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으로 살아감은 탐색에서 길어 올리는 발견이다. 246

1. 존재하는 모든 특성을 가지는 하나의 대상이 있을까?
2. 대상은 남김없이 모든 다른 대상과 구분될까?

세계는 사물들의 총체도, 사실들의 총체도 아니다. 오히려 세계는 존재하는 모든 영역이 등장하는 영역이다. 존재하는 모든 영역은 세계에 속한다. 그러니까 세계는 마르틴 하이데거가 정확히 표현했듯 <모든 영역의 영역>이다. 77

칸트와 하버마스는 세계란 일종의 <규제적 이념>이라고 말한다. 이는 곧 우리가 일단 세계 전체를 전제하고, 우리가 경험하고 인식하는 모든 것을 세계 전체의 단면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모순이 없는 통일성을 갖춘 세계관을 보장받을 수 있다...하버마스는 이런 세계 개념을 항상 의사소통의 실천에 의해 실현되는 세계 인식과 결부시켰다. 79

철학도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발전과 퇴보를 거듭한다. 철학이 이룩한 위대한 발전은 세계개념을 보다 더 낫게 개선해 낸 것이다. 82

모두의 질문에 동의하지 않으면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밖에 없다. 여전히 세계는 존재하는가? 당신에게 89

존재하다라는 동사는 발생하다, 돌출하다라는 뜻이다. 글자 그대로 옮겨본다면 비집고 나옴, 두드러져 나옴, 혹은 우뚝섬이라고 할 수 있다. 92/단 하나의 유일한 실체, 모든 특성을 가지는 슈퍼 대상이 있다는 주장은 틀렸다. 일원론은 슈퍼 대상이라는 게 앞뒤가 맞지 않은 개념인 탓에 필연적으로 잘못이다/일원론(스피노자)이 틀렸으며, 이원론(데카르트)은 근거를 가지지 않는다. 바로 그래서 단순히 맞지 않는 것을 지워나가는 배제 논리를 이용하더라도 남는 것은 다원론(라이프니츠)뿐이다. 100,101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의미장에서 나타난다. 존재는 의미장의 속성이며, 곧 의미장 안에서 나타나는 무엇이다. 115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

어떤 단 하나의 대상을 다른 모든 대상과 격리한다면 그 대상은 당장 존재하기를 멈춘다/완전하게 격리된 대상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이다. 대상은 반드시 의미장 안에서 나타나야만 한다. 그렇다면 의미장 역시 홀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132, 133

존재는 언제나 어떤 특수한 의미장 안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문제는 그게 어떤 의미장이냐 하는 것이며, 바로 ㅇㅕ기서 우리는 흔히 착각을 일으킨다. 146

과학적 세계관은 인간을 우주에 있는 일종의 돼지라고 가정한다. 존재를 감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영역과 혼동해, 인간이 가지는 감각적 욕구로만 광활한 우주를 바라본다. 인간을 우주의 돼지처럼 바라보면 모든게 무의미하게만 여겨진다는 사실은 전혀 놀라울 게 없다./현실의삶과 거리를 두면서 우리는 이미 이론적으로 많은 예단을 하고 만다....우리는 끊임없이 조작된 허블 망원경 ㅅㅏ진과 최신의 입자 모델로 세뇌당한다....오늘날에는 과학자와 전문가가 근본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신의 입자와 힉스 장뿐이며, 우리 인간은 우주의 돼지, 근본적으로 번식과 먹이에만 관심을 가지는 돼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목청을 높인다. 149, 150

형ㅇㅣ상학으로 끌리는 충동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런 충동이야말로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154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통찰, 무한한 변형으로 무한하게 늘어나는 의미장들만 존재한다는 통찰은 우리로 하여금 그 어떤 특정한 세계관에 사로잡히지 않고 인간의 자기 인식을 다룰 수 있게 허락해 준다. 모든 세계관은 틀렸다. 세계관은 하나의 세계라는 게 존재한다는 걸 전제로 그림을 그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156

자연과학의 세계관

과학은 우리에게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로운 태도를 선물하며, 사회적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지식을 선사한다. 과학은 그 방법을 체득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검증할 수 있고 수긍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지식을 이끌어 낸다. 165

