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를 찾아서 - 환인.집안.심양.단동.고구려 천리장성.수도 방어성
동북아역사재단 엮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0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한 주간 논문 막바지 작업을 끝내고 오랜만에 리뷰를 쓰는 것 같다.

이 책은 최근에 구입한 고구려 관련 서적인데(요즘에는 고구려 관련해서 어린이용 책들은 봇물 터지듯이 나오는데, 전공서적이나 교양서적은 딱히 눈에 띄지 않는 것 같다. 논문이야 계속 나온다한들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기는 어렵고 말이다), 딱히 책을 읽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참고할만한 것이 없나~하는 마음에 구입한 것이다. 이렇게 화려한 칼라사진과 간략한 글 몇 줄이 들어가 있는 답사기(?) 같은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많이 갖고 있지도 않고(전선영의 『천리장성에 올라 고구려를 꿈꾼다』도 있지만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잘 구입하지도 않는데 고구려 답사를 갈 때 참고할만한 책이라는 누군가의 추천을 받아 구입하게 된 것이다. 뭐 내용면에서는 역시나 딱히 새롭게 볼만한 부분이 없었다.

아! 그나저나 왜 이 책이 필요하게 됐는지를 얘기 안 한 것 같다. 이번에 필자가 몸담고 있는 연구소에서 5년 프로젝트로 중국 답사를 가게 됐는데, 그에 따른 답사코스를 체크하고, 답사자료집(이후 책으로 발간할 예정임)을 작성하기 위한 가벼운 정보를 얻을 수 없나 해서 이 책을 추천받아 사게 되었다. 매년 2차례씩(아마 봄과 가을쯤) 답사를 나가야 해서 거의 1년 내내 자료집을 만들고, 답사 후 자료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텐데 벌써부터 걱정이긴 하다. 암튼 필자도 다른 책들을 보고 대강 답사코스를 작성한 뒤에 이 책을 받아봤기 때문에 일단 겹치는 부분도 많이 있었고, 참고가 된 부분도 많이 있었다.

이 책은 기존에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나온 『고구려 문명기행』과 『高句麗城 사진자료집-遼寧省 · 吉林省 東部』을 저본으로 삼아 뺄 것은 빼고, 더할 것은 더해서 가볍게 만든 책이다. 목차는 역사적 중요도에 따라 먼저 1부에서는 환인과 집안에 대해 소개하고, 뒤이어 심양과 단동을 소개하고 있으며, 2부에서는 천리장성 루트와 고구려 수도 방위성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뭐 환인-집안이야 고구려 초기 중심지인데다가 중국에서도 꽤 공을 들여 개발해놨기 때문에 한번쯤 꼭 가봐야 하는 거고, 심양과 단동은 한국에서 비행기타면 내리는 공항 둘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집어넣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즉, 1부의 내용은 일반적으로 중국 경내의 고구려 유적 답사를 갈 때 갈 수 있는 코스와 지역들을 소개한 내용들이 많았다. 이 책에서는 환인 지역에서 볼만한 것으로 오녀산성, 오녀산 박물관, 상고성자 무덤떼(하고성자 성터) 등을 소개하고 있고 더불어 미창구 장군묘까지 소개하고 있었다. 미창구 장군묘는 그다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고분은 아닌데, 필자도 예전에 보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내부에 연화문이 빼곡히 그려진 벽화고분으로서 장천 2호분에서 확인되는 ‘王’자형 도안으로 멋을 부려놔서 독특했었다. 아마 왕족의 고분으로 판단되는데, 책에서는 신대왕의 장남 발기가 반역을 꾀하고 실패한 뒤 그 후손들이 이 곳에 살면서 남긴 것이라는 설을 소개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발기의 반란 이후 그 후손들이 이 정도 규모와 이러한 벽화를 남길만한 勢를 유지했을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남도와 북도를 가볍게 소개하고 있는데, 태자성만 달랑 소개하고 있어서 뭐 큰 의미는 없었다.

집안은 2일 코스로 소개하고 있었는데, 성곽보다는 고분에 많이 치중한 것 같았다. 기본적인 코스는 집안 박물관, 국내성, 환도산성, 산성하 무덤떼, 오회분 5호묘, 태왕릉, 광개토태왕릉비, 장군총, 우산하 무덤떼, 국동대혈, 모두루총, 칠성산 무덤떼, 마선 무덤떼 등이다. 개인적으로 이걸 제대로 살펴보려면 2일 갖고는 좀 무리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일단 위에서 소개한 산성하 무덤떼, 우산하 무덤떼, 칠성산 무덤떼, 마선 무덤떼 등은 거리상으로도 상당히 넓게 분포해 있는데다가 그 안에서 봐야하는 적석총이 한 두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도 2008년 여름에 6박 7일 코스로 중국에서 ‘고구려 왕릉’으로 비정한 고분 전부를 보고 온 적이 있는데, 2일만으로 이것들을 다 소화하려니 정말 빡쎘던 기억이 난다. 당시를 회상해보면 일부는 답사 도중 GG치고 버스에서 쉬기도 했고, 단순히 내려서 사진 몇 장만 찍고, 휙~ 다음 장소로 이동한 적도 꽤 많았다(경주에 가서 짧은 기간 내에 시내에 있는 고분들을 보게 되면 아마 이렇게 이동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지역을 소개해놓은 것 치고는 내용이 부실한 부분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108쪽에 백암산성 사진과 함께 소개한 사진은 왜 여기에 들어가 있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심양 고궁 같기는 한데...뒷부분에 들어가야 맞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심양이나 단둥은 앞서 말했지만, 비행기를 타고 환인-집안 지역을 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다. 직항이 없으므로. 그래서 환인-집안 지역을 답사할 때면 왕복 이틀은 꼭 여기에서 잡아먹는데, 다행이 고구려 유적도 좀 있어서 적적하게 보내지만은 않는다. 먼저 심양에는 요령성 박물관이 있는데, 규모도 클 뿐더러 중국 동북방의 고고자료들을 많이 전시하고 있어서 정말 한번쯤 꼭 가볼만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갔을 때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 동안 홍산유적과 고구려-삼연 문화만 보고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가슴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또 하나 안 좋은 점(?)이라면 요령성 박물관에는 통합적으로 소개한 박물관 전시도록이 없고, 각 전시실마다, 각 기획전시마다 도록이 따로 있어서 주머니 사정을 고민해야 하는 연구자들에게는 별로 친절하지 못 했던 기억도 났다. 그리고 책에서는 심양 고궁과 신락 유적 박물관, 서탑 거리 등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책의 주제와는 좀 맞지 않아서(이 책이 단순히 심양 지역 관광지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지 않는가) NG였다. 공간 메우려는 蛇足같다고나 할까? 백암산성이야 워낙 많이 알려진 것이므로 Pass하고.

단동은 박작성(호산산성)과 애하첨고성, 오골성(봉황산성) 등이 위치하고 있는데, 요동반도의 대흑산성(비사성), 위패산성(오고산성), 성산산성, 낭랑산성, 득리사산성(용담산성) 등으로 구축된 해안 방어선(2부에서 언급됨)과 연장선상에서 압록강 하구를 방어하는 성들이라 할 수 있다. 필자도 한 번도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여기에 소개된 대부분의 성들이 현재 출입 불가 지역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 답사를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긴 한다. 암튼 각 성들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잘 담고 있어서 괜찮았던 것 같다.

2부에서는 먼저 고구려 천리장성 루트를 따라 여러 성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역사상 안시성, 건안성, 요동성, 신성 등으로 기록되어 있는 성들을 비롯해 길림 합달령산맥과 천산산맥 능선 상에 위치한 북동-남서 방향의 성들을 주로 소개하고 있었다. 예전에도 느낀 거지만, 이 일대의 성들은 높은 산지에 위치하는 것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요동성은 뭐 이제 시가지와 완전히 겹쳐져서 흔적조차 찾을 수 없고, 국내성처럼 성벽 쪼가리도 찾아볼 수 없다), 상당수가 보존이 이뤄지지 않은데다가 경작지로 훼손된 지역도 많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지역에는 볼만한 성들이 수십 곳이기 때문에 한번에 다 보겠다는 생각은 접어야 한다. 책에서도 이들 지역을 소개하면서 모두를 답사할 수는 없으니, 주요 성 몇 곳 위주로 답사하기를 권하고 있었다.

