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속에 숨어있는 힘]
지난해 마무리를 짓지 못한 책이다. 생각이 나 다시 집어들고 몇가지 메모를 해둔다. 정신분석에 근거한 정신치료의 방식은 다분히 자본주의적이다. 끊임없이 병의 종류를 만들어내며 처리하는 방법도 유사하다. 제3자의 관찰자의 입장에서 감정이입을 경계하는 원칙이다. 그 경계를 흔들며 임상의 경험들을 적었다. 환자로 전락시키는 세상에서 치유될 길은 많지 않은 듯 싶다.
1.
공감과 연민은 반대되는 감정이다. 연민이란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으며 애처롭게 여김을 의미한다. 거리감을 둔 감정이다. 반면 공감은 깊은 유대에서 비롯되는 감정이다. 공감은 동정을 포함하면서 그 이상의 감정이다.
개인적으로 체험의 경험이 부족하다. 장애인, 외국인노동자, 소수자들은 낯설다. 그리고 그 감정들이 이 책말을 느끼면서보니 그 수준은 연민에 머문 것을 확인한다. 따지고 보면 공감의 체험이 많지 않은 셈이다. 그러니 세세하게 보이지 않는 곳이나 어려움을 헤아리는 감수성이 약하다. 가족과 함께 슈퍼스타 k의 애청자가 되다보니 어느덧 모니터 앞에서는 연민의 경계를 넘어선다.
그(녀)들이 겪은 체험의 강도는 평범함을 넘어선다. 그 어려움과 힘듦이 거꾸로 그(녀)들의 힘으로 승화되었을 것이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삶을 겪는 농도와 강도가 공감의 폭을 넓히는 것 같다. 가족들과 심사하고 맞추는 재미도 솔솔하지만 그들의 능력과 외모에 맞춰질 평가, 그 속에 매몰되는 룰에 우리의 일상은 너무도 겹쳐져 있다. 마치 당연한 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긴 공감의 끈은 모니터 밖을 나서자 마자 흔들린다.
2.
남성중심적 정체감 혼동은 사랑, 통제, 조정을 구분하지 못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남성적이다. 물론 여성이라고 하여 여성적인 것인 아니다. 여성적 남성이 대부분이다. 나도 그러하고 그런 이유로 통제받는 것, 조정받는 것도 모두 사랑이라고 여길 수 있다. 여성의 시각에서 과정의 눈으로 구분해내는 것이 숨어있는 힘이다. 모니터 밖의 현실을 그래도 일회성의 슈퍼스타 k로 뜨끔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로 가져오는 징검다리로 만들기에는 넘어야할 연민이 아니라 공감의 고개가 너무도 많다.
3.
개인적으론 장재인과 허각이 끌린다. .....형이 텔레비젼도 다 봐 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 나도 거의 다 순위를 맞췄다구..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