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경제가 지배하는 체제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여자는 제2의 성에 지나지 않는다. 여자는 젠더가 부재하는 도박에서 이기건 지건 간에 영원히 그 게임에 핸디캡을 안고 있다. 그 마당에서 두 젠더는 모두 발가벗겨지고 중성화되지만 결국은 남자의 승리로 끝난다. 220

-1. 

이전까지만 해도 텃밭에서 재배해 먹던 부식을 이제는 돈을 주고 구입해야 했기 때문에, 그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여자들은 느닷없이 남자들의 일에 가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부억에서도 더 많이 더 빨리 일해야만 했다....여자들의 불평은 남자들이 갑자기 자기들에게 일터로 나갈 것을 요구했다는 점인데, 이는 생판 처음 겪는 일이었다. ...여자는 자신의 영역 상실을 한탄했다. 여자들이 더욱 불만스럽게 생각한 것은 남자들은 그날 쟁기질이 끝나면 저녁 때 주막에서 피로를 풀 수 있지만, 자기들은 괭이를 놓자마자 서둘러 집에 돌아와 부엌일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해서 신종의 선망, 즉 상대방  젠더의 스케줄과 리듬에 대한 선망이 싹트게 되었다...한편 남자들의 일반적 불평은 자기 아내가 자기 엄마에 못 미친다는 점이다. 에전 식단은 풍성하고 다양했는데 이제는 날이면 날마다 밀가루떡이나 먹고 살아야 했다. 젠더가 붕괴된 부부의 공동생산의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 이제 경제적으로 중성화된 노동자이기도 한 이성애적인 배역들로 그 무대를 채우지 않을 수 없었다. 216

3. 

가정은 공장으로 변하게 되었고, 그러한 가정에서 젠더는 섹스만 남을 때까지 와해되었다. 이러한 젠더의 와해가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유발시킨 고통은 거의 보고되지 않은 채로 사라졌다.  경제적 곤궁이라는 새로운 경험이 프로레타리아의 일치에 접착제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임금노동은 여자와 남자를 절멸시키는 새로운 유형의 고통을 야기시켰다. 모든 임금노동자는 방향상실, 고독감, 종속성이라는 아주 동일한 풍토병에 시달렸다. 216-7
 

2. 

공장 노동을 위한 무대가 가설되고 현대경제의 무대장치가 진행되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아직 익숙치 않은 새로운 성 역할을 위한 각본이 다시 씌어지기도 전에 신기한 비판적 이론들이 아방가르드 극장에 출현했다. 현대적 드라마의 전개 과정에서 마르크스와 프로이트가 얼마나 일찌감치 그 드라마의 각복을 가늠했었는가를 아는 자들만이 그들의 천재성을 평가할 수 있다. 그들은 산업화된 '인간'이라는 신종의 배역을 묘사함과 '동시에' 순조롭게 편승시키기 위해 써먹을 수 있는 결정적인 개념을 날조하였다. 그보다 7백년 앞서 교회는 젠더 부재의 영혼에 젠더 부재의 죄를 뒤집어씌웟다. 217

그들이 발견했다고 주장한 것이란 자본이 사회적 도관을 관류하고 리비도가 심리적 채널을 관류하는 젠더 부재의 힘이다. 그리하여 금세기의 4분의 3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에너지, 노동, 성욕을 '삶의 실상'으로 받아들이고 살지 않을 수 없었다. '위기'라는 코드어가 널리 퍼진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우리는 그 리얼리티를 내놓고 의심해볼 수 있을 것이다. 218
 

1. 

사회는 과거를 필요로 한다. 현재라는 감각을 지니기 위해서 살아 있는 자는 자기에게 적합한 과거를 요구한다. 창조의 신화가 없는 1인칭 복수. 즉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시대건 간에 두 젠더로 이루어진 '우리'는 각 사회의 의식, 축제, 터부에 의해서 삶을 지탱해왔다. 산업사회 역시 창조의 신화를 필요로 하며 창조의 신화 없이 산업사회는 존재할 수 없다. 그리하여 산업사회는 각 가정에 '신정보'와 불변하는 '과거'의 의미를 제공하기 위해 특별한 제도를 창조하였다. 218

희소성은 젠더나 섹스가 역사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이다. 희소성의 시대가 가능하게 될 수 있게 된 전제는 '인간man'이 개체적이고 소유적이며 또한 물질적 생존자라는 점에 있어서 젠더가 부재하는 탐욕스러운 중성적 경제인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제는 결혼생활에서 학교에 이르는 제도를 가운데 구원되어 역사의 주제를 변화시켰다. 221
 

0. 


나는 이 책에서 왜 사회가 남자를 우위에 두고 여자에게 핸디캡을 가하는지에 관해서는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가능한 한 자유로운 상태에서 패자의 이야기를 더 주의깊게 경청하고, 패자에 관해서가 아니라 경제라는 이름의 전쟁터에 관해서 배우기 위해 내 호기심을 억제해왔다. 산업사회는 두가지 신화를 창출해낸다. 그 하나는, 이 사회의 섹스의 시조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보다 큰 평등을 추구하는 운동에 관한 것이다. 두 신화 모두 제2의 성이라는 중성자 개개인의 경험으로 거짓임이 폭로되고 말았다. 220

나는 젠더와 섹스 사이의 단절을 주시하고 현재를 과거에서 분리시키는 균열을 관찰하고자 애썼다. 또한 경제사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섹스에 관한 조작된 계보를 폭로하고자 했다. ..섹스를 젠더안에 심는다는 것은 위조다. 섹스도 젠더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기원이 있지만 양자의 기원은 모체를 달리한다. 219
 



 
 

 

 

뱀발.  1. 책이 거대한 전환처럼 해제를 포함하여 다시 출간되었으면 싶다. 16강을 몇시간 앞두고 타박을 맞으며 마무리하지 못하고 남은 부분을 보다. 그러면서 폴라니의 심화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또다른 관점...몇번을 반복해도 모호했던 결혼-섹스-사랑의 뿌리없는 밋밋함이 돌연 자라난다. 몇차례 두려움이 다가오기도 했는데, 철학이나 유토피아에 대한 관점은 그의 글쓴 동기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어떤 면에서 일리히의 책을 거꾸로 읽은 셈인데...정작 본류와 깊이는 이 책에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 같다. 마르크스나 프로이트....에 대한 일갈은 거침없다. 교회사에 대한 부분도 양심과 영혼까지 점거당하는 경로를 너무나 선연하게 지적하고 통찰을 준다 싶다.  

2. 남녀의 언어구사나 버뮤큘러, 젠더(경제적인 관점으로 발라내기 이전 사회문화적인 관점이 배여있는)라는 것이 유사한데....아마 다른 젠더의 여성학의 책들과는 다른 개념인 듯하다. 하지만 그리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겪지 않을 듯. 다시 차근차근 짚어나갈 여유가 되면 좋을 것 같다. 아직 본문보다 열배는 방대한 주석을 읽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