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개비꽃 피어
나희덕
너의 말은 아마도
달개비꽃에 가까울 거라는 생각
자꾸만 뒷걸음질치다가
더 이상 물러날 곳을 찾지 못해 피어난 꽃
낮고 습한 곳에서
입술을 달싹이는 푸른 꽃
몸을 숙여 손을 뻗어보지만
너무 푸르스름해 끝내 만지지 못한 꽃
죽음의 눈 또한
왠지 푸른빛일 거라는 생각
수줍은 네 피가 식어
무덤 위에 내려앉은 북두칠성처럼
겨울의 죽음에도
어느덧 여름이 왔음을 알리는, 그 별빛
뱀발. 눈물이 나도록 시린 가을하늘을 찍어바른... ... 어제는 시가 몹시 생각나 방바닥에 널려있는 시의 집들을 수소문하다. 나희덕시인의 시들이 걸린다. 시린 마음들이 시린 시들이 오히려 따듯하다. 삶의 비밀번호라...네 삶으로 들어가는 비밀번호가 있다면... 엉뚱하게 말은 자란다. 네 삶들로 다가갈 수 있다면... ... 겨울의 죽음에도 여름을 알리는 그 별빛. 별빛이 총총하다. 푸른 빛이 가득하다.
풀의 신경계
풀은 돋아난다
일구지 않은 흙이라면 어디든지
흙 위에 돋는 혓바늘처럼
흙의 피를 빨아들이는 솜뭉치처럼
날카롭게 때로는 부드럽게
흙과 물기가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풀의 신경계는 뻗어간다
바람이 스치기만 해도
풀은 풀과 흔들리고 풀은 풀을 넘어 달리고 매달리고
풀은 물결기계처럼 돌아가기 시작한다
더 이상 흔들릴 수 없을 때까지
풀의 신경섬유는 자주 뒤엉키지만
서로를 삼키지는 않는다
다른 몸도 자기 몸이었다는 듯 휘거나 휘감아들인다
가느다란 혀끝으로 다른 혀를 찾고 있다
풀 속에서는 풀을 볼 수 없고
다만 만질 수 있을 뿐
제 몸을 뜯어 달아나고 싶지만
뿌리박힌 대지를 끝내 벗어나지 못해
소용돌이치는 풀,
그 소용돌이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싶고
나는 자꾸 말을 더듬고
매순간 다르게 발음되는 의성어들이 끓어오르고
풀은 너무 멀리 간다
더 이상 서로를 만질 수 없을 때까지
다시, 다시는
문을 뜯고 네가 살던 집에 들어갔다
문을 열어줄 네가 없기에
네 삶의 비밀번호는 무엇이었을까
더 이상 세상에 세 들어 살지 않는 너는 대답이 없고
열쇠공의 손을 빌려 너의 집에 들어갔다
금방이라도 걸어 나갈 것 같은 신발들
식탁 위에 흩어져 있는 접시들
건조대에 널려 있는 빨래들
화분 속에 말라버린 화초들
책상 위에 놓인 책과 노트들
다시 더러워질 수도 깨끗해질 수도 없는,
무릎 꿇고 있는 물건들
다시, 너를 앉힐 수 없는 의자
다시, 너를 눕힐 수 없는 침대
다시, 너를 덮을 수 없는 담요
다시, 너를 비출 수 없는 거울
다시, 너를 가둘 수 없는 열쇠
다시, 우체통에 던져질 수 없는, 쓰다 만 편지
다시, 다시는, 이 말만이 무력하게 허공을 맴돌았다
무엇보다도 네가 없는 이 일요일은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저 말라버린 화초가 다시, 꽃을 피운다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