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뉘.
1. 매슬로우의 가장 아래단계인 안전의 욕구마저 실현시키지 못하는 상징적인 일이 지금 이땅에서 벌어지고 있다. 국가가 경제논리에 사로 잡히거나 다른 국가를 경쟁대상이나 적으로 규정하는 일이 어김없이 재현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럴 경우 정치인은 국가의 시녀가 되며, 시녀의 역할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나라밖의 안전은 자기나라의 이익보다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일단 우리라도 잘먹고 잘살아야 정치수명도 연장할 수 있는 것이다. 오바마정부의 군사적인 헤게모니 전략으로 '아시아로의 귀환'은 조바심까지 보태는 듯하다. 옴 진리교의 탄저균 살포사건은 늘 대중들에게 지나간 사건으로 사라지지만, 생화학적 무기를 실험과 오용은 근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바이러스 폭풍]의 저자 네이션 울프는 크게 바이러스에 의한 리스크를 두가지로 보고 있다. 인위적인 보관과 살포, 실험으로 인한 것과 인수공통전염으로 인한 위험을 말하고 있다. 2011년에 쓴 책이다. 영장류나 인간이란 종은 한정되어 있지만, 바이러스는 매년 새로운 종이 출현한다. 착한 바이러스, 나쁜 바이러스라는 개념도 그렇지만 박멸을 목표로 삼는 연구개발 방향도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지 않은가싶다. 지구는 너무나 좁아져있다. 앎을 대하는 태도도 너무나 이기적인 것은 아닌가. 편의대로 정보를 끌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 극단의 경우의 수를 가정하고 그 위험을 줄여나가는 것이 보다 현명하는 태도가 아닌가 싶다. 가난한 사람이든 부자이든 정치인이든 생활인이든 모두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닌가 싶다. 저자는 신종플루와 동물독감이 같이 걸리는 경우의 위험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똑같이 탄저균이나 생화학무기의 전략적 실수 역시 씻지 못할 오명이 이 땅에서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우려스럽기도 하다.
“그 짐승은 멈춰 서서 몸의 균형을 잡는 듯하더니 의사를 향해 달려오다가 또다시 멈추어 섰고 작게 소리를 지르며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다가 마침내는 빠끔히 벌린 주둥이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져 버렸다.” 알베를 카뮈의 <<페스트>> 339
2009년, 나는 물론이고 많은 과학자들이 유전자 재편성 reassortment을 우려했다. H1N1바이러스가 세계 곳곳에 폭발적으로 확산되면서, 동시에 사람이나 동물의 체내에서 H5N1을 만난다면 천지개벽을 일으킬 가능성이 적잖이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조기에 이런 가능성을 알아내어 돌연변이를 일으킨 바이러스들이 확산되는 걸 신속히 차단해야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나 동물이 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동시에 감염된다면, 그는 효과적인 혼합용기 mixing vesseel가 되어, 바이러스들이 유전자를 교환할 최적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돼지독감인 H1N1에서 확산성을 물려받고, H5N1으로부터 치사율을 물려받는다면, 결국 지독한 치사율을 지닌 채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는 바이러스가 될 것이다. 23-24
1만 달러 이하로 인간 게놈 전체의 배열 순서를 정리하고, 휴대폰을 지상 어디에서나 사용할 만큼 거대한 텔레커뮤니케이션 기반시설이 조만간 구축될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긴 하지만, 놀랍게도 판데믹과 그 원인이 병원균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판데믹이 작은 마을에서 대도시로, 다시 세계 전역으로 확산되기 전에 이를 미리 예측하고 예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더더욱 아는 것이 없다. 27
진정한 의미에서 최초의 판데믹이 무엇이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천연두는 유력한 후보인 건 분명하다. 보유숙주로 추정되는 낙타를 가축화한 이후에 천연두는 구세계 전역에 확산되었지만, 신세계 토착민들에게는 천연두가 없었다. 그러나 약 500년 전부터 서서히 세계여행이 시작되면서 구세계와 신세계가 만나자 천연두는 신세계까지 넘어갈 기회를 얻었고, 그 결과로 면역력이 없는 수백만명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이런 대륙 간 이동 덕분에 천연두는 최최의 진정한 판데믹으로 선정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147
