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물방울 한 알에도
크나큰 고마움을 기울이다 보면
아리도록 맑은 하늘이
살짝 안겨올 때가 있습니다
어제에도 내일에도 매이지 않고
오늘만의 묵정밭을 일구다보면
향긋한 오월 바람이
땀방울을 쓸어 줄 때가 있습니다
어제엔 미처 몰랐던 것을
오늘 용케도 깨닫다 보면
여지껏 살아 남은 대견함이
잔잔히 스며들 때가 있습니다
출처 : 일제시대보다 더 혹독한 세월 견딘 이효정 - 오마이뉴스
뱀발. 1. 여든이 넘어서 시를 만드셨다한다. 아마 여든이 훨씬 넘은 나이에 쓴 시인 것 같다고 기자는 말하고 있다. 이재유를 비롯해 경성트로이카에 대한 여러 일들이 관심을 자라게 만든다. 남겨둔다. 아픈 마음도 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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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 떠나버린 빈 껍질
활활 불태워
한 점 재라도 남기기 싫은 심정이지만
이 세상 어디에라도
쓰일 데가 있다면
꼭 쓰일 데가 있다면
주저 없이 바치리라
먼 젊음이 이미 다짐해둔
마음의 약속이었느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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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사를 다시 들어가보니 기자분이 혹시나 하니 역시 그분이시네. ㅁ. 이렇게 조우하다니 좋은 기사 감사드려요.
---EBS 방송분(피디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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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 |
항일 독립운동가의 집안에서 태어난 이효정은 동덕여고보 재학 중 발생한 광주학생항일운동에 동조하여 동맹휴학을 주도,무기정학을 받는다. 동덕여고보를 졸업한 이효정은 잠시 울산의 한 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요시찰 인물로 찍혀서 강제로 사직당하고 경성(서울)으로 올라와 사회주의 노동운동가 이재유가 주도한 <경성 트로이카> 조직에 가입해 경성 최대의 공장이었던 종연방직 파업을 이끌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1년 1개월 동안 투옥된다. 이재유, 이현상, 김삼룡 등이 주도했던 <경성 트로이카>는 핵심조직원만 200명, 연루자가 1,000명에 달했던 1930년대 최대의 항일운동조직이었다. 이들은 엄혹했던 일제치하에서 공장 노동자들을 조직해 연쇄파업을 일으키는 한편 학생들과도 연계해 대규모 학생시위를 일으킴으로써 일본경찰에게는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
이효정은 출옥한 뒤 고문 후유증으로 치료를 받다가 교원노조사건으로 2년간 투옥된 경력이 있는 사회주의 항일운동가 박두복과 결혼해 평범한 주부로 돌아갔다. 그러나 해방이 되자 남편은 여운형과 박헌영이 이끌었던 건국준비위원회 울산 대의원으로 좌익활동을 하다가 남로당 사건에 연루돼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월북한다.
2남 1녀의 자녀와 함께 남한에 남겨진 이효정은 교직에서 쫓겨나 “빨갱이 가족”이란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호떡장사, 공장 노동자, 과일장사 등을 전전하며 생계를 꾸려간다. 그러다가 1950년대 말 남편이 남파간첩으로 활동하다가 다시 월북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그때부터 이효정은 요시찰 인물이 돼 수시로 사찰기관에 연행돼 고문과 취조를 당하게 된다. 냉전시대 공산당 남편을 둔 여자의 삶에 인권은 사치였다. 영장 없이 끌려가기를 수십 차례. 고문으로 팔목이 부러지는 장애를 입으면서 억울한 옥살이도 감수해야 했다.
6월 항쟁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지자 이효정에 대한 사찰도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이효정은 팔순이 넘긴 나이에 자유를 얻어 문학회에 가입해 시집을 출간하는 등 문학인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2006년 정부의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마침내 독립유공자로 지정된다. 일제치하와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평생을 쫓기면서 살아온 이효정에게 떳떳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나이 아흔 세 살 때의 일이었다.
올해 나이 아흔 여섯. 죽음의 문턱에서 이효정은 젊은 날 함께 항일운동을 했던 <경성 트로이카> 조직원들에 대한 회상에 자주 빠지곤 한다. 이효정과 그들이 추구했던 이념, 그들이 이루려고 했던 나라, 남과 북에서 모두 소외된 채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해야 했던 그들의 삶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우리나라 현대사가 몸속 깊숙이 새겨져 있는 이효정의 생생한 육성 증언을 통해 굴절된 우리 현대사를 반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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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검색하여 본다. 말미 눈물이 난다. 자막엔 트로이카의 삶들이 올라간다. 눈물이 난다.
3.1 괜찮지 않다. 지금도. 아들 박진수화가는 몸이란 것이 오른쪽으로만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오른쪽만 쓰고 있다. 이것말고 모두 왼쪽이라하는데 이렇게 몸은 움직일 수 없다 한다. 삶을 살아가는 자식을 비롯해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고싶지 않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지만, 힘과 권력을 가진이는 삶마저 협박과 공갈을 일삼아 올타리를 덮어씌운다. 그래서 말미 말을 잇지 못한다. 지금도 괜찮지 않다고 온몸으로 느끼고 있음을 진술하고 있다.
4. 서평들을 보다나니 [파업]을 쓴 안재성작가로 이어진다. 평들도 좋아 구해봐야겠다 싶다.
5. 이효정님의 머리맡에 책들이 눈에 띈다. 이영희님의 [대화]도 문학계간지도 책읽기고 사유도 멈추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풋풋함과 또박또박한 말투는 소녀의 순수함과 어머니로서 강직함, 꼿꼿함과 맑음이 100세를 바라봄에도 선명해 보인다. 자막에 나온 시도 괜찮았는데. 다음으로 미루자. 여전히 진행형임만 또렷해진다. 애초 고진감래라는 것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 현실은 늘 그러하므로. 단 그 현실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하는 것이란, 그것을 알게 됨으로써 헛된 투사나 노력에도 그렇지 않을 수밖에 없다. 묵묵히 가는 수밖에... ... 현실은 보은이 아니다. 늘 뒤통수를 치기 마련이므로 깨지지 않도록 늘 애지중지해야하는 것일 수밖에 없으리라. 그래야 만일을 대비할 수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