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와 함께하는 유명 건축물 이야기 : Architecture Inside+Out
John Zukowsky.Robbie Polley 지음, 고세범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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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낯선 도시로 여행을 꿈꾼다. 새로운 것들을 보고 체험할 것을 기대한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주로 건축 환경과 자연 환경과 같이 시각적인 세계의 체험이 주가 되년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은 멋진 곳들이다. 멋진 자연환경이 있거나 멋진 건축물들이 있는 곳들이다. 고색 창연한 이국적 건물들이 만드는 낯선 풍경 속에서 색다른 감각을 느끼고 싶어서다. 


내게 여행은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즐거운 시간이라는 한 가지 목적을 제외하면, 자주 건축 테마 여행에 가깝다. 때때로 건물 혹은 건물의 배치는 도시 이미지의 원천을 창조하는 예술이다. 그래서, 위대한 건물은 낡아도 허물지 않고, 혹은 천재지변으로 큰 피해를 보더라도 오랜기간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서 개보수를 통해 원형을 보존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흐르면서 역사는 과거가 되지만, 건물은 과거를 품을 수 있다. 어떤 건물들은 긴 시간동안 단단하게 그 공간의 역사와 현재와 문화적 랜드마크로서, 지역 사회의 안식처이자 삶의 터전이면서 세계 각국의 많은 관광객을 부르고 도시의 상징물이 되기도 한다.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을 유산으로 가진 로마인들은 언제든 (관광객들의 발길에 치이지만 않는다면) 콜롯세움의 폐허 한 가운데서 대중의 환호 속에 검투 경기와 서커스가 펼쳐지던 고대 로마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고, 그것들을 보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을 향한 자부심을 체험할 수 있다. 


베를린의 국회의사당 라이히슈타크Reichstag는 19세기 말 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후 1차대전 이후까지 의회역할을 했으나 히틀러의 헌법 권리 정지 및 의회 폐지, 2차대전중의 폭격으로 부분적인 폐허로 남아있으면서 냉전기간 방치되었다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새로운 통일 수도의 민주주의 건물로, 기존 건물의 역사적 요소를 드러냄과 동시에 새로운 돔을 창조하는 방식의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재탄생했다. 이 건물의 대형 포스터 사진을 울집 식구가 나 없을 때 언제 다녀왔는지 기억은 잘 안나지만, 암튼 액자에 끼워서 걸어두었는데, 이제껏 이 사진의 주인공 건물의 세부사항이 이토록 멋진줄을 몰랐다.


이 책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꼽을 수 있는 유명 건축물 총 50개를 공공생활, 기념물, 예술과 교육, 주거, 예배의 다섯 개 분야로 나누어서 해당 건축물을 속속들이 설명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건축물이라는 것이 여행 테마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기 나온 건축물들은 대개 매체의 여행 프로그램이나 사진 등을 통해 많이 알려진 건축물들이 많다. 하지만 여행 책자에서 작은 사진과 몇 줄의 설명으로 그리고 천편일률적이고 단편적인 뷰가 제공하는 것과는 달리, 건축물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과 함께, 3차원적 내부 구조가 일러스트로 표현되어 있다.



집에 있는 사진은 앞쪽에서 본 파사드의 모습으로 멋지기는 하지만 내부구조를 상상도 할 수 없다. 이 책에서는 국회의사당 안쪽의 집무 공간과 높이 솟은 원뿔형 돔에 설치된 구조물의 거울 유리, 채광 상태 및 개방공간 위쪽에 개방된 보행자 통로로 방문객들이 360도 돌아가며 베를린 풍경을 감상하는 모습을 모두 담고 있다. 



데이비드 맥컬레이의 일러스트로 만나는 건축 책들을 시리즈로 가지고 있는데, 이 책의 일러스트는 맥컬레이를 뺨친다. 건축 구조물에 특화된 로비 폴리의 일러스트는 전체 건축물의 외관과 내부 구조를 모두 볼 수 있도록 단면을 자른 상태에서 투명하게 처리하여 한 눈에 그 복잡한 전체 건축물의 구조를 볼 수 있도록 한다. 



일러스트는 각 건물당 정면에서 본 것과 측면 버드아이뷰로 본 것 두 가지 형태로 서로 보이지 않는 위치를 보안해서 속속 들이 보여준다. 책 사이즈가 250x250 으로 커다란 도면이 두 페이지에 걸쳐 시원하게 들어앉아 있어서, 작은 디테일도 눈여겨 볼 수 있다. 사진보다는 일러스트를 보면 가슴이 콩닥콩닥 뛸 정도로 대단하다. 개인적으로 3차원 공간 감각이 특히 부족해서, 멋있고 복잡한 건물을 겉에서 보는 거랑 막상 들어가서 볼 때 어디가 어딘지 연결시키지를 못하는 편이라 평면 지도를 보고서도 늘 헤매기 일수인데, 이렇게 전체 구조를 한 눈에 들여다볼 수 있으니 흥분되지 않을 수 없다. 


무역센터가 무너지기 전에 뉴욕 살던 친구네 집에 갔다가 그 곳 꼭대기 주변 어딘가에 있는 바에 갔었던 경험이 있는데,  무역센터가 무너지고 난 후에 생긴 세계무역센터환승센터가 2004년에 착공하여 2016년에 완공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건물은 이게 건물인지 조형물인지 좀 알 수 없게 생겼는데,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의 모양을 조형화한 것이고, 터미널 자체의 이미지를 새가 날아오르는 형상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움직이는 조각 및 태양의 고도에 따라 반응하는 차양을 도입하여 새의 날개나 범선의 움직임을 표현한 밀워키 미술관을 설계한 칼라트라비아는 사실 건축가라기보다는 미술가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하지만, 전통적 디자인에서 어긋났을 때 비판의 표적이 되기 쉬워서, '전문가들은 이 구조물을 '공룡의 시체와 비교'하면서 예측치의 2배에 이르는 지금 투입과 추가 관리 기금 또한 문제로 지적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철골 구조가 공룡 뼈를 연상시키기는 하는 것 같다.



