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호하다. 기대치가 늘 문제인가? 평이한 느낌.  사회민주주의를 강령으로 주장하는 입장이라는 저자의 시선으로 보아도, 사고의 바탕이 미국의 현실을 지나치게 수긍하는 입장에 서 있지 않나 싶다. 물론 공동체를 지원하고 활성화하는 시스템을 피력하기는 하지만, 전지구적 상황에 놓여있는 미국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에도 낙관적 묘사가 정도를 넘어선 것이 아닌가 한다.

물론 <관용에 대하여>는 강연집을 묶은 것이니, 이것 또한 다른 것을 보지 않고 건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관용'의 관점에서 역사적인 체제과 시스템을 한틀로 설명하는 것 역시 무리이지 않나 싶다. 그렇다고 무의미하다거나 필요없다는 것은 아니다. '관용'을 스펙트럼으로 구별해내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유용하기 때문이다.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이 그만큼 쉽지 않기도 하다. 저자가 구별해내는 색깔은 포기(그래 알았어),무관심(하나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모두 수용한다),스토아주의(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타인은 그의 권리를 행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타자에 대한) 호기심(기꺼이 듣고 배우고자)과 열광(차이는 신의 피조물?)의 다섯가지이다.

이러한 <관용> 역시 역사의 산물이라한다. 종교적 관용이 서로 죽이다가 기진맥진하여 평화를 위해 그 차이를 용인한 것에 연유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교분리가 그러한 살육의 과정의 거치며 생긴 것처럼 지금도 광신을, 종교적 유토피아만 주장하는 세력에게 필요한 것이 이것인지도 모른다. 유사한 가능성은 민족을 맹신하는 민족운동가, 투사 가운데서도 존재한다. 좀더 나아가 국가와 정치를 분리해내는 것도 <관용>의 영역을 넓히는 방편이 된다. 국수주의자 등등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 것 같다.


 

2.

 (청소년인문강좌 뒤, 가벼운 식사. 굉음을 동반한 폭우는 돌아오는 길 더욱 세차게 내린다. 참* 노트북과 빔프로젝터를 부탁받고 가져오는 길. 홈무비-흔적 남겨도 되는 것인가, 이런 교육된 감시의 시선, 카피더레프트..쯧) 암튼, 그렇게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혀를 찬다. <독수리오형제>보다 상상력을 빈약하게 하는 이것을 보라구. 코묻은 돈, 싸구려 틀에 갇힌 감각의 눈깔사탕을 맛보라구. 이젠 신선한 것도 고갈되었나 싶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았다는 것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을 해봐야 될 것 같다.

제조된 감수성의 영역이 이 정도까지 일까? 예정된 배경음악, 감정의 제조틀은 어김없이 변하지 않고 진행형이다. 곧이어 아이들에겐 이 장난감들을 사달라고 졸라대겠군. 백지 한장의 얄팍함 위에 그 만큼만 돈을 훑어내는 입장에선 훌륭한 영화이다. 정말로. 그리고 대단하다.

 

 

 

 

 

 

3.

..표현감각이 다르면 조형의식이 다르다고 밖에 할 수 없고, 의식이 다르다면 같은 계통의 작풍이 성립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경주를 다녀왔다. 출발 전날 보스이하팀장회식이 있었고, 정도를 넘도록 긴 시간동안 이었다. 이어지는 발굴 반월성..왕경이 복원되고 있다. 시원한 박물관이 폭염으로 인해 더 인기가 있나 싶다. 그리고 여전히 아이들은 판에 박힌 듯, 기록장에 적어대고 있다. 부모는 종용을 하면서 말이다. 선입견을 심어주는 법도 여러가지 이구나 싶다. 왜? 대상을 먼저 음미한 다음에 보조설명을 보게 하지 않는 것일까?

하무며 그 설명을 또 옮겨적어야 하는 것일까? 숙제도 그러하며. 미적 감각을 배려한다면, 아름다운 그녀, 그이를 먼저 느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왠 사설, 한옥에 관심은 있는 것은 아닌데, 심심할 것 같아 가벼운 책으로 골랐다. 걸리는 한마디. 감각이 다르면 의식이 다르다. 중국과 우리... 많이 다르다. 종의 차이처럼. 사소한 차이가 질적으로 다른 양태를 만들어낸다는 것에 동의한다. '우리'에 대해 늘 알면서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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