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아렌트와 새로운 정치철학  - 김석수


“고,중세 시기에는 관조적 삶의 영역을 담당하는 자들이 활동적 삶을 담당하는 자들을 압도함으로써, 농민, 상민,노예, 여성들은 공적인 정치적 담론의 장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반면에 근대 이후는 신흥상업계층, 이른바 시민계급이 시민혁명을 계기로 공적 담론의 영역을 독차지 하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자본가 집단이 공적 활동의 영역을 독점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오늘의 세계는 인간의 실천적 활동의 세 계기를 이루고 있는 노동,작업,행위중에서 행위 영역이 노동과 작업의 계기에 흡수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1. 인간의 본성에 관하여 알 수 없다라고 주장하면서, 우리가 인간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인간이 조건지어진 존재”라는 사실뿐이다. 그녀는 활동적 삶의 요소를 구성하는 노동, 작업, 행위 및 관조적 삶의 요소를 구성하는 사유,의지,판단이 인간의 삶을 조건짓는 요소라고 본다. 이처럼 아렌트는 인간이 이와 같은 다원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보고 있다 .

 

3. 근대이전의 정치는 관조의 노예, 종교의 노예가 되었다면, 근대 이후의 정치는 노동, 경제의 노예가 되었다.

 

7.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신체적 필요를 드러내고, 작업을 통해서 솜씨를 드러낸다면, 행동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낸다

4. 노동은 인간이 자연과 갖는 신진대사로서 그 목적은 생명 그 자체의 재생산이며 그 과정은 부단한 순환운도에 포섭되어 있다.

5. 작업은 자연적 환경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인공적 세계를 구축함으로써 개별적인 삶의 한시성을 넘어서 지속적인 초월적인 삶을 지향하고 한다. 작업의 목적은 사용에 있다면, 노동의 목적은 소모에 있다. 인간이 제작자인한 그는 모든 것을 도구화하며, 이런 도구화는 모든 사물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즉 내재적이고 독자적인 가치를 상실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제작인은 자신의 활동으로 만들어진 생산품을 전시하는 교환시장에서 최종적인 회합의 공간으로서 공론 영역을 확보한다.

6. 행위는 사물이나 물질의 매개없이 인간들간에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으로서 다원성이라는 인간적 조건, 다시말해 (보편적) 인간(Man)이 아니라 (복수의) 인간들이 이 지구상에서 살고 또 세계에 거주한다는 사실에 상응하는 활동이다.

8. 행위는 정치적 조직체를 창설하고 개입하는 한에 있어서, 기억을 위한 조건, 다시 말해 역사를 위한 조건을 창출한다. 그렇지만 이 세가지 활동 중에서 탄생성이라는 인간적 조건에 가장 밀접한 연관성을 갖은 것은 행위이다. 게다가 행위는 탁월한 정치적 활동이기에 사멸성이 아니라 탄생성이 형이상학적 사고와 구별되는 정치적 사고의 핵심적 범주가 될 수 있다.

2. 아렌트는 서양의 전통적 사상에서는 활동적 삶이 그 고유한 위치를 지니지 못하고 관조적 삶에 의해서만 의미를 부여받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관조적 삶의 시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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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작업'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능인으로 만족하고, 평생 정치적 탄생을 해보지 못하고 뭍혀버리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모리배만 있고 공적영역이 살아숨쉬는 공기가 아니라 가서는 안될 비밀의 방처럼 꼭꼭 숨겨놓은, 마치 비밀스런 길이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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