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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입속의 검은 잎]과 [지금 이대로 괜찮아]를 보고 있다. 어찌하다보니 벌써 짧은 시간을 잘라 들여다 봐야할 것 같은 세밑. 굳이 되돌아봐야하는 숙제같은 것은 아니지만 이런 저런 생각이 겹쳐들어 흔적을 남긴다.

1. [소리의 뼈]를 보다가 마음의 뼈 생각이 든다. 그렇게 치환해서 읽고 있다. 마침표가 끝난 뒤에도... ...

김교수님이 새로운 학설을 발표했다/소리에도 뼈가 있다는 것이다/모두 그 말을 웃어넘겼다, 몇몇 학자들은/잠시 즐거운 시간을 제공한 김교수의 유머에 감사했다/학장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교수님은 일학기 강의를 개설했다/호기심 많은 학생들이 장난삼아 신청했다/한 학기 내내 그는/모든 수업 시간마다 침묵하는/무서운 고집을 보여주었다/참지 못한 학생들이, 소리의 뼈란 무엇일까/각자 일가견을 피력했다/이군은 그것이 침묵일 거라고 말했다./박군은 그것을 숨은 의미라 보았다/또 누군가는 그것의 개념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모든 고정관념에 대한 비판에 접근하기 위하여 채택된/방법론적 비유라는 것이었다/그의 견해는 너무 난해하여 곧 묵살되었다/그러나 어쨌든/그 다음 학기부터 우리들의 귀는/모든 소리들을 훨씬 더 잘 듣게 되었다./(1984. 7 기형도 [입속의 검은 잎]에서 )

2. 이제는 다가올 일을 예상하고 점을 치는 일이 쉬워졌다. 조만간 식품위생 관련하여 문제가 생길 것이다라구. 기상이변이 아니라 외려 그것이 정상적인 것이 되었기때문에 폭설이 오구 가뭄이 올 것이다라구. 정부는 철학도 없고 정책도 없고 행동력만 있으므로 사고를 치기만 할 것이라구. 사람들은 거시와 비평의 전망탑에서 살고 있으므로 자신의 발과 손이 없어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할 것이라구. 키보드좌파라구 가두고, [우리가 하면 로맨스가 남이하면 불륜이기에]가 [우리-----불륜]까지를 낳고 낳고, 무한 수렴을 하다보면 우리는 없고, 불륜만 자가증식하게 되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론상 없는 것으로 귀결되기때문에. 잘한 것은 내가 잘해서 그런 것이고 못한 것은 그놈때문이기에 어김없이 [때문에]의 거미줄에 걸려들게 되어있고. 히틀러가 그렇게 [유대인이기때문에]란 사고의 함정에 걸려든 것처럼 내사랑좌판 그렇게 로망의 마법에 빠졌을 뿐이고, 거기에 헤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불륜과 [때문에]를 증식할 뿐이고. 그렇게 좌파는 좌판대에 오르고 있을 뿐이고. 여전히 거시와 비평의 전망탑 속으로 향한 길만 내고 있을 뿐이고...  
           
                         이것이 2oo8년의 진보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이자 자신에 대한 소회이다.

3. 책으로 만난 사람 가운데 손을 꼽으면 니클라스루만이 인상적인데 초입만 들어서다만 느낌이구, 기세춘선생님의 동양고전입문은 아직 심호흡을 하며 발을 들이지 않고 있지만 관점이 워낙 파격적이라 주춤거리고 있다. 스피박할머니는 여전히 마음만 가득하지만 마음을 자라게 하지 못한 한해가 된 것 같다. 지젝-고진은 얼핏얼핏 읽지만 윤수종교수님이 소개하는 라이히, 가타리의 시선에 자꾸 걸린다. 들뢰즈의 열풍처럼 지식계의 한때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오히려 올해 독서 가운데 좋았던 것은 풍경-그림으로 도움을 많이 받은 것 같다. 그러고보니 말미에 본 김상봉교수의 관점도 인상이 깊다.