3차원 뷰를 두 개의 다른 시점에서 접근하여 보여주는 것에 더해서 평면도도 함께 제공되는데, 특히 이렇게 뭐가 뭔지 복잡하게 생긴 건물의 경우는 아래와 같은 평면도를 통해 그 곳에 가보지 않았고, 죽기 전에 한 번은 보게될 지도 모를 독자에게 실제 건물의 공간배치를 상상할 수 있게 하였다. 



소개된 50여개의 건물 중에서 공공건물 및 모뉴먼트 예술과 예배 등은 대개 패키지 여행 상품에 빠지지 않는 국제적 규모의 랜드마크들이다. 이 중에서 내가 방문한 곳도 몇 군데 되고, 심지어는 소개된 건물이 있는 도시에서 살아보기까지 했지만, 귀국한 후에 건설된 완전히 새로운 건물도, 늘 지나다녔지만 내부에 들어가본 적이 없는 건물들도 있다. 파리에 가면 퐁피두 센터가 너무 좋아서 자주 그 주변에 머물곤 했는데 사실 왜 좋은지 설명할 길이 없었다. 역사적 유적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팬시한 건물도 아닌데, 거기엔 뭔가가 있었다. 그 뭔가가 진짜 무엇인지를 책에서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여기서 다루는 건물들을 나열해 보면 이렇다. 일러스트가 상세해서 한장 한장 살펴보는데 시간가는줄 모른다. 리뷰에 같이 올리려고 사진도 많이 찍어놨는데, 사진으로는 일러스트의 디테일이 자세히 표현되지 않아 의미가 없다. 이런 도판이 실린 책들은 오래된 책들이 많은데 최근 완공된 건물과 동대문 DDP 센터를 설계한 자디 하디드의 다른 건물 등, 최신의 건물까지 고려되어 선별된 듯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거나 획기적인 외관과 디자인으로 랜드마크가 될 최근 건물까지 넓은 시간 범위와, 서유럽 아프리카 동남아 등 치우치지 않는 공간범위의 디자인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 굳이 아쉬운 걸 꼽자면 한국인 건축가나 한국 건물은 없다는 거 정도 


공공 생활 Public Life
콜로세움 Colosseum - 로마, 이탈리아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Palace of Diocletian - 스플리트, 크로아티아
도제 궁전 Doge’s Palace - 베니스, 이탈리아
미국 의회 의사당 Capitol Building - 워싱턴 DC, 미국
크라이슬러 빌딩 Chrysler Building - 뉴욕, 미국
덜레스 국제공항 Dulles International Airport - 버지니아, 미국
국회 의사당 Palace of Assembly - 찬디가르, 인도
방글라데시 국회 의사당 National Assembly Building of Bangladesh - 다카, 방글라데시
라이히슈타크 Reichstag - 베를린, 독일
런던 아쿠아틱 센터 London Aquatics Centre - 런던, 영국
세계 무역 센터 환승센터 World Trade Center Transit Hub - 뉴욕, 미국

기념물 Monuments
파르테논 신전 Parthenon - 아테네, 그리스
앙코르와트 Angkor Wat - 시엠 립, 캄보디아
타지마할 Taj Mahal - 아그라, 인도
베르사유 궁전 Palace of Versailles - 베르사유, 프랑스
몬티셀로 Monticello - 샬러츠빌, 버지니아, 미국
아이슈타인 타워 Einstein Tower - 바벨스베르크, 독일

예술과 교육 Arts and Education
존 손 경 박물관 Sir John Soane’s Museum - 런던, 영국
글래스고 예술 학교 Glasgow School of Art - 글래스고, 영국
바우하우스 Bauhaus - 데사우, 독일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Barcelona Pavilion - 바르셀로나, 스페인
구겐하임 미술관 Solomon R. Guggenheim Museum - 뉴욕, 미국
베를린 필하모닉 Berliner Philharmonie - 베를린, 독일
킴벨 미술관 Kimbell Art Museum - 포트워스, 텍사스, 미국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Sydney Opera House - 시드니, 호주
퐁피두 센터 Centre Georges Pompidou - 파리, 프랑스
그랑 루브르 Grand Louvre - 파리, 프랑스
빌바오 구게하임 미술관 Guggenheim Museum Bilbao - 빌바오, 스페인
국립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 문화 박물관 National Museum of African American History and Culture - 워싱턴 DC, 미국

주거 Living
하나님의 호텔 Hotel-Dieu de Beaune - 본, 프랑스
빌라 로툰다 Villa Almerico Capra “Villa Rotonda” - 비첸차, 이탈리아
타셀 호텔 Hotel Tassel - 브뤼셀, 벨기에
슈뢰더 하우스 Schroder House - 위트레흐트, 네덜란드 
메종 드 베르 Maison de Verre - 파리, 프랑스 
낙수장 Fallingwater - 밀 런, 펜실베이니아, 미국
빌라 마이레아 Villa Mairea - 노르마르쿠, 핀란드
루이스 바라간 주택 Casa Luis Barragan - 멕시코시티, 멕시코
임스 하우스 The Eames House - 퍼시픽펠리세이즈, 캘리포니아, 미국
나카긴 캡슐 타워 Nakagin Capsule Tower - 도쿄, 일본
앱솔루트 타워 Absolute Towers - 토론토, 캐나다

