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모임(조직,단체,기업,동아리)이 가져야 될 한가지!
- 권위 끝, 민주 시작과 끊임없이 주고받기(1999년 흔적)

  권위의 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권위의 종류에 상관없이 무너지는 속도는 정말 엄청나다고 여깁니다. 보수적 관료적 권위 못지 않게, 합의나 존경으로 생긴 권위도 그 수명이 무척 짧다고 여깁니다. 기체 분자의 브라운 운동처럼 의식과 정보는 끊임없이 새로 생기고 없어지기를 거듭합니다. 유행처럼 흔히 말하는 모임『짱』의 생명도 그만큼 줄어드는 것은 아닐까요.

군대, 경찰, 학번제도, 학교, 회사, 학원, 학연, 지연, 조직 폭력 - 정체된 조직, 제한된 공간에서 이익을 취하려는 단체를 보면 공통되는 점 가운데 하나는 수직적 관계가 강하다는 점일 것 같습니다. 조직의 생명을 위해 많은 경우 합리적이거나 민주적인 것보다 서열이나 순서가 있다는 것이겠지요. 조직의 운영방식이 전문적인 기량 습득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강제로 따라오게 하는 방법, 그만 그만한 능력을 가질 때 민주적인 방법으로 운영하는 것이 좋다라는 의견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은 정체된 모임의 효율적인 운영방법이 아니라, 모임이 '변화 성장한다'라는 관점입니다. 모임이 변화, 발전하려면?? 성장과 변화하기를 바란다면??

예전에는 권위가 많은 것을 나타내어 주었습니다. 경력, 실력, 경험를 비롯하여 삶의 지표까지 선배로서, 선생님으로서, 먼저 들어왔다는 경험은 갖고 있지 못하는 많은 것을 나눠주게 되고, 그 혜택은 예우, 권위의 인정, 존경으로 보답하게 되었다고 여깁니다. 그것도 한번 쌓은 기술이면 평생이 갈수도 있었습니다. 혹시 이 이야기가 예의없음, 버릇없음을 조장하는 글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다양성을 인정해야 된다는 관점에서 계속 글을 잇겠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이 인내심이 떨어지고 재미난 것만 좋아한다는 것이 대부분의 평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유아프로그램, 가정용 컴퓨터, 비디오게임, 다중사용자 게임, 그리고 음악프로그램 등과 같은 흥미있고 시각적인 매체 속에서 좋든 싫든 성장하고 있습니다. 라디오나 TV같은 수동적인 방송매체 시대에 성장한 우리와 달리, 그들은 상호작용을 예상하고 요구합니다. 그들은 학습을 "즉시작동"으로 경험하고 있고, 사용설명서를 읽는 것과 같은 순차적인 학습은 익숙하지도 않거니와 원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참여와 실험을 통해 학습에 몰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형태의 학습은 순차적이고, 피라미드식인 우리의 학습과정과 크게 다릅니다.

이러한 아이들의 성향이나 성장과정이 "학교는 무너졌다"는 개탄의 소리에는 우리는 환경변화에 우리의 관점만 고수하고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는 다른 표현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머지 않아 대학까지 영향을 미칠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대학의 교육적인 역할은 강의실 패러다임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곧 교수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생들은 주어진 교재를 읽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문제를 풀거나 아니면 실험을 하고, 시험을 치르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러한 문화경험을 한 아이들이 혼자서 읽고, 쓰고 문제를 풀면서 혼자서 공부하는 현재 같은 교수법을 계속 좋아할 지 모르겠습니다. 인쇄된 책자가 나옴에 따라 세상은 바뀌었습니다. 혁명이라는 표현에 걸맞게 기술, 지식이 소수에서 다수에게 전달되는 통로가 생긴 것처럼 어쩌면 지금이 똑 같은 혁명을 요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아닌지요. "지금으로부터 30년후 대형 대학 캠퍼스는 유물이 되고 대학들은 살아남지 못 할 것이다."라는 미래학자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지금 세대에게 여러 가지 큰 변화를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비단 학교를 보기로 들었지만 다른 단체도 무엇인가 다른 환경을 준비하지 않는 한, 시행착오와 제자리를 찾는데 혼란, 시간의 낭비가 따를 것 같지는 않은지요.

