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호의 만화 [미생]에서 오 상식, 장 그래와 안영이는 세상과 사회가 짜놓은 그물에 퍼덕이다가 그만 자리잡지 못합니다. 사회는 상식과 안녕이 자리잡지 못하는 곳이죠. 그래그래 할 수 없는 곳입니다. 상식을 지키고 안영을 구하지만, 세상은 집요하게도 그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좀더 야멸차게 굽니다. 오상식도 그자리에 남지 못하죠. 장그래도 정규직의 반열로 들어서지 못하게 됩니다.


석사만 밟아도 교수를 하던 시절, 대학만 나오면 취직이 되던 시절....은 계약직으로 인턴으로 이중삼중의 문을 두어 안녕에 출입증을 발급하게 되는 것이죠.  안녕이란 자리는 높은 첨탑위에 몇개밖에 되지 않습니다. 모두가 안녕만을 탐하라고, 너의 안녕만을 구하라고 주문합니다. 남의 안녕을 구하다가는 너마저 안녕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는 사이 안녕한 자리는 모두 금방석으로 두툼해져 있습니다.


만약 안녕이라는 것이 독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나눠줄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떨까요. 내가 가지고 있는 안녕을 나눠줄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떨까요. 십일조는 아니더라도 아주 약간만 나눌 수 있다면 안녕한 자리는, 안녕한 삶들은 더 늘어날 수 있을까요.

 

안녕은 어디에 있는가요. 돈을 대신 굴려주고, 대신 물건을 날라주고,  패스트푸드처럼 빨리빨리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달콤함 속에 도사리고 있는 건가요. 대리운전처럼 조금 취하거나 흐트러질 때 맡길 수 있는 것이라면 좋을텐데요. 사회는 점점 안녕을 지키지 못해 위험은 점점 커져갑니다.  아이들의 삶을 대신 쫓아가주는 학부모들이 늘어납니다. 아이와 부모의 삶도 안녕 못합니다. 너때문에 내가 이렇게 살아왔는데라는 후회막급과 부모님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 것이라는 푸념처럼 안녕은 오간데 없고 불편만 덩그러니 남는게 삶의 조각들입니다.

 

안녕에는 약간의 희생이 필요하지 않은가 싶네요. 아니면 좀더 멀리보고 두는 수가 필요한거겠죠. 돈만쫓아가는 대마를 잡으려면 길목 요소요소를 미리 제대로 지켜내야 합니다. 물러나지 말아야 할 곳에는 물러나지 말아야 하는 거구요. 노후와 집과 병과 교통비와 교육에는 더 큰 목소리를 내야합니다.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나에게, 우리 딸과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것만은 양보하지 않고 지켜내야 되는거죠. 빚으로 집사고, 노후가 걱정되어 더 더 달라고하고, 내 자식만은 더 시킬려고 ..어쩌면 나만의 안녕이 점점 더 안녕하지 못한 좁은길만 내놓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당장 나와 내 피붙이만의 안녕에서 안녕에서 한발짝 물러서서 볼 수 있을까요. 남의 안녕이랑 내 안녕이 겹치기도 하는 것이라고 비교하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야겠죠. 세금내고 할 만큼 하니까 제발 우리 모두의 안녕을 위해 되돌려주시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안녕하십니까?의 더 안녕들 하기위해 꼭 두집은 내어 살아났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을 대신 살 수 없듯이 정치도 대신해주는게 아니라는게 지금까지 목도한 사실아닌가요. "안녕들하십니까!"로 아직 한집밖에 나지 않은 안녕이지만 상식과 속마음을 읽어주는 안영들이 서로 기대고 한발 움직여 디딤돌은 만들어놔야겠습니다. 더 안녕들하도록... ... 어린 안녕들이 더 안녕하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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