뒤이어 소개하는 나통산성, 흑구산성, 구노성, 오룡산성, 고검지산성 등은 환인-집안 지역을 環形으로 방어하는 성곽들인데, 고구려 초기부터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오녀산성, 국내성, 환도산성처럼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서 일반인들이 답사를 자주 가지도 않는다. 역시 천리장성 루트에 있는 성들처럼 훼손된 부분이 상당히 많았으며, 이번에 답사를 가게 되면 어느 정도나 남아 있을지 걱정이기도 하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일반인들의 고구려 유적 답사를 위해 내놓은 책이라고는 하지만 뚜렷하게 노력한 흔적(?)이 보이지는 않는다. 즉, 중국에 답사를 가게 되면 흔히 그 곳에서 답사 가이드 팀이 짜주는 일반적인 일정에 충실히 따른 면모가 보였다. 물론 전문가도 아닌 일반인들이 산간 벽지의 산성이나 고분들을 찾아가지는 않겠지만, 너무 간단하게 소개한 면이 없지 않나 싶다. 아까도 말했지만 명색이 고구려 유적 답사가이드를 표방한 책이면서, 오히려 관광 소개서 정도밖에 내용을 담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필자 개인적으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혹여나 아직 중국 답사를 가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기본적인 자료를 제공하는 책으로 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서 이 책에 수록된 사진의 상당수를 제공받았는데,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서 무슨 연유가 있어 이런 사진들을 많이 갖고 있는지가 좀 의문이었다. 고구려 관련 전공자가 많은 것도 아니고, 고구려 연구기관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암튼...소소한 생각을 하면서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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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문명 - 석기시대의 비밀
리처드 러글리 지음 / 마루(금호문화)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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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랜만에 서평을 쓰는데다가, 오랜만에 전공서적에 대한 서평을 쓴다.

이번 추석 때 책 3권을 읽자고 목표했는데, 이제 겨우 1권 마무리했다. 남은 이틀 동안 2권을 읽을 수 있으려나~모르겠지만 일단 다 읽은 놈부터 처분하겠다! 이 책의 제목을 한번 잘 보자. 필자는 처음에 이 책을 딱 보고 ‘아~이거 또 공상에 가까운 얘기를 쏟아 붓는구나~미스테리한 발견물들에 대한 이야기 아니면 초거대문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인가보다~’라고 느꼈다. 그런데 일단 책장을 넘겨보니 일단 목차부터 그런 내용이 아니었고, 맨 처음의 ‘서문’과 맨 뒤의 ‘후기’를 읽어보니 필자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었다. 바로 구입을 결정해서 집에 와서 읽기 시작한지는 꽤 됐는데, 그동안 논문이다, 일이다 중간 중간 읽다 말다 하다가 방금 겨우 다 읽고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굉장히 참신하고 독창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 중에는 필자가 알고 있는 내용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모르는 내용이었으며(필자의 전공이 역사고고학이다 보니 더 잘 모를 수도 있겠다), 읽으면서 내내 멍~한 기분이 들 정도로 쇼킹한 내용도 많았다. 어쨌든, 인류 문명에 대해서는 예전에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읽으면서 완전히 맛이 갈 정도로 감탄했었던 기억이 났는데(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책은 최근에 구입한 『문명의 붕괴』까지 전부 다 읽고 한 번에 서평을 쓰려고 아껴두는 중! 추후 공개할 생각이다), 이 책을 보면서도 역시 그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당연히 올해 읽었던 고고학 전공서적 중에서 Top으로 꼽고 싶을 정도다.

일단 뭐부터 쓸까? 생각해보니 내용이 하나같이 전문적이고,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인지라 먼저 목차를 소개하고 각 챕터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예스24’, ‘알라딘’, ‘교보문고’ 등 필자가 애용하는 3개 인터넷서점에 들어가 봤더니 책 표지가 없는 곳도 있었으며, 모두 다 목차나 간략한 내용 소개가 없어서 독자들이 이 책에 대해 정보를 얻을만한 곳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이 책에 대한 리뷰는 예스24에 1개, 알라딘에 1개뿐이어서(평점은 나쁘지 않은 듯~별 4개 정도) 독자들이 이 책에 알 수 있는 루트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출판사의 홍보 정도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너무 알려지지 않으니 점점 인기도 시들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예스24에서는 절판까지 됐다).

암튼 목차부터 다뤄보자. 서문과 후기를 제외하고 총 19장인데, 앞서 언급했지만 서문과 후기만 읽어도 이 책의 내용이 잘 요약되어 있기 때문에 혹시 이 책을 읽을까 말까 고민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서문이나 후기를 먼저 보고 결정하셔도 괜찮을 듯 싶다.


1장 석기시대

2장 조어(祖語)

3장 새로운 로제타석

4장 고대 유럽의 기호 : 문자인가, 선문자(先文字)인가

5장 구석기시대 글쓰기의 기원

6장 원시과학

7장 족문(足紋)에서 지문(指紋)까지

8장 지금은 수술 중

9장 석기시대의 외과수술

10장 불을 이용한 제조 기술

11장 다시 맷돌로

12장 석기시대의 광업

13장 오커, 대지의 피

14장 비너스상 : 성적 대상인가, 성의 상징인가?

15장 종유석의 노래

16장 최초의 화석 사냥꾼들

17장 빌징슬레벤의 네 개의 뼈

18장 성지의 조각상

19장 새벽의 돌인가, 위조의 새벽인가?

자아~목차 한번 보시라. 무슨 생각이 드는가?? 필자는 처음에 이 목차를 보고 ‘오잉!! 뭐야? 석기시대를 논하는데 이 무슨 어울리지 않는 목차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이 책의 저자는 석기시대를 논하며서 지금 ‘文明’이라는 단어를 거침없이 사용한 것도 모자라, 언어와 문자, 과학과 예술, 의술, 제조업과 광업, 음악, 신앙 등을 거론하고 있는 것이었다. 저자는 런던대학에서 사회 인류학과 종교적 의식연구로 학위를 받고, 옥스퍼드대학에서 ‘고대에 사용된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식물’에 대해 연구했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50대의 왕성한 고고학자로 활동하고 있고 말이다. 어떻게 보면 한국 고고학과는 크게 어울리지 않는 주제이기도 하며, 아직 이런 연구를 수행할 정도의 수준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감히~). 그래도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고 싶은 욕구가 마구 솟아났다. ‘아아~침착, 침착!’ 그렇게 심호흡하고 책장을 한 장씩 넘겼다.

저자는 ‘신석기혁명’ 같은 용어를 부정한다(제목에서부터 드러나지 않는가). 이는 필자 또한 마찬가지다. 인류가 어느 한순간 ‘펑!’ 하고 잘나진다는 것은 난센스라고 생각한다(마치 고대 한국사회가 불교 도입과 공인으로 갑자기 부족국가에서 고대국가로 발돋움했다고 보는 견해와 같다고나 할까? 얼마전 개봉한 <에일리언 vs 프레데터>라는 영화를 보니 프레데터가 자신들의 유희(?)와 성인식(?)을 위해, 인류에게 문명을 전수해주고, 그들로 하여금 에일리언을 기르게 한 뒤 종종 찾아온다는 설정이 나오던데 정말 그렇다면 또 모를까...). 위대한 고든 차일드 선생님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이런 식으로 인류 문명을 정의해버리면 우리는 미싱링크(Missing link)가 발견돼도 무시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저자 또한 그런 우려를 범하지 않기 위해 1장에서 석기시대에 대한 개괄을 좍 설명한다. 흔해빠진 기존의 설명과는 다르다. 뭐 어떤 석기를 쓰고, 동굴에서 살고, 뭘 먹고 살았고...이런 얘기는 없다. 다만, 기존에 석기시대를 연구하는데 있어 이슈가 되었던 유적들과 논쟁이 된 문제들을 나열함으로써 독자들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래도 석기시대에서 혁명적인 어떤 요소가 등장해 문명이 생겼다고 할 텐가?’라고 말이다. 이집트 문명의 기원이 되는 선문명, 우수한 석기시대의 문화를 설명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차탈휘익크(여기에서는 카탈후이우크로 표기되어 있다) 유적, 지중해 몰타섬과 고조섬의 석기시대 신전들, 일본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 등등. 아주 흥미로운 얘기들로 1장을 장식하고 있다.

