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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연개소문전
김용만 지음 / 바다출판사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먼저 이 책을 내느라 그동안 수고하신 김용만 선생님께 깊은 감사와 함께 수고의 말씀을 드린다. 주인장이 그동안 부대에 있으면서 가장 기다렸던 것이 바로 이 책의 출판이었다. 주인장이 군대에 가기 전부터 선생님은 오래도록 꿔왔던 꿈, 즉 연개소문이라는 영웅(적어도 주인장은 그렇게 생각한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본격적으로 전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고 또한 그것은 주인장을 비롯한 고구려史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바램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주인장이 휴가를 나오자마자 인터넷을 뒤져 이 책의 출판을 확인하고 바로 구입한 것이 이상할리 없을 것이다.

먼저 이 책을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얼핏 보고 이 책을 단순한 인물 평전으로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나온 인물 평전이라면 이도학 선생님이 쓴 '백제장군 흑치상지 평전' 이 있을 것이다. 자료가 극히 없는 상태에서 그 정도의 인물 평전을 쓴 것만도 대단한 일일 것이나 이 연개소문전은 그와는 약간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은 단순한 인물 평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시대史를 조명하는데 집중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인장 역시 이 제목을 보고 어떤 내용일까 하는 막연한 기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자료가 극히 없는 상태에서, 중국측에 존재하는 극히 변질되어 있는 사료들, 그 안에서 과연 연개소문이라는 인간을 얼만큼이나 현실 세계로 끌어내 대중들에게 인식시켜 줬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있었다. 연개소문이 태어나기 이전의 고구려부터 태어났을 무렵의 고구려, 연개소문이 살아 숨쉬고 정권을 잡고 활동하던 고구려와 동시대의 당을 비롯한 덩대 천하가 이 안에서 모두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연개소문의 50여년 인생(저자는 연개소문의 사망년월을 663년 10월로 보고 있다)을 통해 본 당대 7세기의 아시아 사회가 바로 이 책이 알리고자 하는 내용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반세기동안 고구려는 부흥과 좌절, 멸망에 이르는 여러가지 사회적 변환을 거치게 되며 700년이 넘게 계속되어 온 동북아시아의 유일한 패권자(覇權者)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과연 이 반세기동안 고구려에서 일어난 사실들과 당대 최고 집권자였던 연개소문 사이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으며 또한 어떤 사실들이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것과 달랐던 것일까? 이 책은 그에 대한 대답을 지금 우리에게 해 주고 있는 것이다.

주인장이 이 책을 그렇게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또 눈여겨 본 것은 바로 '고-당 문명대전' 에 대한 재평가 때문이다. 고구려는 이미 영양태왕때 수(隨)라고 하는 엄청난 괴물을 연거푸 쓰러뜨리면서 700여년 대국의 위엄을 지켰다. 아직까지 동북아시아의 지존은 고구려였으며 초원에서도, 중원 대륙에서도 그런 고구려의 지존의 자리를 넘볼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하지만 수 이후 당(唐)이라는 존재가 두각을 드러내면서 고구려의 지존의 자리는 끊임없는 도전에 직면하게 되고 곧 그 위엄은 흔들리게 된 것이다. 이 책은 그 고구려와 당과의, 천하를 두고 결전을 벌인 당대 시대를 조명하고 있다.

먼저 눈에 띄는 내용을 꼽으라면 천리장성(千里長城)에 대한 기존의 해석과 전혀 다른 저자의 해석이 있겠다. 장성이라는 표현에 발목이 묶여 다채로운 해석이 불가능했던 기존의 견해와 달리 저자는 천리장성이란 본성(本城)과 중·소성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방어용 네트워크(Network)였던 거지, 만리장성과 같은 성격의 경계선이 아님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는 뒤에 나오겠지만 신성과 요동성, 건안성 등 앞으로 벌어질 고-당 문명대전에서 고구려의 서부 방어 진지들이 어떻게 적의 침입을 막아냈는지 얘기해 줄 중요한 전제조건이기에 저자는 천리장성에 대한 얘기를 서두에 이미 꺼내놓은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저자는 고-당 문명대전이 단순히 천하를 발아래 두고자 하는 당 태종 이세민의 야욕에 불탄 단순한 당의 침략과 고구려의 방어, 이런 구도로 이뤄진 것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다. 고구려는 당시 이미 만리장성의 북쪽과 초원과의 경계라 할수 있는 난하 상류 일대 동쪽을 지배하고 있던 동북아시아의 패자였었다. 그런 고구려가 단순히 당이라고 하는 신흥 대국의 침입이 있을때까지 묵과하고 있다가 수세적인 입장에만 놓였을까?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조선상고사나 환단고기가 말하는 연개소문의 중원대륙 정벌은 100% 거짓이란 말인가? 저자는 이에 대해서 부인도, 긍정도 하지 않는다. 기준 잣대가 될만한 사료가 없는 지금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리라.

