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리좀은 단위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차원들 또는 차라리 움직이는 방향들로 이루어져 있다. 리좀은 시작도 끝도 갖지 않고 언제나 중간을 가지며, 중간을 통해 자라고 넘쳐난다. 리좀은 n차원에서, 주체도 대상도 없이 고른판 위에서 펼쳐질 수 있는 선형적 다양체들을 구성하는데, 그 다양체들로부터는 언제나 <하나>가 빼내진다(n-1). 그러한 다양체는 자신의 차원들을 바꿀 때마다 본성이 변하고 변신한다....리좀은 일종의 반계보이다. 그것은 짧은 기억 또는 반기억이다. 리좀은 변이, 팽창, 정복, 포획, 꺾꽂이를 통해 나아간다.


0. 


어제는 어류도감 관련 책들을 보려고 간만에 도서관 종합열람실에 들르다. 옛 기억들이 올라온다. 그래도 신간과 제법 많은 책을 보고 나눈 곳.인데 전집류 책들이 보이지 않는다. 과학도서 끝 부분, 나무와 새 가운데서 겨우 몇 권만 추려서 볼 수 있다. 아쉽다. 


1. 


<<천 개의 고원>> 서론:리좀 말미 코멘트를 달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는데 이렇게 이어간다.  나무라는 개념에 들뢰즈 가타리는 경끼를 일으킨다. 씨앗을 심다니. 그 비유의 사유는 자신이 이야기하는 개념과 무관하다고 한다. 식물 관련 동영상을 보다나면 잎을 잘라 감자 편에 꽂아 심거나 과일나무를 다른 가지에 삽입하여 랩핑하여 키우는 장면들을 보고 있다. 따로 모아볼까 하지만 아직 시도는 하지 못하고 있다. 서로 말미 핵심개념인 리좀을 이렇게 시작한다.


51. “말하자면, 나에게 닥친 모든 것은 뿌리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 중간의 어떤 지점에서 온다. 그렇다면 그것들을 붙잡도록 애써라, 그리고 먼저 줄기의 중간에서 자라기 시작한 풀을 붙잡아 거기에 붙어 몸을 지탱하도록 애써라”......사물들이나 말들 속에서 풀을 보기란 쉽지 않다(니체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포리즘은 “반추”되어야만 하며, 고원은 거기에 서식하는 하늘의 구름과도 같은 암소들과 분리될 수 없다).


2. 


그 리좀 개념이 바탕에는 중간이 있다. 중간을 잡아라. 애써라. 어제는 이 대목때문은 아니지만 달개비를 들여다보니 마디마디마다 잔뿌리들이 남아 있다. 고개를 쳐든 외모만 보다가 이리 얼기설기 엮어있는 모습은 처음 본다.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은 것이다. 씻고 말리고 젤리판에 올려 작업을 해본다. 여러 장을 해 보았지만 쉽게 곁을 주지 않는다.


53 역사가 유목을 이해한 적은 없으며 책이 바깥을 이해한 적도 없다. 오랜 역사가 흘러가는 동안 국가는 책의 모델이었고 사유의 모델이었다. 로고스, 철학자-왕, 이데아의 초월성, 개념의 내부성, 정신들의 공화국, 이성의 법정, 사유의 공무원, 입법자이자 주체인 인간, 세계 질서의 내부화된 이미지로서의 국가, 인간을 뿌리내기게 했다는 국가의 오만 방자함. 그러나 전쟁 기계와 바깥의 관계는 또 다른 “모델”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배치물이다. 사유 자체를 유목민이 되게 하고, 책으로 하며금 모든 움직이는 기계의 한 부품이, 리좀의 줄기가 되게 하는 배치물이다(괴테 대 클라이스트와 카프카).


3. 


