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엘 들러 반납하려하자, 이틀정도 기한이 남은 줄 알았으나, 이틀이 지났단다. 성석제 소설책 몇권을 뒤적이고 위치를 확인해두고 나머지 일을 보았다. 날이 차다. 구*도서관 생각이 났지만, 꾸욱 참았다. 저녁 가벼운 운동에도,  읽지 않은 책들을 펴들자 꾸벅꾸벅 졸린다. 아홉시도 되지 않았건만... ... 막내녀석 개콘본다고 궁시렁거리더니, 시작하기도 전에 잠에 골아 떨어진다. 같이 잠을 청한다.

일어나보니 한참 이른 새벽이다. 배도 출출하여 밥을 하고, 간단히 챙겨먹고. 읽지 못했던 이책을 꺼내들었다. 서문과 홍세화 인터뷰 편을 보았다. 생각보다 깊이가 깊다. 읽다가 몇꼭지가 맘에 걸려 흔적을 남긴다.


1. 과연 한국사회 구성원이 어떤 공동의 목표를 놓고 대담이나 토론 같은 것을 할 수 있을까? 정치권만 아니라 지식인들의 대담이나 토론조차도 그 안에 승패의 논리가  강하게 담겨있다고 본다. 이것은 관계가 항상 부정하는 관계로만 서고, 우리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 속에서 어떤 공통분모 같은 것이 조성될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런 점에서 보수나 진보, 둘다 마찬가집니다. 민주-반민주할 것 없이 부정하는 관계에 익숙해지면서 진보세력 역시 똑같은 습속에 젖어버리게 된 겁니다. (중략)

수직적 질서만 강조되고 수평적 관계에 대한 훈련이나 경험이 없는 것이죠.  티브토론을 보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더 정교하게, 깊이있게 하는 것이 토론의 목적인데,  나온 사람 중 의견이 똑 같은 사람에 대해 '얼마나 말을 잘했나''나를 얼마나 잘 대변해주나'에만 관심을 갖고 게임으로 바라보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뱀발 01. 다름의 관계가 부정하는 관계로만 착근했다는 것. 우리에게 배려라는 것이 있기나 한 것일까? 상대방이 다르다는 선입견이 든 이상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는 본능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제 어디서든 다름의 관계에서 차이를 분화시키는 것에 대해 열려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 조차 힘들었던 것은 아닐까? 몇시간 내내 논의를 하였지만, 늘 원점으로 돌아오는 악순환의 고리는, 못된 습속이지 않을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많이배우고, 그렇지 않음을 고사하고...암울한 환경에서 살아남기위해 발버둥치며 익힌 것이라 하지만... ... 서로를 무척 힘들게 하는 것임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탈의식화'의 단계를 벗어나지 않는 이상. 그 나물 그 밥이거나, 그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2. 정치 사회적인 것이든 이념이든 뭐든 자기 규정은 하지 않으면서 '개량주의자'니 '노빠'니 '빨갱이'니 이런식으로 상대방에게 딱지붙이기는 아주 쉽게 잘 합니다. 남에게 딱지를 붙이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규정을 분명히 해야 하는데, 자기 규정은 소홀한 채....(중략) 자기 규정을 스스로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성찰을 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럼 자기 성찰은 왜 하는 겁니까? 자기 성숙의 모색을 위해서 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물신주의에 의해서 그런 전제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에 자기 성찰 없이 아주 쉽게 남에게 딱지를 붙이는 그런 태도를 보이게 된다는 겁니다.

뱀발 02.  1.과 2.는 상관관계가 있다. 애석하게도 단 한번의 만남에도 다르다는 인식은 부정적인 습속에 딱지가 붙는다. 그리고 알맹이는 오간데 없고,  그 딱지만 유통되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에 한발자욱도 디딜 수 없는 현실이다. '근본주의자'라고 '황빠'라고 '노빠'라고 유통시키기 전에 나에 대해 냉정해지고, 스스로 엄중해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현장'파니 '국민'파니, 엔엘이니 피디니 하며 유통시키기 이전에 지향에 대해 어떤 점들이 도움이 되는지 생각만해도 해야할 가슴 벅찰 일들이 많을 것은 아닌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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