긴 겨울일지 몸서리쳐진다. 한 때 지구가 빙하기에 들어 많은 종들이 멸종하는 종류의 긴 겨울이라면, 곰과 개구리들이 겨울잠을 식물들이 땅 속에 숨어활동하지 않는 종류의 매년 겪는 소프트한 겨울이 아니라, 살아남기 어려운 종말을 예견하게 된다. 이런 긴 겨울은 훨씬 이전 르 귄의 소설에서도 주요 모티브가 되었다. 우주의 어떤 행성에서 별을 도는 주기가 매우 길어 생기는 긴 겨울인데, 십여년 혹은 수십년씩 지속되는 이 겨울을 살아남기 위해, 공동체는 철저하게 가족 계획을 통제한다. 


휴고상 홈페이지에 가면, 정말로 상의 종류가 많다. 과학 및 판타지 분야의 컨텐츠를, 단편, 중단편, 중편, 장편, 시리즈로 구분할 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코믹북, 비디오, 기타 여러가지 분야가 많기 때문이다. 그 중 단연코 가장 맨 앞을 장식하는 분야는 당연하게도 장편소설이다. 그런데 휴고어워드 홈페이지를 가보면 2015년 류츠신의 삼체를 끝으로, 3년간 한 작가가 계속해서 장편 부문에 우승을 차지했고, 그 작품은 <부서진 대지>라는 하나의 시리즈 안에 속해 있다. 같은 세계관을 가지고 계속해서 늘려 속편을 내는데, 그게 계속 최고상을 받고, 고로 다른 장편 작가에게는 우승의 영광이 피해갔다. 대체 어떤 작품일까. 3편 연속 같은 세계관을 가지고 이야기를 쓰는데 매번 눈높은 휴고상 심사자들의 기대를 저버지리 않는 작품, 3회 연속 가장 영예의 장편소설에 이름을 올린 작품. 출판사에서 그토록 마케팅하지 않더라도 독자는 목빠지게 번역본이 나오기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하도 안나와서, 나오기 전에 영문판을 구해 조금씩 읽다 흐지부지했는데, 번역본이 나오는 바람에 마저 읽을 수 있었다. 기대를 저버리는 책은 아니었지만, 한국판조차도 읽기가 아주 수월한 책은 아니었다. 지진과 화산 활동 등으로 지구가 마구 요동치는 세계관 자체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도 감정선을 섬세하게 표현하여서 그런 감정이입들을 꿀꺽 꿀꺽 삼키면서 읽어나가는 일 자체가 진중한 독서를 요구한다.


SF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들이 흔하게 등장한다. 그들의 능력은 마블의 캐릭터들과 어느 정도 맞닿아있다. 약간의 마법적 요소와 거기에 붙인 과학적 수식. 이 존재들이 하는 역할이 단지 마법적 환상만을 보여주고 악과 대항하여 멋지게 싸워 이긴다면 헐리우드 대형 블록버스터들이 애정하는 공식의 스토리들이 되겠지만, 이 존재들의 의미를 다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빗대어 생각하게 한다면 의미있는 과학 소설로서 빛날 것이다. 여기에도 그런 존재가 있다. 지구의 에너지를 조절할 수 있는 마법적 존재지만, 그 능력 때문에, 인간에게 배척받는다. 


오로진들은 인간일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인간이다. 단지 대지의 에너지를 조절할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을 타고났을 뿐이다. 사람들은 마녀사냥을 하듯 오로진을 발견하면 죽인다. 폭력의 두께는 두려움의 강도에서 나온다. 지구가 흔들리고 마그마를 내뿜고, 활발한 지각활동을 하면, 그것을 잘 다스려 진정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도 오로진들이지만, 신체에 심각한 위협을 느꼈을 때 그러한 종말에 가까운 지각 활동을 일으킬 수 있는 자들도 바로 오로진들이다. 이야기는 거기서 시작된다. 


한 아이가 죽었다. 2인칭으로 지칭하는 너(에쑨)은 사랑하는 아기를 잃었다. 자신이 오로진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10년째 결혼중인 너는 두 아이가 있었고, 어느 날 집에 와 보니 남편이 아기를 죽였다. 바닥에는 아기의 시체가 있고, 남은 딸아이와 남편의 행방은 모른다. 이것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딸을 구하기 위해, 남편을 찾아 죽이기 위해, 너는 마을을 떠나 헤매기 시작한다.