과학적 세계관이 좌초하는 첫 번째 이유는 <존재론적>이다. 존재론은 과학적 세계관의 전제가 잘못되었음을 증명해 준다. 그러니까 잘못된 전제로부터 이끌어 낸 결론은 잘못이거나, 적어도 학문적인 근거를 갖지 못한다. 두 번째 이유는 <인식론적>이다. <그 어디도 아닌 곳에서 바라보는 시선>이라는 것을 우리는 가질 수 없다. 167

자연, 곧 우주만 존재한다는 이런 주장은 자연주의라 불린다. 그러니까 존재론이 자연 과학의 영역으로 분류하는 것만 존재할 뿐, 다른 모든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자연주의다. 168

근대 초의 철학은 그때부터 중요하게 여겨진 것은 실제로 있는 세계와 허구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일이었다. 현실의 세계, 우주는 곧 우리의 상상력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이어야만 했다. 그 결과 자연주의는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171

새로운 무신론 역시 하나의 통일적인 전체를 상정하고 이루어지는 주장이다. 그러니까 모든 것을 굽어볼 수 있어야만 가능한 주장이다. 이렇게 보았다는 전체, 곧 그 자체로서의 세계나 현실은 시공간의 거대한 통과 같다....물질적 일원론은 모든 일원론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슈퍼 대상, 곧 세계를 상정함으로써 무너지고 만다. 174

유명론..본래 모든 말(馬)을 포섭하는 말이라는 보편적인 개념은 없다. 단지 무수히 많은 개별적인 말들만 존재한다. 우리는 편의상 단순화해서 그걸 <<말>>이라고 부르는 것뿐이다. 이렇게 강변하는 게 유명론이다./리얼리즘은 우리가 쓰는 개념(사랑, 국가라는 추상개념도 포함)이 ㅅㅏ실을 단순화하는 공허한 ㅇㅣ름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우리가 ㄱㅐ념으로 ㄴㅏ타내는 것이야말로 구조다./새로운 리얼리즘은 이중의 논제, 곧 한편으로는 우리가 사물과 사실 그 자체를 인식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사물과 ㅅㅏ실 그 ㅈㅏ체가 하나의 유일한 ㄷㅐ상 영역에만 속하는 게 아니라는 두 개의 논제를 내세운다. 물질로 이루어진 대상만 존재하는 게 ㅇㅏ니다. 예를 들어 논리 법칙이나 인간의 지식 역시 우리는 물질 ㄷㅐ상과 똑같은 방식으로 알아볼 수 있다. 183-185


새로운 리얼리즘은 주관적 진리, 그러니까 특정 레지스트리를 쓰는 인간이라는 주관의 진리 혹은 보다 더 일반적인 동물이라는 주관의 진리가 존재함을 인정한다. 다시 말해서 주관적이라고 해서 모두 자의적 환상이라거나, 전부 틀렸다고 주장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까 사물 그 자체를 인식할 수 없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음매를 넘나들며 얼마든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한다. 202

과학적 세계관은 특정 인간관을 전제한다. 이 인간관은 과학자를 철두철미하게 합리적 존재로 이상화한다. 209

인물이나 정치 문제 혹은 예술 작품의 이해는 생물학이나 수학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며, 완전히 자의적이거나 단순한 취향 문제도 아니다. 과학적 세계관은 우주, 곧 자연 과학의 대상 영역이라는 특권적인 사실 구조만 중시함으로써 인간 실존의 의미는 건너뛰어 버리는 잘못을 저지른다. 213

과학적 세계관은 합리성의 왜곡된 인식에 기초한다. 과학적 세계관은 이해를 ㅇㅟ한 우리의 모든 노력에서 가설을 세우고 이를 실험으로 증명하거나 폐기하는 방법만 인정한다. 나름 의미를 ㄱㅏ지기는 하지만, 모든 경우에 적용할 수는 없다....가다머는 예술 작품 ㅎㅐ석과 인간 세계의 ㅇㅣ해는 우리의 자연 이해와 전혀 다른 종류의 것임을 강조한다. 214, 215

