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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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때, 존경하는 사람을 쓰라고 하면 '아빠'라고 쓰곤 했다.

아빠는 연구원이었지만 연구 이외의 다른 일들로 항상 바빴다. 노동자와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싸우느라 바빴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전국을 돌아다니느라 바쁘다고 홍길동 아빠라고 했었는데, 그러면서도 아빠가 내 고등학교 3년 내내 아침밥을 차려줬다는 얘기는 자랑인가ㅎㅎ

16년 전 아빠의 첫 도전 때, 나는 투표 결과도 기다리지 못하고 잠들 만큼 어렸다. 아빠의 두번째 도전이 열리는 지금, 스물다섯 살의 나는 여전히 아빠 앞에서 어리지만, 아빠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애쓰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왜 중요한지, 조금씩이나마 알아가고 있기에 아빠를 응원한다.

보고싶은 아빠! 화이팅~

 

 

 뱀발.

 

1. 가까운 지인이 아니라 삶의 절반을 같이 나누고 고민하면서 지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일터 직장을 잡고 연구원으로 "여울'이라는 모임을 함께 만들고, 소식지를 내고, 풍물패를 운영하고...참터를 여러지인들과 함께 만들고 초대운영위원장(대표가 없다.운영위원장이 대표임)을 지낸 이성우후보다. 그리고 틈틈히 시를 쓰는 시인이기도 하다. 물론 가문비와 느티, 안해 가족의 밥상을 챙기는 주부이기도 하다.

 

 2. 아이들 이름을 공모를 했지만 모두 가문비아빠의 작명이 우리 아이의 이름들이기도 하다.

 

 3. 시를 쓰는 노조위원장, 그래서 안심이다. 놓치지 않는다. 긴장도 돌이킴도 말이다.

 

 4. 16년전 유성 한 초등학교 운동장 연설회, 사람들은 그 때를 잊지 못한다. 선거운동원이 요구하는 원고가 아니라 즉석에서 해내는 그의 연설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고 상대후보 지지자들의 마음도 빼았았다. 그의 득표는 지지정당을 훨신 상회했고, 상대후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정도의 득표율을 얻었다. 물론 그의 능력은 보이는 것을 훨씬 넘어선다. 성실함도 그러하다.

 

5. 혹시 가까이 지인분들이 계시다면 (노은, 신성, 전민, 관평, 송강 모두 유성을 지역이다.) 신성한 권리를 행사하시길 바란다. 지지후보와 지지정당 모두 마음 편히 고를 수 있어 모처럼 편안한 선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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