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셨죠? 벌써 또 한주가 훌쩍 지났네요. 이러고 어영부영 있다간 후기를 뛰어 넘을 수도 있겠네요. (사실 뛰어 넘고 싶네요ㅋㅋ 책을 읽다보니 책을 따라하게 되네요. 잘 얘기하다 가로 쳐서 살짝 알 듯 모를 듯 하는 소리를 하고 싶어지니.)
저번 모임에서는 책 대 책으로 진행했습니다. <매혹과 열광> VS. <스포츠 코리아 판타지>입니다. 원래 책 대 책을 제안하신 H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책 두 권을 다 읽고 얘기하자는 의도였다는데... 하핫. 전달의 문제가 있었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각 각 변호하는 책만 읽다보니 상대방이 읽은 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관계로 초반에 좀 헤맸습니다.
특히 <매혹과 열광>을 읽고 오신 분들은 상대방의 책 뿐 아닌 읽고 온 책 자체도 완전히 소화하지 못해 힘들어 하셨습니다. 저를 비롯해서. ^^; 대부분 스포츠와 친하지 않은 여성분들이 <매혹과 열광>을 읽기로 했는데, 스포츠도 모르는데 거기에 미학이 들어가니 정말 힘들었다는 반응이셨는데요. 처음 읽을 땐 순 모르는 외국인 이름에 ‘웬 칸트?’하며 머리를 쥐어짰답니다. 한때 스포츠맨이자 축구 열광팬이신 S님도 어려웠다고 하시니 스포츠를 몰라서 어렵다기 보다는 책 자체가 어려웠나봅니다. 이렇게 불친절한 목차도 처음이었다네요. 다시 생각해보면 불친절하며 돌려말하는 것이 이 책과 또 대부분 인문학 소양을 가진 것들의 까탈스런 매력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어쨌든 내용 자체와 풀어가는 방식에서 새롭고 신선하다는 반응이 나왔으니까요.
게다가 <매혹과 열광>이 스포츠의 미학에 대한 책이라면 <스포츠 코리아 판타지>는(읽어보진 않았지만) 스포츠 미학 자체를 부정한다기보다 스포츠를 둘러싼 사회 정치적 상황에 대한 비판이라고 볼 수 있어 난감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H님의 교통정리 끝에 책에서 얘기하는 논의가 다를지라도 스포츠가 고유한 미를 가지고 그 자체로 즐기는 것인지 아니면 스포츠가 시대 정치적 상황에 이용되는 것인지, 이런 문제로 토론할 수 있었습니다. 두 책은 대립되는 주장을 갖고 있지만 완전히 다른 얘기를 한다고 볼 수는 없어서 얘기하는 도중 이리 저리 이야기가 섞이다가 결국 수적인 열세와 내용의 난이도에 별 불만이 없었던 <스포츠 코리아 판타지>는 논의에서 사장되고 <매혹과 열광>이 얘기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수적인 열세보단 열세지만 역시 칸트 철학이 큰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ㅎㅎ) 얘기가 끝나보니 <스포츠 코리아 판타지>에서 다룬 에피소드는 한 꼭지도 나오지 못했네요.
어쨌든 결과적으로 보자면 완벽하진 않지만 <매혹과 열광>을 읽은 팀과 <스포츠 코리아 판타지>를 읽은 팀이 나름 접전을 벌였습니다. (이하 매혹팀과 판타지팀으로 표기할게요. 편의상 ^^*)
초반 뜨뜨미지지근 하던 모임은 중반에 들어 사회자 H님이 판타지팀 쪽에서 이야기를 펼치는 상황에 다다라 책 대 책의 분위기가 고조되었죠.