예배 Worship
아야 소피아 Hagia Sophia - 이스탄불, 터키
코르도바 모스크 대성당 Mosque Cathedral of Cordoba - 코르도바, 스페인
샤르트르 대성당 Chartres Cathedral - 샤르트르, 프랑스
금각사 Temple of the Golden Pavilion - 교토, 일본
피렌체 대성당 Florence Cathedral - 피렌체, 이탈리아
바탈랴 수도원 Batalha Monastery - 바탈랴, 포르투칼
성 베드로 대성당 St. Peter’s Basilica - 비쟌틴, 로마, 이탈리아
세인트 폴 대성당 St. Paul’s Cathedral - 런던, 영국
노트르담 뒤 오 성당; 롱샹 성당 Notre-Dame-du-Haut Chapel - 롱샹, 프랑스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가족 성당 Sagrada Familia - 바르셀로나,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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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의 길
마일리스 드 케랑갈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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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크푸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며 인스턴트 식품은 도시인들의 고독을 드러낸다’는 13세 모로는 주머니 속의 동전으로 그것 외의 다른 선택이 그럼 뭐가 있냐는 6인의 친구 패거리들에게 내가 있자나 하며 나선다. 여섯 친구들은 토요일마다 거리의 패스트 푸드점에서 정크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배회하는 대신 모로의 집에 모여든다. 쩡그렁거리는 깡통에 십시일반으로 식재료 값을 모으기도 전 모로는 기꺼이 시장과 대형마트들을 돌아다니며 친구들을 먹일 음식 재료들을 사들인다. 이런 일을 의무감으로 한다면 얼마나 고되고 힘겨운 일이었을까만은 모로는 더 어렸을 때부터 이탈리아 혈통의 어머니, 전설의 요리법들을 꿰고 있는 외할머니의 영향 아래 ‘매 끼니를 식구 모두가 준수하는 일상적 제의’로 만드는 다 같이 식사하는 집안 분위기, 요리에 대한 개인적 열정과 관심 덕에 즐거운 일상이 된다.  소박한 염가의 생산품들과 같은 식재료에서 창조되는 무한 변주, 그리고 외식은 일절 금지 라는 이 분위기 속에서 귀가 후 홀로 집에 남겨진 10세의 소년이 컴퓨터 게임 대신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요리다. 그에게 주방은 놀이터다. 마법같은 요리의 화학적 물리적 변화를 즐기며 급고 지지고 졸이는 과정을 익히고  바삭함과 파삭함의 차이를 경험하고 분량과 온도와 시간과 관련된 감각을 벼린다. 그렇게 더 어릴 때부터 갈고 닦은 모로의 요리 기술은 이들 6인의 패거리들에게 진짜 수제 피자와 카보나라 파스타와 버터 감자 구이와 쇼콜라와 크레프 쉬젤라와 같은 주머니 속의 동전으로는 꿈도 못꿀 음식과 매주 함께하는 시간이라는 13세 소년들의 그룹에게는 흔치 않은 값지고 소중한 경험을 제공한다. 철부지 친구들은 훗날 프랑스  전역에 그의 레스토랑과 세프로서의 명성을 날리게 될 이 친구의 이런 요리와 함께하는 시간의 가치를 아직 모른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단연코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서 읽은 저자의 집요하고 화려하고 열정적인 문체 때문이다. 어떤 책을 읽고 나서 시간이 지난 후 서사의 디테일이 희미해졌을 때, 마지막 몇가지 인상으로 남기 마련인데, 물론 전혀 아무것도 남지 않고 표지만 생각나는 책들도 많지만, 이 저자의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은 첫 챕터, 첫 문장의 느낌이 아직까지도 팔딱 팔딱 생동하는 느낌으로 남아있다. 물론 내러티브도 훌륭했지만, 사물과 현상과 행위 그 이면에 언어로는 표현 불가능할 듯한 느낌과 본질을 그토록 정교하고 집요한 문체로 담아내는 그의 고유한 문체는 혀를 두를 지경이다. 


 

한 청년이 사회학과 경영을 공부하고 대학원을 나와 박사학위 과정까지 수료한 청년이, 요리사가 되는 과정, 잡지책에 소개되고 파워블로거들에게 이슈가 되고, 멀리서 식도락가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그런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유명 요리사가 되어서도 계속되는 삶의, 실존의 고뇌와 현실적 고충들이 어떤 식으로 다가오고 어떤 다른 길로, 어쩌면 어릴 때부터 그런 분위기 속에 말없이 고용하게 내재하게 되었던 어떤 가치 철학 같은 것들을 실현시킬 색다른 길을 모색하게 되는 과정을 바로 그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서 보여준 케랑겔의 생생한 언어로 보여준다. 


