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히는 '일의 민주주의'를 다룬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떤 조직에서 개인적 증오, 음모,정치적 계략이 등장하면, 구성원들은 실질적인 공동의 교류기반을 상실하며, 일에 대한 공동의 관심으로 묶이지도 못한다. 조직의 유대가 일에 대한 공동의 관심에서 나오는 것처럼, 일에 대한 관심이 없어지거나 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하면 조직적 유대는 사라진다.'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 것은 우리가 하는 '일', 이 일에 필요한 상호의존. 하나의 거대한 문제와 그에 따른 수많은 세분화된 문제들에 대한 우리의 실질적인 관심이었다. 나는 동료들에게 부탁하지 않았다. 동료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왔다. 동료들은 나와 함께 일했고, 일이 끝나면 떠났다. 우리는 정치집단을 만들지도 않았고, 행동방침을 정하지도 않았다. 각자가 일에 대한 관심에 따라 자기 역할을 수행했다. 이렇듯 일에 대한 관심과 일의 기능은 객관적이고 생물학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 공조는 이에 의해 규제를 받는다. 일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조직될 때, 그 일은, 서서히 암중모색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유기적이고 자발적으로 조직된다. 이와는 반대로 '캠페인'과 '대중연설'을 중시하는 정치조직은 일상의 파업이나 일상의 문제와 무관하게 진행된다.
투표도 없고 지시나 명령도 없고 비서도 회장도 부회장도 없다면, 우리 조직의 토대가 되는 원칙은 무엇일까? 에 이렇게 대답한다. 67
뱀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 민주주의가 있었고, 민주주의의 역사는 잊혀지고 있다. 마치 안개같다고 없는 것으로, 뿌옇고 보이지 않는 것으로 치부하는데 역사의 곳곳에 비를 흩뿌리고 여전히 진행형이지 않을까? 우뚝 솟은 산과 강에만 관심이 가 있는데 그 풍요로움의 원천은 햇살이나 안개, 그리고 구름, 비 같은 것들... 모임의 뒤끝에 뒤풀이에 들어앉아 잠깐 논의가 쑤욱 흘러가는 것 같아 멈칫 보태어 본다. 대안의 상상력이란 책갈피에서 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