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잃어 버리다.

 

민중의 집과 유토피아와 안철수의 생각을 생각하다 모두 붉은 비닐봉투에 담겨있던 책들을 잃어버리다. 술을 마시다가 기억의 끝이 중동난 기억도 오랜만이기도 한데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다. 민중의 집의 변죽을 울리는 이야기들이나 속내에 무척이나 솔깃하다.  함께 나눌 이웃이 누구인가? 세미나, 앎만 찾아헤매는 것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세미나와 토론모임을 나눌까? 받는 것이 아니라 나눠야 할 이웃, 주어야할 무엇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는 말에 떨림이 전해진다.

 

메모를 잃어 버리다.

 

그 빨간봉투 속, 민중의 집 책갈피 사이에 메모도 잃어버렸다. 녹취의 근거를 찾아가면 있으련만 부산스럽기도 하고,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조금 더 위의 레토릭의 메모를 확장시키고 싶은 맘이 있어서인데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책을 보면서 동*미와 아***가 불쑥 불쑥 떠올랐다는 이들. 다락방이나 비밀스런 공간이어서 아는 사람에게 소개시켜주고 싶지 않다는 그(녀)들. 공동체주의 자유의 경계에 대해 논하다. 공동체로 치자면 교회공동체가 탄탄하지만, 그 역시 어떤 정치적 지향에 무색무취해서, 세상일을 연결시키는 능력이 없어 허하다고 결론을 짓는다. 공동체 역시 끊임없이 개인을 간섭해서 싫지만, 마음이나 생각이 전달되기 위해서는 마음의 끈을 이어놓는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한다.

 

쪽지를 잃어 버리다.

 

그 책갈피사이에는 얇은 편지봉투가 있다. 따로 보라고 준 것인데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것때문에 미안함이 솟아 오른다. 책갈피인지 무엇인지 준 샘에게 미안스럽다. 샘은 이탈리아에 6년정도 체류한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곳엔 10여년이 지난 뒤에 갔는데, 장터에서 옹기종기 사람맛을 느낄 수 있던 거리가, 대형할인매장의 파고처럼 썰렁한 바람이 부는 곳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문화적자산들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모른다고 한다. 남의 떡이 커보인다고, 그것만 쳐다보는 것이 그들이 아니었나 하고 말이다. 세상의 파고는 저자가 말한대로 스페인, 스웨덴, 이탈리아를 가리지 않고 더 험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또 다른 샘은 10년전이라면 유럽에 가고 싶었지만, 지금여기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발 디딘 곳에서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목소리에 힘은 준다. 다른 나라의 경험을 이식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핀란드식은 핀란드식대로 스웨덴은 스웨덴식으로 접목하기가 어렵다. 한국형이라는 것은 새롭게 시도되어야 하는 것이지 여행이나, 복지국가를 투어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라고 한다.

 

은행잎이 술기운에 더 노랗다. 툭툭 떨어지는데 그(녀)가 손을 빌린다.

손을 잡아준다.

 

민중의 집 책 뒤편을 보면 스페인의 마니넬레나란 도시가 있다. 4만명의 인구, 공산당원인 시장이 30년째 하고 있다. 그곳의 한달 집세가 우리돈으로 25,000원 정도 한다고 한다. 가장 가난한 이웃의 생활비를 기준으로 정하는 원칙이 있는 셈이다. 당원이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3천명정도라고 한다. 누구라도 그곳에 가서 살 수 있다.

 

이런 질문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임대주택에 당신보고 살라고 하면 이사갈 수 있겠느냐구. 말로만 진보는 아니냐구. 도발적인 질문이기도 한데, 받는 이들의 마음이 곱다. 이사는 못간다. 하지만 지금 사는 아파트에 임대주택의 이웃이 층별로 섞여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나라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겠느냐? 해야되느냐?는 선택과 결단을 요구하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고민들이 개인으로 해결해야되는 당위만 있다면 너무 팍팍할 것이다. 마니넬레라같은 도시의 오아시스는 만들 수 없는 것인가? 제도적 해결은 요원한 일인가?

 

은퇴뒤에 사람들은 모여서 살고 싶어한다. 1층에 식당, 2층에 카페, 3층에 도서관 겸 공용공간. 책에 밑줄을 그으면서 읽은 샘은 나름 공간에 대한 고민과 기본설계를 해보았다고 한다. 진보가 이념이 아니라 몸을 섞는 일에 얼마나 인색한 것인지?

 

함께 살아갈 이웃을 고민한다는 일.
함께 살아갈 세상을 설계한다는 일.
함께 나눌 꺼리를 생각한다는 일은 설레인다. 조금 더 디테일로 향해야 한다.

 

김수영은 말한다. 민주주의에는 그림자가 없다. 민주주의는 불편한 것이다. 불편을 자청하려면 뻔뻔해야 한다. 논쟁도 즐겨야하고, 제대로 싸우는 법을 일찍 가르쳐야 한다. 싸우는 횟수만큼, 싸우는 근력만큼 민주주의는 단련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진보라는 것은 쿨하지도 않고 산뜻하지도 않다. 늘 곁에 있는 것이기도 한데, 불편을 감내하면 너무도 보이는 것이 많다. 그 숲의 나무에는 기댈만 할 것이다. 아마. 무척이나. 함께할 이웃이 늘 곁에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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