클라이스트가 여기서 언급이 많이되는 작가다. 괴테와 쌍벽을 이루는 인물인데, 작품들을 본 적이 없어 희곡선을 주문해둔다.  세상은 복잡하다. 복잡한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것을 참지 못해 이념으로 잡아두거나 내식대로 막무가내로 가는 것은 시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늘 반복되지만 배치물이라는 것. 연루된 것의 확장. 그렇게 예민해지는 것이 인식의 오만이나 존재에 대한 차별을 너머 세심함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보다 잘 이해하게 되고 연민하게되는 윤리라는 것이 생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근대인이 인식이 존재론이나 인식론에 사로잡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존재론이나 인식론에서 진리를 추구하면 늘 공부를 새로 하듯이 영점으로 세팅해 출발하는 것이다. 그런 방법론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중간, 지금 여기를 얘기하는 것이다.


54 n에서, n-1에서 써라, 슬로건을 통해 써라. 뿌리 말고 리좀을 만들어라! 절대로 심지 말아

라! 씨 뿌리지 말고, 꺾어 꽂아라! 하나도 여럿도 되지 말아라, 다양체가 되어라! 선을 만들되, 절대로 점을 만들지 말아라! 속도가 점을 선으로 변형시킬 것이다! 빨리빨리, 비록 제제리에서라도! 행운선, 허리선, 도주선. 당신들 안에 있는 <장군>을 깨우지 마라! 올바른 관념들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관념을(고다르). 짧은 관념들을 가져라! 사진이나 그림이 아니라 지도를 만들어라. 핑크팬더가 되라, 그리고 당신들의 사랑이 여전히 말벌과 서양란, 고양이와 비비만 같아라! 



4. 


고다르를 이미 호출하셨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장 뤽 고다르. 삶이 마무리까지 영화같은 신비로움을 넘어 일관된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글쓰기 방법은 매여있지 않다. 슬로건은 슬로건만이 아니라 다른 개념들로 이어진다. 불쑥불쑥 꺾꽂이 하는 모습은 책이 말미까지 이어진다. 학문이라는 책이라는 보고서라는 틀로 우리는 늘 완결성을 고집한다. 그림 또한 인상보다는 사실화에 가깝게 남기려 안간힘을 쓴다. 그런 면에서 방법까지 분기되어야 한다. 그 가짓수가 많을수록 많은 느낌들을 남길 수 있다. 잘 쓰려고만 하지 다르게 쓰려고 하지 않는다. 간절함들은 어느 순간 다른 모습들로 만날지도 모른다. 말벌과 서양란처럼, 제 모습을 닮게 할 것이다. 닮고 싶은 것들을.



55 리좀은 “그리고.....그리고...그리고 ...”라는 접속사를 조직으로 갖는다. 이 접속사 안에는 <이다>라는 동사를 뒤흔들고 뿌리뽑기에 충분한 힘이 있다. 어디로 가는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어디를 향해 가려 하는가? 이런 물음은 정말 쓸데없는 물음이다. 백지 상태를 상정하는 것, 0에서 출발하거나 다시 시작하는 것, 시작이나 기초를 찾는 것, 이 모든 것들은 여행 또는 운동에 대한 거짓 개념을 함축한다. 여행하고 움직이는 다른 방법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중간에서 떠나고 중간을 통과하고 들어가고 나오되 시작하고 끝내지 않는 것이다....중간은 결코 하나의 평균치가 아니다. 반대로 중간은 사물들이 속도를 내는 장소이다. 사물들 사이는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가거나 그 반대로 가는 위치를 정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와 다른 하나를 휩쓸어 가는 수직 방향, 횡단 운동을 가리킨다. 그것은 출발점도 끝도 없는 시냇물이며, 양 쪽 둑을 갉아내고 중간에서 속도를 낸다. 


5. 


어디서 시작할 건데, 어떻게 할 건데. 막히면 되묻는 것이 이것이다. 질문이 탐탁치 않은 것이다. 중간은 그냥 가운데가 아니다. 속도를 내는 곳이라고 한다. 점이 아니라 선, 물결과 물결이 만나는 곳이다. 하나의 재료와 다른 재료가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그 곳이 바로 고원이다. 천 개의 고원이란 당신이 가까이온 그 개념이다. 지금 여기에서 시작하는 정치이자 삶이자 윤리존재인식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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