4. 관점을 품지 못하는 시대 - 아니 관점을 다르게 품을 여유가 없는 시대라고 해야하나 싶다. 아마 조바심을 내거나 어설픈 앎으로 재단하려는 사적욕망인지도 확인을 해보아야 하나라는 반대질문을 놓아두고 이야기를 이어 가본다. 삶이 정치로 녹아든 상황. 그것이 녹을지 겹칠지 겹치는 와중인지는 모르겠지만, 삶과 운동, 활동을 중첩시키지 않고서는 논의를 전개시키기가 힘든 사회가 되었다. 각개약진의 탁월한 실력들을 존중해야하지만, 고민을 좌판에 깔아놓거나 전시하지 않는다.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듯 사적공간에서 밖으로 향하지 않는다. 물론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부터 확인을 해봄직한 것일까? 무엇을 고민해야하는지부터 질문을 늘어놓는 것이 순서이겠다 싶다. 어떻게 하고싶은데, 어떻게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하는데가 시식코너에 있다고 하자. 기역이란 사람이 니은이라고 품평을 하고 디귿이란 사람이 리을이라고 품평을 하고 ....미음이 비읍을 품평한다고 하자. 왜 품평을 하냐구, 오히려 절대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품평을 하지라고 되묻는다면 언제까지 품평을 의탁할지 되물어보자. 맛의 품평이 다르면 다를수록(물론 품평하기까지 공부도 준비도 감도 익혀야하겠지만) 다가올 현실은 양쪽 극단사이에 있을 확율이 높다.

어쩌면 우리가 자꾸 마음들의 렌즈를 모아야할 지점을 모으지 않으려고 하거나, 자꾸 대행시키는 습속이 걸림돌이지 않나 싶다. 다르게 새롭게 할 수 있는 일에 시선이 멈추도록, 서서히 좁아져서 빨리 지나가는 관이 아니라 확 넓어져서 서서히 갈 수밖에 없는 시공간을 만들지 않고서는 그 다음은 없다라고 해야하는 것일까? 일리와 오감의 체험을 나눌 수 있도록, 그것이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올 시간과공간을 만드는 일이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인지?란 생각도 겹쳐든다.

사회가 자꾸 삶과 정치-경제의 공간을 서로짓누르면서도 간간이 답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은 아닐까? 그 공간사이로 짓눌려있지만 한데 엮여 숨쉬는 진보의생공간이 들여다보이는 것은 아닐까?
살갗애이는 삶과 연결시키는, 마음들을 렌즈에 쏘이게 해서, 햇침이 모여 검은종이를 태우듯 태울 수는 없는 것일까? 가장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애타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렇게 하기엔 자칭진보라 칭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은 것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눠줄 것이 정말 많은 것은 아닐까? 처리하지 말고 느리게 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정말 빨리갈 수 있는 지름길은 아닐까? 우리는 꼭지점을 너무 빠르게 통과시켜왔고 바뀌어 왔다. 너무도 빨리빨리 회계년도의 고점을 통과시키는 버릇이 있어 늘 늦었던 것은 아닌가? 꼭지점을 돋보기로, 현미경으로 셈으로 템으로 들여다보고 걱정하거나 될수록 천천히 아픔을 공감하면서 지나갈 수는 없는 것일까?

5. 루만은 소통을 이야기하면서 소통을 세가지요소로 나눈다. 정보-통지-이해로 말이다. 통지한다고 해서, 정보를 준다고 해서 소통되는 것이 아니란다. 이해되지 않으면 결코 소통할수도 되지도 않는다고 한다. 패션으로 소통, 유행으로서 소통을 색바랜 깃발처럼 끝이 났다. 이해하는 척이 아니라 정녕 이해되지 않으면 이해하지 않으면 다음을 접어들 수 없다. 그래서 십년이 지나도 소통하지 않았으므로 늘 부단히 이해하려고 할 뿐이다. 그러니 결국 하거나 해 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6. 올 한해 많은 사람을 알게 되었고 만나게 되었다. 마음도 확인할 수 있게 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늘 감사하고 고맙다. 하지만 마음이나 생각, 고민을 품고 나누고 자랄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 서로 키울 수 있는 느낌-아픔-즐거움들부터 생각해보아야겠다. 마음 가득한 인사와 만남들이 기대된다. 그래서 2OO9년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올해 감사하는 소회 가운데 하나이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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