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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슬플 땐 석양을 사랑하게 돼.
그때도 지금도 난 해가 뜨는 모습보다는 지는 모습을 좋아한다. 의자를 조금씩 옮기면 하루에도 수십 번 석양을 볼 수 있는 어린 왕자의 작은 별이 부러웠다. 내게 삶은 여전히 슬픔인가. 삶은 내게 기쁨도 알게 했지만 그 밑바닥에 깔린 애잔함은 내내 지워지지 않는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가엾게만 보이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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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날 찾아내면 그들은 내가 살려달라고 수없이 부르짖으며 많은 고통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격정이나 후회, 부드러운 고통은 아직 풍요롭다는 의미다. 나에게 이제 풍요로움이란 없다. 한창때의 아가씨들은 남자와 처음으로 사랑을 나눈 저녁에 슬픔을 느끼고 눈물을 흘린다. 슬픔이란 삶의 전율과 통한다. 그러니 난 이제 슬프지도 않다. -[인간의 대지] 제7장 '사막 한 가운데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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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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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 자신은 [이방인] 영문판 서문에서 "우리 사회에서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는 모든 사람은 사형수가 될 위험이 있다."말로 [이방인]을 정의했다. 의문을 제기하거나 이치를 따지려 들면 윽박을 지르거나 문제아 취급하는 모든 관습적 질서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던 고등학생에게는 이보다 더 신선한 것이 있기 힘들었다. 또한 카뮈는 "나에게 뫼르소는 폐인이 아니라 그늘이 없는 태양을 사랑했던 가난하고 헐벗은 인간이다. 감성이 결여되어 있는 인간이 아니라 완강하고 깊은 열정이 그를 움직인다. 그것은 절대와 진리에 대한 열정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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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인간]이란 '아담'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카뮈에 따르면 사실 우리는 누구나 어느 정도 자신의 역사에 있어'최초의 인간'인 아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제로선 상에서 출발하는,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고 윤리나 종교도 없는 인간'이고, '교육하는 이가 없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최초의 인간]은 그가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도 밝혔다시피 그 작품 세계를 이루는 세 단계의 과정 중 '부조리', '반항'에 이어 마지막 단계인 '사랑'의 단계에 속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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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주점]을 읽다가 메모해두었던 구절이 있다. "누구나 진흙탕 속에 빠져 있을 때는 머리 위에 눈부신 광채를 비쳐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머리 위로는 따스한 봄 햇살이 누구에게나 공평히 내려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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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이토록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도 푸릅니다. - 엔도 슈사쿠, 침북의 비
뱀발. 어린왕자, 카뮈, 에밀졸라를 다시 만나다. 저자의 글솜씨도 매혹적이다. 다음 책과 같이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