제 1차 고-당 문명대전에서의 안시성 전투에 얽힌 미스테리는 주필산 전투에 대한 재해석으로 비로소 의문이 풀리며 앞서 말한 신성과 건안성, 즉 천리장성이라고 불리는 요동 방어 시스템의 놀라운 효과는 수십만 당군을 한줌 이슬로 날려버리며 통쾌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대를 이어 벌어진 제 2차 고-당 문명대전에서의 당측의 변칙 전술과 고구려측의 끈질긴 임전무퇴 정신에 대한 내용은 읽는 이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까지 하는 것이다.

저 멀리 사마르칸트의 강국(康國)에까지 사신을 보내 당을 좌우에서 협공하려고 했던 고구려, 그리고 당을 압박하며 일인천하일통의 과대팽창야욕을 억제하려 했던 설연타, 철륵과의 연합 전선을 펼친 고구려, 허무하게 무너진 백제의 부흥을 도우며 당과 신라 양측을 상대하며 꿋꿋히 버티던 고구려, 이렇듯이 이 책은 당대 아시아 전체에 걸쳐 외교권을 형성하며 천하를 경영한 고구려에 대해서 유감없이 그 실체를 밝혀주고 있다.

이렇게 박진감 넘치는 내용이 전개되는 중간중간 저자는 기존에 잘못 알려져 있고, 잘못 연구되고 있는 사실들에 대해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은 역사 소설이 아니다. 기존에 나온, 연개소문이나 고구려에 대한 단순한 역사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이 책은 단순히 헛된 망상이나 거짓을 실을 수 없는 것이다. 아울러 역사에 근접한 사실을 기록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아무리 이 책이 읽기 쉽고 이야기 형식으로 내용을 전개한다고 해도 그 담긴 내용들은 결코 가벼운 의미의 내용들이 아님을 인식해야만 한다. 저자는 7세기의 아시아를 새롭게 재해석했다. 막연하게 흐린 역사가 이 책에서만큼은 저자의 의도대로 뚜렷한 선을 그은 것이다.

이 책을 2번 읽어보고, 또 3번째 읽어본 후에 이렇게 서평을 쓰고 있는 주인장은 이 책이 대단히 잘 쓰여진, 또한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영류태왕에 대한 평가가 주인장이 기존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부정적으로 된 면이나 백제의 멸망에 대한 뭔가 조금 모자란 듯한 서술, 연개소문 당사자에 대한 평가 부족 등이 아쉽다 할 수 있겠다. 연개소문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7세기 아시아史를 투영시킨 점은 돋보였지만 정작 그러다보니 그 매개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또한 주인장 같은 사람은 역사책을 볼때 쉽고 이해하기 쉬운 역사책을 원하기도 하지만 풍부한 자료와 다양한 주석이 담긴 역사책을 원하기도 한다. 물론 책을 쓰고 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에 여기에 적는 내용은 주인장의 어리석은 푸념 정도로만 들으면 될 것이다. 주인장은 연개소문과 7세기 고구려를 엮어내는 이 책이 조금 더 많은 사실들을 책에 담아 다소 지루하고 따분하더라도 가능한 모든 것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램도 한번 해 본다. 그 말은 곧 이 책이 단순한 역사 마니아들만 보는 책이 아닌, 일반 교양서로도 충분하다는 말이 되겠다.

뛰어난 전략가이자 영웅이었던 연개소문은 그렇다고 일국의 지도자로서도 성공한 케이스는 아니었다.

이런 연개소문을 저자는 그동안 그렇게 표현하려고 갈망했었던 모양이다.

고구려의 문명대국으로서의 존재 가치에 대해 오래도록 책을 내고 연구하며 글을 써온 저자의 생각이 이 책을 통해 연개소문이라는 인물을 대표해 표출된 것이 아닐까 하며 이만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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