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신드롬 두들겨보기


드는 몇가지 의문?


● 급발진사고: 완전자동화- 아직도 모른다 어디서 급발진할지? 어떤 경로로?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면 다행이구!

● 초식동물인 소에게 동물/살과 갈아서 먹인다. 고기근수는 많이 나갔으며, 생산량증대에 많은 기여를 했다. 돈많이 벌어주었다. 수십년뒤 광우병으로, 그 고기를 먹은 우리는?

● 식용개구리; 황소개구리를 식용으로 들여왔다. 전국이 몇년동안 밤마다 울음소리와 잔인한 식성에 시달리다.



어느 한 나라에선 지방 곳곳의 기후를 예측하는 시스템을 갖추면 기후가 예측가능하다고 하여 막대한 비용을 들여 국가적인 프로젝트를 기획한 적이 있다. 작고작은 것은 알면 큰 것을 알 수 있다는 오만함도 서려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린아이도 아닌 것을 안다. 코미디에서 이야기하는 “나비효과”가 아닌가? 아프리카의 나비 날개짓하나로도 미국의 기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카오스이론이 아닌가? 우리는 이런 환원주의에 너무 익숙해있다. 경제가 성장하면 정말 우리에게 혜택이 돌아오는 것일까? 대전에 관공서가 점점 들어오면 살기가 나아지는 것일까? 경제가 나아지는데 나도 나아질 것이라는 순진한 발상은 현실에 참으로 무력하다. 이 시스템에선 점점 힘들어진다.


혹 돈이 되면 다 옳다라고 환원하여 사고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돈 한번 벌어보겠다는 것이나 중국이 한번 돈 좀 벌어보겠다고 지난 과거를 답습하는 것이 큰 차이가 있을까?  자본의 세계화 덕에  중국의 짙은 황사와 비가 식초가 되어 허구헌 날 우리 머리에 내릴지 모른다는 것은 더 이상 우스개소리가 아니다.


근대 과학의 기획은 무생물,무기물의 근저에 흐르는 원리를 발견하여 불과 몇백년만에 어마어마한 성장을 이루어냈다. 그 도구로 인하여 많은 편리와 부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전문화못지 않게 통합적 지식이 필요해져가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점점 기술은 시스템화하고 유기적으로 움직여 생물화하여 간다. 그렇게 생명화될수록 사소한 결과가 시스템에 치명적인 손실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점점 빠른 것을 좋아할 수록, 걷기->자전거->오토바이->승용차->KTX에 이르기까지 속도에 중독될수록 거스르기 어려운 위험성도 커지는 것이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생물이란 유기체는 그 파급효과를 정말 예측하기 힘들다. 개구리한마리가 온동네를 그지경으로 만들지 누가 알았을까? 완전자동화의 매력이 급발진사고를 만들어낼지 누가 알았을까? 제 살코기를 먹은 소가 골이 빌어 나뒹굴어질지 누가 알았을까? 더 이상 프랑켄슈타인이란 괴물을 만든다는 오만함이 생명의 영역에서 끼어든다면 고스란히 맘 속에 핵폭탄하나씩 넣고 다니는 것은 아닐까?


경쟁력-정권-언론 코드와 애국심 교묘히 삼박자가 맞는 현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든다. 아무런 인문학습을 받지 못해도 아무소리 하지 않는 이공계의 현실, 자기 것만 점점 깊숙해져 세상일에 무감각해지는 박사들....그들의 맘 속에 사회는 없고, 오로지 경제만 있고, 돈되는 것만 있고,,,,거기에 빌붙어 있는 조그만 변방이 “사회”나“인간”이나 “앞날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일까? 우리 언론은 과연 소수자의 목소리에 열려있는 것일까? 전부 우려이길 바라지만... ...



설령 자본의 논리를 인정하더라도 수십년뒤  자본화되어 돈있는 사람만 선택적 치료를 받게 되어 골고루 혜택받는 공익성마저 논의의 뒷자리에 묻히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생명윤리문제에 대한 논의는 숙성이 되지 않아, 일방적으로 지탄을 받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이란 나라는 생명윤리도 없구. 그로인해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을 낳게 된 첫 나라라고 하면 어떤 오명을 뒤집어 쓸 것인가? 어쩌면 체르노빌 원전 사태처럼 그들이 그토록 이야기하는 국가신인도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길 수 있는 일은 아닐까?.


과학자의 윤리, 어느 하나만 골라 얻고자하는 근대적 욕망은 불행하게도 얻고자하는 것을 하나도 얻지 못할 수 있다. 정녕 갖고자 한다면, 시간을 갖고 예상하긴 어렵겠지만 만약이란 가정에 대해 연구를 하더라도 늦지 않는다. 배아줄기세포가 아니라 성체줄기세포에 연구력을 집중한다고 해서 늦은 것일까? 예상되는 부작용, 만일에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해 공론화하고 수십년이 걸려 연구한다고 해서 늦은 것일까?


이제 연구결과는 이제 먼저 비밀리에 터뜨리는 것이 되어서는 않는다. 새로운 법이 만들어지거나 개정되면 많은 이해당사자들이 많은 논의와 토론이 필요하듯, 연구결과로 완결된 완결물이 아니다. 사회속에서 숙성되지 않으며 그저 미숙아나 괴물밖에 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빨리빨리 한다고 제대로 된 것이 있었는가? 엊그제가 벌써 삼풍백화점 붕괴 10주년이었다한다. 그때부터 논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돈되는 것으로 전도되지 말고, 인간과 사회란 그릇에 넣고 발효되어야 진정한 가치를 얻어내는 것은 아닐까?


우려에 대한 연구와,

과학자들과 시민들의 윤리적 인식을 성숙시키는 문제와,

아직도 약한번 못쓰고 빈곤과 기아에 날이가면 갈수록 암울해져가는 제3세계의 문제, 치료에 대한 분배의 문제는 결코 서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전문기자 하나 없이 이리저리 유행만 쫓게하는 지방언론의 열악함은 그저 중앙신문의 논조만 부지런히 따르게 만드는 현실또한 어처구니 없지만, 과도한 민족주의, 애국주의는 이제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이공계를 살렸다는 대중언론, 유행에 호도되기 보다는 이공계가 진정 무엇을 해야하는지? 어떻게 해야하는지?  오히려 집단적 성찰이 필요하고, 이것이 단기적 시혜에 익숙한 우리가 아니라 장기적이고 보다 사회가 성숙하고 제대로 자리잡는데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할 때가 아닌가?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결코 자본과 시장의 논리로 움직이는 듯, 어둠이 짙어지는 듯하지만 그 반대의 속도도 무척이나 빠른 듯 싶다. 경제성장에 도움된다고 온갖 공해병을 눈감아 줬던  양심과 불과 20-30년 지난 현실에서 되짚어본다면,  영웅심과 그늘에 서려있는 것을 보지 않으려는 현재의 우리의 양심이 몇십년뒤 똑같은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있는 것일까?

 

(대충민언련에 원고를 대충보내다. 생각을 얼치기로 정리하며 가다보니...점점 스스로 원칙적이고 과격해지는 것은 아닌지? 흠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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