그리고, 너 에쑨 외에 여러 시점의 다른 오로진들의 삶이 교차 묘사된다. 어린 소녀 다마야는 학교에서 놀다가 우연히 자신의 능력이 발각되어 마을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그들의 부모는 그녀를 마구간에 숨겨두고 '가디언'이 될 샤파에게 잡혀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펄크람이라는 곳으로, 오로진들을 모아 두고 교육시키는 공동체다. 그들의 능력을 조절하여, 인류에게 쓸모있는 일을 하도록 교육하는 곳이다. 이제 다마야는 그곳의 다른 소년 소녀들과 함께 학교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조정하여 지구에 일어나는 각종 자연재해들, 쓰나미, 지진, 화산폭발 등을 조정하는 법을 배운다. 


이미 펄크람 조직의 일원으로서, 손가락에 계급을 표시하는 4개의 반지를 낀 시에나이트는 알리아라는 항구 도시의 골치 거리는 산호초를 조산력의 힘으로 청소하라는 임무를 맡는데, 아직 계급이 낮아, 10반지를 낀 상급자와의 동행을 배정받는다. 10반지는 오로진으로서는 최고의 위치에 오른 고난도 기술을 가진 최고 상급자를 지칭한다. 그런데, 펄크람의 오로진들은 지구를 구하는 임무 외에도 또다른 임무가 있는데 바로, 펄크람의 인구를 유지시키는 것이다. 즉,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주어진 상급자와 임신을 하여 지역 사회에 아이를 낳아 주어야 한다. 


임신이라는 게 여성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니 당연히 상대가 있어야 하는데, 이 10반지 상급자는 바로 그녀의 임무를 돕기 위해 동행하는 사람일 뿐 아니라 펄크람의 인구를 유지하기 위해 씨를 제공해야 할 대상이다. 초호화판 꼭대기 층에서 큰 공간을 혼자 차지하고 있는 열반지 상급자는 그녀가 나타나자 무례하게 굴고 투덜거리며 푸대접을 하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섹스)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며 내키지도 않는 섹스를 해야 하는 그녀에게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운다. 그러나 그의 솔직한 무례함이 그녀를 더욱 전투적으로 만들고, 어떻게 해서든 자신에게 주어진 자식 만들기 의무를 마치고 이 상급자에게 잘보여 더 많은 공훈을 쌓아야 더 멋진 조산술(지구를 다스리는 능력)을 행하며 멋진 삶을 살 수 있음을 안다. 모든 것을 다 가졌고, 만족해야 마땅할 상급자 알라배스터는 퉁명스럽고 불만이 가득한 채로, 마지못해 시에나이트의 섹스에 겨우 응하고, 둘은 산호초 청소를 위해 먼 길을 말을 타고 알리아로 떠난다. 


애초 죽은 아들의 시체와 마주하고 길을 떠난 너, 그 아들을 죽인 남편과 그 남편이 다시 죽일 딸의 행방을 찾아 떠난 길바닥에서 우연히 만난 예닐곱살의 어린 아이와 동행을 하게 된 너는 그 아이가 특별한 능력을 가졌고 남편의 행방을 알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서로 돌봐주며 동행하고, 우여곡절 끝에, 거지꼴의 한 무향민과도 동행하게 된다. 알리베스터와 티격태격 길을 떠난 시에나이트는 온갖 고초를 겪으며 목적지에 도착하지만, 여행 도중 상상도 할 수 없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들이 잉태하여 태어나게 될 아이들, 이미 알라베스터의 씨를 받아 태어난 아이들이 겪어 왔고 겪게 될 비극의 전말 같은 것이다. 이 모든 일들에게 엄청나게 커다란 음모가 있음을 서서히 깨닫는 그들...


한편 어린 다마야는 이미 샤파가 자신을 수호자로 칭하며 그녀를 펄크람에 데려올 때부터 서서히 자신과 같은 종족이 저주받은 족속이며, 펄크람에서만이 그들을 통제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곳임을 자각한다. 압박감 속에서 많은 것을 공부하고 익히는 그들은 마법과도 같은 조산술을 배우고 익히지만 학교 분위기는 해리포터가 우정을 쌓고 모험을 하는 그 멋진 마법학교와는 완전히 다르다. 사소한 일로 왕따를 당하고 괴롭힘을 당해도 구해줄 만한 정의에 찬 교관은 없다. 사소한 일로 또래 아이들에게 왕따와 괴롭힘을 당해 쫓겨날 만한 위기에 처하지만, 혼자만의 계략으로 위기를 이겨내고 자신을 괴롭힌 자들에게도 복수하는데 성공하지만, 이후 혼자가 되어, 유일한 취미로 펄크람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탐험한다. 그러다가, 유메네스의 지도층의 아이인 비노프가 남몰래 펄크람에 숨어들어 온 것을 알게 되고, 그녀가 찾는 곳을 돕다가 들키게 된다. 


