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 **를 다녀오는 길, 라디오에서 '혼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튀기'라는 폭력언어말고 '선망'/'두려움', 그 이질감은 교육덕택에 여전히 내몸 속에 살아있다. 아직도 꿈틀거리고 있다.

'코시안'-한국인과 아시안의 2세,3세는 몇명인지 통계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한다.  그렇게 외모의 차이에서 출발한 '차별'은  점점 눈덩어리처럼 커져 제 발목을 잡는 것은 곧 얼마지나지 않아 현실이 될 것이라고 한다.

사소한 '문제', '차이'에서 시작한 '차별'은 역시 그 근원에 '상식'이란 답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런 차이없음으로 배려하고 준비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의 건강성을 키우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여러 차별은 곳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무관심 속에 자라고 있을 것이며,

새순이 다 자란 차별은, 과감하게 잘라내지 않고선 없어지지 않는 버거운 일로 커져있을 것이다. 남녀차별, 학력차별,지역차별...어쩌며 모두 원점은 '상식'일지 모른다. 네편-내편을 가르는 이질감에 대한 사소한 출발이 이렇게 큰 눈덩이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원점에서 되돌이켜 생각할 수 없는 빡빡함....

차별의 출발엔 상식이 뜨거운 봄볕으로 숨어있는지도 모르겠다. 구르는 눈덩이는... ... 애초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자라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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