 

다큐와 소설의 중간 쯤 될까. 한 개인의 삶에서 박사 학위 취득과 관계된 삶과는 대조적인 다른 레벨의 삶, 최저 임금에 12시간의 살인적인 노동시간, 그리고 도제 같은 주방 문화 뾰족하고 날카로운 주방 기기들이 얼굴로 날아다니는 폭력으로 요약되는 요리사의 길을 선택하는 것은 인생을 결정하는 큰 전환점이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서 보여준 것만큼, 건강했던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의 충격 만으로도 버티기 어려운 시간에 장기 기여라는 또다른 심리적 압박을 받아들이는 부모의 심정만큼, 드라마틱하고 격정적이고 감정이지는 않지만 한 개인의 인생을 결정하는 주요한 결단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아주 담담하고 간결하게 다루어진다. 마치 운명을 따라가듯, 그토록 요리에 즐거움을 느끼면서도 한 번도 커서 요리사가 될 생각을 하면서 성장하지 않았던 한 인생이 이미 남의 밑에서 주방칼의 위협을 받으며 시작하기에 늦깍이 나이로 그 일을 처음에는 1달 알바로, 그 다음에는 자신의 인생 이력에 좀 더 색다른 경험을 넣기 위해 무보수 인턴으로 일하고, 그러고 나서 자격증을 취득하고, 그렇게 서서히 요리사의 길로 접어드는 모로의 인생 묘사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한 청년의 인생 다큐에 가깝다. 옮긴이의 말을 읽고 나서야, 이 책의 그런 다큐성 짙음의 영문을 이해했다. 쇠유출판사에서 ‘나날이 파편화되어 가는 사회 속에서 그 모습이 보이지 않고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개별적 존재들의 삶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공간 창출(P154)’을 의도로 한 <삶을 이야기하다> 총서를 위해 집필을 의뢰한 기획도서였던것이다.

 

그 작은  아파트가, 대중 교통에 허비하는 시간을 벌게 해줬던 편의가, ..일과 생활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경로를 박탈해 버리고,  균열을 일으켜 단단하게 굳어 버린 대낮의 시간 속에 꿈이 웅크릴 우묵한 공간을 열어 줄 수 있는 그 틈새들, 두 흐름 사이의 중간 지대들을 앗아가 버리고 만 것이었다. (130)

 

그런 식으로 라 벨 세종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경제적 논리이자 기업의 논리이며, 대양 바닥의 한류처럼 구불구불 뻗어 나가 소멸되지 않으려면 성장하기를 요구하는 가차 없는 논리, 이 음험한 논리가 드디어 깨지고 말았다. 그의 젊음에 부딪혀 산산 조각 나고 말았다.(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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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의 신 (반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5
아룬다티 로이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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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몇 페이지에는 이미 일어난 주요 사건의 끝에서 볼 때 오랜 기간 고통받은 인물이 있다. 그리고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지를 궁금하게 하는 현재가 있다. 읽기도 전에 알아버린 쌍둥이의 사연은 거대한 공상주의 혁명이라는 역사의 한 장이 펼쳐지던 23년 전에 시작된다. 대의를 품은 그 큰 역사의 이면에서 그것을 움직이는 큰 신보다 하찮은 아주 작은 신들이 있다.  엄마가 나를 조금 덜 사랑하게 되는 작은 사건들, 개구장이 쌍둥이들의 작은 말썽들, 그리고 큰 사건 속에 강요된 어떤 타협.



우연은 없었다. 우발적인 것도 없었다. 노상강도도 개인적인 보복도 아니었다. 한 시대가 그 시대를 살고 있던 이들에게 자신을 각인시킨 것이었다 422



에스타와 라헬은 쌍둥이다. 수 분을 차이로 한 배에서 태어난 쌍둥이들은 쌍둥이 임이 의문스러울 만큼 외형과 성격이 다르지만, 둘 사이에는 둘이 함께 하나로 느끼는  하나 된 정체성이 있다. 그렇게 둘이서 하나 같은 서로 다른 남매는 23년 만의 재회한다. 재회는 일방적이다. 에스타는 말을 잃었다. 그는 라헬을 보지 않고, 존재마저도 의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이 시작점에서 저자는 하얀 소녀(백인)의 죽음이라는 커다란 패 하나를 보여준다. 인도 사회에서 백인이라는 특권적 존재와 그것의 죽음은 당연히 그 죽음과 관련이 있든 없든 많은 인도인들의 책임과 비극적 형벌로 이어질 것임을 암시한다. 소녀의 죽음과 함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진 에스타(남)는 천천히 말을 잃어갔고, 젊지도 늙지도 않은 서른 한 살에 다시 마을로 돌려보내졌다. 낡은 저택과 함께 스러진 옛 가문의 영화를 접수해서 살고 있는 그들의 고모는 돌려보내진 에스타를 책임지라며,  이혼 후 홀로 이 일 저일을 전전하는 쌍동이 여동생 라헬에게 연락한다. 


에스타는 어디에 있어도, 배경에 녹아들어 투명한 존재와도 같아서, 그와 한 방에 있다는 사실을 한참동안 눈치채지 못한다. 그가 있음을 알았더라도 구고 전혀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알아차리는 건 더욱 어렵다. 그리고 그는 아주 작은 공간만을 차지했다. 어째서 말을 잃은 걸까. 엄마가 기차를 태워 6살 된 꼬마 아이를 홀로 보내는 장면이 플래시백 된다. 죽은 소녀는 외사촌, 아이들의 아빠 역할을 해왔던 외삼촌 차코의 딸이다. 그 소녀의 죽음이 소녀의 죽음과 어떤 식으로 연관되어 있을 거라는 예상은 하지만 대체 여섯살 짜리 아이가 어떻게 아홉살 자리의 죽음과 관련 있게 될지 읽을 수록 더욱 궁금한 상태로 몰고 간다. 그래서 책을 놓기가 어렵다.  



