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더 두렵게 만든 것은 국민의 거의 90퍼센트가 대학살을 기대하며 즐거워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시각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만 해도 나는 정신 분석을 전혀 알지 못했으나 혼자서 인간의 열정을 연구하다 보니 정신 분석적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관점에 도달했다. 그 전까지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했으나, 전쟁을 겪으면서 그것이 보기 드문 예외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무엇보다도 돈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으나, 돈보다 파괴를 훨씬 더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성인은 으레 진리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으나, 인기보다 진리를 더 사랑하는 지성인은 10퍼센트도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411
1915년 여름, 나는 [사회 재건의 원칙들 Principles of Social Reconstruction]을 집필했다.(미국에서 내 동의도 구하지 않고 붙인 제목에 따르면 [인간은 왜 싸우는가 Why Men Fight]였음)....이 책에서 나는, 의식적인 목적보다 충동이 인간의 삶을 빚어내는 데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에 근거하여 정치 철학을 제시했다. 나는 충동을 소유욕의 충동과 창조적인 충동으로 이분하고, 창조적인 충동 위에 세워지는 것을 최선의 삶이라 보았다. 소유욕의 충동이 구체화된 예로는 국가, 전쟁, 빈곤을 들었고, 창조적인 충동이 구현된 예로는 교육, 결혼, 종교를 꼽았다. 나는 창조성의 해방이 개혁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처음에는 그 책을 강의용으로 썼다가 나중에 출판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책이 즉각 성공을 거두었다. 읽혀지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고 신념의 고백 차원에서 썼을 뿐인데, 그것이 내게 막대한 돈을 벌어다 주어 향후 나의 모든 수입의 발판이 되었다. 415-6
D.H. 로렌스
이 책을 다룬 내용들은 몇 가지 점에서 D.H.로렌스와 나의 짧은 우정에 관련되어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은 인간 관계의 개혁에 대해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필요한 개혁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관점이 정반대라는 사실을 처음에는 깨닫지 못했다. 나와 로렌스의 친분은 열렬했지만 1년 정도밖에 유지되지 않았다....
그의 편지들은 점점 적대적인 내용으로 변해 갔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선생이 지금처럼 산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나는 선생의 강의가 훌륭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것도 거의 끝나가는 것 아닌가요? 저주받은 배에 들러붙어 떠돌이 상인들을 붙잡고 그들의 언어로 열변을 토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왜 배 밖으로 뛰어내리지 않습니까? 왜 그 모든 쇼를 싹 걷어치우지 않습니까? 요즘 같은 세상에는 교사나 설교자가 아니라 범법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볼 때 그의 글은 화려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았다. 나야말로 그 사람보다 더한 범법자가 되어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가 내게 불만을 표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417
한번은 이렇게 써보내기도 했다. "일과 글쓰기를 모두 중단하고 기계 도구가 아닌 생물이 되십시오. 사회라는 선박을 깨끗이 치워버리세요. 선생 자신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하찮은 존재, 두더지, 생각할 줄 모르고 길을 더듬어가는 동물이 되십시오. 더 이상 학자인 척하지 말고 부디 갓난아기가 되어보십시오. 아무것도 더 하지 말고 그냥 '있으세요.' 바로 거기서 출발하여 완전한 아기가 되어보십시오.- 용기라는 이름으로. 아참 부탁드리고 싶은게 있는데, 유언장을 작성하실 때 부디 내게도 먹고살 것을 남겨주십시오." 418
