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시월의 마지막 날. 일터에서 회의를 했고, 라이딩 마무리 400k를 채우느냐고 고민했지만 한번 달려주는 걸로 마무리한다. 대박이라는 막걸리에 두부계란부침, 깻잎반찬, 족보에 없는 황태 미역 두부 미소된장국, 갓지은 밥으로 매듭을 짓다. 야전침대용 노르웨이 담요도 도착하고, 오전 여러 아이디어들이 삐죽삐죽 올라온다 싶어. 드디어 준비가 되어가는구나 한다. 몸이 차오르고 있어, 기운내보자 한다.


1.


길은 집착할 수록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 길-마음이라는게 있다면 아마 마음을 비우는 쪽이 더 낫다 싶다. 길-회의, 진리-회의라는게 있다면 회의라는 것이 나쁜 의미가 아니라 길이나 진리를 좀더 뚜렷하게 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믿지 못할텐데. 그런 회의의 자세가 좋다.  팽팽한 두 힘의 줄다리기가 아니라 세 가닥의 줄다리기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하나 하나 더하면서 사유하는 힘을 키워가는 방법. 


2. 


한 친구가 강연마무리 자료를 자세하게 보았던지 루쉰의 길에 대한 이야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묻

는다. 그래서 이욱연의 책의 1부 2절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우연으로 사유하는 것은 비단 과학의 사유에 근거한 것만이 아니다. 불확정성의 원리. 미결정이란 말 이후가 아니다. 니체는 친절하게도 우연이란 가장 오래된 귀족이라고 칭하지 않았던가. 진리를 지우고, 진선미에 가로로 선명하게 선을 긋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더 가깝게 가기 위해서 연습이 필요하다. 공짜가 없듯이 나만의 길로 가 보는 것이다. 실수실수실수. 그렇게 풍요로워지는 것이 곧 길이다 싶다. 


볕뉘.


벽돌책이 다시 눈길과 손길에 들어온다. 1/3지점, 다시 잇고 있다. 그래 그렇지. 그렇게 생각하는거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