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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라와 벡터. 크기만 있는 것과 크기와 방향이 있는 것. 흔히 쓰이는 말이지만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정역학과 동역학. 물리시간에 앞부분만 배우다 보면 정작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많은 과학자들이 있지만 동역학으로 진도를 나가지 못한다. (나도 그러하다) 알튀세르와 들뢰즈의 사유는 마르크스에서 시작한다. 거기에 왜 사람들이 변하지 않은가에 물음표를 찍고 무의식과 결합한다. 거기에 덧붙여 현재의 과학혁명을 사유에 접목시킨다. 그러니 알퀴세로와 들뢰즈를 읽으려면 이런 인식론의 단절과정을 유심히 지켜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산을 넘을 수 없다. 우연성, 사건, 마주침 등등 프랑스철학의 바탕에는 기본적으로 이런 인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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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비릴리오, 베르나르 스티글러, 허욱(육휘):
이 세 사람은 지금 관심을 갖고 읽는, 읽어나가는, 읽어야할 책저자들이다. 개인적으로 고령의 폴비릴리오를 높게 평가한다. '기술이 사고를 발명한다.' 이전까지는 세상을 해석하였다. 크기만 밝히려 무진장 노력을 하였다. 그래서 개인적인 평을 하자면 이 저자를 통해 크기와 방향을 갖는 인문학의 벡터사유가 가능해졌다고 본다. 이어서 훨씬 젊은 베르나르 스티글러를 읽고 있는데 심박하다. 레저, 노동의 가치가 아니라 기본소득의 방편을 넘어서 놀면서 가치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발랄함이 있다. 그 사유를 전개해나가는 듯도 하다.(아직 초반이라서....이러길 바란다. 더 읽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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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와중 발견한 사람이 홍콩출신이지만 독일에서 교수를 하고있는 유휘, 허욱으로 출간된 책들이 눈이 들어와 무릅쓰고 구매하였다.
재귀성과 우연성
이 책에서 반복되던 글귀인데, 기술과 우연이 겹치니, 분명 다른 뭔가가 있을 듯싶다. 어제 전시실에서 문화재단 기자들의 취재가 있기전 슬몃슬몃 읽기도 했는데, 그래그래 이런 학자가 분명있을 거야. 있어야지 한다. 박사학위논문이기도 하다는데 밤샘해서 읽고 싶은 충동도 느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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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친구와 하룻밤 깊은 책이야기와 여러 이야기를 하다보니 피로가 겹쳐 일찍 자고 일어나 새벽 책을 펼치려고 하니, 건물이 흔들린다. 어쩌지 못하는 너울위에 서있는 느낌이 잠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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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다. 괜찮은 저자들을 발견했으니,
제목은 들뢰즈의 말이기도 하다.
이제는 인식에 있어 진도도 나가야할 때다.
전혀 다른 지반위에 서있어야 한다. 학문도..기술도 그러하다.
동역학처럼 벡터사유가 가능한 시대다. 책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잘 가려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