분위기를 고조시킨 결정타 몇 개를 소개하면
<매혹과 열광>에서 스포츠가 고대 그리스에서 출현해 오랜 시간동안 단절되다 근대에 들어 다시 스포츠가 오게 되었고, 현대의 스포츠는 그리스의 스포츠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왜 그렇게 오래 단절되어 있다 현대에 와서 발생해 급격히 발전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얘기해 보기로 했습니다. 여러 논의들이 오갔는데 제가 기억력이 안 좋아 뭐가 오갔는지 생각이 안 나네요. 다이어리에 써 놓기도 했는데 결정타를 관람하느라 넋을 놓고 있었나 봅니다.
여기서 스포츠에 대한 정의도 계속 논의가 되었고요. 어디까지 스포츠로 볼 수 있느냐, e-스포츠는 스포츠인가, 스포츠의 속성은 뭐고 역사는 어떻게 되었느냐. 얘기가 계속 되었습니다.
고대의 스포츠를 스포츠로 볼 것이냐 아니냐에서 스포츠가 고정된 고유성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 고정된 고유성이 없다면 스포츠가 정치적이거나 사회적, 상업적 이유로 좌지우지 되는 것인지. 그래서 고유한 미적 가치를 발견할 수 없으며 언제나 비판하고 견제해야 할 대상인지, 아니면 스포츠는 다른 예술처럼 인간 본성(?)의 한 발현이라고 볼 수 있는지, 그래서 그 자체로써 가치를 인정해야 하는지 등등의 얘기가 나옵니다.
<매혹과 열광>에서는 스포츠의 미를 칸트의 이론에서 많이 찾는데요, 스포츠를 행위가 어떠한 목적을 갖지 않고 자체로서 목적이라 그에 따라 아름답다고 얘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스포츠가 가진 고유한 영역을 인정하고 영역이 아름답다고 찬사할만하다는 얘기인데요, 이에 판타지파 고대 스포츠는 현대적 의미의 스포츠가 아니며 스포츠는 근대가 시작되면서 행위자와 관람자를 분리하고 제도화를 추진하면서 생겨났다고 정의합니다. 따라서 스포츠는 주변 제도가 변하면 스포츠의 미는 변할 수 있다며 ‘스포츠가 고유한 합목적성을 띤 미를 가진다’는 주장을 반박합니다.
결국 큰 입장의 합의를 보진 못했지만 토론의 과정을 통해 스포츠를 둘러싼 관계들과 현재 스포츠의 위상, 스포츠가 일상과 얼마나 밀접했는지 다양한 각도로 스포츠를 살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뭐 이 글을 쓰는 저 한사람은 그런데, 다른 분들의 의견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ㅎㅎ (생각해보니 저도 선호하는 스포츠 장르가 있더군요. 농구나 축구보다는 베드민턴과 탁구가 더 좋다는. 탁구가 농구처럼 시즌으로 텔레비전에 틀어댔다면 탁구 팬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오히려 저는 <스포츠 코리아 판타지>와 궤를 같이 한다고 보는데 <매혹과 열광>이란 면에서 스포츠를 보니, (스포츠 자체에 대한 시선보다) 스포츠에 열광하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바뀐 느낌입니다. 그런 면에서 스포츠가 예술이든 아니든, 읽은 사람에게 찬양의 시각으로 스포츠를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매혹과 열광>이라는 책제목에 이의를 달지 않게 되네요. 읽는 내내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는데.
책을 서로 바꾸어 읽고 토론했다면 피가 튀겼을지도 모르겠지만, 이해되지 않던 것을 조금 이해할 수 있다고 느끼니 ‘스포츠와 칸트’라는 이중고가 고생만은 아니었나봅니다. 불평을 좀 했지만. ^^ㅎ
인간이 만든 스포츠가 얼마나 수명을 할지, 이게 절대적이든 상대적이든 간에 어쨌든 일상적으로 둘러싸고 있는 행위이자 이미지에 대해 즐길 권리도 비판할 권리도 있으니까요. 그 권리를 누릴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물론 즐기라고 강요할 권리는 없습니다. 남성분들 유념해주시길.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