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
유시민 지음 / 개마고원 / 2002년 8월
구판절판


"저는 조선일보 사장님 회장님처럼 그렇게 고상한 말만 쓰고 살지 않는지 모르지만, 그분들처럼 천황폐하를 모시고 일제에 아부하고, 군사독재 정권에 결탁해서 알랑거리고, 특혜 받아 가지고 뒷돈 챙겨서 부자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기회주의적인 인생을 살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이 땅에 가난하고 힘없고 정직한 사람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말을 고치는 것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시대 기회주의와 편의주의에 절은 그들의 사고방식은 결코 고칠 수 없습니다."-27쪽

'조선일보'는 거대한 입을 가지고 있으니까 엄청나게 불리한 싸움일 수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처럼 부도덕한 언론과 아무도 싸우지 않는다면 누구도 정치를 바로 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누군가가 상처 입을 각오를 라고 이런 악의적인 언론의 횡포에 맞서 싸워야 한다. 내가 정치를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치적으로 상처를 입는 한이 있더라도, 다른 정치인이 이로 인해 조금이라도 피해를 덜 입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56쪽

'조선일보'가 반민주적인 특권집단이라는 본질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조선일보'의 권위와 신뢰를 높여주는 어떠한 인터뷰도 응할 수 없다. 나는 '조선일보'의 장사거리가 되지 않겠다. 민주당과 '조선일보'는 언론사 세무조사를 통해 비정상적 적대관계임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조선일보'가 편파와 왜곡보도를 통해 끊임없이 정부와 여당에 상처를 입히는 한 일상적인 협조는 불가능하다. 나는 '조선일보'의 편파와 왜곡보도로 많은 피해를 본 피해자의 한 사람이다. '조선일보'의 특권과 공격에 짓밟혀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인간적 도리 차원에서도 '조선일보'의 인터뷰에는 응할 수 없다. '조선일보'는 민주화 과정에서 남은 마지막 특권세력이자 성역이며, 이 특권세력을 실질적 법치주의의 지배 아래 놓이게 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완성시키는 민주화 운동이다.-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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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됐던 <멋진 징조들>이 다시 나왔다.  

얼른 사서 받아보니 역자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역자 이름이 눈에 들어오는 건 드문 일이라, 잠깐 생각해보니  
얼마전 읽은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도 이수현씨 번역이었다. 

그래도 뭔가 허전해 더 찾아보니,  
<한국환상문학 단편선>의 명작으로 꼽았던 세 작품 중 하나가 이수현씨 작품이었다.   
(http://blog.aladin.co.kr/zetipao/2267385)  

별것도 아닌데, 왜 이리 재밌지?ㅋㅋㅋ 

>> 접힌 부분 펼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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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devil 2009-05-04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쥬베이님 오랜만에 외출하셨네요~~^^
<멋진 징조들>은 오래된 책인데 상태가 괜찮나요? 전 어제 구간을 구입했는데 표지 상태가 심하게 변색되서 속상하더군요.

쥬베이 2009-05-09 16:58   좋아요 0 | URL
상태 좋아요^^ 최근에 새롭게 찍은 '쇄'더라고요.
lazydevil님도 좋아하실만한 책이에요^^ 강추!!ㅋㅋㅋ

도로롱 2009-05-05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이수영 작가의 '쿠베린' 표지는 잘못 넣으신 것 같네요 ^^;;

쥬베이 2009-05-09 16:57   좋아요 0 | URL
반가워요^^
저 표지는 제대로 넣었는데, 알라딘 오류때문에 저리 되었습니다ㅋㅋㅋ
고쳐 달라고 한지 엄청됐는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네요ㅜ.ㅜ

lazydevil 2009-05-10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징조> 사놓고 몇 년간 처박아 둔 책이에요.
재미있게 읽었다가 들고 다니며 읽기가 불편해서 한 1/4 읽고 덮어둔 기억이 나네요.
책은 예쁜데, 무겁고, 크고, 무겁고, 크고, 무겁고......ㅋㅋㅋ

쥬베이 2009-06-06 11:34   좋아요 0 | URL
맞아요ㅋㅋ
양장본이라 소장용으론 좋은데, 들고다니기엔 불편하다는^^
 
도착하지 않은 삶
최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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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들어가서 처음 좋아했던 아이는 책을 많이 읽었다. 많은 기억이 사라졌지만,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품고 다니던 모습만은 뇌리에 남아 있다. '서른'과 '대학새내기'라…도대체 어울리지 않는 이 조합이 미스터리했다. 그애는 최영미 시인에게서 무엇을 느꼈을까?

