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여름밤의 꿈

몸에 맞지 않는 철학, 빌려쓰는 철학, 의지하는 철학,하나의 추상개념에 목매여있는 철학,삶의 너머만 관심있는 철학, 머리속에 맴도는 철학,몸에 맞는 철학,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철학, 삶과 함께하는 철학, 너-나의 몸에 맞는 철학, 철학을 옷을 입고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철학, 나,너가 아니라 우리, 강한나로 모든 상황을 흡입하는 철학, 나란 원자 너란 전자 나란 양성자 너란 중성자, 너란 쿼크, 나와 너사이의 만유인력, 인력으로 함께 있는 나-너, 원자하나가 아니라 양성자-중성자...개념의 확장. 마음이란 중력속에 존재하는 나-너-나-너의 모임, 모임은 서로 얼마나 다양할까를 겨루거나 견주고, 종의 다양성처럼 모임의 다양성이 기본적인 존재의 이유


#2

도드락 토드락, 토도독 톡, 툭, 톡톡, 톡도톡, 도르락 토르락, 토르락 톡톡, 툭, 톡톡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가 굵어진다. 칡넝쿨의 잎에서 제법굵은 중모리, 벗나무도, 은행나무도 연신 정신없이 빗줄기 장단을 두드린다. 자진모리고 휘모리로 발사이로 안경너머로 등줄기를 적신다. 목련잎도 후두둑 후두둑,  눅눅한 습기와 더위에 지친 마음도 시원하게 마음갈이를 한다. 12k 120'

#3

삶밖에 갖지 않는 자들 - 역사란 삶밖에 갖지 않은 자들이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를테면 역사는 아무것도 하지 안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역사라 불리는 것은 자기 자신의 삶, 자기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해 어떤 시간성을 구축하는 사람들이 짜는 것입니다. 135. 민주주의는 죽었는가?

#4

지식과 권력의 결합이라는 모티프를 끊임없이 변주한 미셸푸코와는 달리, 라캉은 지식과 권력의 괴리를 주장한다. 우리 시대의 지식은 권력의 효과에 비해 상당히 불균혀하게 성장했다는 것이다. 요컨대 오늘날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더 빨리 알게 되지만, 그것들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생태위기를 둘러싼 전망) 지식의 연쇄는 더 이상 주인-기표들에 의해 총체화될 수 없다. 과학적 지식의 기하급수적이고 통제불가능한 증가는 무두의 충동과 관련 있다. 따라서 지식에의-돌진은 "지배의 권력이 아닌 권력" 즉 지식 자체우ㅏ 실행에 적합한 권력의 고삐를 풀어놓는다. 169-170

#5

감각적인 것의 나눔 - 미학의 차원(촛불소녀)이 공동체의 의미로 기입되는 순간, 이 차원에서 얻어진 감각은 더 이상 미학적이기를 멈춘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곧 앎으로 체계화된다. 이 체제화는 윤리라는 공동체의 상식을 구성한다. 미학적인 것이 공동체의 정치적인 방식으로 될때 주목해야 할 것은 정치의 방식보다 선행하는 것이 감각적인 나눔이라는 사실이다. 랑시에르, 인문좌파의...

데모스는 다수나 약소계급을 의미하거나, 특정한 직업이나 장소에 속한 '시민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공동체의 윤리를 통해 분할당한 차이와 위계를 무화시키고 중성화하는 차원을 뜻한다. 이것을 랑시에르는 '미학적 차원'이라 부르는데, 바디우식으로 말하자면 이 차원은 부분집합의 재현이자 각 부분집합의 원소들을 고정시켜주는 국가로 수렴할 수 없는 공백의 출현이기도 하다. 284

#6

새로운 것, 진리를 산다. 진리는 다양하다. 바디우가 말하는 진리는 말이 아니라 실체이며, 기존의 사회체제를 벗어나는 새로움이자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과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모두 같은 일이다. 61 현대정치철학의 모험
 
사회 속의 개인은 정치의 주체가 아니라 주체가 될 수 있는 존재이며, 자기 삶의 일부만이 주체를 이룬다. 정치적 행동은 집단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정치적 주체도 대부분 집단의 형태를 띠며, 그 집단의 개개인은 이 주체의 일부로 정치적 진리에 참여하게 된다. (주체와 진리)

한 개인은 동시에 여러 진리에 참여할 수 있으며, 여러 주체가 될 수 있다. [세계의 논리]에서 바디우는 이런 각각의 진리가 만들어지는 영역을 '세계'라고 부르며, 한 개인이 속한 세계는 여럿이고 개인은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수의 진리절차에 참여할 수 있다. 64

한 사회의 진리를 만드는 것은 그 사회의 요소들을 진리에 속한 것과 아닌 것으로 나누는 작업이다. 이런 구분과 선택이 이뤄지는 위치를 이야기하기 위해 '점'이란 개념을 들여온다. 결국 진리를 만드는 일은 점을 하나씩 다뤄가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진리에 참여하는 이들이 대부분의 경우 점을 다루는 작업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되는데, 이럴 때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버티는 것을 용기라고 부른다. 진리 앞에서 용기는 "한 점을 붙들고 놓지 않는 것"이다. 67

있는 것은 몸과 언어뿐이다./진리가 없다면, 있는 것은 몸과 언어뿐이다.- 우리는 진리 속에서만 자유로우며, 진리에 참여할 때만 자유를 누린다. 

뱀발. 

1. 휴식 겸해서 밀린 책들을 본다. 가고오는 길, 에어콘의 냉기를 피할 수가 없다. 목도 몸도 더 불편한데 습도높은 더위가 더 밀려온다. 여기저기를 다녀오구 산책 겸해서 나서는데 소나기라도 내렸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같다. 아니나 다를까 돌아오는 길  소나기에 온몸을 적시니 그나마 밀린 체증들이 함께 씻겨가는 듯하다. 


2. 정독을 하지못하고 함께 읽지 못해 산만했던 책들을 겹쳐 읽다보니 그나마 이 시간이 되어서야 가닥이 잡힌다 싶다. 

3.  불편해도 괜찮아를 짬짬이 읽고 있다. 머리 속에 말이 아니라 목에서 나오는 말들이라 한결 수월하다. 늘 편치 않았던 마음들을 핑계삼아 깊이 들어갈 수 있거나 정리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싶다. 

4. 한여름밤 너무 습하고 칙칙하다. 이건 아니지 싶다.  꿈이라도 좋은 꿈 꾸자. 시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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