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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의 조정, 무관심의 극복 [관계] - 그것은 너와 나 사이에서 '사이를 조정'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관계 만들기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사이'를 최적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관계맺기는 너와 나가 만나서 '우리'라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동체를 구성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구성된 '우리'공동체가 잘 유지되도록 보장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라는 공동체 그 자체도 아니고, 공동체를 구성하는 '나'와 '너'라는 개별적인 존재도 아니다. 그것은 이러한 가시적 실체가 아닌 구성원들 '사이'라는 비가시적 기운이다. 이것이야말로 공동체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진정한 활력이다. 완전히 독립된 너와 나에게 사이의 의미가 없듯이, 완벽히 뭉쳐진 우리도 그 의미를 잃게 된다. 기가 빠지고 정이 없는 세상이 된다. 여우가 어린왕자를 길들이는 일은 '사이있는 우리'를 창조하는 일이어야 한다. '관계를 만들어간다' 또는 '관계를 창조한다'는 말의 의미는 그런 것이다.
합리적 이성과 소중한 감성사이 [이해] - 옆에 사이말을 보면 [사랑-이해-용서]를 두어보자. 말꼬리를 잡자. "이해가 되는데 용서가 안 된다"는 말처럼 서로 차원이 다른 말이다. 사랑은 생물학적 차원이고, 이해는 철학적 차원이며, 용서는 종교적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사랑은 자연현상과 관계있고, 이해는 논리적인 것이며, 용서는 믿음과 연관이 있다.
[사랑-이해-용서]의 관계에서 사랑과 용서라는 엄청난 세력 사이에 끼여 있는 이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미미하지만 커다란 뼈 사이의 물렁뼈와 같은 작용을 한다. 이때 인간 이성은 딱딱함이 아니라 부드러움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완전한 용서가 잘 안돼도 이해하며 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사랑-이해-용서의 '현실적 소화력'이 생겨 서로를 아끼는 넓은 의미의 '사랑'에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이해는 '합리적인 생각'이라는 이성의 영역에 뿌리내리고 있으면서도 사랑과 용서 같은 인간 삶에서 매우 소중한 감성적 영역에 걸쳐 있다. 224
'비판을 위한 비판'은 정말 소용 없는가 [비판]- 사적인 관계에서는 '비판 최소 적용의 원칙'이 요긴하고, 공적인 관계에서는 '비판 최대 적용의 원칙'이 필요하다. 이 두 가지 차원을 혼동하면 비판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 기능을 제대로 알 수 없다. 그러므로 공적인 차원에서는 비판의 강도와 방식 등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최대한 열어놓아야 한다. 사적인 차원에서는 비판보다는 칭찬이 열린 관계를 유지해주지만, 공적인 차원에서는 칭찬보다는 비판이 열린 관계를 가능하게 한다.
자기 살 깍아먹기 [아부] - "바보는 항상 자신에게 아부할 바보를 기다린다" 아부의 위험은 아부 받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 그것을 즐기는데 있다.( 그러므로 진짜 리더의 능력은 마키아벨리의 말대로 '아부를 피하는' 데 있다.) 이런 점에서 아부는 또한 '거짓신뢰'를 만들어낸다. 즉 리더와 아첨꾼 사이에서는 서로 믿는 관계가 아니라 '믿고 싶은' 관계가 형성되고, 더 나아가 그것에 익숙해져서 '믿을 수 밖에 없는' 관계가 되는 것이다. '자기꼬리를 먹는 뱀'처럼 그 둘 이외의 사람을 배제하게 된다. 254
감성적 경험의 순간 [순수] - 이성의 차가움이 엄습하는 시대에도 순수의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진정한 감성의 시대를 실현하는 가능성의 하나이다. 각박한 삶 속에서도 순수, 솔직함, 신뢰, 진실 등의 순간들이 인생을 엮어가는 데 참여하면 삶은 좀더 수월해진다. 그러므로 인간다운 감성을 표현하고 그것을 수용하며 사는 것 또한 인생을 잘 사는 방법이다. 과잉 정치화의 세상은 엄청 머리를 굴려 오히려 피곤한 것이기도 하다. 203
인간적 부활을 위한 계기 [후회] - 후회없는 삶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후회를 극복하는 길을 찾아 다시 태어나는 삶의 연속이 있을 뿐이다. 그것을 고대 인도의 잠언은 뱀의 허물벗기에 비유했다. 후회의 허물을 입고 있으면 거추장스럽지만, 말끔히 벗으면 삶이 새롭게 시작된다. 그런 삶은 허물 벗은 뱀처럼 생기 있고 아름답다.
