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은 마음만으로 뭉쳐지는 것이 아니다. 눈은 몸으로 구르고 구르고 굴러서야 조금씩 단단해지고 커진다. 마음도 마음만으로 뭉쳐지는 것은 아니다. 마음은 몸으로 구르고 구르고 굴러서야 단단해지고 자란다.

한 머리주의자의 독백은 늘 시공간에서 늦다. 현실이 썰물처럼 밀려나간 뒤에서야 밀려가는 물결에 아쉬움을 싣기만 한다. 머리주의자가 몸을 끌어모으려는 발상자체가 어리석음을 표현하는 일이다. 끊임없이 번역하고 해석하고 아전인수의 피나는 노력만이 남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머리를 유보한 채로 끊임없이 몸의 겹침이 있고난 뒤에야 아 이것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뒤늦은 깨우침이 따른다.

몸을 섞어 느끼지 못하는 불감처럼 머리주의자의 독백은 늘 현실에 뒤처진다. 몸을 섞은 만큼만 방향전환하는 것이 현실이다. 몸으로 자란 이들이 머리를 만나기를 저어하는 것이 이처럼 뼛속 깊은 습속때문인지도 모른다. 시공간을 이동하는 것은 이렇게 몸과 몸을 굴려야 마음이 붙고 붙은 마음들로 현실은 다르게 자랄 수 있다. 

뱀발.  나의 머리는 시공간을 달리한다. 아니 어쩌면 늘 습속을 저버리지 못하고 못난 나를 고정점으로 보는데 익숙한지 모르겠다. 아주 조금씩 다를 뿐 어쩌면 축은 움직이지 못하거나 한축의 꼭지점을 두고 빙빙도는지 모르겠다. 일터, 가족, 강도를 달리하는 너, 모임하나둘셋, 마음이 붙어있어 나란 서사(너-나-)의 반경은 넓어지지 못하고 그들의 몸에 안착하지 못하면서, 자꾸 머리안만 들여다보려는 것은 아닐까? 이같은 나란 머리주의자의 고백은 지난 모임에서 발화로 상기된다. 생각이 맴돌고 조금은 달라지고 변하지만 생각처럼 모임이 변하지 않은 이유를 생각한다. 생각이 맴돌다나니 마음도 몸의 뭉침도 빈곤한 우리의 동선이 느껴진다. 5년이 왜이리 짧은 것인지가 오년이 왜이리 긴 것인지로 교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머리주의자가 컴잉아웃만 하면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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