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습환자 - 최인호 대표중단편선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6
최인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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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의 작품은 70~80년대에 영화를 통해 많이 알려졌다.<별들의 고향, 이장호 감독>, <바보들의 행진, 하길종>, <걷지 말고 뛰어라>, <깊고 푸른 밤> 등 당대 흥행에 성공한 많은 영화들이 최인호 작가의 원작 소설을 각색하거나 직접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견습환자>의 주인공은 가벼운 증상으로 병원에 갔으나 폐결핵에서 기인한 늑막염이라는 병명을 진단 받고 입원 상태에 이른다. 거기서 의료진과 병원 직원들의 감정을 관찰하며 스스로 진단하며 더 나아가 그들을 웃게 함으로써 치료하겠다는 의지를 펼친다. 주인공은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의료진들을 웃겨 보려고 노력하지만, 좀처럼 통하지 않는다. 의료진들의 조직화된 '웃음부재'는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당대의 한 병폐인 듯하다. 당대의 사회가 의사들에게 메마르고 삭막한 이성적 의료 행위를 요구했다면 최근 트랜드는 반대다. 잘 웃고, 친절하게 병과 증상과 치료 방법에 대해 설명해주고, 나을 수 있다는 신뢰를 주는 서비스 역시 의료 의 질을 결정한다. 객관적인 의료지식으로 무장한 채 냉철해야 하는 치료 행위와 아픈 몸을 믿고 맡기고 설명을 요구하는 의료 서비스라는 상반된 입장은 사람을 대하는 업무에서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고 억제해야 하는 오늘날 서비스직의 감정 노동의 현실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2와 1/2>는 다가구 주택에 옹기종기 모여사는 한 주택 내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다룬다. 죽은 사람은 혼자서 셋방에 살면서 같은 주택의 남자들을 잠자리로 끌어들이곤 했던 한 젊은 여성이다. 주인공 이서영은 장티푸스 예방 주사 후유증으로 힘겨운 하루를 보낸 후 집에 들어가다가 셋방의 여자가 문을 빼꼼히 열고 담배를 청하면서 밤 1시에 자기 방으로 자러 오라는 유혹을 듣고 잠이 드는데,  한밤중에 경찰들이 문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뜬다. 그녀가 살해되었으며 한 집에 세들어 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경찰서로 조사를 받으러  끌려간다. 장티푸스 백신으로 몹시 힘든 그는 곧이어, 경찰이 피해자가 자신과 같은 임질을 앓고 있으며 자신이 몽유병으로 평소 피해자의 방 근처를 서성거리곤 했다는 말을 듣는다. 마지막까지 세 사람의 용의자가 남는데, 이들은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몸을 피해 있자고 작정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나, 지치고 아픈 이서영은 그대로 그 자리에 앉아 자신이 죽였다고 말하고자 하는 충동을 겪는다. 이 소설이 주는 메시지는 그 어떤 말로도 마지막 문단보다 더 잘 설명할 길이 없다.


그 갈색의 계집애는 지금 우리 시대의 나이 서른 이상 먹은 자식들이라면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망가뜨리고, 학대하고, 울리고, 때리고, 죽일 수 있는 여인이라고 고백하는 편이 더 홀가분 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그들이 잘 해결해 주리라 믿고 싶었다 57


혼자서 셋방을 살며 밤에 남자를 유혹하는 여성이라면 그 어떤 남성이든 그 어떤 폭력도 용인되는 사회. 이런 사회를 생각없이 통과해온 세대라면, 국회위원이 되어서도 가족을, 그러니까 아내를 '관리'해야 하는 대상으로 말하는 것에 아무 문제도 못느낀다. 

사실 유명한 영화 제목이었던 <깊고 푸른 밤>을 먼저 읽었고, 다시 앞쪽으로 되돌아가 <견습환자>부터 읽어나가면서, <술꾼>을 읽었을 때, 여기서 멈추고 이 단편에 집중해서 리뷰를 쓰려고 했었다. 그래서 이 리뷰의 제목은 [단편]술꾼 이렇게 될 뻔했는데, 조금씩 언급하면서 길어지고 있다. 어쨌거나 결국 술꾼에 대한 내 감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거 같다. <술꾼>에서, 어린 아이가 동네 술집을 돌아다니면서 아버지를 찾는다. 아버지의 이름을 대며, 집에 엄마가 피를 토하며 죽을 것 같다고, 아버지를 데리고 오라고 했다고, 아버지는 엄마가 죽을 거 같으면 술집으로 저를 찾으로 오라 했다고, 여기 우리 아버지 있나요? 이렇게 물으며 다닌다.