그래서 나도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읽기로 했다. 하지만, 결국 읽지 못했다. 왜 읽지 못했는지, 그 애에 대한 감정은 어떻게 됐는지, 기억 자체가 흐릿하다. 좋은 기억이라면 추억으로 남았을테니 분명 그리 좋은 일이 있었던 건 아니겠지. 뭐 아무튼.

말이 길어졌지만,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다. <도착하지 않은 삶>이 처음 읽은 최영미 시인의 작품이라는 것, 그 유명한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읽지 못했다는 것. 두 작품을 비교해 가며 최영미 시인의 작품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피는 것도 좋았겠지만, 지금은 무리라는 것까지.

<도착하지 않은 삶>의 느낌은 좋았다. '최영미 시인이 사랑받는 이유가 있구나'란 생각도 들었고, <서른, 잔치는 끝났다>도 얼른 읽어야 겠다는 생각도 했다. 1) 가장 마음에 든 건, 일상적인 소재를 친근하게 풀어낸 시다. 관리실 방송을 듣고 웃음을 터트리는 내용의 [한가한 오후](p.49), 귀여운 조카에 대한 애정이 묻어있는 [행복](p.72), 조카와 영화 '미이라3'를 본 에피소드인 [극장](p.76) 같은 것들. [한가한 오후]의 일부를 소개한다.

406동에 사는
세준이 어린이는 지금 즉시
큰엄마네 집으로 가기 바랍니다

?
관리실에서 내보내는 우리말을 이해하고
웃음의 꼭지가 터져 책상이 뒤집힌다
엄마도 아니고 왜 하필 '큰엄마'인가?

(…)

그나저나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하하. 관리실 아저씨의 약간은 어눌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지 않은가? 방송을 듣다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는 작가의 모습도 보인다. 친구 집에서 게임에 몰두중인 세준이 어린이도 보인다. 관리실에 전화해 세준이를 찾는 큰엄마의 모습도 보이는 듯 하다^^

2) 시인의 의지가 강하게 느껴지는 시도 상당수다. [2007년의 사포](p.24)는 시인의 다짐이다. '너는 나를 짓밟지만, 나는 / 화려하게 지구를 물들일 거야.'인 둘째 문단이 아주 인상적이다. 상당히 마음에 든다. 특히 '…짓밟지만 / 나는 화려하게…'가 아니라, '…짓밟지만 나는 / 화려하게…'부분에서 입술을 꽉 깨문 시인의 의지가 전해졌다. '나는......' 이렇게 다짐에 다짐을 하는 거다.

3) 특징적인 시도 있다. 미국산 소고기반대 촛불집회를 소재로 한 [2008년 6월, 서울](p.52)은 촛불집회와 함께 역사에 남을만한 시다. (혹시 이를 소재로 한 다른 시도 있는지 찾아보고 싶다.) 인상적인 구절은 '유모차 부대를 호위하는 청년들이 어찌나 멋있던지! / 한국 남자들의 품종이 눈부시게 개량됐어 / 역사는 이렇게 진보하는 거야'이다. '품종개량'이란 구절이 참 재미있지 않은가? 뭐 분노하는 남자도 있겠지만.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대한 [지상 최대의 쇼](p.54)도 멋지다. 개막식의 아름다움과 강렬함에 영감을 받은 시라 간단하게 생각했는데, 그리 간단하지 않다. 다시 읽어보니 비판의식이 깔려 있었다. 화려한 겉치례나 서양문물에 대한 무분별한 동경이 곱게 보이지 않은 듯 하다. 일부를 소개한다.

(…)
서양의 근대문물이 얼마나 신기했으면,
봉건제에서 포스트모던으로 건너뛰어
2008년의 첨단기술로 버무린 무협지를 과시하는가.
백년의 어둠을 깨고
허공을 불지르며 질주하는 열차에
나는 브레이크를 걸고 싶었다.

