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바쿠닌을 마저 읽다. 읽는내내 E.H.car의 연민이 배여나온다.  냉소적이긴 하지만 그 스타일을 궤념하지 않을 수 없음을 말이다. 남의 돈을 어떻게든 빌려서 있는대로 쓰고 또 떨어지면 빌리는 궁상맞은 버릇도 도대체 버릴 줄 모르지. 허풍과 충동으로 버무려진 모습도 그러하다. 일들을 떠벌여놓고 수습하거나 마무리하는 것 역시 흔치 않다. 한번 내키면 서론만 백여쪽이 더되게 쓰다가 정작 본론에 들어가서는 뱀꼬리처럼 어물쩍 넘어간다. 허세 작렬의 이 양반에게 이리도 성화일까? 사상의 굴곡도 심하며 일관된 흐름을 찾기가 어렵다. 국가와 관료제를 부정한다는 측면에서도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듯하지만, 비밀결사나 혁명을 위해 독재가 필요하다는 점은 끊임없이 표방한다. 그렇다고 그 기질이 집요하거나 철두철미하게 추진해나가는 뒷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수려한 수다와 압도하는 말재주꾼의 모습 가운데 주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은 무엇일까? 지칠 줄 모르는 독서와 사상의 궤적이 머무르지 않는 풍부함, 한차례도 쉬지 않고 혁명이 있는 곳, 봉기의 기미가 있는 유럽 곳곳을 찾아가는 열정은 이 괴팍한 습속을 뚫고 나온다. 수려한 문장, 아니 압도하는 문장은 그의 거대한 외모만큼이나 빨려들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같이 말하고 대화하게 되는 순간 주제의 광활함과 집요한 설득의 기술이 늘 그의 자장 속에 머무는 건 아닐까?

 

영웅으로 그려지는 순간 현실에서 물밑 변화는 물건너간 것이라고 말한 이들. 루쉰도 그러하며, 크로포트킨도 그러하다. 책을 읽는 내내 19세기의 역동적인 모습 가운데 러시아와 지식인의 모습이 인상 깊다. 농노제와 봉건제도의 문제, 입헌군주제, 계급의 갈등, 민족주의, 유대인 들에 대한 뒤섞인 관점과 사상들, 문학의 역할과 지식인들의 교류와 변화를 위한 노력들이 읽혀진다. 그에 비하면 혁명도 논하지 않는 지금, 교류도 없는 지금, 문학에서 상상력 이상의 문제를 현실화하는 노력이나 이를 관통하는 정치 사회의 흐름이 꿰어지지 않고 발산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가장 많은 정보와 가장 많은 시공간, 가장 많은 문제의 중첩을 가지고 있는 지금은.... 국가와 민족을 넘어서는 정치행위와 지식인의 사유가 더 필요한 때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봉기와 혁명의 끈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은 이들의 흔적을 보면... ...

 

역사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정리되며 환원된 것은 아닐까? 인류가 걷는 길의 분기점에서 그 풍부한 사유와 저장고를 다시 파헤치고 논의를 해야되지 않을까? 그 민주주의 보고의 이력을 모으고 다시 한번 깊이를 공유하고 논쟁의 불꽃 점화가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닐까? 역사란 과거와 미래의 목적간의 대화라고 한 E.H Car는 바쿠닌의 사료를 모으고 정리하면서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삶은 짧고 살아가는 이들은 그 역사의 수레바퀴에 상처를 입은 이들로 넘쳐나는데, 시지프스의 짐을 지고 끊임없이 다시 올라가려는 이의 귀족적 사치를 어떻게 봐야할까?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연주해달라는 그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 하나!

 

 

뱀발.

 

1. 두께가 있는 책이라 조금씩 길게 본다. 크로포트킨은 바쿠닌을 만나고 싶어했으나 생전에 만나지 못했다. 만약 만났더라면 둘의 대화는 어떠했을까? 어떤 파장을 일으켰을까? 상반되는 인물들, 인물의 성격이나 성향을 원리원칙대로 받아들이는 착한 이들이 세상의 진도를 나가게 하는 것보다 진폭이 큰 울림들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평전을 이어서 보면서 유럽에서 러시아의 문학과 지식인들이 한 궤적을 쫓아가보고 싶어진다. 문학이라는 장르로 인해 바꾸어버린 그 숱한 증거를 들여다보고 싶다.

 

2. 이탈리아, 스페인, 스위스의 그 당시의 흔적이 민중의 집이나 다른 문화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조금 더 자세하게 맥락을 들춰보고 싶기도 하다. 

 

3. 네차예프의 비극적 운명 속에는 혁명가의 교리문답 속에는 모의의 원칙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그 혁명을 레닌과 숱한 국가에서 이루어냈지만 애초에 논의된 국가와 관료성향을 줄이지도 없애지도 못했다. 그 바탕에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틀에 갇혀 사유했기 때문일수도 집산주의라는 다른 원칙을 보듬지 못해서 일 수도 있을 것이다. 논의를 원점으로 돌린다면 어떨까? 혁명은 여전히 유효한가? 유효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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