일단 찾아온 정적은 에스타 안에 머무르며 서서히 퍼져나갔다. 정적은 머리에서 뻗어나 늪 같은 두 팔로 그를 감싸안았다. 정적은 원시의, 태양의 심장박동 리듬으로 그를 얼러주었다. 정적은 흡반 달린 촉수들을 슬그머니 뻗더니 그의 두개골 안쪽을 따라 살금살금 움직여 그의 기억의 언덕과 계곡들을 빨아들이며 오래된 문장들을 몰아냈고 이를 혀끝에서 털어냈다. 정적은 사고를 묘사하던 어휘들을 그의 생각에서 벗겨냈고, 생각은 그렇게 벗겨진 채 벌거숭이로 남았다(26)



이야기의 시작은 더 거슬러 올라간다. 쌍둥이 엄마 암무의 연애와 결혼과 알콜 중독과 폭력. 거기까지만이었다면 쌍둥이들이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았을 지 모른다. 아버지 바바는 알콜 중독으로 플랜테이션 매니저에 해고될 상황에서 은밀한 제안을 받는다. 딜의 대상은 그의 아름다운 아내 쌍둥이들의 엄마 암무다. 암무는 자신이 자란 케랄라 주의 아예멤넨으로 돌아온다. 이것은 전혀 딜레마일 수 없다. 아무리 힌두 사회라도, 아무리 ‘친영을 한’ 고결한 집안이라도, 남편이 자기를 팔아, 직장을 유지해서 아이들과 가족의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매일 때리는데 어떤 다른 대안적 선택이 있을 수 있나.  학대에 지쳐, 여성차별적 전통을 자랑스레 지켜온 지역 유지의 친정으로 암무는 아이들을 끌고 데려온다. 이미 친정의 대저택에는 캠브리지에서 공부하다 영국인 아내와 결혼/이혼 후 돌아온 차카도 아예멤넨의 대저택에 돌아와 있다.


어떤 상실이 쌍둥이 중 한 사람의 말을 잃게 하는 동안 쌍둥이의 다른 한 쪽, 라헬은 어떻게 했을까. 그녀는 냉담하다. 라헬을 사랑해서 결혼하고 미국으로 데려간 전남편은 그녀가 바라보는 벽 너머의 세계를, 그 공허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 일 저일을 전전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바라는 만큼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없게 된 라헬이다. 라헬과 에스다는 같은 날 태어났지만, 서로 다른 성격과 개성을 가졌고, 그럼에도 결국 이 둘을 하나로 잇는 깊은 상실감이 있다. 



그는 어딘가에서는 라헬이 떠나 온 나라 같은 곳에서는 여러 가지 절망이 서로 앞을 다툰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개인적인 절망은 결코 충분히 절망적인 수 없음을.  한 국가의 거대하고 난폭한, 휘몰아치며 밀어붙이는, 우스꽝스러운, 미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공적인 혼란이라는 성지 옆에 불시에 개인적인 혼란이 찾아오면 뭔가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큰 신이 열풍처럼 아우성치며 복종을 요구했다. 그러자 작은 신(은밀하고 조심스러운 사적이고 제한적인 ) 이 스스로 상처를 지져 막고는 무감각해진 채 자신의 무모함을 비웃으며 떨어져나갔다. 자신의 모순을 확인하는 일에 익숙해진 그는 다시 일어나긴 했지만 정말이지 무심해졌다(35)... 한쪽 쌍둥이의 공허는 다른 쌍둥이의 침묵의 또 다른 버전이었음을(36)


이 모든 이야기의 직접적인 발단은 차카의 전처와 딸아이를 인도로 초대하면서 시작된다. 전 가족이 그들을 환영하기 위한 ‘연극’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차안에서, 기차 신호대기 중 대규모 혁명 시위단과 마주쳐 일촉즉발의 위기와 고모할머니를 향한 어떤 모멸의 순간을 맞게 되는데, 이 때 이 가족들과 잘 지내고 있는 불가촉 천민인 벨리타의 모습을 아이들이  발견한다.


벨리타.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1940년대 법적으로 금지되었으나, 아직까지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데, 이 카스트 계급에 들지 못하는 불가촉천민(untouchable) 집단이 있다. 그들은 종교로부터도 버림받아 경전을 읽을 수도 없고, 자기 발자국을 밟지 못하도록 뒤로 걸어가면서 비로 발자국을 쓸고 가야 할 만큼 분리되어 있다. 


1960년대 인도의 남부, 케랄라라는 주가 배경인데, 유독 이 케랄라에서 공산주의가 득세했다. 공산주의가 득세했음에도 불가촉천민을 향한 천대와 멸시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을까. 일본의 부라쿠마나 우리나라의 백정 같이 변혁과 개방 속에서 사멸된 계급이 아니었다. 아직까지도 1억이 넘는 인구가 차별과 빈곤 속에서 살아간다고 한다. 


손으로 뭘 잘만들고 기계를 다루는 솜씨가 좋은 벨리타는 할머니의 공장에서 인정을 받는데, 쌍둥이 아이들은 누구보다도 벨리타와 잘 지내고 있다. 쌍둥이들에게 벨리타는 엄마(암무) 다음으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가정을 이루는 데 실패하고 분열된 개인이 모여사는 가정이지만, 나름대로의 질서 속에서 살던 가족들은 외삼촌의 외국인 전처와 백인 소녀는 모두에게 각자 다른 이유로 불편한 존재지만, 그들에게 백인이 어떤 존재였던가. 겉으로는 끝도 없는 환대를 펼친다. 