그렇게 2장으로 넘어가면 여기서부터 5장까지는 주로 언어에 대한 부분이다. 흔히 문명의 척도로써 꼽는 것이 ‘문자와 언어’인데, 저자는 이미 구석기시대 때부터 이런 문화가 적지 않게 보이고 있다고 주장한다(뭐 저자가 주장한다기보다는 이미 기존에 주장된 것을 정리한 것이지만 암튼). 2장에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어군과 어족의 뿌리가 상당히 이른 시기까지 올라간다는 내용이 主인데, 다소 지루하긴 하지만 잘 읽고 넘어가보자(필자도 딱히 할 말이 없다. -.-;).

개인적으로 3장의 내용을 재밌게 봤는데, 여기에서 쇼킹한 내용이 드뎌 나온다. 바로 수메르와 같은 중동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다고 알려진 문자 활동의 기원이 더 이른 시기의 주변 지역에서 이미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총, 균, 쇠』를 보면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지정학적인 조건, 활용할 수 있는 동 · 식물의 풍부함, 농업과 군집을 가능하게 한 자연조건 등으로 인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가장 먼저 문명이 발생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생겨난 문명에서는 문자와 산수, 제사와 신관, 정치와 전쟁 등이 생겨났고, 중동의 문명은 외계인이 전수해 준 것이 아니라 그렇게 ‘당연하게’ 생겨난 것이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에 반대한다. 드니즈 슈만-베세라는 근동에서 초기 신석기시대부터 효과적인 회계 방식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방대한 양의 증거를 확보하였는데, 이는 3,500~3,100년 전에 이런 문자나 숫자가 쓰이기 시작했다는 기존 견해보다 4,000~5,000년이나 이른 것이었다. 그렇게 놀라움을 감출 새도 없이 책은 빠르게 4장으로 넘어간다.

여기에서 저자는 한술 더 뜬다. 4장에서 저자가 말하는 것은 고대 유럽에서 문자 발생의 요소들이 구석기시대때 이미 엿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이를 두고 문자라고 하기에는 해석의 여지가 많다. 또한 ‘맹아기의 문자’와 ‘진정한 문자’를 구분할 필요도 있고 말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고대 유럽에서 확인된 서판이나 유물들이 확실히 어떤 기호체계를 이루고,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것들의 연대가 6,000~7,000년 전으로 추정된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기존 상식의 벽에 도전해야만 한다. 중동에서 생겨난 인류 최초의 문명적 요소 중 하나인 문자 활동은 그때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미개하고 인류가 살기 어려웠다고 여긴 고대 유럽에서 생겨난 원시적인 문자 활동에서 파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주장은 계속 이어져 5장에서 저자는 후기 구석기시대, 더 이르면 중기 구석기시대의 네안데르탈인들이 이미 어떤 信標와 같은 상징물을 인지했으며, 우주론적인 상징(형이상학적인 추상의 범위?)까지도 인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직 해석에 있어 초보적인 연구단계지만, 이 분야에 대한 발전 가능성은 무한하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뭐 필자도 문명과 문자가 꼭 양립해야만 하며, 상호 필요충분조건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거대한 영토와 체계적인 조직을 일궈낸 고대 잉카 문명에서도 철기나 기병, 수레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문자나 숫자 체계도 다른 지역에 비하면 허술했지만 그들은 눈부신 문명을 이뤄냈다. 이는 한자 문화권에 속한 고대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양서』와 같은 중국정사 조선전을 보면 신라는 6세기에도 문자 대신에 신표를 사용했다고 하지 않는가. 전 세계에서 문자를 가진 문명이나 집단이 오히려 적다는 것을 보면 이를 두고 문명의 보편적인 요소라고 말하는 것이 민망할 정도인 셈이다. 그런데도 그 상한을 중기 구석기시대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에는 쉽사리 공감하기가 힘들었다. 어쨌든, 필자가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인식의 전환을 꾀할 수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자아! 이제 6장이다. 한 1/3 정도 지나왔는데, 여기에서 저자는 또 큰소리를 친다. ‘과학’이라...과학이라...석기시대때 원시과학이라. 과학이란 말과 석기시대와 잘 어울리는가? 암튼, 책장을 또 넘겨보자. 먼저 저자는 손도끼의 규격화를 언급하고 있다(144쪽의 그림 20을 보면 이해가 확 될 것이다). 어느 정도의 추상적 사고 과정을 통해 손도끼가 대칭성을 갖고, 길이와 너비 사이에 일정한 규격성을 갖게끔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의 도구들이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아마 오랜 경험에 의한 가장 쓰기 편한, 가장 그 기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형태로 제작되어 갔을 것이다), 하나의 비례 표준에 맞춰져 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멋지지 않은가? 국내에서 손도끼에 대한 이런 연구 성과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놀라웠다. 그 다음에 나온 네안데르탈인들의 매장풍습에 스며든 천문인식, 여러 소수민족의 숫자를 세는 민족지적 사례, 벨기에에서 발견된 빗금이 새겨진 뼛조각(이걸 두고 숫자를 의미한다고 보는 데에는 필자도 동의하지만 어떤 숫자인지에 대해서는 책에 나온 것처럼 이견이 많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헝가리에서 출토된 구석기시대 태음력을 표시했을 것으로 주장되는 석기 등도 충분히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구석기시대 冊曆에 대한 주장도 상당히 흥미로웠는데, 역시나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스톤헨지와 같은 거대한 석조건축물에 대해 하나하나 의문이 풀리고 있는 지금 언제 기존 상식이 뒤집어질지는 모를 일이라고 생각한다.

