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전시 관련 약속이 있어,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책을 접했다. 

마침 이 책이 저자가 바다 속 첫 불꽃놀이, 생명발광을 경험하는 대목이라 끊어버리기는 아쉽지만, 미루고 읽기 시작이다. 오호라 몰입하기도 괜찮고 문제의식도 좋다. 잘 읽힌다. 퇴근 뒤가 걱정이다. 아무래도 식사를 하면 마무리가 쉽지 않을 것 같아, 따듯한 커피 한잔에 브레드하니로 독서를 이어가기로 한다.  밖은 천둥이 치고 요란스럽게 비가 오다가 조금 잦아들었다. 


1. 진한 커피에 독서등을 켜고 한 통화의 전화만 받고 몇 시간이 지나 희망의 마무리 멘트를 접할 수 있다. 이태원 참사 뒤 무력함이 짓누르는 상황에서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아 이 책을 시작했다는 저자는 정답을 가지고 한 편으로 몰아가지 않는다. 역사의 진폭 사이에서 나라의 상황에 따라 지금에 지치지 않으면서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어제는 일본 후쿠시마 폐원전의 오염수를 방류한 날이기도 하다. 


2.

산책자이자 관찰자로서 저자는 베를린과 독일을 세심하게 살핀다. 그리고 그 눈은 매섭고 깊다. 그의 그물에는 역사의 씨실과 날실이 신경망처럼 늘 움직이고 있기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그는 도시의 문제을 상품이기때문이라 한다. 작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첫시도로서 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출발점을 마르크스와 칼폴라니로 잡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집은 사서 파는 것이 아니라 살 곳이라고, 살아가야 하는 곳, 어울려 삶을 나누는 곳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세상 어느 곳도 자본의 원심력이 작용하지 않는 곳이 없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세계적인 증상이자 악화로 치닫는다. 그래서 토지와 노동을 사회에서 발라낸 사회가 제정신이냐는 폴라니의 사유를 가져온다. 


3.

 


그는 르페브르를 소환한다. '도시에 대한 권리'가 대의 민주주의나 제도적 절차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르페브르의 권리는 사회적 삶의 급진적 전환. 도시공간의 생산에 공헌하는 모든 결정으로 확대한다고 하며 그 사례를 일일이 제시한다. 무엇을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란 답변이기도 하다.


4. 저자는 지금의 우리 현실인식과 맹점에 대해서도 가감없이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내 집 장만 이데올로기에 포획돼 집주인되기 경쟁을 하는 동안 주택의 탈상품화나 주택사회화를 위한 투쟁은 방기됐다. 151

"주택을 상품으로 보는 논리에 대한 비판정신을  한국의 중간계급과 노동 계급이 결여하고 있고 내 집에 갇힌 사회의 대중은 생존과 투기 사이에서 각자도생하며, 소유권에 대한 진지한 이의제기를 포기했다. 155 "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욕망을 지고 세상이 불평등하다고 말하는 우리는 불평등 원인에 대한 많은 객관적인 연구와 논의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 못하며, 불평등의 문제를 함께 풀어 가는 것보다 개인주의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사회가 불평등하다고 느끼기는 하지만, 불평등한 사회를 바꾸기 위해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해결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는 생각을 잘하지 못한다. 156


5. 독일 베를린의 문제 역시 150년 된 문제이지만 여전히 진행형이라 한다. 압축화된 지금 여기에 대한 시야를 점검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기에, 이 책은 여러모로 분기점을 만들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듣기도 싫고 아무 것도 접하기 싫은 지금, 우리가 움직이지 않아서 그들은 더욱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 지금인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움직임으로 우리의 몸도 트였으면 좋겠다. 그들의 설레발을 얼마나 더 지켜볼 것인가. 우리도 또 다른 결의 도시의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길 기대해본다. 좀더 다른 삶을 미래세대에게 물려줘야 하는 것은 아닌가. 절망에 굴하지 않고 경험과 사유를 책으로 풀어낸 그의 작품에 경의를 표한다. 


-1 앙리 르페브르 <<도시에 대한 권리>>란 책은 왜 없는 걸까. 읽는 내내 리차드 세넷 책 생각이 많이 났다.

12 도시가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들의 독점적, 독재적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모두에게 열려 있고, 접근 가능한 공간을 만드는 일은 한 공동체를 사회적으로 통합하고, 민주주의적으로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14 정말 다양한 글자 폰트와 디자인의 역 간판.

17 이 거리를 걷다 보면, 베를린, 아니 독일 전역의 그 어디 보다도 많은, ‘걸림돌‘이라는 이름의 기림 돌을 만나게 된다. 독문학자 김누리는 이 슈톨퍼슈타인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걸림돌‘이라고 표현했다.

25 어느 도시가 스스로를 하나의 작품으로 인식하면서 도시의 상품화에 저항한다면, 그 도시는 아직 섹시한 아름다움을 잃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28 1920년대 만들어진 집합 주택 단지 중 여섯 개가 2008년에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됐다. 가난에서 발생하는 이웃 간 갈등과 분쟁을 겪으면서도 중정에 모여 함께 놀이하고, 토론하고 투쟁해 나갔던 주민들의 사회적 삶은 때로는 ‘공화국의 적‘에 맞서 함께 총을 드는 공동체로까지 발전했다.

59 초단기 임차인인 관광객이 들어가 사는 일이 일상이 될 때 원주민에게 이것은 저주가 된다. 실효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을 위시해 유럽의 여러 도시가 에어비앤비를 규제하는 법률을 서둘러 마련한 것은 매력적인 도시들이 직면한 비극을 막기 위해서다. 2023년에는 피렌체가 이 대열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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