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의 의미는 무엇일까? 주희는 ‘중’은 치우치거나 기댐이 없으며 지나치거나 부족함이 없는 것이고, ‘용’은 평상의 의미로서 본분에 의거하여 괴이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 한대의 정현도 ‘용’을 항상되다의 의미로 보고 “중을 사용하여 항상된 도가 된다”라고 주를 달고 있다. 또한 현대 중국 사상사학자인 전목은 장자 제물론에서 처음으로 ‘용’이 사용되었다고 하면서 ‘중용’의 용도 장자에서 나온 의미와 마찬가지로 ‘작용한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하였다. 52
대학
머무를 곳을 알고 난 뒤에야 일정한 방향이 있게 되고, 일정한 방향이 있고 난 뒤에야 차분해질 수 있으며, 차분해진 뒤에야 평안해질 수 있고, 평안해진 뒤에야 사려할 수 있으며, 사려한 뒤에야 성취할 수 있다. 64
시경에 “저 기수의 굽이, 저토록 아름답고 푸른 대나무가 우거져 있구나! 멋있는 군자의 모습이어라. 잘라놓은 듯 다듬어놓은 듯 쪼아놓은 듯 갈아놓은 듯하도다. 치밀하고 굳세며, 빛나고 성대하니, 멋있는 군자를 끝내 잊을 수 없어라”라고 노래하였다. 여기서 ‘잘라놓은 듯 다듬어놓은 듯하다’는 것은 배움을 말하고 ‘쪼아놓은 듯 갈아놓은 듯하다’는 것은 스스로 닦는 것을 말한다. ‘치밀하고 굳세다’는 것은 매사 두려움을 느끼며 삼가는 것을 뜻하며, ‘빛나고 성대하다’는 것은 위엄을 갖춘 태도를 말한다. 77
자신의 의지를 성실하게 한다는 것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악을 싫어하기를 마치 악취를 싫어하듯이 하고, 선을 좋아하기를 마치 미인을 좋아하듯이 하는 것, 이것이 스스로 만족하면서 흔쾌히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홀로 있을 때에 신중하게 행동한다. 85
“몸을 닦음은 자신의 마음을 올바로 하는 데 있다.”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 분노가 있으면 마음의 올바름을 얻을 수 없고, 두려움이 있어도 마음의 올바름을 얻을 수 없으며, 좋아하고 즐거워함이 있어도 마음의 올바름을 얻을 수 없고, 우환이 있어도 마음의 올바름을 얻을 수 없음이다. 89
자신이 아랫사람의 위치에 있을 때 윗사람에게서 본 싫어하는 모습으로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며, 자신이 윗사람의 위치에 있을 때 아랫사람에게서 본 싫어하는 모습으로 윗사람을 섬기지 말라. 101
재물이 모이면 백성들은 흩어지고, 재물이 흩어지면 백성들이 모인다. 105
인자한 사람은 재물을 잘 써서 자신을 드러내고 인자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을 다하여 재물을 모은다. 112
국가를 이끌어가면서 경제에 힘쓰는 것은 반드시 소인에게서 나온다. 소인에게 국가를 다스리게 한다면 재앙과 해악이 함께 이를 것이다. 어진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국가는 이익만을 추구함으로써 이익을 창출하지 않고 의로움을 추구함으로써 이익을 창출해야 한다”라는 의미이다 113
볕뉘. 이러저러한 구절들이 마음에 걸린다. 방향을 잡고 유지하는 것에는 덧붙은 것들을 잘 풀고 어루만져야 한다. 마음을 잃는 일은 생각보다 쉽고 그르치는 것도 그러하기 때문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