치기라서 더욱 소중한 [낭만]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영혼이 죽으면 물이되고, 물이 죽으면 땅이 된다. 그러나 땅에서 물이 나오고, 물에서 영혼이 나온다."라고 한다. 또 "마른 영혼이 가장 지혜롭다."라고도 했다. 이말은 낭만의 한자가 모두 물 수 변이 있는 것과 묘한 일치를 보인다. 낭만은 흐르는 물처럼 우리의 영혼을 젖게 하는 것은 아닐까...그 영혼은 지혜롭지 않지만 더 인간적인 것은 아닐지. 일상생활을 이끌어가는 데는 이성적 활동을 보장하는 '마른 영혼'이 필요하지만, 가끔은 '젖은 영혼'의 낭만이 제공하는 일탈 또한 삶을 의미있게 한다. 그래서 '낭만에 대하여'를 노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깨어있는 자들의 건강한 꿈 [희망]- 밤꿈은 각자 꾸지만, 낮꿈은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들과 함께 꾸는 것이다. 공동체의 낮꿈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의식을 심어줄 수 있어서 힘을 더욱 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낮꿈은 뭔가 바라보는 것으로 족하지 않고, 구체적인 실천과 책임 그리고 반성을 동반하는 어려운 꿈이다. 이것이 낮꿈의 양면성이다. 희망을 현실을 극복하는 에너지로 내세운다면 그 진지함을 저울질해야 한다. 제시되는 바 역시 실현가능성이 설득력있게 제시되는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희망이란 말을 아껴써야 한다. 희망을 잘 쓰려면 마지막 처럼 써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희망이 쉽게 실망이 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다. 판도라의 상자에 남은......
생생한 인간관계를 위한 멋진 놀이 [유혹] - 유혹은 기술과 전략 이전에 꽃과 같이 발현하는 생명력이다. 밀고 당긴다는 것 자체가 생명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건강하지 못한 생명은 지속되는 밀고 당기기의 긴장을 견뎌내지 못하고 빨리 결말을 내려하거나 손쉽게 포기한다. 소유, 정복, 지배에 대한 욕구 때문에 현대인들이 잊고 있는 것은 유혹이 대표적인 상호 소통적 행위라는 것이다. 소통은 즐거움이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에게 유혹을 즐길 줄 알라고 가르친다. 반면 유혹의 소통적 성격을 상실하고 그 도구성과 효율성에 집착할 때, 우리는 유혹을 즐기지 못하게 된다. 유혹은 본질적으로 유희이다. 멋진 놀이를 위해서는 걸맞는 상대가 필요하겠지만 "모든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유혹자가 있다. 행복이란 바로 그를 만나는 것이다."라는 키에르케고르 말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인간관계가 점점 더 계산적으로 되어가는 시대에, 유혹이 정복하고 차지하는 기술과 전략이 아니라, 생명의 기운을 유지하고 즐겁게 살기 위한 근본 조건이자 삶의 지혜라는 인식이 우선적으로 필요하지 않을까? 이것은 즐거운 인간관계 맺기의 한 방식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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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1. 꿈속에서 두글자를 가진 낱말이 살아서 저자를 괴롭혔다는 서문을 통해서 얼마나 품어왔는지 알 수 있다. 두글자처럼 단호한 말들. 그 성벽처럼 단단한 말들.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는 그의 능력은 놀랍다. 만연체를 지향하는 알랭 드 보통보다는 유혹도는 떨어지는 느낌이지만 지금여기를 사는 우리들에겐, 저자의 말처럼 '혼합의 시대'를 즐기고? 넓히기엔 더 좋은 안주감이 없는 듯하다.
2. 고정된 말(단어)들을 늘이고 넓혀 툭툭 다른 것들이 사이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 단단하게 열리지 않고 빗장을 풀지 않는 생각들이나 마음을 톡톡두드리는 소리. 모두 샘물처럼 상쾌하다 싶다. 아침 일터회의가. [경쟁]이란 단어를 잡아 당겨보았다. 전제가 사라진, 연대를 갉아먹는 경쟁에 대한 오해가 서로를 얽마나 우리를 이간질하는지 말이다. 의도였는지 이 책의 영향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알랭 드 보통처럼 긴호흡으로 돌아가는 방법이나 철학자의 시선으로 삭뚝 가지치고 품는 솜씨엔 마음길이 간다.
3. 마음에 남는 몇가지 두글자로 된 일용할 양식은 접힌 곳에 넣어두었다. 맛보고 싶거나 숙성하여 함께 홍탁처럼 삭혀, 막걸리 한잔에 음용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접힌 곳에 마음 갈피해둔다. 접힌 정리 일부내용은 첨삭가감하였음.
4. 선물해준이 감사. 미리 리뷰해주신 아프락삭스, 글샘님 외 알라디너 리뷰도 감사. 외려 리뷰도 볼만함.
5. 위 낙서 [ 하늘, 구름과 나무, 그리고 눈과 안개]... ... [행복]은 느낌표와 말없음표 ... ... 라구...저자 가라사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