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본의 아우토반 - 철도와 도로를 고속화하는 것은 농촌을 앗아가 도시주변으로 사람을 모으고 슬럼으로 초토화시키지만 자본의 고속도로 건설은 삶을 양극화시키고 피폐시킬뿐만 아니라 삶을 잡아삼킨다. 그래서 자본의 실핏줄이나 고속도로화하려는 획책을 목숨걸고 지켜내야 한다. 소비의 달콤함이 아니라 당신의 정신까지 삼켜버리는 것이므로. 자본은 삶과 전쟁을 시작한지 무척 오래되었다. 단지 내가 값싸게 쓸 수 있다는 아Q의 변명만으로 자위하는 족속이 늘어나서 그렇게 보이지 않을 뿐이다.
2. 자본은 칼날과 같아서 쥐는 사람과 용도를 묻지 않게되면 살아있는 것에 칼끝을 되돌려준다. 그래서 요리를 하듯 사람도,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아 한순간 방심하는 사이 사고를 치고말지도 모른다.
3. 나는 칼목을 쥐고싶은가? 칼끝을 쥐고 있는가? 칼끝에 발은 베이고 있지나 않은가? 칼날에 마음도 몸도, 삶도 저당잡혀 헤어날지 모른다. 칼끝의 뒷모습만 봐도 설레는가? 정작 레떼르를 붙어야하는 것은 저것인지도 모른다. 골목길로 사라지기만 하는 저놈의 정체에 꼬리표를 붙여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뱀발. 동네에 SSM들어온다고 한다. 마을 동네가게주인들이 모여 싸우고 있다. 동네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래도 지역방송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파고든지 오래된다. 하지만, 동네사람들은 단순한 셈을 하고 있을까? 구멍가게 갈때와 할인매장갈때의 구매액수를 비교해볼 수 있을까? 그리고 더 비용을 치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그리고 동네에 생기는 문제를 단순한 소비자의 문제를 넘어 바라볼 수 있을까? 주민이 옹호를 하는 시위나 지원을 할 수 있을까? 지역상인과 지역주민의 연대는? SSM에 가지 않고 다니던 가게에 안면과 아이의 이름을 아는 가게에 갈 수 있을까? 코묻은 돈까지 뺏어가려는 작태에 분노스럽지 않은가? 남의 일인가? 나와는 상관없는? 구멍가게에 간 적도 없고, 가격이 얼마나 하는지? 소비의 포트폴리오는 사치일 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