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알고있는 관계의 끈들로 매개되는 세상의 아픔이 더 진해진다. 마치 전쟁터의 소식처럼 하루가 예민하다. 아이들이 잔혹함의 그물망에서 더 더욱 교묘하게 폭력의 행사방법을 진화시키는 것 같이, 원하는 것을 발라내기 위해 온갖 잔인함과 치졸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그 저류를 흐르고 있다. 경쟁과 공부든 돈이든 원하는 것만 얻으려는 악랄함의 문화는 현실을 끊임없이 회피하게 만들고, 자신의 문제와 처지를 똑바로 응시하지 못하게 한다.
#2. 오늘 자살 소식을 듣는다. 협력사를 그만두게 된 여직원의 새로듣는 소식이 이 변고다.- 수직적인 관계, 남근위주의 성담론과 언어폭력, 생계 그리고 인연을 맺고 있는 관계들. 마흔을 갓넘은 미혼의 소식은 참으로 안타깝다. 일상과 위로의 끈. 어려움을 위무하는 관계로의 진전이 새삼스럽다. 삶이란 이렇게 위태로운 것이고 허무한 것인지? 그 고통의 자락이나 새로운 사람들의 만남들을 말도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고인의 명복의 빈다.
#3. *협 교*위 건으로 청*년 기획위 뒤풀이 자리를 옮기고 나서야 말을 건넨다. 자초지종을 듣긴하였지만, 관점을 넘어선 다른 관점들이 있는지 해서이다. 모임 사이의 관계를 넘어서서 개인적인 일처리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깊다. 사적인 관심을 표명해서 강연을 늦춘다든지, 직접적인 사과가 아니라 실무자에게 전달을 하는 방식이라든지 권위적? 관료적 모습에 실망을 느꼈다는 것이 요지다. 그래서 일을 직접 풀어가지 못하겠다 한다. 착한소비를 넘어서는 회원간의 생각의 진전을 위해 교*위를 만들고, 교육프로그램을 가동하는 것에 대해서 인정해야 한다. 점 대 점을 넘어서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기획하는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다소 형식적인 필요를 건네지만, 그 감정은 삭이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120413-4
단체와 단체, 체제전복이 아니라 체제불안세력, 아니 체제활력세력을 자청하기 위해서는 대면의 순간 불편할 수도 낯설게 할 수도 있어야 한다. 모임이 위임을 받아 색깔을 자청하고, 그 무형의 것을 대변하는 순간, 그 몸의 켜는 그 체제(모임,단체)에 익숙하게 닮아간다. 어디에도 방점을 찍을 수는 없다. 그 보다는 시각을 크고 작게, 홀로, 함께 보는 변화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아직 단체를 함께 보려는 움직임이 드물다. 함께 고민해주고, 남의 시선으로 자신의 모임을 아프고 불편하게 봐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4. 체제 활력 세력. 아*데미가 뭐냐는 질문을 청소년기*위 뒤풀이에서 조**샘이 건네왔다. 뭘까? 키워드로 말해보면 인문학이 아니라 인문정신, 이념이 아니라 삶, 삶 자체가 아니라 삶의 변화. 맨발의 신데렐라가 원하는 것은 사유의 변화. 어른이 아니라 청소년. 청소년의 제한된 분야가 아니라 접목. 깊이있는 연구도 좋지만 기자정신에 투철한 발랄한 짧은 연구와 드러냄.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고 건넨다. 일상의 무릎베개가 되면 더 좋겠다. 120413
#5, 아이들이 학부모와 선생님의 문제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학교운영위에서 할 수 있는 당당함과 정치적인 파격이 절실한 사회라고 말이다. 120412
#6. 오랜만에 ㄴㅇ 도서관을 들러 책을 몇권 빌리다. 반갑다.
가운데 책은 '경영접점'이란 키워드가 남지만 다른 내용은 별반 볼 것이 없다. [생태주의]는 흐름들을 요약되어 보기쉽고 깊이가 있어 별도 주문을 했다. [식물,역사를 뒤집다]를 꼼꼼이 보니 생각보다 좋다. 수다주제로 안성맞춤인 듯싶다. 수다가 재주인 분에게는 두루두루 꺼리가 될 것 같다. 중간중간 잘못된 부분도 많다. 소동파가 수묵화가?인가..... 12041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