그는 이상한 '피'의 철학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뇌와 신경 외에 또 하나 의식의 본거지가 있다. 우리 내부에는 일반 정신적 의식과는 독립된 피의 의식이 존재한다. 사람은 뇌나 신경에 관계없이 피 속에서 살고 인식하고 존재를 취한다. 이것은 생명의 반쪽 중 하나로서 어둠에 속해 있다. 내가 여성을 취할 때 그때 피의 지각력이 최고조가 된다. 내 피의 이해력은 압도적이다. 우리에게는 정신 및 신경의 의식과 별도로, 그 자체로서 완결적인 피의 존재와 피의 의식과 피의 영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완전히 쓰레기 같은 소리였기 때문에 나는 단호하게 그의 생각을 거부했다. 419
사람들은 대부분 알지 못했지만 사실 로렌스는 자기 아내의 대변자였다. 그에게는 웅변 능력이 있었으나 그녀에겐 사상이 있었다. 아직 영국에 정신 분석학이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 그녀는 해마다 여름이면 오스트리아에 있는 프로이트주의자들의 군거지에 가서 얼마가 있다 오곤 했다. 어쨌거나 나중에 무솔리니와 히틀러에 의해 전개될 사상을 그녀가 일찌감치 흡수한 셈인데, 그런 생각들을, 이른바 피의 의식을 통해 로렌스에게 전해 주었던 것이다. 로렌스는 본질적으로 소심한 인간으로서, 허세를 부려 그것을 숨겨보려 했다. 그의 아내는 소심하지 않았으며 그녀의 비난에는 허세가 아니라 천둥같은 노기가 담겨있었다. 그는 그녀의 날개 밑에서 큰 안도감을 느꼈다. 마르크스처럼 그에게도 독일 귀족과 결혼했다는 속물 같은 자부심이 있어서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서 자기 아내를 근사하게 포장해 놓았다. 그의 사상은 순수 리얼리즘을 가장한 자기 기만의 덩어리였다. 421
비트겐슈타인
비트겐슈타인은 사교 행사에 잘 어울리는 편이 아니었다. 화이트헤드가 비트겐슈타인이 맨 처음 자신을 찾아왔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후 차 마시는 시간에 그가 안내를 받아 응접실로 들어왔다. 그는 화이트헤드 부인이 있는데도 개의치 않고, 한동안 말없이 방 안을 서성대더니 마침내 폭탄 선언하듯 말했다. " 한 명제에는 두 개의 극이 있습니다. 그것은 apb입니다." 화이트헤드는 내게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당연히, a와 b가 무엇이냐고 물었으나 아주 잘못된 질문이란 걸 곧 깨달았지. 비트겐슈타인이 천둥 같은 소리로 'a와 b는 정의할 수 없어요'라고 대답했거든."
위대한 사람이 그러하듯 그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1922년, 신비주의에 한창 열을 올리던 그가 내게 똑똑한 것보다 착한 것이 낫다고 아주 진지하게 호언장담하던 시절, 나는 그가 말벌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565
조셉 콘래드
joseph conrad 현대 세계에는 두 가지 철학이 존재한다. 하나는 루소에서 비롯되었는데, 단련을 불필요하다고 일축해 버리는 경향이고, 또 하나는 전체주의에서 자신을 가장 완전하게 드러내는 철학으로서, 단련을 본질적으로 외부에서 부과되는 것이라고 본다. 콘래드는 좀더 오래된 전통을 고수하여 단련은 내부로부터 와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단련되지 못한 것을 경멸했으며, 단순히 외부에 의한 단련도 증오했다. 바로 이 점에서 나는 그와 내가 매우 일치한다는 것을 알았다. 373
뱀발. 1. 러셀자서전 (상)을 짬짬이 보고 있다. 화이트헤드, 로렌스, 비트겐슈타인, 케인스와 만나는 장면들과 편지글들이 생생하다. 로렌스에 대한 인상과 비트겐슈타인의 흔적인 남겨본다. [사회재건의 원칙]은 어떤 의도로 쓰게 되었는지 명확하게 기술되어 있다. 저자의 제목에 대한 의견도 말이다.
2. 거꾸로 로렌스가 본 러셀은 어떤지, 비트겐슈타인이 본 러셀은 다른 곳에서 언급되었기는 하지만 궁금하다.
3. 참고로 케임브리지 대학에 다닐 때 '소사이어티'란 모임의 토론에 대한 원칙이 있는데 참고로 남겨본다.
"금기나 제한을 두지 않는다. 어떤 말이 나와도 놀라지 않는다. 절대적인 사색의 자유를 가로막지 않는다."는 것이 토론의 원칙이었다.
고 한다.
4. 러셀이 보기엔 지금 우리현실에는 그때보다 금기가 더 많다고 여길 것 같다. 진보는 생각의 울타리에도 갇혀있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