항공기의 도래로 인간의 교류는 더욱 빈번해졌고, 더불어 병원균의 교환도 훨씬 더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병원균의 잠복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잠복기는 한 개체가 병원균에 노출되어 감염되거나 병원균을 다른 개체에게 옮길 때까지의 기간을 뜻한다. 현재까지 알려진 병원균 중에서 잠복기가 하루 이하인 병원균은 거의 없다. 대다수의 병원균은 잠복기가 일주일 혹은 그 이상이다. 167
존과 그이 동료들은 1996년부터 2005년까지의 계절별 인플루엔자 자료를 분석해서 그 결과를 항공기 여행패턴과 비교했다...흥미롭게도 추수감사절이 낀 11월의 여행 성수기가 특히 중요한 듯한다. 물론 해외여행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해외여행자의 수가 줄어들면 계절별 인플루엔자 극성기가 그만큼 늦게 찾아온다. 여행자 수가 적을 때는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169
2004년 린더츠와 그의 동료들은 코트리부아르의 타이 국립공원에서 탄저균 때문에 침팬지들이 유사하게 떼죽음한 사건을 보고한 적이 있었다. 드야 보호구역에서 고릴라의 죽음은 이런 사례는 처음이었지만, 탄저균은 숲 유인원들의 킬러로 이미 악명 높았다. ..탄저균 포자는 오랫동안, 심지어 100년까지 생존가능하다. 만약 탄저균 포자가 수원지를 오염시켰다면 유인원들이 호수나 냇물을 통해 탄저균에 감염되었을 수 있었다. 226
현존하는 모든 영장류의 공통조상이 약 7,000만 년 전에 하나의 포말상 바이러스를 지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영장류가 다양하게 분기하며 종을 형성하자 그 바이러스도 따라갔다는 뜻이다. 놀랍게도 포말상 바이러스들의 진화나무와 영장류의 진화나무가 실질적으로 똑같다는 점이다. 246
현재 DARPA는 ‘프로페시’라는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며, 이 프로그램의 목표는 “모든 바이러스의 자연진화를 성공적으로 예측하는 것”이다. 프로페시는 세계 곳곳의 바이러스 빈발지역에서 해당 지역 현장 전문가팀의 협력과 첨단 테크놀로지를 적절하게 결합함으로써 지엽적인 집단 발병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지 예측하려는 프로그램이다....현재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와 판데믹에 대한 지식수준을 고려하면 DARPA가 추구하는 목표는 분명히 가능한 세계이다. 264
제너는 인류에게 최악의 천형이었던 천연두를 예방하는 백신을 개발해냈다. 일부 역사학자의 평가에 따르면, 천연두 백신은 역사에서 어떤 발견보다 많은 생명을 구한 최고의 발견이었다....우리에게 천연두의 박멸이 백신 덕분이라고 흔히 생각한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천연두 박멸’이라는 승리를 안겨주었던 백신은 실제로 순수한 바이러스였다. 우리는 그 바이러스를 제대로 이용하고 활용했을 뿐이다. 게다가 ‘백신vaccine’이라는 단어도 라틴어에서 우두를 뜻하는 바리올레 바키네에서 유래한 것이다. 바리올레는 ‘두창’을 뜻하고 ‘바키네’는 ‘소의’라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백신이란 개념은 어떤 바이러스를 생산적으로 이용해서 다른 바이러스와 싸운다는 뜻이다. 280-281
겨울철에는 호흡기 질환의 전염경로를 항상 염두에 두고, 호흡기 질환에 걸리지 않으려 애쓴다. 그래서 지하철이나 비행기에서 내린 후에는 손을 씻거나, 알코올을 기반으로 한 간단한 손세정제를 이용한다. 또한 많은 사람과 악수를 나누면 곧바로 손을 씻거나, 쓸데없이 코나 입을 만지지 않으려고 애써 노력한다. 언제나 깨끗한 음식을 먹고 깨끗한 물을 마시는 것이 중요하다. 안전하지 못한 섹스로 인한 위험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어떤 직업에 종사하고 어디에서 사느냐에 따라 대답은 달라진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만이 아니라 부자도 피해가지 못한다. 우리 모두는 하나로 이어진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306-307
손을 맞잡는 대신에 팔꿈치를 맞대는 식으로 악수법을 바꾸자는 제안도 있다. 이렇게 하면 손바닥보다 팔뚝에 대고 재채기를 하는 셈이기 때문에 감염성 질환의 확산을 막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악수 대신에 한국이나 일본처럼 허리를 굽히는 인사법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한 학자는 한명도 없으리라 생각된다. 분명 한국식의 인사법이 감염성 진환의 확산을 줄이는 효과가 있으리라 예상된다. 또 독감에 걸리면 수술용 마스크를 쓰는 관습도 병원균의 확산을 억제하는 데 효과가 있다....현재의 습관을 유용한 방향으로 대신할 수 있는 대안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323
3. 호환마마도 이렇게 다시 또아리를 트는 세상에 살고 있다. 각자도생도 어려운 세상이다. 어쩌면 근본적인 것을 다시 물어야하는지도 모르겠다. 안전한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그 환경을 다시 묻고 확인하는 일도 다른 시작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