전체로서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통찰은 우리가 현실을 보다 더 바로 보고,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돕는다. 인간은 정신으로 활동하는 존재다. 정신을 무시하고 우주만 관찰한다면, 당연히 인간의 모든 의미는 사라진다. 217

종교의 의미

전체라는 것을 흡사 자연수와 같다고 하고, 최대의 자연수를 찾는다고 가정해보자/최대의 자연수와 똑같이 전체는 존재할 수 없다. 223

베버가 말한 세계의 탈마법화는 사회 질서가 합리적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현상이다...베버는 탈마법화를 반어적으로 <우리시대의 운명>이라고 표현했다. 225 니클라스 루만은 이 유산을 <합리성 연속체>라 부른다. 이 말이 품은 뜻은 전체로서의 세계를 조망하며 세계의 질서 원칙으로 떠받드는 합리성이 단 하나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ㄱㅏ정이다......물신 숭배는 모든 대상에 이 거대한 전체를 투사함으로써 성립한다. 이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야 할 책임을 사회로 떠넘기는 방임이 생겨난다. 227 라캉은 인간은 항상 자신의 의견을 <그 아래에 두며> 일종의 소속감을 느낄 주체를 찾는다..그는 이런 사정을 ~를 안다고 가정할이라는 말로 표현한다....사회 질서는 언제나 이 질서를 잘 알고 ㅈl켜 주는 주체를 전제로 한다. 228, 229 우리는 이런 <위대한 타자>에 의지하는 믿음을 빅브라더 신앙에 빗댈 수 있다. 230

과학을 향한 물신 숭배는 질서를 갈망하는 우리의 소원을 전혀 존재하지 않는 전문가 위원회에 떠넘기도록 조장할 뿐이다. 전문가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인생인지 결정을 내려 달라고 매달리는 일은 우상숭배와 다르지 않다. 230 모든 것을 지배하고 질서 ㅈㅣ우는 ㅅㅔ계 원칙을 갈망하는 믿음이 물신 숭배다. 231

슐ㄹㅏ이어마허가 종교에 관하여 하는 책에서 종교 개념을 정의했듯, 무한함을 바라보는 우리의 취향과 의미의 표현이다. 종교란 우주를 대상으로 가지며 인간이 우주와 맺는 관게라고 보았다...그러나 우주만 무한한 게 아니라, 우주를 마주하는 우리의 태도도 무한하다고 강조한다. 231 서로 다른 의견들이 어깨를 ㄴㅏ란히 하고 똑같이 소중한 것으로 보호받아야 할 개별적 관점이 존재한다는 통찰이야말고 실제로 종교 역사가 일궈 낸 위대한 성과 가운데 하나다. 233


과학적 세계관은 무수히 많은 종교들 가운데 하나일 따름이다. 있짇 않은 전체에 의미를 불어넣으려는 또 하나의 시도가 과학적 세계관이다. 233 종교는 ㅎㅏ나의 ㅇㅣ야기를 들려주며, 인간을 포함하는 동시에 인간을 훌쩍 넘어서는 사건의 질서를 알아내려 진력했다. 그러니까 종교는 본래 인간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멀리 나아간 의미의 탐색이라고 말할 수 있다./인간의 정신적 진화는..어떤 것도 이미 결정된 것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활짝 열린 의미다. 245


인생경험은 모두 나 자신을 찾아가는 ㅇㅕ정이다. 그리고 정확히 이것이 정신의 이해 과정, 곧 자아와의 만남이라는 의미의 이해과정이다/실제 존재하는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게 종교다. 이렇게 본다면 종교는 일종의 의미 탐색이라고 하는 말이 전적으로 옳다. 종교는 최대한의 간극을 뛰어넘어 신에게 나아갔다가 ㄷㅏ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고자 하는 우리의 욕구에서 비롯한다. 250, 251 종교는 전체라는 에움길을 통해 빙 돌아 오는 고난의 여정 끝에, 자아를 이해할 때 터져 ㄴㅏ오는 감격의 표현이다. 252