이렇게 세 사람의 시점을 오가며 쓰인 이야기는 위기의 절정에 다달을 때 쯤 서서히 하나로 뭉쳐지며 각 시점의 인물들 및 주변인물들의 정체 관계 과거 등등이 드러나게 되는데.. 거의 모든 반전들이 마무리되었을 무렵 다시 쿵 하는 새로운 반전이 독자를 맞고 있다. 혹자는 지구를 괴롭힌 인간들에게 울리는 경종의 메시지로도 읽을 수 있겠지만, 지구 대지를 하나의 생명으로 인식하고 그 지구와 어떤 에너지의 교감을 통해 통제하는 능력을 가진 종족들을 다루는 방식에서 그 어떤 메시지적인 의도로도 깎아내릴 수 없는 판타지적인 요소를 발견하게 된다.  이미 이 소설이 완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점들이 남아 있으며, 남편과 딸을 그토록 찾아 헤맸지만 결국 발견한 것은 엉뚱한 과거였으니, 앞으로 무한하게 많은 이야기의 꼭지들이 펼쳐져 있다. 이 책이 1월에 나왔는데, 2편과 3편도 슬슬 번역되어 나올 때 쯤 된 거 아닌가 싶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남편을 찾아 헤매는 너. 하지만 같은 이유로 너를 찾아 다녔던 사람이 있다. 그 이유를 알게 될 때, 끝나지 않는 돌고 돌아 되풀이되는 세상의 이치를 느낄 수 있다. 겨울은 언제 올건가, 오기나 할 건가 하고 오매 불망 겨울을 기다리며 10년을 보아왔던 왕좌의 게임 팬들처럼, 이 소설에서 말하는 다섯번째 계절, 그 종말은 언제 어떤 식으로 불어닥칠 것인지도 읽는 내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나서야, 그것은 이미 끝난 것인지, 앞으로 올 것인지, 불명확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직 끝나지 않았을 것 같은, 아직 더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은 너의 이야기에 더욱 배가 고파진다. 


알라베스터와 씨에나이트와의 관계 역시 굉장히 기이하다. 함께 자식을 낳고, 함께 키우는 관계이니 비록 깊이 사랑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부부사이지만, 둘은 동시에 다른 남성을 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남성은 충실히 동시에 둘을 만족시킨다. 이런 쓰리섬적인 관계가 영화나 일반 소설을 통해 묘사될 때 매우 부적절해 보이게 마련이지만, 정말이지 저자는 무슨 재주를 부렸는지 세 명 모두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지구는 지금처럼 가만히 있지 않는다. 항상 분노하여 일순간에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마을을 통채로 없앤다. 그렇다면 아버지 대지, 지구는 왜 그토록 분노했을까? 여기 약간의 힌트가 있는 대목이 있다. 노래를 통해 전해지는 전승을 통해 시에나이트가 추측하는 장면이다. 


전설에 따르면 ... 아버지 대지는 생명을 창조하지는 않았으나(생명은 우연히 발생했다.) 그에 만족했고, 매료되었으며, 그 기이하고 방종한 아름다운 것이 자신 위에 살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보살폈다.    그러다 인간들이 아버지 대지에게 끔찍한 짓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대지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물을 오염시키고 지표면에 살고 있는 다른 생명들을 살해했다. 대지의 억세고 단단한 피부를 뚫어 구멍을 내고 맨틀의 피를 흘리고 뼛속에 담긴 달콤한 골수를 쪽쪽 빨았다. 그리고 인간의 힘과 오만함이 절정에 달했을 때, 오로진이 아버지 대지조차 용서할 수 없는 잔악한 짓을 저질렀다. 대지의 유일한 자식을 죽인 것이다. ... 그의 사납고 맹렬한 분노가 다섯 번째 계절, 즉 붕괴의 계절이라는 최악의 형태로 발현되어 거의 모든 생명들이 죽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죽었는 줄 알았던 알라베스터가 살아 나타나 엄청난 일을 저지른 장본인임을 자처하며 이런 말을 한다. 


“말해 봐라. 달이라는 것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느냐?”