작은 균열과 이질감 속에서 사건은 시작되었을 것이다. 돌려보내지고 다시 돌려보내지고 또 돌려보내진 에스타가 어떤 거대한 역사에 의해 말을 잃게 되었는지, 플래시백이 천천히 23년 사연을 천천히 비추기 시작할 때,  그 23년간 계속된 상실의 중심에는 하얀 아이의 죽음보다 더 큰, 역사가 있다. 그 죽음이 역사가 되기를 부인하기 위해 아이들의 두려움이 동원되고, 아이들의 미래가, 아이들의 트라우마가, 그리고 아이들의 인생이 저당잡힌다. 하지만 그 하얀 아이는 아예멤넨의 대저택에서 함께한 짧은 십여일동안 외할머니와 고모할머니, 이혼한 외삼촌, 이혼한 엄마와 쌍둥이 아이들이 하녀와 함께 살아가는 저택에서 세상의 중심이 된다. 하얀 아이의 죽음이 건드린 역사의 귀퉁이가 지난한 역사를 조금 무너뜨렸을까. 만일 그랬다면 그것이 보상이 보상이 될까. 상실에 대한, 말을 잃은 것에 대한, 그리고 무심함에 대한 보상이?


마르크스 혁명, 대지주와 기업. 이 말도 안되는 모순된 가치들을 함께  실현하고 있는 뚱보 외삼촌은 전처의 방문을 국가 대표 트로피마냥 자랑스러워하고,  남편의 폭력에 익숙해져 그걸 사랑으로 알고 있던 있던 맘맘무가 어느날 폭력의 아버지의 손을 뒤로 꺾은 그 아들에게로 애정의 대상이 넘어간 후, 영국인 전처의 방문에 질투를 발산하고, 아이들은 더욱 말썽이다. 이런 정신적 환대를 해나가기에 지친 암무는 어느날 아이들과 벨리타가 함께 있는 모습을 바라 본다. 



그 깃발을 높이 들고 분노로 팔근육이 불끈 솟았던 사람이 그였기를 바라게 되었다. 주의 깊게 쓴 쾌활함이라는 가면 아래에 그녀가 너무나도 격분하는 독선적이고 질서정연한 세계에 대항하여 살아 숨쉬는 분노가 감춰져 있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녀는 그 남자가 벨리타였기를 바랐다( 244)



암무는 마르크스주의자이자 부모의 기업을 말아먹고 계신 기업인 남동생의 모순된 태도와 세상의 부조리를 가장 직관적으로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지만, 그 시대의 여성이 깨어있어봤자 뭘하겠는가. 시니컬한 대화들은 통통튀며 인도 사회의 미세한 단면을 바라보게 만들지만, 역시 클라이맥스는 사랑과 욕망이 분출되는 순간이다. 소설 한 권으로 일약 세계적 스타가  되었지만, 저술활동은 사회활동가이며 사상가로서 주로 활동하는 저자의 이면에 이런 숨죽여 읽게 만드는 고혹적인 장면이 있다. 더욱 더 책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벨리타

몸에는 동전만한 햇빛들이점점이 춤추는 가운데 고무 나무 그늘에 서서 딸을 팔에 안은 남자가 고개를 들어 암무와 눈길이 마주쳤다.  수 백 년의 시간이 덧없는 한 순간으로 완결되었다. 역사는 방심하고 있던 곳에서 허를 찔렀다 오래된 뱀이 허물 벗듯 벗겨졌다. 오랜 전쟁의 그 흔적, 그 상처, 그 흉터와 뒤로 걷던 나날들이 모두 떨어져 나갔다. 그 빈자리에 어떤 독특한 기운이 감지할 수 있는 빛나는 무언가가 강에서 물을 보듯 하늘에서 태양을 보듯 분명하게 보였다.더운날 열기처럼, 팽팽해진 낚싯줄에서 느껴지는 물고기의 세찬 끌어당김처럼 분명했다. 너무나 명백히 있기에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245


암무

자라면서 암무는이 차갑고 계산적인 잔인함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다. 부당함을 용서하지 않는 고결한 판단력을, 그리고 ‘누군가 큰 사람’에게 평생 괴롭힘을 당해온 ‘누군가 작은 사람’에게서 나타나기 마련인 고집스럽고 무모한 성격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다툼이나 대립을 피하기 위한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사실은 그런 것을 찾아 뵙고 어쩌면 즐기기까지 했다고도 할 수 있었다. 252


필라이 동지 - 차코

궁핍한 환경이 자신에게 차코를 제압하는 어떤 힘을, 혁명의 시기에는 아무리 옥스포드에서 교육을 받았더라도 절대 맞설 수 없는 그런 힘을 부여 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K.N.M 필라이 동지)는 궁핍을 총처럼 차고에 머리에 겨누었다 379


하지만 동지, 그들을 대신해 동지가 혁명을 시작할 수는 없어요. 자각시킬 수만 있을 뿐이죠. 그들은 그들만의 투쟁을 시작해야 해요. 그들 스스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해요. 385


이렇게 그는 요리용 합성식초의 상표 계약을 따내고서 교묘히 차코를 ‘전복시키려는 자들’의 투쟁 계급에서 ‘전복시킬 대상’이라는 믿을 수 없는 계급으로 추방 시켰다 385


죽음에 이르게 한 ‘합법적’ 폭력. 사랑의 댓가

쌍둥이는 너무 어려서 이들이 역사의 심복일 뿐이라는 것을 몰랐다. 계산을 분명히 하고 역사의 법칙을 깬 사람들에게서 벌금을 걷기 위에 보내진 자들일 뿐이다. 원초적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완전히 비인간적인 감정에서 행해진 일일 뿐이었다. 이제 시작 단계인, 아직 인정되지 않은 두려움-자연에 대한 문명의 두려움, 여성에 대한 남성의 두려움 힘없는 자에 대한 힘있는 자의 두려움에서 생겨난 경멸감. 421


우연은 없었다. 우발적인 것도 없었다. 노상강도도 개인적인 보복도 아니었다. 한 시대가 그 시대를 살고 있던 이들에게 자신을 각인시킨 것이었다 422