7장은 뭐 민족지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고대 사냥꾼으로서 인류가 얼마나 뛰어났는지 등을 언급하고 있었다. 어떤 예술적인 부분을 다룰 줄 알았는데 필자의 예상을 빗나갔고, 뭐 상식적인 내용이므로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8장과 9장은 의술에 대한 부분인데, 8장에서는 먼저 유럽인들이 묘사한 소수민족(미개하다고 알려진)들의 민족지적 사례를 소개하고 있었다. ‘요즘도 소수민족은 현대적인 의술이 아니라 그들만의 자생적인 의술을 시도하고 있고, 그 성공률은 상당히 높다.’라는 것을 알리기 위함일 것이다. 그리고 9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석기시대 의술의 흔적들을 짚어내고 있었다. 먼저 천공술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기존에도 많이 알려진 내용이지만 조금 더 언급하겠다. 이미 석기시대 때부터 뇌 수술은 실시되었는데, 오늘날도 상당히 어렵다고 여겨지는만큼 당시 의학 수준을 짐작하는 대표적인 수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개골은 쪼아내고, 그 안의 상처를 처리하는 방법은 다양한데, 이상하게도 이러한 천공술이 유럽에서는 석기시대 이후로 오히려 퇴색하여 중세에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석기시대가 더 잘났으며 그 이후에는 퇴색했다, 왜 그럴까? 이 책의 주요 논지 중 하나이다! 기억하기를!). 이러한 천공술은 치아 수술에도 적용되었는데, 그 역시 놀랄 정도로 정교했다고 한다. 석기시대때 이미 의사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뛰어난(예전에 <로마> 시즌 1을 보면서 폴로의 머리에 박힌 철편을 뽑아내기 위해 천공술을 실시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상당히 묘사를 잘 해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보다 수천 년 이전에도 아마 그러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10장은 어떻게 보면 기존에 잘 언급이 안 된 부분일지도 모른다. 인류의 발달과정에서 불이라고 하면 구석기시대때 처음으로 불을 쓰기 시작했다, 라고 언급하고 나서 청동기와 철기시대때 금속가공을 위해 불을 잘 다루기 시작했다~라고 언급하는 게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중간의 구석기시대와 불은 크게 연관이 없다고 여기는 경향이 큰 것이 사실이다(오히려 석기제작과 연관되어 물의 사용에 대해서는 많이 언급하며 신석기시대때 토기 제작을 언급해야 겨우 불 얘기를 꺼낸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다. 석기 제작에 사용된 부싯돌 등의 재료에 열처리를 하는 얘기가 등장하는 것이다. 열처리를 통해 처트(chert 혹은 角巖 : 가장 잘 알려진 부싯돌 재료)를 좀 더 쉽게 박편으로 만들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석기 가공이 보다 효율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또한 체코 모라비아 지방의 돌니 베스토니체와 인근 유적에서는 2만 6,000년 된 토제품 6750점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500~800℃의 불에서 의도적으로 열충격을 통해 폭발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왜 그랬을까? 저자는 무당과 같은 일종의 심령술사가 일종의 사냥 의식곽 같은 제사를 위해 그랬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부싯돌에 대한 열처리나 이러한 토제품의 의도적인 열충격 등이 토기 제작, 금속 제작과 같은 실용적인 목적보다 수천 년 앞서서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즉, 필요에 의해, 기능을 위해, 어떤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기술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달한 것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단순히 제사와 유희, 어떤 의식적인 부분을 위해서도 기술은 발달할 수 있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오히려 훗날 토기를 제작해야겠다는 필요성이 생기자 후손들은 선조들이 다른 곳에 사용했던 방법을 차용했던 것 뿐이었다.

11장의 ‘맷돌’은 석기시대 도구에 대한 기존 상식의 한계를 상징한다. 흔히 맷돌은 여성이 쓰는 것으로서 농경을 통해 나온 곡물을 가공하는 것으로 이해하곤 한다. 하지만 이미 8만 년 전의 멧돌 잔해들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출토된 바 있다(당연히 이런 주장은 대체로 부인되고 있다). 남아공 플로리스배드 유적에서는 뭔가를 갈아 생긴 마모의 흔적이 남은 석기(4만 8,900년 전)가 확인되었고, 남아공 부시먼록셸터 유적에서는 4만 3,000년~4만 7,000년 전의 맷돌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호주 커디스프링스 유적에서도 3만년 된 맷돌이 확인되었다. 당시 이들 지역에서 농경이 있었을까? 더 놀라운 것은 맷돌질보다 절구질은 그보다도 이른 시기까지 올라간다는 사실이다. 그와 함께 활비비(불을 피울 때 쓰는 도구로 천공술에서도 사용된다)와 창을 더 멀리, 손쉽게 던질 수 있게 도와주는 투창기 등 저자는 다양한 도구들을 언급한다. 그러면서 말한다. 비단 돌로 만들어지지 않아 오늘날 다 썩어버린 수많은 도구들은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기보다 훨씬 이전부터 사용되었으며, 그러한 흔적들이 오늘날 확인되고 있다고 말이다. 도구를 통해 과거 석기시대 사람들의 정신세계까지 고찰하려고 한 저자의 노력이 엿보이는 챕터였다.

12장은 광업에 대한 부분인데, 오커(ocher : 철광석)라는 것을 여기에서 처음 알았다. 그리고 사슴뿔로 만든 채굴도구로 지하 수십 m 아래에서(유고슬라비아 루드나 글라바의 동광은 깊이가 20m가 넘는데, 유적은 최소한 7,000년이 넘었다) 석기시대인들이 오커를 캤다는 것 또한 말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선사시대 유럽에서의 채광기술을 조사한 결과, 석기시대 채광기술은 후기 청동기시대인 기원전 1,200년경이 되어야 겨우 비슷한 수준에 도달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앞에서도 나왔지만 천공술과 마찬가지로 채광기술 역시 중간에 공백기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3장 역시 오커에 대한 이야기인데, 앞서 언급했듯이 이건 철광석이다. 즉, 석기시대때 철광석을 사용하기 위해 채광을 했다는 소리가 된다. 물론 이걸로 철기를 만들지는 않았으며, 그들은 이 붉은 색을 이용해 바디 페인팅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쇼킹한 얘기를 하나 더 한다. 맷돌과 절굿공이가 흔히 농경의 새벽을 선포하듯 아주 후대에 만들어졌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은 곡물이 아닌 오커를 가공하기 위해 일찍부터 만들어져 사용되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안료를 만들기 위해서는 10장에서 나온 불을 이용한 열처리가 필요했고 말이다. 지금까지 주욱 봐왔던 내용들이 어느 정도 접점을 찾아 하나로 귀결되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석기시대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했구나~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14장은 우리가 흔히 아는 뚱뚱한 비너스상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손보기 교수가 언급이 되어 있어서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뷜렌도르프의 비너스(가장 널리 알려진)’ 이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성적 모티브를 가진 조각상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뭐 전체적인 내용이나 결론은 일반적인 것이다. 이러한 비너스상이 단순히 다산의 상징이나 성욕의 대상으로 이해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것은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가진 우주론적 의미의 상징이다. 또는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신앙에 대한 부분을 가리키는 것인지도 모른다...뭐 이 정도? 암튼 여기도 별로 어려움 없이 넘어갈 수 있는 챕터다.

그리고 드디어 15장! 이 책에서 가장 쇼킹했던 부분인데,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음악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자그마한 타악기 등을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거대한 동굴의 종유석을 그대로 악기로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내용이 여기에 나온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어떻게 저런 생각을 해서, 저런 연구까지 했을까 싶었다. 뭐 현대에 동굴 안에 식당을 꾸민다거나, 동굴 안을 개발해 관광이 가능하게끔 한다거나, 실제 파이프 오르간을 안에 들여놓아 웅장한 음색을 낸다는 기사를 본 적은 있다. 하지만 구석기시대때 동굴을 악기로 썼다니. 그저 충격일 뿐이었다.

16장은 생각의 전환을 조금 더 하게끔 하는 챕터였는데, 석기시대 사람들도 자기들보다 이른 시기의 문물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영국 노퍽에서는 조개화석이 박힌 손도끼가 발견되었는데, 조사자는 손도끼 제작자가 정 가운데에 부채꼴의 아름다운 조개화석을 돋보이게끔 손도끼를 만들었다고 자신한다. 또한 남아공 마카판스가트의 사람 얼굴 모양이 새겨진 자갈 역시, 그 신기한 모양에 석기시대 사람이 수집했다고 이해한다(왜냐하면 그 자갈에 찍힌 사람 얼굴 모양은 조사 결과, 인위적으로 새긴 것이 아니라고 판명됐으므로). 또한 네안데르탈인이 죽은 사람을 묻고 그 위에 꽃다발을 뒀다는 얘기는 이미 널리 알려진 것이니 넘어가려고 했는데, 뒷장에서 더 놀라운 얘기를 한다. 그것은 단순히 네안데르탈인의 미적 감각에 의한,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갖다놓았다는 것도 있지만 죽은 사람이 내세에 도움이 되라고 갖다놓은 약초일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미 천공술을 해내고, 훌륭한 사냥꾼이자 도살꾼이었던만큼 절개수설에 능했던 그들이므로 약초학에 대한 지식도 상당했을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아하~그럴 수도 있구나~’하고 절로 무릎을 쳤다. 단순히 애도의 의미가 아닌 내세에 대한 생각, 어떤 의도가 있는 행위였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17장은 16장 마지막 부분(약초학과 꽃에 대한 내용)과 연결되어 네안데르탈인의 곰 숭배 의식(기존에 알려져 있던 상식)이나 여러 의식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었으며 18장 역시 그러한 맥락으로 논지가 전개되고 있었다.

