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치미 네번째 갈무리
추천 : 0 이름 : 아카데미 작성일 : 2009-03-25 17:51:32 조회수 : 5
내일이 동치미 모임인데 이제야 지난 후기를 쓰네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가물가물한 탓에 말 많던 지난 모임이 조금 정리 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지난 모임에서 우리는 <아파트 공화국>을 주 텍스트로 삼아 주거 문화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참가하신 분들이 아파트 경험이 없거나 적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더군요. 물론 아파트 주거의 경험이 없다는 것이 ‘아파트 공화국’을 얘기하는 데 있어 크게 문제될 건 없을 것 같네요. <아파트 공화국>의 저자가 프랑스인인 것을 보면요. <아파트 공화국>에서 주로 다루는 수도권의 중산층 아파트 거주자들이 이야기에 함께 참여했다면 좀더 다양한 관점도 생겨 재밌지 않을까 싶지만.
저자는 프랑스 지리학자, 책을 읽고 얘기하는 동치미 구성원은 지방의 타자. 타자에 시선에서 대한민국의 아파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실 자유로운 얘기방식 덕에 아파트를 걸쳐 놓고 각자의 ‘집’이야기를 비롯한 사적 영역을 넘나들었지만요.
일단 사적 영역부터 시작해서 각자의 ‘집’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초가집에서 단독주택, 빌라, 반지하 자취방, 아파트 등등 각자 어떤 집에서 살아왔는지 얘기를 나눠보고 집에 얽힌 추억이나 집의 의미를 서로 나눠봤죠. 나이가 들면서 집의 의미가 사라졌다는 얘기도 나왔어요. 좀 다른 얘기지만 생각해보면 한국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집은 얼마나 의미 있나 싶네요. 현재 집에 대한 최고의 찬사는 최고의 집값, 최고의 의미는 재산으로서의 의미니까요.
아파트는 가보처럼 여겨진 집의 개념을 쿨하게 바꿨나 봅니다. 재산일 뿐 더 이상 가보는 아니죠. 그 이외의 의미는 들어올 틈도 없고, 또 다른 의미는 아파트의 ‘쿨’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네요. ‘쿨’이 현대의 덕망이 되었듯 아파트도 주택의 덕망이 되었습니다. 모든 이들이 살고 싶어 하는 공간, 나를 말해주는 공간, 꿈을 현실로 이루는 공간으로요.
군사기지 같이 일렬횡대, 종대로 늘어선 아파트에서 그 어디에 꿈이 숨어 있을까요? 프랑스에선 빈민촌의 상징인 아파트가 대한민국에서는 어떻게 꿈의 전당이 되었을까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자신의 사는 집의 외관과 주위 환경에 이렇게까지 무관심해질 수 있을까요? 어떻게 대대로 널찍한 마당을 두고 단독주택을 고수하던 그 많은 사람들이 쭉쭉 늘어선 멋없는 직선에 몇 백 명의 사람들과 함께 살기를 선택했을까요?
재벌과 군부정권의 유착, 현대화 서구화의 잘못된 개념, 뉴타운 신도시 등 새로운 것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 중산층을 타깃으로 삼은 점 등등 답이야 <아파트 공화국>에서 나왔다면 나온 것이겠죠. 하지만 우리가 얘기하면서도 나왔듯 아파트가 이미 하나의 권력이 된 것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아파트에 사는 아이와 일반주택에 사는 아이가 갈리고, 아파트 이외의 지역에 사는 아이들은 학교에 오지 못하도록 아파트 주민들이 시위하는 등 일상생활의 차별이나 불이익도 있죠. 그만큼 아파트 문제는 안다고 싶게 달라질 만한 문제는 아닐 듯싶어요. 이미 일상을 지배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안타까울 뿐입니다.
늦은 얘기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저렇지 않았다면’, ‘이것이 아니었다면’ 식의 가정을 해보게 됩니다. 아파트가 정말 국민 주택으로써 서민들을 위한 정책으로 만들어졌다면, 집이라는 것이 재산의 의미가 아니라면, 집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면 아마 우리 사회는 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요. 적어도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뽑히지는 않았으리라 장담해봅니다.
