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는 기억을 할까? 순대집의 순대와 막걸리, 조금 늦게 도착한 그의 얼굴은 낯이 익다. 친구들은 이십년만에 만나는 듯했고, 술을 못한다는 그가 말발도 술발도 받는 듯하다. 그렇게 편하게 만날 수 없을까 삶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상의 생각정도는 섞을 수 있는 사이는 아닌가하며 바삐 막걸리잔을 축인다. 기차시간도 다가오고 술도 다소 쌀쌀한 날씨에 분위기가 달아올라도 잔잔하다. 옛날 사모했던 이들의 연락처를 수배하고 수배하다가 연락이 닿아 이십년만의 낯설음을 나눈다. 그 사이 잔잔하던 분위기는 이웃의 이웃이 닿고, 그 이웃과 남는다. 술이 닳은 친구는 먼저 일어서고, 술을 못하는 친구는 가까운 이의 나쁜 소식이 뒤늦게 올라 울음을 토해낸다. 그렇게 기차시간이 코앞에 다다른 친구마저 보내고, 이웃의 이웃과 만나, 막걸리를 한사발 더 시켰다. 자녀의 부모로서 만남을 나누다, 해마에 빨간 불이 들어오고 기억을 잃는다. 잃는 기억을 부여잡다가 먼길을 택시를 부여잡는다. 120405
#2. 그날은 목요일이었다. 그가 내려오고 솔깃한 마음에 끌려 만나기로 한 장소를 검색해보아야 했다. 농민순대. 다른 친구와 몇번 온 곳. 대전에 들르면 왔던 곳이라 한다. 관계의 관계를 엿볼 수 있었다. 예수전이 근처에 있었고, 김규항. 전화에 다급하지 않게 나온 것 같지 않은 그의 헤어스타일은 언론기사의 모습과 같은데 더 앳돼 보였다. 120405
#3. 해마란 연극을 보게 된 것. 아니 그 해마가 아마 을*대병원에서 아이와 진료를 받으러가면서 대기하면서 본 잡지의 기사때문이다. 대전시 희곡 수상자 화보였다. 평소 모습과 달리 다소 굳은 얼굴로 꽃다발과 함께 순간 컷의 수상자때문이었다. 만남의 만남이 익어 친숙한 단계쯤으로 가고 있지 않나하는 자의적 판단인데, 연극 벙개에 뒤풀이까지 이런저런 얘기를 섞을 수 있었다. 12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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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목도 가물거리는 그 해마가 그 해마란 것을 안 것은 연극을 보고난 뒤, 그 다음날이었다. 교통사고를 모티브로 만든 연극이다. 기억을 잃어 나인지, 너인지 모르는 그 와중 행정적인 나와 살아지는 나, 탐욕스런 나 여기저기 널브러진 인생의 막장은 아차 하는 순간 절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지금을 잘 읽어낸다. 기억이 섬광처럼 번뜩여 김권득을 올려내는 순간, 사회의 그물에 걸린 나는 어르신과 자네의 그래도 순수한 관계는 없어진다. 해결사와 채무자, 병든 아이를 위해 목숨을 담보로 보험금을 건넬 수밖에 없는 일그러진 아빠가 있다. 괴물로 변해버린 지금의 세상이 기억을 찾는 순간 광적인 관계는 살아난다. 나인지 너인지 모호한 나는 기억을 간직한 나와 너는 세상의 접점을 갖는 너와 나로 이어지면서 현실의 정체의 끈은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는 표독스런 세상으로 번진다.
#5. 상가집에 가는 길이다. 잘 알고 지내는 지인들의 모임의 행간, 삶의 결을 건네듣는다. 아이가 셋인 아내는 정규직이다. 남편은 이것저것 전전하며 아내가 마련해준 작은 가게마저 접었다. 좀더 폼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남편은 허드레 일 같은 것은 할 수 없다.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다고 별거를 말하자 그 남편은 유서를 써놓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내가 정규직이다. 남편은 직장을 잡고 그만두기를 반복한다. 또 다른 직장에서 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한다. 살아도 살지 못한다. 가까운 이들의 일상이다. 그들과 정상적인 끈을 부여잡으며 풍물을 노는 일은 벌써 후미진 일이 되어버렸다. 누구도 예외는 없다. 세상은 이렇게 사람을 한놈씩 발라내 삶을 채근하고 고문한다. 정신을 잃어버린 순간, 벌써 그(녀)는 그 괴물의 손아귀에서 바둥거린다. 그것이 현실이다. 지금 이 순간이다. 돌아오는 길 우수수 놀란 벚꽃길들이 밤 조명에 환하게 우울거린다. 120412
#6. 매화는 피었는데, 나는 책을 잃었다. 해마 연극을 보러가는 짬 몇십분이 나 동네서점에 들렀다. 제목이 가물거려 손전화를 해 책을 구하고 한권 더 곁들여 샀다. 연극이 끝난뒤 뒤풀이에서 작은 의자에 고스란히 챙겨두었는데 먼저 일어난 인편에 실려간 것인지 흔적이 없다. 영*이를 그 자리에서 만났다. 정신지체?가 있는 그는 스물넷이란다. 여기저기 주점을 돌아다니는 보안관? 순박함과 순수함이 읽힌다. 안고 형, 아빠, 엄마, 애인하는 순간 몸의 벽은 사라진 것 같다. 몇번을 안기를 반복했다. 순박한 표정과 팔 안의 순수함이 읽힌다. 누구나 다 인정한다는 일. 그의 시선으로 잠깐 내려볼 수 있다는 순간. 나-너의 장벽은 별반 없는 것 같다.
#7.
동*미 모임이다. 최**샘은 매화에 관한 시와 이미지를 가져와 건넨다. 꽃에 대해 개인의 편력을 말한다. 특별한 것이나 별난 것이 아니라 이제 몸에 찰싹 달라붙어 이미 너-나를 구분할 수 없다. 온몸이 들썩거리는 조바심이상을 표현해낼 수 없어 아쉽기도 하다. 그 교감이 사람까지 번지기를 희망하지만 관계라는 벽과 정지선에 지금을 살아내는 이들은 너무 강고하다. 괴물같은 세상의 비를 맞기만 하면 지금같은 괴물들이 양산될 수 밖에 없다. 관계를 만들어내는 일, 비를 피하는 작은 우산을 만들어내는 일. 사고의 전유와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들이 절실하다. 120412
뱀발. 연극을 보고 놀랬다. 디테일도 볼만하다. 아이들의 숨겨진 삶의 책도 관계의 합인 '또래집단'을 계기로 삼는다. 가까운 이들의 삶을 듣고도 말이다. 일상의 주변도 각박을 넘어서며 편차 또한 격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