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문제와 가짜문제

 

1.

성찰이 우리 일상의 안주거리라면 이것이 논제가 될 수 있게지만,

세상이 너무 각박해 혼자만 처신하기에 급급하다면,

믿을 놈이 없어 내 친한 놈만 친구한다면,

이야기조차 꺼낼 수 없어 난감해 할 것이다.

 

좋은 세상 바라는 것이야, 좀 더 낫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니

물길을 돌리거나, 물길을 만들어보거나, 한번 헛튼짓이든 해보는 것도 미덕이 되지만,

별것도 아닌 '나'란 실존에 허덕여 결국 나마저 모르는 우를 범하지 말았으면 하는데

 

암튼 혼자생각이겠지.  가끔 알*딘 흔적을 지나치다보면

'나'란 내면의 놈을 찾으려면 

남을 찾거나

'나'아닌 것을 하다보면 스스로 알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나'란 블루오션이나 실존은 마치 있는 것처럼

파면 금덩어리처럼 나올 것 처럼

하는 흔적이 보여  ... ...

 

2.

31쪽  도정일 -

 인문학적 소양이란 어떤 것인가? 두터운 세계를 위한 윤리학. - 타인을 이해한다. 타자를 이해한다. 우리말로 하면 역지사지, 바꿔서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한다는 건데, 기본적으로 타자를 긍정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것은 내가 나의 울타리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울타리를 열어서 타인을 받아들이거나 내가 나를 버리고 타인의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죠.

자본주의 문화는 자아의 문화, 나르시시즘 문화죠. 문을 꼭 걸어 잠그로 이해만 따지고, 절대로 문을 열지 않고, 접촉은 이해관계가 통할 때만 하고. 그런 문화 속에서 자아라고 불리는 단단한 문의 폐쇄화가 끊임없이 일어나죠. 이럴 때일수록 껍질을 깨주는 상상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나는 예술이 수행하는 가장 위대한 인문학적 경험은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자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인문학적 삶의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 첫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가슴을 여는 사회'입니다. 자기만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울타리를 걷어치울 줄도 알아야 하죠. 그래야 타자가 들어오거나 자기가 자유로울 수 있는 것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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