동물과 달리 사람은 정신을 갖는데 정신은 인간이 ㅈㅏ기 자신을 인격체로 끌어올리는 정황이다. 다시 말해서 자아를 탐색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 가는 과정에서 정신은 영글어 간다/정신이란 우리가 자기 자신을 다루는 ㅌㅐ도라고 썼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 스스로 자신을 규정하는 방식이 곧 우리 정신을 나타낸다./정신이 ㅈㅏ기자신을 바라보는 자기 ㅇㅣ해라는 점이다. 또 자신을 변화시키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발견이다. 우리는 변화할 수 있다. 255,257 무한함에 빠져 자신을 잃는 게 아닐까 두려워하지 않을 때 정신의 길은 열린다./기독교가 말하는 죄는 어떤 악행이나 음흉한 생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대하는 ㅌㅐ도, 곧 자신의 정신을 지워 버리려는 태도다. 258 종교의 본질은 인간이며, 의미 맥락 안에서 인간이 서야 할 자리를 찾아주려는 안간힘이다. 264

예술의 의미

상상은 정확히 현실과 혼동될 수 있는 바로 그것이다...상상을 포기한다는 것은 현실과의 접촉을 포기한다는 걸 의미한다. 272 예술의 의미는 우리에게 의미의 양면성 혹은 다의성을 친숙하게 만들어 준다. 275 시는 잘 정리된 수학 명제와 똑같이 진리 능력을 가진다. 중요한 차이는 시가 지닌 특성에서 나온다. 시는 언제나 그 자체의 언어로 이야기한다. 284

프로이트는 농담이 어떤 단어가 가진 심리적 강세를 전이시켜 줌으로써 무의식의 연상을 허락해 주어 우리가 웃어넘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평소 심리적 억압에 시달리는 사람은 농담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을 극복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287

말레비치 작품, 흰 바탕 위에 검은 사각형이라는 작품을 감상할 때 세계, 곧 우리가 그 안에서 움직이는 세계는 예술 작품이 앞으로 나오는 배경이 됨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291 배경은 배경으로만 남음을 의식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이해할 수 있다. 293

다른 것은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살아가야 한다는 정황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포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극복하는 첫걸음이다. 294

의미장 존재론은 인간의 관점을 존재론적 사실로서 이해한다. 세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그 안에 던져져 있고, 그 사이에서 연결 통로를 만드는 무한하게 많은 의미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관점은 인간 관점 그 이상의 것, 곧 존재론적 사실이다. 298

무한함을 향한 감각의 긴 여행

우리가 아는 모든 지식은 감각을 통해 얻어 낸 지식이다. 감각은 우리 몸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저 바깥>에, 그러니까 생쥐나 사과나무처럼 <현실 안>에 있다./모든 다른 감각과 마찬가지로 생각감각을 더욱 갈고 닦으며 비판적으로 키워 나가야 하지 않을가. 318

볕뉘

0. 우연히 눈에 들어온 책이다. 이어 읽기의 한 권으로 챙겨보다.

1. 계몽, 과학, 예술, 영화, 종교 모두 자신이 원하는 신과 환원할 무엇이 있다고 여기는 것은 아닐까? 있다고 여기는 것과 없다고 여기는 것 가운데 무엇이 더 나은가? 이 분야에 공통사항으로 사람, 인간을 공약수로 두었다. 인간을 위한 과학이고 세계관일까? 종교도, 감각도, 상상도....어쩌면 우리는 무엇에 얽매이거나 발아래 두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우리가 사유하는 근저를 다시 생각해보면 어떨까?

2. 저자의 사유는 뭔가 있다고 사유하는 전제를 의심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얽매이지 않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만들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3. 반지성주의라는 책의 한귀퉁이 말이 생각난다. 마찰력을 크게 하기 위해서 그것에 작용하는 모든 힘들이 거스르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이다. 지금의 세상이 다양해지려면 마찰력이 커져야 한다. 다른 것은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살아가야 한다. 다르게 다르게......그러기 위한 최소한의 선결조건.....당신의 뼛 속 깊이 지긋지긋한 X환원론이다. 차근차근 귀기울여야 할 부분들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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