벨리타

그들의 작품이, ‘신’과 ‘역사’에게, ‘마르크스’에게, ‘남자’에게, ‘여자’에게, 그리고 머지않아 아이들에게 버림받는 작품이 접혀진 채 바닥에 놓여있었다 반쯤 의식이 있었지만 움직이면 없었다424



자신들이 한 남자를 죽도록 사랑했었다는 각자 나름의 확실한 인식으로 세 사람은 하나로 묶여 있었다 442


자신의 소멸이 유일한 출구인 터널에 들어서려 한다는 것을 그가 알았더라면 돌아섰을까

어쩌면 그랬을지도

어쩌면 돌아서지 않았을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454


암무가 어둠 속에서 침실 문에 기대섰다  다시 저녁 식사 자리로 돌아가기 싫었기에.하얀 아이와 그 아이의 어머니가 유일한 광원인 듯 그 주위를 맴도는 나방처럼 대화가 맴도는 그곳으로. 그 대화를 한 마디라도 더 듣게 된다면 자신이 죽을 것만, 말라 죽을 것만 같았다. 만일 1분이라도 테니스 트로피 나도 받은 것 같은 차코의 자랑스러운 미소를 차만 해야 한다면 혹은 만만치가 발산하는 그 성적인 질투의 암류를 느끼게 된다면 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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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향적이라는 말을 종종 듣고, 나 스스로도 그렇다고 인정해왔는데, 때로 완전히 반대로 내가 굉장히 내향적이라고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대화 중에 우연히 내가 좀 낯가리잖아 혹은 내가 수줍어서 말을 먼저 잘 못거는데 같은 말을 흘리면, 친구들은 웃기시네 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 내가 외향적인지 내향적인지 잘 모르는데, 수전 케인의 콰이어트에 보면 내향성을 판단하는 설문지가 나와있다. 이 질문지가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남들에게 외향적으로 비치는 내 성격에서 내향성의 점수가 굉장히 높게 나왔다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하고, 그게 내 참모습인데 속이고 살려니 피곤한 듯하다.


1. 나는 단체 활동보다는 일대일 대화가 좋다.

2. 나는 글로 자신을 표현하는 게 좋을 때가 많다.

3. 나는 혼자 있는 게 좋다.

4. 나는 동년배들보다 부나 명예나 지위에 덜 신경 쓰는 것 같다.

5. 나는 잡담은 싫어하지만 내게 중요한 문제를 깊이 논의하는 것은 좋아한다.

6. 사람들이 나더러 “잘 들어준다”고 말한다.

7. 나는 위험을 무릅쓰는 일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8. 나는 방해받지 않고 깊이 몰두할 수 있는 일을 즐긴다.

9. 나는 생일에 친한 친구 한두 명이나 가족과 소박하게 지내는 게 좋다.

10. 사람들이 나더러 “상냥하다 거나 “온화하다”고 한다.

11.나는 일이 끝날 때까지는 사람들에게 내 작업을 보여주거나 그것을 논의하지 않

12. 나는 갈등을 싫어한다.

13. 나는 스스로 최선을 다해 일한다.

14. 나는 먼저 생각하고 말하는 편이다.

15. 나는 밖에 나가 돌아다니고 나면, 즐거운 시간을 보냈더라도 기운이 빠진다.

16. 나는 전화를 받지 않고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가게 내버려둘 때가 종종 있다.

17. 꼭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일정이 꽉 찬 주말보다는 전혀 할 일이 없는 주말을 선택하겠다.

18.나는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19. 나는 쉽게 집중할 수 있다.

20. 수업을 들을 때는 토론식 세미나보다는 강의가 좋다.


이 20개 문항중에서 14, 19, 20을 빼놓고는 대부분이 해당된다. 결국 나의 내향성은 나의 내향성 속으로 깊이 감출 수밖에 없고 외향성의 외피를 쓰고 계속 살아가고 있지만, 내 방을 처음 가졌을 때, 대가족으로 북적대던 ‘안방’에서 빠져나와 나 홀로 가질 수 있는 깊은 밤의 시간들을 내가 얼마나 사랑했던가를 회상하면 나의 내향적 내향성은 나만 알고 있는 깊은 내면 속에 숨겨져 있던 것 같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외향성의 이면은 어떻게 된 것일까. 성격이든, 능력이든, 신체 사이즈이든, 뇌의 활동 부분이든 어떤 표준 속에 여러가지의 멀티속성을 한꺼번에 다 구겨넣고 그것을 표현하면 개인이 가진 고유성 그러니까 여러가지 속성들의 들쑥날쑥함은 사라지고당 단어 혹은 범주보다 낮거나 높거나 하는 단순한 비교만 남는다. 평균의 종말이라는 책이 있다. 서두(와 1장)의 내용을 축약해 보았다.


공군 전투기의 잦은 사고로 조종석의 규격이 최근 전투병들의 신체 사이즈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가정을 했고, 조종석 설계상 가장 연관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10개 항목의 신체 치수에 대해 평균값을 냈다. 이 평균값을 바탕으로 평균적 조종사를 각 평균값과의 편차가 30퍼센트 이내인 사람으로 넓게 잡았다.조종사 4천여명 가운데 10개 전 항목에서 평균치에 해당하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 10개 사이즈 중 3개 항목만을 골라서 평균치에 드는 조종사를 골라도 3.5퍼센트 미만이었다. 그들은 이미 전투조종사의 신체조건이라는 기준을 통과한 자들이었는데도 말이다. 평균적 조종사 같은 것은 없었다. 이것이 대니얼스라는 한 젊은 장교가 밝혀낸 사실이었다. 놀랍게도 뷰로크라틱의 전형일 것같은 군에 그의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받아들여져 평균치가 아닌 개개인에 맞춘 시스템으로 바뀐다.엔지니어들은 비용이 많이 들고 불가능하다고 꺼려했지만 군이 밀어붙이자 곧 해결책을 제시했다. 현재 모든 자동차의 표준으로 자리잡은 조절가능한 시트가 그렇게 탄생되었다.


