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즈 라캥
에밀 졸라 지음, 박이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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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을 읽으며, 평론가들이 얼마나 이 작품을 비난했는지, 에밀 졸라가 얼마나 분개했는지 알게 되었다. 누구라도 "<테레즈 라캥>의 작가는 포르노 그래피를 펼쳐놓고 스스로 만족해하는 불쌍한 히스테리 환자다."(p.13) 따위의 비난을 받는다면 분개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하지만 이런 문제는 내겐 큰 의미가 없다. 에밀 졸라가 자연주의 소설관을 확립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실, 자연주의 소설 관이 뭔지도 모르겠다.) 읽기 전 최대 관심사는, '어떤 면 때문에 박찬욱 감독이 이 작품을 이야기했을까?'였다ㅋㅋ

<테레즈 라캥>은 두 남녀의 원초적 욕망, 엇나간 애정을 그리고 있다. 철저하게 까발려진 인간의 욕망, 테레즈의 심리변화 양상은 가히 충격적이다. 평론가들이 왜 저런 반응을 보였는지 짐작이 간다. 이 작품은 직설적이고, 도전적이며, 가식의 그림자가 없다. 어깨에 힘주기 좋아하는 분들에겐 곱게 보일 리 만무하다. 뭐 아무튼. 인상적이었던 몇몇 부분을 살펴보자.

1) 강렬한 인물묘사

'에밀 졸라'란 이름을 들었을때, '지루하지 않을까'란 걱정을 했다. 유명한 거장의 작품은 대개 어렵지 않은가? 하지만 <테레즈 라캥>은 아니다. 작품이 짧은게 아쉬울 정도였다. 등장인물이 뿜어내는 진득한 욕망은 시종일관 시선을 집중시키고, 카미유, 테레즈, 로랑의 직설적인 대조와 묘사는 이야기에 한층 더 빠져들게 한다.

- 카미유에 대한 직설적 묘사.

'카미유는 죽음에서 살아났지만, 반복해서 닥쳐오는 열병에 떨어야 했다. 병으로 인해 끊임없이 고통을 받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카미유는 키가 작고 허약했으며, 가느다란 사지는 힘이 없어 움직임이 둔했다.(p.27)

- 로랑을 보고 놀라는 테레즈의 모습.

'테레즈는 새로 온 손님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훤칠한 키에 건장하고 얼굴빛이 싱싱한 로랑을 보고 놀랐다. 그녀는 인간다운 인간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억센 검은빛 머리가 내려앉은 낮은 이마와 두툼한 볼, 붉은 입술과 혈기가 좋은 반반한 얼굴을 찬양하는 기분으로 곰곰이 바라다보았다. (…) 그의 목은 굵고 짧고 기름지며 단단해 보였다. (…) 주먹을 쥐면 굉장히 커서 황소라도 쉽게 쓰러뜨릴 수 있을 듯했다. (…) 그의 옷 아래로 잘 발달된 근육과 두껍고 굳센 육체를 느낄 수 있었다.(p.51)

이 장면은 테레즈의 숨겨진 야성을 일깨우는 중요장면이다. 테레즈의 시선을 통해 카미유와 로랑이 완벽하게, 아주 직설적으로 대조된다.

2) 테레즈의 심리변화

테레즈의 심리변화 양상은 작품의 핵심이다. 내용을 누설할 수 있으니 간략하게 살펴보자. 사촌 카미유와 함께 보낸 어린시절 (내성적, 인내의 연속) -> 파리로 이사 후 잡화상을 하던 때 (무관심하고 백치에 가까운 태도) -> 로랑을 알게 됨 (숨겨진 야성을 일깨움) -> 로랑과의 애정행각 (야성적 본능의 폭발) -> 로랑과 갈등, XXX의 XX에 괴로워 함 -> 외면적으로 뉘우치는 테레즈 -> 결말. 이 정도다.

3) 해학적인 장면

쓴웃음을 짖게하는 해학적인 장면이 꽤 많다. 특히 목요일 저녁 멤버들(미쇼, 올리비에, 그리베 등)은 이런 해학성의 중심이다.

- 로랑은 테레즈를 좀 더 보기 위해, 카미유의 얼굴을 그려주기로 한다. 로랑이 그린 카미유의 초상화는 흉했지만, 카미유의 반응은 우습다. (이 장면은 이후 사태의 복선)

'초상화는 더러운 회색에 푸르스름한 넓은 얼룩으로 흉했다. 로랑은 아무리 밝은 색이라도 반드시 맥없고 지저분하고 만들어버렸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모델의 창백한 안색을 너무 유난스럽게 그려놓았다. 카미유의 얼굴은 물에 빠져 죽은 이의 퍼런 얼굴과 흡사했다. (…) 그러나 카미유는 캔버스에 나타난 자기의 모습에 보통 사람고 다른 풍채가 있다며 기뻐했다.'(p.64)

- 진실을 알게 된 라캥부인은 진실을 밝히려 한다. 하지만 말도 못하는 전신마비인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글씨를 쓰지만 결국 실패. 목요일 멤버들은 이런 그녀를 보고 엉뚱한, 우스운 반응을 보인다.

"그건 빤해. 눈을 보면 난 그 구절 전체를 알아차릴 수 있어. 식탁에 다 쓸 필요도 없어. 부인의 시선 하나만을 봐도 충분해. 아주머니는 '테레즈와 로랑은 날 잘 보살펴줘'라고 말하려는 거야.", "부인이 자시에게 따뜻한 애정을 보인 두 내외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 것은 확실해. 이건 가족 전체의 명예지."(p.285)

- 목요일 저녁 멤버들의 해학적 면모가 또한번 부각되는 장면이 있다. 테레즈와 로랑의 갈등, 카미유의 음울한 그림자가 드리운 집을 그들은 이렇게 떠든다.

"나는 여기 있으면 너무 좋아 돌아갈 생각이 안 들어.", "글쎄 말입니다. 이 방에서는 고상한 사람들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여기 있으면 기분이 썩 좋은 거지요.", "이 방은 '평화의 전당'이야."(p.345)

<테레즈 라캥>은 소설적 재미가 충만한 작품이다. 역자가 '신파극의 한 장면 같다'(p.357)고 한 마지막 장면조차도 인상 깊었다. (욕망의 파국이란 차원에서는 아주 효과적인 결말이라 생각한다.) 강렬한 인물묘사는 아주 잠깐 '지나친 과장 아냐?'란 생각을 하게 했다. 하지만, 결코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테레즈나 로랑을 품고 있다. 두려워하며 숨기고 있을 뿐. 도리어 다른 어떤 소설 속 인물보다도, <테레즈 라캥>속 인물들은 생생하고 현실적이다.  

 

* 오래전 OCN에서 심야영화를 봤다. 그렇고 그런 중화권 영화였는데, 제목도 주연배우도 기억나지 않는다. 놀랍게도 그 영화의 내용은 <테레즈 라캥>과 완전히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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