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보다 창조를 추구하는 정신에 따라 살아가는 삶에는 근원적인 행복이 존재한다. 이러한 행복은 적대적인 환경이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복음서가 권하는 삶의 방식이자 세상의 모든 위대한 스승들이 권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일찍이 이러한 삶의 방식을 찾은 이들은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삶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외부의 권력에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사람이 장애와 압제에 굴하지 않고 용기와 희망을 끌어모아 이러한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정치 및 경제를 개혁하여 세상을 재창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개개인이 도덕적으로 다시 태어나면 개혁에 필요한 모든 것은 아무런 저항 없이 저절로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만들어 낼 기쁨보다는 자신이 소유한 것을 남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사로잡혀 있다."

 

"우리가 반드시 찾아야 할 세상은 창조적 정신이 살아있는 세상, 삶이 곧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한 모험인 세상이다. 그 세상의 토대는 우리가 소유한 것을 지키려는 욕구나 타인이 소유한 것을 갖고자 하는 욕구가 아니라 창조적 충동이어야 한다. 그 세상에서 애정은 대가를 바라지 않을 것이고, 연애는 지배 본능을 벗어던질 것이며, 잔인성과 시기는 행복한 삶을 일구고 그 삶을 정신적 환희로 채우기 위하여 자유롭게 진보하는 모든 본능에 밀려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그러한 세상은 실현될 수 있다. 지금은 다만 사람들이 마음먹고 만들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러셀씨, 이제 말씀 마무리짓죠. 혹시 당신을 행복 만능주의자, 나에게 모든 행복이 있다라고 오해하실 분들도 있는 것 같아 덧붙입니다. 또 얼마나 당신이 유연하고 열려있는지에 대해서도 보여줄 것이 있어야 될 것 같아 남깁니다. 해석은 러셀씨를 허겁지겁 따라 온 길을 더듬으면 오해가 이해로 바뀔지도 모르겠군요. 아무튼 따라오신 분들께 감사!!  러셀,  또 다시 다른 곳에서 만나요. 안녕!!

 

 

"생디칼리슴과 집산주의와 아나키즘의 목표는 모두 현재의 경제적 위계 및 사적 소유 전반을 철폐하는 것이다. 그러나 집산주의는 모든 이의 소유를 지향하고 아나키즘은 무소유를 지향하는 반면, 생디칼리슴은 조직화된 노동자들의 소유를 지향한다. 따라서 생디칼리슴은 사회주의가 설파한 경제이론 및 계급투쟁론을 순전히 노동조합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입장이다. 생디칼리슴은 집산주의가 의존하는 대의제 정치 활동을 완강히 거부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생디칼리슴은 아나키즘과 훨씬 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아나키즘과 다른 점은 사실상 행동의 범위에 국한되어 있다."

 

"자본주의는 노동을 순전히 상업적인 활동으로, 생기도 기쁨도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제 소수를 배불리는 활동 대신 전국 길드와 함께 일하자. 노동을 돈으로 사고파는 대신 책임감을 갖고 일하자. 오늘날 끔찍할 만큼 비대해진 국가와 주식회사의 관료주의 대신 자치 정부와 권력 분산을 추구하자. 그러면 우리는 다시 한 번 '노동의 기쁨'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의 양만 아니라 질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느낄 것이다. 중세 시대를 연상케 하는 케케묵은 표어도 있고 '노동의 기쁨'같은 표어도 있지만, 어쩌면 그런 표어를 믿고 따르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와 집산주의의 철학, 즉 노동은 결코 즐거워질 수 없는 필요악이라고, 노동자의 유일한 희망은 소소한 오락거리를 한가득 안고서 더 길게, 더 풍요롭게 누리는 여가 시간뿐이라고 단언하는 그따위 철학에 영원토록 굴복하는 것보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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