4) 4부는 여행에서 영감을 얻은 국제적인 시가 많다. 교토의 사찰 용안사를 소재로 한 [아름다움이 너희를 자유롭게](p.91), 스페인 연안 항구도시 알리칸테의 풍경에 눈에 선한 [4월의 알리칸테](p.96) 등등. 이런 시는 이국적인 풍경이 생생하다 못해, 이국의 열기나 숨결까지 전해졌다. 여행을 소재로 한 시를 거의 읽지 못해서 더욱 신선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굉장히 좋았다.

최영미 시인의 작품은 처음이었지만, 단순히 처음으로 끝날 거 같지 않다. <도착하지 않은 삶>은 시인의 숨결이 묻어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문단(일본을 포함한)에 돌풍을 일으켰지만, 내겐 무관한 작품이었다. 반면, 이 작품의 강렬한 향기는 멀리 퍼지기 전, 내가 먼저 맡아 버렸다. 행복하다. 홀로 느끼고 싶은 욕심이 생길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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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즈 라캥
에밀 졸라 지음, 박이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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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을 읽으며, 평론가들이 얼마나 이 작품을 비난했는지, 에밀 졸라가 얼마나 분개했는지 알게 되었다. 누구라도 "<테레즈 라캥>의 작가는 포르노 그래피를 펼쳐놓고 스스로 만족해하는 불쌍한 히스테리 환자다."(p.13) 따위의 비난을 받는다면 분개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하지만 이런 문제는 내겐 큰 의미가 없다. 에밀 졸라가 자연주의 소설관을 확립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실, 자연주의 소설 관이 뭔지도 모르겠다.) 읽기 전 최대 관심사는, '어떤 면 때문에 박찬욱 감독이 이 작품을 이야기했을까?'였다ㅋㅋ

<테레즈 라캥>은 두 남녀의 원초적 욕망, 엇나간 애정을 그리고 있다. 철저하게 까발려진 인간의 욕망, 테레즈의 심리변화 양상은 가히 충격적이다. 평론가들이 왜 저런 반응을 보였는지 짐작이 간다. 이 작품은 직설적이고, 도전적이며, 가식의 그림자가 없다. 어깨에 힘주기 좋아하는 분들에겐 곱게 보일 리 만무하다. 뭐 아무튼. 인상적이었던 몇몇 부분을 살펴보자.

1) 강렬한 인물묘사

'에밀 졸라'란 이름을 들었을때, '지루하지 않을까'란 걱정을 했다. 유명한 거장의 작품은 대개 어렵지 않은가? 하지만 <테레즈 라캥>은 아니다. 작품이 짧은게 아쉬울 정도였다. 등장인물이 뿜어내는 진득한 욕망은 시종일관 시선을 집중시키고, 카미유, 테레즈, 로랑의 직설적인 대조와 묘사는 이야기에 한층 더 빠져들게 한다.

- 카미유에 대한 직설적 묘사.

'카미유는 죽음에서 살아났지만, 반복해서 닥쳐오는 열병에 떨어야 했다. 병으로 인해 끊임없이 고통을 받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카미유는 키가 작고 허약했으며, 가느다란 사지는 힘이 없어 움직임이 둔했다.(p.27)

- 로랑을 보고 놀라는 테레즈의 모습.

'테레즈는 새로 온 손님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훤칠한 키에 건장하고 얼굴빛이 싱싱한 로랑을 보고 놀랐다. 그녀는 인간다운 인간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억센 검은빛 머리가 내려앉은 낮은 이마와 두툼한 볼, 붉은 입술과 혈기가 좋은 반반한 얼굴을 찬양하는 기분으로 곰곰이 바라다보았다. (…) 그의 목은 굵고 짧고 기름지며 단단해 보였다. (…) 주먹을 쥐면 굉장히 커서 황소라도 쉽게 쓰러뜨릴 수 있을 듯했다. (…) 그의 옷 아래로 잘 발달된 근육과 두껍고 굳센 육체를 느낄 수 있었다.(p.51)

이 장면은 테레즈의 숨겨진 야성을 일깨우는 중요장면이다. 테레즈의 시선을 통해 카미유와 로랑이 완벽하게, 아주 직설적으로 대조된다.