작은 대포집과 술취한 어른들, 아버지를 찾아 고개를 빼꼼 들이민 아이. 급속한 근대화 속 도시 빈민이 처한 자리의 익숙한 듯한 풍경이다. 물론 지금 아이가 술사는 것도 금지되어 있지만 지금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할 일이 생기고 있으니 바로 아이에게 술을 권하는 것이다. 아이는 처음에는 사양하는 듯하지만, 눈치도 못채게 잽싸고 빠르게 잔을 비우고, 김치를 집어먹는다. 아이는 아버지를 찾아, 다른 술집을 계속 다니고, 그렇게 술에 취해간다. 소설을 계속 읽어나가면, 아이의 행동은 끝없이 반복되고 있음을 눈치채게 되고, 그 이유는 알콜 중독, 그것의 더 앞선 이유는 상실에 있다는 섬뜩한 반전에 대면하게 된다. 그러면서 두 가지 사건을 묵도하는데, 하나는 전쟁에서 한쪽 팔을 잃은 한 사내가 소년을 죽이려 시도하다가, 스스로를 죽이는 사건이고, 또 하나는 길에서 술에 취해 쓰러진, 그대로 두었다가는 얼어죽을 것이 뻔한 사내의 지갑을 훔쳐 술값으로 쓰는 일이다. 

한쪽 팔을 잃은 사내는 아이에게서 과거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이 틀림없다. 그는 아이를 죽임으로써 자신의 현재의 모습을 죽이고 싶었다. 한밤에 죽어 쓰러져 가는 사내는 아이의 미래 모습이다. 어린 나이에 이미 소문난 술주정꾼이 되어 버린 아이에게 기다리는 운명은 그 디테일만 다를 뿐 거리에서 죽어가는 술중독자의 운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제 기자 간담회에서 질낮은 도돌이표 질문을 피해 채널을 돌리다 마주친 조국의 답변이 귓가를 맴돈다. '맞습니다. 저는 금수저입니다. 금수저로 태어나고 강남에 살아도 사회와 제도가 공평하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토록 당연한 말이 멋있어 보이는 이유는 부와 권력의 대물림이 낡은 제도권의 단단한 기반에 의해 지탱하고 강화되기 때문이다. 부와 권력이 대물림되는 동안, 가난과 절망 역시 되물림된다. 술취한 아비를 찾아다니며 술에 취하는 아이의 미래는 술취해 거리에 죽는 아버지의 미래에서 얼마나 멀어질 수 있나.

하지만 더 큰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그에게 피를 토한 어머니와 술집 어딘가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아버지는 이미 박제된 과거였으니, 흡족해진 만큼의 술을 얻어마신 아이가 향하는 곳은 고아원의 개구멍.  충격적인 소설이었다. 지금 수준의 인권이라면 가능하지 않는 소설이지만, 아이를 소재로 하였기에 전해지는 근대화의 속도 속에 스러져간 수많은 실패와 낙담, 빈곤, 절망의 분위기는 음산한 디스토피아적 소설을 읽는 듯하다.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어머니와 술집에서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찾아다니는 이미지. 파괴되어 재생되지 않는 가정의 이미지가 스냅사진처럼 삶을 떠나지 않고 어린 아이를 지배하는 이 이미지 속에서 섬뜩함을 느낀다. 

<타인의 방> 역시 괴기함을 따지자면 카프카가 떠올리는 소설이었지만, <깊고 푸른 밤>이나 <술꾼>에 비해 오히려 해학적이었다.  새벽에 출장에서 돌아왔는데 자기한테 열쇠가 있는데도 문을 쾅쾅 두드린다. 아파트 복도에서 사람들이 빼꼼 내다보며, 당신 누구냐, 3년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이웃이다. 속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결국 자기 손으로 열쇠를 따고 들어가서 무얼 발견했을까? 물체들이 움직이고, 비현실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와중에, 와이프가 쪽지를 써놓고 집을 비운 걸 알게 되는데. 

<깊고 푸른 밤>은 로드 무비. 작가가 미국 갔다가 대마초로 활동이 금지된 모 가수를 만난 경험을 토대로 쓴 소설로, 뭘 말하는지 알겠는데, 요즘 소설과 비교해봤을 때 묘사가 (지나치게) 치밀하다. 

문동에서 나온 한국 문학 단편 시리즈 중 하나인데 이 시리즈 전체에 대해 신뢰가 생긴다고나 할까.. (철지난) 근현대 한국 문학을 읽고 싶다면 여기서 고르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당대 사회의 단편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사회 전반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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