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환란 속으로 거칠게 틈입하는 김이듬의 마임은 김수영이 일찍이 건설한 온몸-게토의 성실한 시민, 아니 흔들리는 난민으로 주체를 등록하기 위한 자해헌정의 몸짓이다. 말 그대로의 타고난 발성은 입을 막거나 목청을 제거하면 그만이라는 점에서 언제나 불충분하고 불안정하다. 그녀의 온몸이 언어이고 입이어야 하며 그녀가 온몸에 구멍을 계속 뚫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말과 피를 동시에 철철 흘리는 온몸의 마임그곳은 말할 수 없는 애인끼리의 모럴과 에로시티즘, 그리고 대화가 갱신되고 성숙되는 원형 공간 자체이다. 그러니 우리는 먼저 물어야 한다. 얌전한 관객으로 마임을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배우가 흘린 말과 피를 우리 몸에 뭉텅뭉텅 바를 수 있는가를. 아마도 이 비릿한 것들끼리의 연대만이 돼지우리 속의 감시와 처벌을 뚫고 저숲 어딘가에 세워졌거나 세워질 성으로 가는 길을 희미하게 비춰줄 것이다. - 김이듬, 말할 수 없는 애인

  

  

소크라테스가 유일하게 추구한 목표는 알키비아데스의 논리를 무력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무력화가 성공했다면 알키비아데스는 지혜가 거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겠지요. 지혜가 교환할 만한 것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귀해서가 아니라 지혜는 결코 자기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항상 상실되고 항상 새롭게 부재의 현존을 찾아 나섭니다. 무엇보다도 지혜는 그 자체가 교환에 대한 의식, 의식적인 교환, 대상은 없으며 교환만 있다는 의식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지혜를 하나의 소유처럼, 사물처럼, 어떤 처럼 받아들이는 아키비아데스의 논리를 중단시킴으로써 그러한 반성을 불러일으키기 원했습니다. 알키비아데스와 아테네인들의 사물화논리에 딴죽을 건 거죠. 38, 리오타르, 왜 철학을 하는가에서

 

 

발. 

 

1. 일찍 잠이 들어 한밤에 깨다. 물 한모금 목을 축이고 시간을 죽이다 잠이 든다. 이렇게 잠든 날은 꿈이 확연히 드러난다. 마음 속에 맺힌 것을 드러내고 푼다. 꿈이 감사하다. 지난 주말 섬에 가는 길에 몇권의 책을 챙기다. 이 두권의 책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시집이 혼동스러웠고, 지난 흔적도 그리하였는데, 해제를 보고나서야 말끔해진다. 잡히지 않는 것을 잡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욕심이자 스스로에게 향하는 화살이다. 교환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 잡히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 불교에서 말하는 12지연, 愛와 取, 사랑과 집착은 허망함을 남긴다는 것. 있는 그대로 놓아두면 보이고 다룰 수 있을 수도 있는데, 안개를 부지런히 잡고, 무지개를 쫓고 잡고 싶어 안달이다. 말과 피가 난무하는 시공간을 헤아리려 동분서주할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피와 말이 나로 스며들게 하는 것이 오히려 올바른 방법이자 접근이다.

 

2. 잡지 원고를 넘기다. 소개한 책의 한권이 '민주주의'였는데, 그 민주주의 역시 그러하다. 구별하고 가려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있는 그대로를 느껴보는 것. 그 잔혹함을 온몸에 더 끼얹고 박박 기는 것이 현실을 온몸으로 통과해내는 것일 것이다. 이를 갈면서...아픔은 곤두서고....통과지점에 말이 토해질거다. 무슨 말일지 모르겠지만...다른 지평에 있는 그런 말씨와 핏덩어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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