2) 테레즈의 심리변화

테레즈의 심리변화 양상은 작품의 핵심이다. 내용을 누설할 수 있으니 간략하게 살펴보자. 사촌 카미유와 함께 보낸 어린시절 (내성적, 인내의 연속) -> 파리로 이사 후 잡화상을 하던 때 (무관심하고 백치에 가까운 태도) -> 로랑을 알게 됨 (숨겨진 야성을 일깨움) -> 로랑과의 애정행각 (야성적 본능의 폭발) -> 로랑과 갈등, XXX의 XX에 괴로워 함 -> 외면적으로 뉘우치는 테레즈 -> 결말. 이 정도다.

3) 해학적인 장면

쓴웃음을 짖게하는 해학적인 장면이 꽤 많다. 특히 목요일 저녁 멤버들(미쇼, 올리비에, 그리베 등)은 이런 해학성의 중심이다.

- 로랑은 테레즈를 좀 더 보기 위해, 카미유의 얼굴을 그려주기로 한다. 로랑이 그린 카미유의 초상화는 흉했지만, 카미유의 반응은 우습다. (이 장면은 이후 사태의 복선)

'초상화는 더러운 회색에 푸르스름한 넓은 얼룩으로 흉했다. 로랑은 아무리 밝은 색이라도 반드시 맥없고 지저분하고 만들어버렸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모델의 창백한 안색을 너무 유난스럽게 그려놓았다. 카미유의 얼굴은 물에 빠져 죽은 이의 퍼런 얼굴과 흡사했다. (…) 그러나 카미유는 캔버스에 나타난 자기의 모습에 보통 사람고 다른 풍채가 있다며 기뻐했다.'(p.64)

- 진실을 알게 된 라캥부인은 진실을 밝히려 한다. 하지만 말도 못하는 전신마비인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글씨를 쓰지만 결국 실패. 목요일 멤버들은 이런 그녀를 보고 엉뚱한, 우스운 반응을 보인다.

"그건 빤해. 눈을 보면 난 그 구절 전체를 알아차릴 수 있어. 식탁에 다 쓸 필요도 없어. 부인의 시선 하나만을 봐도 충분해. 아주머니는 '테레즈와 로랑은 날 잘 보살펴줘'라고 말하려는 거야.", "부인이 자시에게 따뜻한 애정을 보인 두 내외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 것은 확실해. 이건 가족 전체의 명예지."(p.285)

- 목요일 저녁 멤버들의 해학적 면모가 또한번 부각되는 장면이 있다. 테레즈와 로랑의 갈등, 카미유의 음울한 그림자가 드리운 집을 그들은 이렇게 떠든다.

"나는 여기 있으면 너무 좋아 돌아갈 생각이 안 들어.", "글쎄 말입니다. 이 방에서는 고상한 사람들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여기 있으면 기분이 썩 좋은 거지요.", "이 방은 '평화의 전당'이야."(p.345)

<테레즈 라캥>은 소설적 재미가 충만한 작품이다. 역자가 '신파극의 한 장면 같다'(p.357)고 한 마지막 장면조차도 인상 깊었다. (욕망의 파국이란 차원에서는 아주 효과적인 결말이라 생각한다.) 강렬한 인물묘사는 아주 잠깐 '지나친 과장 아냐?'란 생각을 하게 했다. 하지만, 결코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테레즈나 로랑을 품고 있다. 두려워하며 숨기고 있을 뿐. 도리어 다른 어떤 소설 속 인물보다도, <테레즈 라캥>속 인물들은 생생하고 현실적이다.  

 

* 오래전 OCN에서 심야영화를 봤다. 그렇고 그런 중화권 영화였는데, 제목도 주연배우도 기억나지 않는다. 놀랍게도 그 영화의 내용은 <테레즈 라캥>과 완전히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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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젠트
가쿠다 미츠요 지음, 양수현 옮김, 마쓰오 다이코 그림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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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내가 스무 살이어쓸 때, 엄마는 내가 사스케를 낳기 직전에 돌아가셨다. 사춘기 때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 그래도 나는 엄마 아빠를 좋아하지 않았다. 두 분이 모두 돌아가셨을 때, 나는 사스케가 들어 있는 커다란 배를 끌어 안고 울었다. 몸에서 모든 수분이 빠져나가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울었다. 부모님의 죽음이 슬펐다기보다, 부모님을 좋아하게 될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결국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 또 앞으로도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그 사실이 참을 수 없이 슬펐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엄마 아빠가 가여웠다. 딸이 결국 좋아하게 되지 못한 채로 사라져버린 사람들.-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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