이야기가 주제를 많이 벗어난 것 같습니다. 단편일지 모르겠지만, 여러 환경은 카리스마, 독재를 요구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분산이나 자율, 다중심, 교육과정에서 목표를 향해 합의를 이끌어내고, 설득하고, 늘 새로워지는 유연성있는 모습들을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한가지 시선이나 행동보다는 다양한 시선과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판단해봅니다.

아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끊임없이 주고받고하는 수평관계를 이야기한다는 관점과 우리 관점을 비교해보면 어떨까요. 우리의 얽매인 족쇄 가운데 하나도 사람관계를 학교,지역,무엇이라는 판단만 서면 이런 사람이구나라고 판단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물을 멀리 떨어져 보는 습관이나, 정치는 다 그런거야?! 라는 냉소 뒤에 늘 지금까지 이야기한 그런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일상의 많은 상황을 라디오를 듣거나 TV를 보듯이 다 아는 이야기냐? 뭐 특별한 것이 있겠어? 하는 것은 아닌지요. 참여없이 무엇인가? 거리가 떨어져 남의 말하듯 하는 태도는 자신의 비민주적인 모습의 다른 표현이 아닌가합니다. 끊임없이 사람과 사물의 관계에서 판단하려 하지 않는 우리의 무의식적 습관 때문에 발생한 잘못된 문화가 아닌가 합니다.

이야기를 모으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적용하기가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앞으로 잘 나가는 모임, 자생력 있는 모임의 경우 회사이든, 공공기관이든, 노조, 가정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느낌이 듭니다. ① 얼마나 새로운 것(정보, 의견)에 대해 열려 있는가? ② 새로운 의견이나 정보, 아이디어를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공유하는가? 소수의 의견이라도 재고할 수 있도록 여백을 만들어두는가?

한가지 확인을 하는 방법의 보기를 들면 생각나는대로 말하기-의사수렴하는 방법(브레인스토밍)이 우리 모임에서 제대로 되는가 입니다. 지식과 느낌을 공유하는 방식. 기발한 아이디어에 대해 어떠한 제어도 하지 않는 의견 수렴 방법 말입니다. 일반 회의에서 모두 다 적용되지 않겠지만 새로운 방향, 발상, 막힌 숨통을 뚫어야 된다고 느낄 때, 모임 진행이 혹시 지식이 많기때문, 연장자이기때문, 저 사람은 나랑 친한 사람이니까 발언에 대해 수긍을 하거나, 동의를 보내거나, 느낌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이렇게 저렇게 논박을 하거나 하는 분위기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덧붙이면, 새로운 지향이나 신선한 생각이 필요한 모임에서 이러한 논의 방식은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단 한가지라도 새로운 것의 힌트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방법이지요. 팀웍 뿐만이 아니라 지식과 느낌 나누기, 상대방의 다양한 느낌이나 선문답도 받아들이는 자세가 전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③ 정보, 새로운 것에 대한 노력을 성원 각자가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라는 점입니다. 한가지 전문지식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시대는 벌써 끝이 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처럼 새로운 것에 대해 주고받기를 거듭하는 관계를 위해서 노력하는가입니다. 새로운 지식이 될 수도 있고, 사람과 관계일 수도 있고, 취미를 위한 노력일 수도 있겠습니다. 혹시 축구를 하거나, 볼링을 하거나, 풍물을 배울 때에서 사용자 설명서나 교본을 보고 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새로운 사물이나 상황에 대해 끊임없이 주고받기를 해보는 것은 어떨지요.

정체된 모임이나 조직은 무엇을 했느냐?로 따지는 것 같습니다. 변화, 발전을 지향하는 모임이라면 우리가 행동해서 예전보다 어떤 점이 나아졌는가 판단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관계 속에서 있는 그대로 수준을 인정하고 지금보다 한발 나은 모습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겠지요. 두 사람의 관계를 위해서 약속을 지키는 것이 낫다고 하면 약속을 지키는 모습, 회비를 내야한다면 내는 모습, 어쩌면 우리 삶은 작은 주고받기로 끊임없이 움직이는데 있지 않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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