<아파트 공화국>에서 저자가 한국에서 뉴타운과 신도시라는 개념이 마구 사용되는 것을 보고 놀라워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왜 이렇게까지 ‘뉴’, ‘신’이라는 말이 판을 칠까, 하는 얘기도 나눠봤습니다. 지난 역사를 수치로 생각해 전통까지 배격해버리게 된 배경도 있을 테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문화가 확산되는 과정의 문제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문화가 여러 방향에서 자생적으로 발전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상위계급이나 중산층이 하면 아래 계층에서 따라하는, 위에서 아래로 확산되어 가는 것이 보편적인 과정이기 때문이죠. 중산층이 시작한 문화를 새로운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쫒아가지 못하면 시대의 낙오자가 된다는 압박감. 휴대폰에서 시작해서 인터넷까지 IT상품들이 우리나라에서 유래 없이 빨리 확산된 탓은 민주화된 사회가 원인이기 보다 오히려 그 반대급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새롭고 서구적이며 현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아파트도 그런 반대급부의 하나이겠죠. 하지만 서구 선진국 어디에도 고층 건물이 들어선 도시는 유례를 찾을 수 없습니다. 아파트 문화는 분명 편리함과 안락함을 주지만 요즘 어떤 전원주택도 그만한 안락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의 아파트의 곳곳에서는 전통 한옥의 계량된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베란다를 마당으로 쓰거나 온돌식 난방이거나 좌식 생활이 혼용되어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죠. 결국 아파트는 서구적이지도 현대적이지도 않다는 얘기겠죠.
<아파트 공화국>은 프랑스 지리학자의 논문을 수정한 책답게 주택 정책과 아파트에 살아가는 모습을 중점적으로 다뤘습니다. 외국인이니까 상황을 담담하게, 또는 냉철하게 비꼬면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 공간에 있는 사람으로써는 여간 답답하고 암담한 문제지만요. 아파트 문제가 단순히 아파트 문제만이 아니라 전 사회에 퍼져 있는 고름을 상징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구성원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부 정책, 물질적인 것으로 구분하는 것만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중산층과 그것을 좋든 싫든 따라가야 하는 서민, 잠자고 먹는 주거 공간까지도 돈으로만 환산하고 생활의 질이나 살아가는 일에 대한 성찰은 전무한 사회. 개발논리와 약육강식이 너무도 쉽게 통용되는 냉정함 등등.
책을 읽으면서 또 대화하면서 효율성과 개발논리가 전부인 정부의 주택 정책에 화가 나고, 전통과 역사를 무조건 부정하고 앞으로 나가야 했던 아픈 과거도 안쓰럽고, 새로운 것에 대한 그 어떤 취향이나 가치도 가지지 못한 채 단지 뒤처지지 않으려 애를 쓰는 몰개성과 지성의 부족이 속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것도.
호주에서 온 선배 남자친구에게 한국이 어떠냐고 하자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이상한 점도 좋은 점도 있는데, 특히 허리가 굽은 나이든 할머니가 무거운 시멘트를 대야에 담아 끌고 가는데 그 모습이 충격적이었다고 합니다. 평생 일에 찌들어 산 사람의 고통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이죠. 근데 한국에는 그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 거죠. 건축에 대해서 물어보니 건축에 대해선 한국 건축가들의 미적 감각을 의심합니다. 물론 아파트에 대해서도 이상하게 생각하고요. 그가 생각하기에 한국 사회의 구석구석이 아파보인다고 하네요. 구석구석 아파보인다는 그 말에 제 마음이 다 따끔거렸습니다.
아픈 구석을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요? 열심히 까긴 했는데 대안은 깜깜하네요. 다음 모임에서 대안을 얘기할 수 있는 자리가 생겼으면 하네요. 다음 모임은 아시다시피 내일 7시 아카데미 책방에서 주거에 대한 각자의 주제 발표로 진행합니다. 발제하실 세 분은 김경량님(생태주택), 김모세님(미정), 서희철님(도심의 발달)입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