어떻게 2편을 기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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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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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쓰던 글이 길어져서 이어서 계속 쓴다. 이전 글 가기 클릭 https://blog.aladin.co.kr/705307136/10894358 


복습을 하자면, 연금술사가 들려주는 첫번째 이야기 속의 하산은 20년 후의 자신에게서 보물상자가 들어있는 곳을 알게 되어 큰 부자가 된다. 두번째 이야기의 아집은 20년 후 구두쇠 수전노가 되어 많은 재산을 궤짝에 감춰두고 궁핍하게 사는 미래의 그를 목격한다. 미래의 자신에게서 20년간 안쓰고 모은 돈을 훔쳐 현재로 가져온 아집은 그 돈으로 평소 흥모했던 여인에게 결혼도 하고 흥청망청 쓰지만 행복은 잠시 뿐이다. 아내가 괴한들에게 납치당해 훔친 모든 재산을 바쳐 아내를 구하고, 다그치는 아내에게 모든 전말, 겨우 직공인 그의 모든 허황된 돈잔치들은 미래의 그에게서 훔친 돈이었다는 사실을 얘기한다. 이를 안 아내는 매우 화를 내어 둘은 20년후의 자신에게서 훔친 그 돈을 평생 모아 갚기로 작정하고, (정해진 대로) 자린고비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세번째 이야기는 다시 하산의 이야기와 관계가 있다. 20년 늙은 하산의 아내 라니아는 어느날 부터 자신의 집에 들락거리며 밥을 먹는 한 젊은이를 눈여겨 본다. 그녀는 한 눈에 남편과 밥을 먹는 바로 그 사내가 자신이 20년전 사랑한 젊은 하산이라는 사실을 알아본다. 자신들의 첫사랑을 스포할 생각이 없는 두 사람은 하산에게 둘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하산의 아내 라니아 역시 두 사람 사이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오랫동안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던 젊은 하산의 아름답고 충만한 모습을 엿듣고 훔쳐본다. 젊은 하산에 대한 욕망을 키워가던 라니아는 어느날 남편이 젊은 하산과 작별한 후 다마스쿠스로 출장을 떠나자, 그녀는 카이로로 가서 남편이 말한 시간의 문을 찾아가고, 젊은 날 사랑했던 하산을 찾는다.


그녀가 젊은 하산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젊은 하산을 본 라니아는 젋은 시절 함께 했던 사랑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고, 늙은 하산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강한 애정과 욕망을 느낀다. 라니아는 평생 충직하고 충실한 아내였지만, 젊은 하산에 대한 욕망은 떨칠 수 없는 강렬한 것이다. 이것은 배신일까? 시간이 흘렀지만 같은 대상을 지금은 덜 사랑하고, 시간이 흘러 과거가 되어 버린 옛 사랑을 더 사랑한다면, 이것은 무엇일까. 라니아는 하산을 유혹하기 위해 집을 구해 살림을 차리고, 그를 스토킹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를 유혹하기도 전에 사건이 발생한다. 하산은 한 보석상에게 다가가 하산이 결혼 당시 자신에게 선물한 목걸이들을 그것을 얼마에 팔 수 있는지 물어본다. 보석상은 그것이 매우 진귀한 보석상이라 큰 돈을 지불할 것을 약속하고 다음 날 다시오라고 얘기한다. 자신에게 준 목걸이를 팔려고 했던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라니아는 우연히 그들 옆에 선 두 남자가 하는 얘기를 엿듣는데, 이 남자들은 사실 하산이 나무 밑에서 파낸 금괴의 주인인 도적떼의 일원이었고, 하산이 팔려고 하는 목걸이를 알아보고, 하산이 이를 훔쳤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였다. 도적들은 내일 하산이 목걸이를 보석상에게 팔면 그에게서 돈을 빼앗고 때려눕히자는 계획을 알게 되고, 이를 수습할 계획을 짜게 된다. 


연금술사도 지속적으로 말하고, 또 이슬람교도적인 결정론적 세계관이어서, 라니아는 자신이 그 목걸이를 계속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빼앗기지도 않고, 하산의 목숨도 온전하리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녀가 이 상황을 목격한 것 역시 알라의 계시이기 때문에, 그녀는 적극적으로 하산과 그의 행운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이 상황을 모면할 것인가? 


라니아는 다시 20년 후의 현재로 돌아와 목걸이를 가지고 시간의 문으로 간다. 하지만 이번에 그녀가 향한 곳은 과거가 아닌 미래의 방향이다. 그곳에는 지금보다도 더 늙은 20년 후의 라니아가 40년 전 남편에게서 받은 문제의 그 목걸이를 챙겨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둘은 하산을 돕기 위해 정교한 시나리오를 모의하고, 함께 시간의 문을 빠져나가 20년 전(그러니까 그 당십터는 40년 전)의 하산이 목걸이를 팔려고 하는 곳에 도착한다. 두 미래의 라니아에 의해 목걸이와 하산은 도둑떼로부터 무사히 구출되고,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라니아는 아직 결혼 전이며 이 목걸이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아직 하산의 스토리에 등장하기도 전이다. 


