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바람이 덥다. 목련잎은 어느 덧, 진초록으로 제자신을 바꾸었다. 이렇게 계절의 한고비도 미리 조짐을 보인다. 불쑥 들어온 윤수종님의 책들로, 그냥 별 것이겠지라고 가벼운 평가의 글들이라고 여기고, 한번 네그리, 라이히-가타리로 맛을 본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팜플렛들이 이전 맘속이나 생각을 스쳐지나간 다른 것들과 중첩이 되면서 마음을 흔든다. 라이히인지 윤수종인지 분간이 가지 않고, 가타리인지... 밀린 관점들에 , 응어리진 관점에 코칭을 받는 느낌이어서 당황스럽다.
1. '이물감'라고 하기엔 잔뿌리를 자꾸 내 마음속으로 내리고, 지금 내것과 비교하게 만든다.
2. <바리데기>로 심정적으로 이어졌던 한반도의 현실을, 미천하기 짝이 없는 아픔의 그물망이 저기 서편 런던 뒷골목까지, 남아공까지 닿은 셈이다. 황구라의 능력으로 인해, 그냥 서성이는 마음, 단편 단편 어쩔 줄 모르는 마음들이 실뿌리를 서로를 향해 내린 셈이다. 한마디로 낚인 셈이다.
3. 한번, 연변에 간 일이 있었다. 만주를 다녀온 뒤, 현실과 문제를 짚은 글을 신경림시인의 시 몇편에서 느낄 수 있었다.(애석하게도 언론에선 한번도 아픔에 대해 이어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주 작은 자본에 취해 휘청이는 만주의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 늘 여전히 <예비군> 정신으로 무장한 우리 관광객들이 있었다. 노래방과 한번 무장해제하고 싶어하는 군인정신이 잠복근무 중인 '우리'들이 있었다. 수백만이 죽어가고, 홍수, 비행선 아래로 잠깐 본 하늘 밑의 북녘은 민둥산 그대로 인채. 나무와 숲은 없는......
4. 머리는 아파하지만, 머리는 아직 <이물감>의 경계를 허물어 가서 아파오기 시작하지만, 몸은 아직 경계를 굳건히 하고 있다. 혹 그 일들에 관여하거나 할 수밖에 없다면, 아직도 남은 사대의 마음들은 불쑥 몸으로 밀어낼 것이다. 그리고 머리에 속삭일 것이다. 아직 아파할 때가 아니라구...
5. 사실 많이 헛갈린다. 윤샘의 <성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관점 - 이것만은 접어두고 나머지 것은 음미하기로 한다. 평소의 고민에 진도가 나가는 덧셈은 받아들이기고 하고, 사고의 발화지점은 품기로 한다. 어쩌면 타자를 그려내고 가두고, 상정해버리는 것 만큼...쭉쭉 생각을 밀고 나가다보면, 그 자체에 물음표가 생기기도 한다. 어쩌면 '타자'는 없어야하는지도... ...
6. <아픔>을 아픔으로 그려내지 못하는 언론은 시셋말로 우리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이어지는 아픔을 연결시키지 못하게 하는 언론은, 지속적으로 타자를 만들고 그려낸다. 그래서 우리들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로 찟긴다. 아픔에 대한 감수성이 그렇게 애절한데도, 자본을 이식받은 그들은 모른다. 그래서 늘 '우리'는 더 불감증인지도 모른다.
7. 황구라란 소설가를 중진, 가벼운 신진보다 좋아하는 이유는, 시대를, 마음을 앞서가는 그의 능력때문이거나, 특출난 감수성때문인지도 모른다. 단 소설가로서... ...그 만한 후배들이 나올까~ 의심스럽기도 하다.
8. 무더운 여름, 마음이 더 아프다. 품어야될 아픔들이 더 많다는 것은 외롭다. 찌는 폭염, 소나기라도 매미울음처럼 많이 내렸으면 좋겠다. 진초록 목련잎에 장대비 부딪는 소리가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