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해콩님의 "'불안'이 지배하는 사회 - 홍세화"

  원죄의식이 천오백년동안 사람을 움직였다면,  '불안'은 또 다른 천년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혼'마저 빼내기위해 혈안된 자본은 끊임없는 '불안'의 그늘로 스스로 성장시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위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발버둥은 끊임없이 자신의 쳇바퀴에 자신을 학대시키는 것인지 모르도록 집요한 것 같습니다. 

정규직은 정규직대로, 비정규직은 비정규직대로, 중소기업 임원과 사장은 사장대로, 불안 속에 자신의 영혼을 팔아먹으며, 제 속도를 부지런히 높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그때 자신의 이익이 중요할 뿐이지, 어떻게 남생각할 여유가 있겠는지요?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되면 그 동안 자신이 몸담던 그늘은 다 남일이 되고, 정규직은 임원이 되면 다 남일이 되고... ...

자본의 시대는 어느 덧, 예측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잘 나가는 일터라도, 그 나락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자본에게 안락한 고용과 평화로움을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이야깁니다. 나락으로 추락하기 않게 하기위해 스스로 몸에 채찍질을 가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기껏해야  마조히즘의 쾌락밖에 남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마음이나 정신이 쉴 곳 마저 없는 현실은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 싶습니다. 하지만 시작할 곳도 거기서부터 일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요? 채찍과 당근에 익숙해진 우리의 지친 몸과 영혼에겐 떨어진 바닥에서도 새싹이 돋고 피고,  남생각하는 공간에서, 함께 해보는 일들에서, 취미삼아 해보는 자발적 가난에서 애초 기초없이 시작한 자본의 바벨탑은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공적인 영역은 시선을 돌리는데에서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마음의 시선. 일주일에 한 시간이라도 지역과 사회, 남 생각해보는데서... ... 취미삼아 남 일 해보는데서...... 말로 하지 말고.. 공동의 노동자의식과 공적인 시민의식의 샘물마저 말라버린 척박한 현실에서 그래도 해 봐야 할 것 들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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