똑같은 목걸이를 팔려하는 여러 여인의 등장으로 모든 게 오해였다고 잘못 알게 된 도적떼는 돌아가고, 어린 하산을 구한 성숙한(?) 라니아는 본격적으로 젊은 하산을 유혹하기 위해 집으로 데려가 음식을 먹이고 포도주를 대접하여 침대로 꾀어들인다. 방을 모두 어둡게 하고서야 베일을 벗은 라니아는 드디어 젊고 아름다운 하산과의 뜨거운 밤을 보내게 되는데, 그녀가 생생히 기억하는 하산의 자신만만하고 능숙한 기교와는 달리, 하산의 행동이 어설프고 어색하다는 걸 알게 된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여기서 기억의 오류는 관여하지 않는다. 다만 하산이 어린 신부에게 그토록 자신만만하고 능숙하게 행동하게 한 배경에는 성숙한 부인의 가르침이 있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둘은 매일 그녀의 집에서 만나 아트오브 러브를 전수받는다. 결국, 20년후의 라니아는 20년전의 매력적인 하산을 만나러 가서, 매력적인 하산을 만들고 온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베푸는 애정 행위가 다시 그대로 자신에게 되돌아 올(온) 것임을 안다. 모든 사랑의 기술을 전수한 라니아는 이제 하산과 이별할 시간이 되자, 가구와 집을 정리하고, 둘이 다시는 볼 수 없다고 말하고 떠난다. 20년 후의 현실로 돌아온 라니아는 이제 다마스쿠스에서 돌아올 남편을 흡족하게 기다리고 있지만, 젊은 하산과의 뜨거운 사랑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들은 화자는 자신이 과거 20년 전에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고 싶어 시간의 문의 반대쪽에서 20년 전으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현재 화자가 연금술사를 만난 곳은 바그다드이고, 앞서 말했듯이 이 상점은 이제 겨우 일주일 되었다. 그러니까 이 문을 열고 과거로 들어가는 왼쪽 방향으로 들어가면 그 곳 20년 전에는 이 문이 만들어지기 전이므로, 도착 지점이 없고, 설령 간다고 해도 돌아올 수 있는 문이 없기에) 다시 현재로 되돌아올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카이로로 가기로 한다. 카이로에 원래 있던 시간의 문은 이제 그의 아들이 운영하고 있다. 


사막을 끼고 있는 이 공간 배경에서 탈것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사막 여기저기에 도둑들이 출몰하는 곳에서 카이로와 바그다드 까지의 거리는 멀고도 험하다. 카이로에 있는 시간의 문을 통과하기 위해 현재 시간으로 카이로까지 이동하고, 거기서 시간의 문을 통해 20년 전으로 간다. 그리고 그 과거에 다시 바그다드로 와서 일을 바로 잡은 후,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문을 가기 위해 카이로로 돌아가서 현재로 돌아온 다음 다시 바그다드로 오는 것이다. 왕복 세 번의 여행이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 그리고 왜 그는 20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걸까. 이미 결정된 현재는 과거의 미래이며 과거에 가서 무슨 행동을 해도 바뀔 수가 없다. 그가 팀을 꾸려 카이로와 바그가드로 동분서주하는 동안 고초를 겪고, 칼리프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포함해 많은 천일야화적인 이야기들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모두 이 과거를 오가는 시간과 공간 여행에 있다. 


지나버린 사랑, 과거에 무심히 뱉어버린 말 한마디가 다시는 주어 담을 수도 취소할 수도 없는 상흔을 남기며 인생에 회환만을 불러올 때, 우리는 과거에 가서 무언가라도 하고 싶어한다. 그는 온갖 고초 끝에 과거에 도달하지만 결국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고 애닯아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과거는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지나온 현재가 과거인데 이를 어떻게 바꾸나. 그러나 한 가지 그 위험한 여행을 감행한 대가를 돌려주는 계기가 생기는데, 바로 다양한 층위의 기이하고도 신기한 이야기로 독자를 매료시키는 이 소설의 절정은 바로 그토록 사소한 것, 하지만 목숨을 걸을 가치가 있을 중요한 어떤 것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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