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네가 복이 많다. 아녜요. 어머니가 많으신거예요. 그러니 이 복을 받는거죠. n포시대에 결혼이라니. 부친을 여윈 어머니는 그야말로 잉꼬부부를 너머서는 원앙부부셨다. 자식손주모두 무고하고 회혼례까지 맞으신 부부라 오히려 그 빈 자리가 걱정되는 편이다. 사진 속에 보이지 않는 웃음기가 무척 걱정이더니 그래도 한두달전부터 미소가 보이기 시작해 다행이다 싶다. 부친 묘소에 각시붓꽃 몇 송이가 좋은 소식을 보내는 듯.
2.
딸아이가 전한다. 집들이에서 오빠가 예비매부에게 술이 얼콰해서 부탁하나 있습니다라고 해서 순간 주변이 긴장아닌 긴장을 했단다. 곧 웃음을 참느라 고생했다는데, 매부보고 어머님 아버님께 잘해드리라고 했다나(평소에 잘 못한 사죄를 이렇게 하다니) 그러니 장가간 것이 맞다 아들은...
3.
요즘은 신랑신부 둘이서 결혼행사 일정을 온전히 치뤄서 그러려니 하는데, 아빠는 신부 입장할 때 손만 잡고 들어가면 된다 한다. 축사 이런 거 모두 하지 않고 축가만 있다한다.
4.
몇 달 동안, 딸아이와 경험들을 반추할 기회들이 생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이 있을텐데, 아들을 보낸 경험이 있는 딸 엄마가 힘들어한다. 거 참. 내가 보기엔 엄마가 딸을 키운 것이 아니라 딸이 엄마나 아빠를 키웠다는 표현이 더 적확하다. 아니 어쩌면 그리 힘들지 않을 수도 있다. 지인들과 이십여년이 넘은 모임이 있는데 매년 일박이일 가족행사를 그친 적이 없으니, 이십여 가족은 유사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 왕래도 그러하며 살아가는 모습들도 지켜보고 알고 있으니 한결 수월한 형태라고도 할 수 있다.
5.
한 달 전 별이빛나는 밤에 소식을 보내고 식사자리를 마련했는데, 지인삼촌들을 초청아닌 초청을 하여 저녁을 같이 한다. 다음날 바래다주면서 묻는다. 아빠는 삼촌들이 중요해 우리가 중요해라고 말이다. 당연히 주인공인 너희들이지. 당신들이 주이고 삼촌들은 올지 안올지 몰랐던 게스트였지. 하지만 친척이상이라고 여겨, 마음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친척인 셈이지. 그냥 아는 사람이라고 하기엔 너희들에게 관심도 많고 해 주고 싶은 말도 많은... ...
6.
결혼식 전전날, 아니 전날 아침 짐을 챙기면서 혹시나 해서 책을 가벼운 걸로 두 권을 넣는다.
들뢰즈가 이런 질문을 한다. 사람들은 왜 자진해서 종속되기 위해 싸우는가? 왜 자유롭지 못한가?하는 질문 말이다. 사실은 이 질문은 스피노자가 한 물음이기도 하다. 사람은 왜 예속되기 위해 싸우는가? 그러면서 노예와 폭군, 신(성부)은 셋이서 한 통속이라고 한다. 폭군을 섬기고 신에 의탁하고 밖의 것에 기대고 그 삼위일체의 고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삶의 고리에 자신은 없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덧셈, 기쁨의 탈출 열쇠를 준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저 멀리가면 루크
레티우스가 말한 것이기도 하다. 사람은 왜 자유스럽지 못한가? 온전히 자신을 들여다보고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신화와 미신, 온갖 외부 것에 시달려 삶의 한쪽도 온전히 쓰지 못한다고 말한다.
7.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다행히 가족에 집착하지 않는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유사가족이나 책친척, 늘 손님으로 다가온 우리 식구들 역시 모시는 존재들이다. 그로부터 많은 것을 얻고 있기도 하고, 끊임없이 친척들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래서 고맙다. 우리의 삶들은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 나란 바다의 경계는 없다. 그 모든 것이 나의 것이고 친척들과 나눠야할 꺼리들이다.
볕뉘
물론 이러한 얘기들을 건넸다는 것이 아니다. 우연히 술이나 마음이 깊어지면 나눌 확율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아들이 왔다. 장가간 아들도 돌아오고 있다. 기대되는 오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