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추위가 익는 밤, 사상의 은사 리영희선생님을 추모하다. 지역의 민언련대표, 4대강관련 종교인 단식농성 등 활발한 활동을 하시는 남목사님과 리영희선생님의 인연을 듣는다.  우상과 이성의 서문에 나오는 루쉰의 쇠로된 방의 한구절을 옮기신다. 캄캄한 방에 한줄기 빛은 두려움이고 공포다. 조금 조금 몸에 붙어서야 빛이 방을 뛰어넘는 다른 세계가 열린다.

생선가게 장사를 하는 형님은 어느날 꽃집을 하는 아우네집엘 들른다. 아우는 형님이 묵고갈 방을  꽃으로 장식해놓는다. 밤은 익고 형은 잠을 못이뤄 아우에게 생선의 비린물을 달라고 한다. 꽃 한송이 한송이에 비린물을 흠씬 적신 뒤에서야  형은 잠을 이룬다. 생선비린내가 진동하는 방,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자본의 비린내에 젖어 아무것도 인지하는지도 모른다.

    사선이 아니라 직선임을 직시하게 해주는 것.

사상의 은사라기보다는 종교인인 남목사님은 익명의 그리스도, 현자 리영희로 모두를 여신다. 리 선생님이 지식인은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존재라고 했고 아는만큼은 실천하고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이기심과 탐욕, 욕망을 담은 자본주의를 이기는 방법은 사회주의라고 했다. 사회주의 없는 자본주의는 병이 들게 마련이다. 자본주의는 사람을 동물로 만드는 것이다. 자기희생과 헌신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 현재의 종교인이지만 종교의 본질을 그런 것이 아니라는 내용으로 반론을 보냈다. 이기심을 극복하는 것은 현실에서 불가능하다. 

이것은 영성의 문제이고 종교의 문제라고 말하고 싶다. 자본은 희생을 하지 못한다. 종교의 본질은 희생정신이고, 이 희생정신을 모토로 한다. 리영희 선생님은 지식인이 아니라 길을 보여주는 현자라고 여긴다. 제도나 교양을 통해 바뀌지 않는 현실에 있어 묵묵히 길을 가신 현자이다. 그가 말한 사회주의는 단순한 자본주의가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다.

언론의 역할, 386을 탓할 수 있지만 사람이나 우리가 변해야 하는 과제가 동시에 있는 것이다. 거의 모두 자본주의의 포로이자 노예다. 앎보다 실천이 더 크고 위중하다. 

김소월의 시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 볼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뱀발.  1. 생선비린내가 진동하는 방, 자본의 비린내가 온몸 구석구석 붙어 어디에서도 자유롭지 못함을 이야기한다. 책 한권으로 세상을 보는 시야가 바뀌고 트이듯이 어쩌면 삶을 새롭게 트여야하는 것이 동시대의 책무인지도 모르겠다. 리영희 선생님을 추모하는 자리 속에서 [아름다움마저 끊어야 하는 것]이 지금 여기의 새로운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쇠로된 방보다 비린내가 진동하는 방... ...

2. 어쩌다보니 낮술 성원이 거의 모여 2011년 첫발족을 한다. 노조에 13년만에 복귀하시는 분도 사회적 기업을 출발하는 이도...텍스트보다는 다른 이야기의 전개에 더 관심이 많은 구력들....이렇게 추모하다니... ... 아무튼 새로운 걸음걸이다. 

3. 아름다움을 끊어야 한다. 저 달이 설움인줄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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