16장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매장의 복합체는 두 개의 상수(매장 구조물과 사람의 유골)과 두 개의 변수(분묘의 부장품과 관련 시설)로 이루어진 체계이다. 이런 복합체는 중기 구석기시대라는 먼 옛날에 등장했으며, 그때 이후 그 어떤 근본적으로 새로운 특징이나 설계도 발전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17장 말미에는 이런 얘기도 나온다. 인류 발달사에 대해 표준 모형과 누적 모형이 있다. 전자는 초기 미술로 증명되는 상징적 활동의 폭발과 인류 혁명이라고 묘사되는 것의 폭발적 출현을 의미하며, 후자는 상징적 행동의 기원을 전기 구석기시대나 중기 구석기시대에 두는 것인데, 시간이 오래 될수록 시간의 파괴력과 극적인 지질학적 · 기후학적 변화를 견딘 유물이 적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18장에는 다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

‘역사시대의 수렵 채집인이 때때로 농업적 생활양식을 채용하기를 내키지 않아 한 것이 현 상태를 유지하는 데 만족했기 때문인 것처럼,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일상성에 기초해서 계속 사용하지 않는 쪽을 선택할 능력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발전한 종류의 도구를 제작하기 시작한 뒤에 일어난 보다 단순한 석기 제작 기술로의 회귀는 필시 그런 석기가 가능하게 해줄 수 있는 변화 욕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단순히 그런 과감한 발명품들이 우연히 잊혀졌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19장에서 저자는 말한다. 지금 호모 에렉투스가 기존에 알려진 시기보다 더 이른 시점에 고향(아프리카)을 떠나 아시아나 유럽, 아메리카로 향했다는 증거가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 이런 것들을 기존 상식의 벽에 맞춰 모두 무시해야만 하는가~하고 말이다. 그러면서 말미에 재밌는 실험고고학적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일반적으로 구석기유적에서 육안으로 석기 및 박편과 자연적으로 깨진 돌을 구분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필자와 같은 비전공자는 당연하겠거니와, 전공자조차도 이건 어려운 일이다(하물며 신석기시대때 간석기가 아닌 더 이른 시기의 뗀석기라면).

그래서 실험을 했단다. 한번은 유적 주변에서 나는 규암 표본을 선택해서 200번 정도 찍는 작업과 400번 정도 절단하는 작업을 거친 후 마모흔적을 실제 석기와 비교하는 작업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결과를 쉽게 안 믿는다고 한다. 또한 어떤 이는 유적 주변의 경사면 바닥에서 2,000개의 자연적으로 생성된 돌멩이들을 조사한 결과, 유적에서 발견된 석기와 닮은 것이 하나도 없음을 밝혀내기도 했다. 또한 어떤 이는 12~15m 높이에서 규암 자갈 100개를 던져 깨뜨린 뒤 바로 그 박편을 수습해 실제 석기와 비교했다고도 한다. 그리고 인공 유물들로 보이는 박편화하고 파괴된 돌멩이들은 이것들과 다르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더 많은 석기를 상대로 실험을 하면 닮은 것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는 셰익스피어의 이름을 타자하는 유명한 원숭이만큼 희박한 가능성이라고 한다. ^^). 즉, 사실은 사실대로 믿자는 것이다.

최근 베레카트람에서 발견된 유물을 통해 미술이 최소한 25만 년 전에 시작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뼈에 일부러 모양을 새기는 것은 전기 구석기시대 때로 올라간다고도 한다. 하지만 선입견 때문에 부정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 연유로 이스라엘 하요님 동굴에서 나온 후기 구석기시대의 조각된 뼈는 ‘기계적으로!’ 인정하고, 똑같은 유적에서 나온 중기 구석기시대의 조각된 뼈는 ‘기계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라 한다. 중기 구석기시대의 뼈가 후기보다 더 광범위한 표시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찬가지로 타르타리아의 서판이 수메르 문자보다 늦은 시기라고 생각되었을 때에는 이를 문자 시스템의 하나로 인정하다가, 그것들이 수메르 문명보다 앞선 것이라고 밝혀지면서 기존 논점을 모두 폐기한 것도 해당될 것이다(마치 전통고고학을 비판하는 것 같은 느낌도 강하게 받았다! 저자가 개인적으로 아픈 기억이 있나? -.-;).

전반적으로 필자에게는 상당히 유익하고 재밌었으며, 도움이 많이 되는 책이었다. 한국 고고학계와 비교하면서 읽을만한 것도 많았고, 외국으로 나가 고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게 했다. 어쨌든, 필자에게는 상당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고마운 책이었다. 다만, 비전공자나 일반인들에게 이 책이 얼마나 다가갈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지금까지의 인기도와 서점 내에서의 홍보현황만 봐도 별로 인기가 없을 것 같다, 앞으로도). 하지만 고고학이나 인류 문명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다소 지루한 감이 있지만, 좀 참고 읽다보면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간에 도판이나 도면 등이 많이 없기도 하고, 글자체나 자간, 글 간격도 다소 눈을 피로하게 만드는 디자인이지만 이런 것들도 한번 이겨내 보시기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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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발해인 - 강인욱의 북방 역사 기행
강인욱 지음 / 주류성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얼마 전에 온라인 까페 회원분과 부여 및 옥저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분은 최근 부여와 옥저의 위치, 역사적 환경 등에 대해 기존 통설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여러 자료를 찾아 공부 중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필자 역시 몇몇 자료를 찾아 같이 공부해 보고, 여러 가지 정보도 주고받으면서 나름의 생각을 다시 정리하게 되었다. 그런데 부여야 예전에 공부하면서 정리했던 적이 있지만, 옥저에 대한 부분은 제대로 마음먹고 공부한 적이 없어서 생각보다 내가 한국 고대사에 대해 많이 모르는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그러던 차에 읽게 된 책이다.

저자인 강인욱 선생님은 필자의 학교와 연구소에 한동안 계셨기 때문에 친분이 깊은 사이다. 개인적으로 강인욱 선생님의 연구방법이나 접근법, 연구 분야 등은 필자 역시 관심이 많거나, 본받고 싶은 부분이 많다. 예전 학부 수업때 선생님이 얘기해 주시는 흉노 고고학과 같은 생소한 분야는 필자를 포함한 주변 학우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알려주는 것처럼 신선할 정도였다. 러시아어에 특히 능통하신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선생님은 러시아에서 학위를 받으셨는데, 최근에도 부경대 교수로 있으면서 매년 러시아에 발굴조사를 나가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결과가 결코 적지 않으니, 지금 선생님은 제한적이지만 행복한 생활을 하시는 것 같다. 이 책은 그러한 선생님의 북방역사기행을 에세이 형식으로 담아낸 책이다(필자가 개인적으로 국내에 나온 고고학 서적 중 손꼽는 것으로 『김병모의 고고학 여행』 1~2권이 있다. 이 역시 그와 비슷한 책이지만, 북방역사기행이라는 세부 테마로 꾸며진 점, 젊은 나이에 작성한 점이라는 면에서는 차이가 있겠다).

일단 제목이 눈길을 끈다. ‘춤추는 발해인’이라? 이 책의 첫 장에 등장하는 콕샤로프카 성지에서 출토된 무용수들이 새겨진 토기와 관련된 것이다. 마치 강강술래와 같은 모습인데, 이러한 발해의 춤을 ‘답추(踏鎚)’라고 한단다. 첫 장부터 흥미있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책의 구성은 저자 스스로 말학 있듯이 크게 발해, 간도와 연해주, 옥저 및 선사시대로 구분되어 있는데, Ⅰ부에서는 발해에 대해서(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자료, 특히 고고자료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Ⅱ부에서는 근대 이후 고려인과 러시아, 중국인의 군상을, Ⅲ부에서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옥저와 읍루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Ⅳ부에서는 구석기시대부터 기원전 4세기까지 선사시대 연해주와 연변 지역의 다양한 유적과 유물을 소개하고 있다. 미리 얘기하지만 전체적으로 책의 구성은 조금 미흡한 면이 없지 않나 싶다. 이 책이 에세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고고 · 역사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만큼 어떤 일관된 흐름에 맞춰 내용을 서술해야 하지 않나 싶다.