노르마는 1만5천명의 젊은 성인 여성들에서 수집한 신체 치수 자료로 평균값을 내어 젊은 여성의 표준 체격을 만든 조각상이다(조각가 아브람 벨스키, 의사 로버트 L 디킨스). 이 완벽한 표준에 가장 부합하는 대회가 열렸는데, 치열한 경쟁 끝에 막판 경쟁에서는 밀리미터 단위로 우승자가 결정될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참가자 3천8백여명 가운데 9개 항목 치수중 5개 항목에서 평균치에 든 참가자들이 40명도 채 되지 않았다.당시 대다수의 의사와 과학자들은 이러한 결과를 미국 여성들이 건강하지 못하고 몸상태가 나쁘다고 결론내렸다. 미공군 대니얼스의 직관과 어긋난다.


평균이 쓸모가 있을 때도 있다. 두 집단간을 비교할 때다. 개개인에게 평균은 허상이며, 평균에 기반해서 비교당할 때 개인의 자신의 고유 가치를 잃게 된다는 게 저자가 서두에서 강조하는 말이다. GPA 평균(-D)에 의해 자신이 젊은 날의 한 때를 얼마나 낙오자로, 우울하게 지내게 되었는지를 고백하면서 이 책은 시작하고 있다. 고등학교 중퇴 후 15년만에 하버드 대학 교수가 된 저자는 어떤 추상적 철학을 발견하거나, 공부에 눈을 떠서가 아니며, 처음에는 직관에 의해 그 다음에는 의식적으로, 모든 인간은 다르며, 그 개개인의 원칙을 따라 삶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앞장에 소개된 뇌 활동 영역에 대한 내용인데, 우리가 무얼 하면 어떤 영역이 활성화되고 저걸 생각하면 또 어떤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식으로, 그러니까 뇌의 어떤 정해진 영역이 특정 기능을 한다는 식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그런 영역 역시 앞에서 본 것처럼 많은 데이터의 평균을 낸 것으로서, 같은 활동에 대해 뇌가 활성화되는 영역은 천지차이로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사람은 전적으로 외향적이거나 전적으로 내향적이지 않다. 평소에 말이 없고 타인과 거리를 두는 듯 해 보이는 사람도 끊임없이 사람과 만나고 대화할 수 있는 기회와 사회적 활동을 찾는 것을 보면 평균이라는 것은 어떤 단어로 뭉뜽그려 표현하는 수단이될 뿐 다양성이 가진 개별 인간의 특징을 절대로 표현해주지 못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나는 내향적이기도 하지만, 사람들과 만나고 말하고 듣고 즐거운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내향성의 측면을 남들이 못보는 거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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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8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9-02-18 12:19   좋아요 1 | URL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평균이라는 허수가 삶을 수치화해서 끊임없이 비교하고 좌절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어요
 


이런 깔끔하고 산뜻한 문체에 섬뜩하거나 잔인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강한 심리적 반전이라니. 계속 보고 읽고 알고 있던 주인공의 습관적 행위를, 이미 한 번의 반전으로 해피 엔딩의 결말을 맺나 하고 안심하고 나서야, 눈여겨 본다. 

처음 만남부터 남의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래서 언젠가는 헤어져야 겠기에, 철저히 베일에 쌓인 남자이기에,  그가 남긴 모든 것, 커피에 넣어 마시고 남은 각설탕, 콘돔 껍데기 같은 잘잘한 흔적들마저도 소중하다.  그런 것까지 모은다니 우웩 소리가 나오려는 것까지 그가 남기고 간 것은 그렇게 서랍 깊숙히 은밀하게 보관된다.  

그렇게 읽었다. 이해할 수 있다. 남자는 근처 아파트 공사장에서 건축사로 일하는 데 그 공사가 끝나면 그들의 관계도 끝난다.아이가 둘 씩이나 있는 남의 남자를 안을 시간은 퇴근과 귀가 사이의 얇은 시간의 틈새 한시간 절도 뿐이다. 문체가 어찌나 간결하고 건조한지 도통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힌트도 주지 않지만 둘의 애정행각은 영화로 본 장면처럼 시각적으로 생생하다.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하다 못해 조금만 더 있어달라 투정부리지도 못하는 사랑. 그의 아내와 가족은 금기시된 주제다.   이별의 시간은 다가오고 그녀가 그토록 소중하게 간직하는 그의 흔적들을 다루는 그녀의 행위 만으로 그녀의 절절함이 전해질 것 같은데….끝이 다가오자 그의 태도가 조금씩 달라진다.  

이별을 준비하는 것일까. 긴장했던 순간에 반전이 일어난다. 이제 그의 물건은 이제 더 소중하지 않다.  잠겨진 서랍 속에 새로운 물건이 들어가기 시작하는데 이 두번째 반전은 첫번째 반전보다 더 충격적이다. 문체가 건조하지만, 묘하게 시적 반복성과 중독성이 있다.  뭐 대단한 상징이나 문학적 기법 같은 걸 찾을 필요 없이 소재 자체가 일상적 드라마에 머물러서 쉽게 읽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메디치상이 프랑스 문학상 중에서도 새롭고 독특한 실험적인 작품에 수여한다는데, 정말 새롭고 독특하다.1993년 수상작이다. 종이책이랑 전자책 모두 단행본으로도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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