예를 들면, 이 책의 제목에서도 그렇고 발해가 강조되었다 하더라도 발해의 내용이 굳이 책 처음부터 나올 필요가 있을까 싶다. 차라리 시대적으로 구석기시대부터 기원전 4세기, 옥저 및 읍루, 발해, 이후 여진족과 만족의 삶을 서술하면서 자연스레 연해주 · 시베리아 지역의 근현대사를 언급하는 것은 어땠을까 싶다. 아니면 발해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시간적인 흐름대로 놓고 싶었다면, Ⅱ부의 내용을 차라리 제일 뒤로 빼서 에세이적인 파트만 한데 모아놨다는 느낌을 줘도 좋았을 것 같고. 그도 아니면 발해에 대해서만 따로 파트를 나눠 설명하고, 나머지 장들은 시간적인 순서 혹은 특정 주제로 묶어 차라리 재구성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이런 것들을 고민하다가 지금의 목차가 나왔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지만, 암튼 이만하고 넘어가자.

서평을 전개해 나가는데 있어 이 책의 내용을 일일이 서술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고(워낙 다양한 부분을 다루고 있다. 그런 면에서 『김병모의 고고학 여행』이 <소년탐정 김정일>을 보는 느낌이라면, 이 책은 <명탐정 코난>을 보는 듯 한 느낌이 든다. 뭐 둘다 필자가 좋아하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몇몇 인상깊은 부분을 언급하고 그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적어보도록 하겠다.

먼저 발해에 대해서 저자는 철저하게 고고자료 위주로 설명하고 있다. 즉, 일반 역사책에서 보는 것처럼 발해가 몇 년에 세워졌고, 누가 세웠고, 그 도성터는 어디이며, 무슨 무슨 성이 있는데 이 성은 역사기록의 어디에 해당하고 (불라불라) 이런 내용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그저 발해인 혹은 발해의 群像을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내용들을 유기적으로 나열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는 뒤의 Ⅲ, Ⅳ부를 서술할 때도 비슷하게 확인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찌 보면 衆口難防이다,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게 오히려 적절하다 싶기도 하다. 왜냐하면 발해, 옥저, 읍루에 대해서 우리는 오늘날 중국 24사의 열전기록 일부를 토대로 정리한 역사 정도밖에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발해는 후대에 쓰인 유득공의 『발해고』가 있지만). 즉, 정확하고 세부적인 연대기나 주요 인물을 비롯해 문화적 요소 세부적인 것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기존의 서술틀에 박혀 서술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파격적인(?) 구성을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Ⅰ부에서 재밌었던 것은 ‘칫솔을 발명한 발해 유민들’과 ‘북한과 중국이 발굴한 발해유적’이라는 파트였다. 친 톨고이 성터에서 발견된 칫솔은 처음 본 것인데, 신기했다. 이걸 보면서 칫솔이 언제부터 쓰였는지 궁금해지기도 했고, 칫솔을 쓴 집단과 안 쓴 집단의 차이는 뭘까? 도 고민해봤다. 암튼 재밌는 상상을 하게 해 줬던 파트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또한 북한과 중국이 발해유적을 같이 발굴했던 것도 처음 알았는데, 특히 환상의 보고서로 불렸다는 ‘중국 동북 지방의 유적 발굴 보고’라는 책 필자도 한번 보고 싶어졌다. 대체 어떤 내용들이 담겨져 있길래 당시 이를 구한 일본 고고학자가 감탄을 했을까. 예전에 연구소에서 발해 고지를 답사했을 때 따라가지 못 한 것이 책을 읽는 내내 후회가 됐다.

Ⅱ부는 연해주의 근현대사와 그 지역의 민속사례를 정리한 부분이랄까? 암튼 국내에서 쉽게 접하지 못 하는 내용들인데다가 재밌는 부분도 많기 때문에 Ⅰ부의 발해 여행이 다소 지루하셨다면, 여기에서 잠시 餘毒을 푸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 싶다. 여기에서는 러시아 신부 비추린과 푸쉬킨에 대한 얘기가 굉장히 이채로웠으며, 데르수 우잘라에 대한 부분도 신선했다. 또한 ‘120년 전 한국에 고고학을 소개한 서양선교사’ 부분은 필자의 머리를 땡! 하고 치는 듯 한 느낌을 받게 했다. ‘아니! 우리나라에 고고학을 최초로 소개한 나라가 일본이 아니라 러시아야?’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한국 근대상 있어 일본 못지 않게 러시아도 우리와 상당한 연관성이 있구나~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또한 그 뒤에 나오는 명태 이야기와 폭탄주 얘기도 재밌었다. 강인욱 선생님을 처음 봤을 때 술을 잘 못 하실 줄 알았는데, 러시아에서 장기간 활동하신만큼 역시 상당한 酒黨이었다. 그때 러시아식 폭탄주 문화를 배워 지금도 종종 학우들끼리 하는데 좋은 추억거리이다.

연구소에 정기적으로 러시아에서 유학생이 오는데, 얼마 전까지 있다가 발해토기로 석사학위를 받고 다시 돌아간 친구(막심)가 있다. 예전에 아차산에서 고구려 보루를 발굴할 때였다. 비가 억수로 내리는 바람에 오전에 숙소에서 막걸리를 간단하게 마시자는 것이 결국 후배 2명과 필자, 막심 이렇게 4명이서 하루 종일 술을 마시게 됐다. 한국 막걸리를 대접하자, 그 친구 가방에서 러시아 꼬냑이 나오고, 우리가 다시 소주를 대접하자 그 친구가 맥주와 함께 먹는 폭탄주 방법을 알려줬다. 물론 우리의 쏘맥 문화도 알려주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결국 우리들은 한국 남자의 자존심을 살리지 못 하고 쓰러졌다. 그런데 부스스 눈을 뜬 우리에게 막심이 건넨 것은 가득 따른 시원한 맥주 한컵! 허걱! 우리는 “그래! 우리가 졌다, 졌어! 너가 우리보다 술 잘 마신다!”라고 외치면서 거부했는데, 알고 보니 러시아에서는 해장으로 아침에 시원한 맥주를 마신단다. 예전에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선배에게 영국에서는 해장으로 자기가 늘 가는 까페에 가서 커피를 마신다는 얘기를 듣고 웃은 기억이 났다. 암튼 새록새록 추억을 꺼내가면서 Ⅲ부로 넘어갔다.

Ⅲ, Ⅳ부는 개인적으로 북방사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파트가 아닐까 한다. 물론 옥저, 읍루에 대해 기존에도 간략하게 소개된 부분이 많이 있었지만 여기에서는 그것을 고고자료와 함께 재미있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필자가 요즘 부여 및 옥저에 대한 공부를 하다 보니 필자는 오히려 이 부분은 좀 더 학술적인 내용을 다뤄줬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만의 욕심일테고~나름 공부를 했다고 했지만, 모르는 내용이 많아서 더 신선했다. ‘옥저인들도 아편을 알았을까’와 ‘흉노가 좋아했던 옥저인의 온돌’ 부분은 ‘오호라~’하면서 절로 미소 짓게 만드는 내용들이었다. 저자의 앞선 논고를 보면 알겠지만, 저자는 중국에서 한국, 일본으로 문화가 전파되었다는 획일적인 시각에 상당히 의심을 갖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기존 통설을 깡그리 무시한단 뜻은 아니고, 새로운 자료들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기존 시각의 비평하려고 노력한다고나 할까? 그런 점이 필자에게도 많은 자극이 되는 것이 사실이고 말이다. 이 책에서도 전체적으로 이런 저자의 시각이 곳곳에 담겨 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 고고자료로 증명된 것들이기에 우리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당시 시대상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Ⅳ부는 ‘해운대에 온 매머드 사냥꾼’이라는 제목인데, 해운대에 무슨 매머드가 있었겠는가...힘 빠졌을 것 같다, 사냥꾼이. ㅋㅋㅋ 제목마냥 내용도 약간은 쳐진다고나 할까? 어떻게 보면 보다 포괄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는데다가 앞의 내용에 비해 긴장감면에서 좀 떨어지는 것이 많다. 굳이 따지자면 ‘번데기, 그리고 곡옥’과 ‘두만강 유역의 석기사냥꾼들’이 좀 신선했는데, 그것 말고는 이미 많이 알려진 내용인데다가 북방사를 넘어서는 상식적인 정보가 많아서 개인적으로는 별로였다. 그래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앞부분으로 이 장을 뺐으면 어땠을까 하고 말했던 것이다. 마치 내내 화려한 액션과 거대한 스케일로 관객을 압도하다가 끝에 좀 허무하게 끝나는 그런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랄까? 그런데 따지고 보면 어쩔 수 없었던 것도 같다. 연해주 일대에서 옥저가 정치체화되기 전에 살았던 선조들의 삶을 과연 한국사와 얼마만큼 직결시킬 수 있을까? 라는데 생각이 미치다보니 내용이 일반적거나 좀 포괄적인 것까지 다룰 수 밖에 없었겠구나~싶기도 했다.

어쨌든, 국내에 몇 되지 않은 북방사 전공 고고학자가 썼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學史的으로 가치가 있으며 내용면에서도 너무 어렵거나, 아니면 너무 개설적인 면에 치우치지 않았기 때문에 충분히 추천할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하나의 테마를 갖고 평생을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러울 따름이며, 그러한 자신의 이야기를 한권의 책으로 정리할 수 있을 만큼이 되었다는 것도 부러웠다. 비록 읽은 건 책 1권이지만, 필자에게는 책 수백권 이상의 자극을 주었던 책이라는 것을 밝히면서 이만 글을 줄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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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부여 대소왕은 억울하다고 할까? - 대소왕 vs 추모왕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2
김용만 지음, 이동철 그림 / 자음과모음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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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세계사법정’이라고 하는 연재기획물의 하나이다. 작년말 인터파크에서 기획했던 것으로 인터파트 웹진 ‘북&(앤)’의 ‘북&어린이’ 코너에 가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http://book.interpark.com/meet/webZineDiary.do?_method=authorList&sc.contsType=009). 그 당시 10회 연재로 글이 올라올 계획이었는데, 첫회만 보고 나중에 봐야지~했다가 잊어먹고 이번에 책으로 나왔길래 읽게 되었다. 이 책은 그동안 나온 어린이 책에서는 보기 힘든 구성으로 이뤄져 있다. 바로 ‘법정’이라고 하는 배경을 빌어 역사상 논쟁이 될 만한 부분을 다루고 있는데, 2권에서는 부여 대소왕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이 주요 논지를 구성하고 있다. 여담을 잠깐 하자면 이런 식의 구성은 예전에 방기혁의 역사소설『平! 풍신수길의 야욕과 임진왜란의 진상』에서 한번 비슷하게 선보였던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같은 저승에서의 전개라고 해도 이번 책은 다소 현대적인 관점에서 그려내고 있어, 읽는 이들에게 더 친숙하고 참신하게 다가올 여지가 있지 않나 싶다.

일단 책의 내용과 캐릭터에 대해 잠깐 소개하자면, 원고 대소왕과 그를 변호하는 변호사 오진실, 피고 추모왕과 이를 변호하는 이대로, 판사 정역사가 등장하며 증인으로 금와왕, 소서노, 유화부인, 협부, 장수왕 등이 등장한다. 그밖에 대조영과 괴유도 등장하며 다알지 기자가 중간중간 법정 소식을 전해주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뭐 간단하다. 최근 방영된 드라마 <주몽>에서도 그렇고, 일반적으로 추모왕을 시기해 몰아냈다고 알려져 있는 대소왕이 왜 내가 그런 평가를 받아야만 하는지 억울하다면서 오진실 변호사에게 다가와 도움을 청한다. 물론 추모왕 역시 왜 나한테 그러느냐~면서 이대로 변호사를 선임해 맞대응하고 말이다. 이 과정에서 대소왕은 부여가 고구려에게 역사를 빼앗기고, 왜곡된 역사만 전해지게 되었다면서 억울함으로 호소하게 되고, 추모왕은 그건 어쩔 수 없다, 너네 나라가 약해서 망해놓고 왜 나한테 그러느냐고 하게 된다.

내용을 보면 먼저 재밌게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여와 고구려의 흥망성쇠를 두 캐릭터(대소왕과 추모왕)의 입을 빌어 표현하고 있는만큼, 읽는 이로 하여금 지루하지 않게 하고 있다. 이 책의 주 독자가 어린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어렵지 않게 부여와 고구려사를 자연스레 전해주고 있다고나 할까? 그러면서 돋보이는 것은 아무리 어린이 책이라고 해도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는데 있어 소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예를 들어 추모가 담긴(?) 알을 동물들에게 버렸는데도 무사했다~는 역사적 기록을 해석한 부분은 정말 탁월했다). 거기다가 재밌는 만화가 중간중간 들어가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더 재미를 느끼게 하고 있다(필자는 개인적으로 추모왕이 오자도를 돌리며 하품하고 있고, 대소왕이 오진실 변호사를 쿡쿡 찌르면서 '그렇게 해서 이길 수 있겠냐!'고 핀잔주는 장면에서 웃음이 피식 나왔다). 개인적으로 어린이들이 봤을때 물론 전부 만화책으로 되어 있으면 더 읽기 쉽겠지만, 역사적 사실을 어느 정도 전해줘야만 했을 때는 이처럼 적절한 삽화와 텍스트가 첨부된 구성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그런 면에서 봤을때 저자의 어린이책은 상당히 균형있는 짜임새를 갖췄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그림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글보다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내용을 떠나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고자 한다면 그건 이 책의 '구성'이다. 어린이들이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오히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법정이라는 배경을 선택하면서 소장, 최후진술, 판결문 등을 집어넣은 것은 아주 적절했다. 또한 휴정 인터뷰 챕터가 사이사이 들어가 있는 점, 교과서 안 역사와 교과서 밖 역사라는 장을 따로 마련한 것은 기존에는 시도되지 않았던 구성이었다. 그렇지~아이들이 교과서에 적힌 것만으로는 부여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겠지, 이런 생각이 들면서 이렇게 구성한 저자에게 감탄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이러한 구성이 이 책을 읽는 아이들에게 오히려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종종 까페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학교 시험 공부를 하면서 이것저것 질문을 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그때마다 교과서의 내용을 얘기해줘야 할지 아니면 현재 학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쟁점 사항을 얘기해줘야 할지 고민이 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시험에 필요한 역사적 지식은 학문으로서 연구되는 역사적 지식과 다르기 때문이다. 예전에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침대는 과학입니다. □□□ 침대’라는 광고 카피가 크게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초등학교 시험에 '다음 중 가구가 아닌 것은?'이라는 문제가 나오면, 많은 어린이들이 '침대'를 골랐다는 헤프닝이 보도된 바 있다. 이처럼 잘못된 지식을 전달하는 책을 보고 그 여파가 안 좋게 퍼진다면, 그건 정말 큰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이런 구성을 한 저자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교과서 안과 밖의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독자들이 혼란스러워하지 않도록 본문에서 충분히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된 시도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필자 생각으로는 적어도 이 책을 본 독자라면 그런 악영향은 받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필자가 눈여겨 본 부분은 책의 마지막 부분이었다. 일단 최후 판결문을 보면 추모왕과 그 후손들이 부여사를 왜곡하고 대소왕을 악인으로 그린 것에 대해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음이 확인되었다. 아무리 정치적인 이유라고 하더라도 그 행위 자체는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마 이 부분에서 몇몇 독자들은 놀라지 않을까? 아니, 중국이랑 일본만 한국사를 왜곡한게 아니야? 고구려도 같은 민족의 역사인 부여사를 왜곡했단 말이야? 라고 말이다. 또한 추모왕의 부여의 배신자이며, 부여의 발전을 가로막았다는 대소왕의 주장은 기각하였고, 대소왕이 아무리 부여를 전성기로 이끈 훌륭한 군주였다고 하지만 그 이후 부여가 고구려와의 대립에서 약세를 보였기 때문에 그 역시 기각하였다. 결론이 추모왕의 승리로 끝난건지, 아니면 대소왕의 승리로 끝난건지 조금 헤깔리긴 한다. 하지만 최소한 대소왕이 자신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씻었고, 이를 추모왕이 시인했다는 점에서 대소왕의 승리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왜 부여사가 오늘날 이렇게 전해졌는지, 고구려인들은 왜 부여사를 왜곡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계기를 마련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대소왕측 변호사였던 오진실양을 환생시켜 지상으로 내려보내는 것으로 끝맺음을 한다. 지금 중국과 일본이 한국사를 왜곡하면서 난리를 치고 있는데, 오진실 변호사가 이를 잘 해결해주리라 믿기 때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현재 동아시아 삼국 사이에서 벌어지는 역사왜곡 문제와 연결시켜 절묘하게 글을 마무리한 점이 돋보였다. 솔직히 필자는 재판이 끝나고, 이야기도 끝이 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역시 반전이라면 나름 반전일까? ^^ 나이가 많이 어리지 않는다면,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심지어 고등학생이라도 한번쯤 읽어볼 만 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역사왜곡 분쟁에 대해 다시금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s) 참고로 분량도 짧아서 짜투리 시간 이용해서 읽기에 아주 좋다. 필자도 30분 정도만에 다 읽었으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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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전쟁의 기술 - 한국사의 판도를 바꿔 놓은 36가지 책략
한정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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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서평을 쓰는 것 같다.
게으름이 하늘을 찌를듯해 나 스스로에게 죄스러운 기분까지 드는 요즘이다.

그러던 찰나에 우연히 검색해서 얻은 책이 하나 있다. 일단 제목만 보면 무슨 내용인지 대강 짐작은 간다. 일단 한국사 중에서 전쟁에 대한 언급이 있을 테고, 무슨 전략 · 전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고, 마지막으로 그것을 현대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은지 등등에 대해 얘기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책장을 열어봤다.

오~좀 의외였다. 다소 식상한 주제일 수도 있는『孫子兵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알겠지만,『손자병법』이라고 치면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나온다). 집에도 관련 서적이 몇 권 있었기 때문에 조금 실망하는 눈빛으로 책장을 넘겼다. 흐음~그런데 의외로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손자병법』을 한국전쟁사와 연결시켜 註解(라고 해도 될라나?)한 책은 지금까지 못 봤기 때문이다(혹시 있다면 그 책을 쓰신 저자분께 죄송하고, 무지몽매한 필자가 깨우칠 수 있게 그 책을 추천해주시기 바랍니다). 굳이 따진다면 중국에서는 이런 종류의 책이 나오긴 했다(물론 자기네 나라에서 나온 책이니깐 자기네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馬駿이 쓰고 임홍빈이 번역한『손자병법 교양강의』가 그것인데, 기억으로는 그냥 무리 없이 읽혔던 책이었던 것 같다.

암튼 이 책으로 다시 돌아오자. 앗! 저자가 누군가 했더니『조선 지식인의 독서 노트』,『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노트』,『조선 지식인의 말하기 노트』등을 쓴 사람이 아닌가. 이 책들은 필자가 쉬엄쉬엄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이 책도 그만큼 재밌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뭐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특정 작가 혹은 저자에 대해 안 좋은 이미지가 생기면, 그 사람이 쓴 다른 책에 대해서도 그 이미지를 투영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아니, 좀 더 자세히 말하면 그 사람이 쓴 책에 대해 철저하게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려 한다고나 할까?). 암튼 약간의 호감을 갖고 책장을 하나하나 넘겨봤다.

프롤로그를 지나서 목차를 봤다. 재밌었다. 손자병법의 본래 목차는 시계편, 작전편, 모공편 등으로 이어지는데 이 책에서는 그러한 순서를 다 바꿔버렸다. 시계편은 ‘전략의 조건’으로 고쳤으며, 세부 테마는 ‘깊게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라’, ‘나의 적이 절대로 알지 못하게 하라’, ‘승산이 없다면 섣불리 나서지 마라’ 등으로 고친 것이었다. 일단『손자병법』의 내용을 소개하는데 있어 한국식(?)으로 고쳤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 말은 그만큼 원서를 충분히 읽고 이해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 소개하고 있는 내용들도 참신하고, 흥미로운 것들이 많아서 읽는 내내 책장 넘어가는 속도도 모를 정도로 읽어나갔다.

그럼 내용 일부를 살펴보면서 필자가 생각하는 잘한 점, 아쉬운 점, 나쁜 점을 하나씩 훑어보자.

먼저 잘한 점이다. 책을 딱 보면 알겠지만 한국사 이모저모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이를『손자병법』과 적절히 연결시킨 저자의 노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기존에 잘 언급되지 않았던 역사적 사실을 부각시킨 점이 주목되는데 소수림왕의 절치부심에 대해 언급한 부분, 광종의 와신상담, 김조순의 정치적 승리, 고려 숙종의 은인자중과 선조의 양위 파동, 황금대왕 최창학의 일화, 유성룡의 후회, 개성상인의 용중지법, 요동공략 이후 고려군의 퇴각 전술, 노론의 왕세제 책봉, 송유진 반란 사건 등이 그러하다(을파소의 신중한 출사에서 최남선이 상상으로 구성했다던 내각은 처음 들어봤는데, 나중에 한번 찾아봐야겠다). 저자가 조선사에 대해 많은 책을 쓰고, 애초에 공부를 하려고 했던 분야도 메이지유신을 전후한 일본사였던 것을 보면 고대사보다는 중세 이후의 역사가 주전공 분야가 아닌가 싶다. 다만, 동 · 서양 고전에 관심이 많아 다양한 분야의 책을 써낸 것을 보면 적지 않은 내공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책에서 고대사~근대사까지 넓은 시간 폭을 두고 다양한 아이템들을 선정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손자병법』과 연관되어 처세술과 정치사 쪽을 서술한 내용은 탁월한 내용이 많다. 이는 당시 시대사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정리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하는데, 필자 개인적으로는 이런 부분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처럼 잘 정리된 책이 나오면 즐겨 읽는 편이다. ‘상황에 대한 통제권을 움켜쥐어라’ 테마에 고려 숙종의 은인자중과 선조의 양위 파동을 집어넣은 것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전에는 그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적의 역량을 분산시켜 격파하라’에서 고려 인종의 분열 전술을 언급한 것도 이채로웠다. 어떻게 보면 항상 피동적인 인물로 역사에 그려졌던 고려 인종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밖에 ‘상대방이 약해졌거나 힘을 쓸 수 없을 때 공격하라’의 정몽주의 무모한 공격 역시 재밌게 읽었다. 단순히 힘없는 구 왕조의 원로대신으로만 여겼던 정몽주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이런 부분은 예전에 이덕일의『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를 읽었을 때를 떠올리게 할만큼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럼 이제는 아쉬운 점이다. 목차를 주욱 보면 알겠지만, 이질감이 느껴지는 부분이 딱 하나 등장한다. 바로 ‘전투의 승패는 기세와 타이밍에 달려 있다’의 한니발의 포위 섬멸 작전이다. 이 책의 제목이『한국사 전쟁의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왜 국내의 사례가 아닌 외국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 해상전의 교본이라고 할 만한 한산도대첩과 대비시켜 논지를 강화하기 위해 육상전의 교본으로 불릴만한 칸나에 전투를 언급한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인 책의 논지와 맞지 않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차라리 목차에 한산도대첩을 먼저 언급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이라든가, 장수태왕의 한성 공함 작전과 같이 포위전으로 볼만한 내용은 충분히 있으니 한국사상의 전쟁을 하나 소개하고, 부차적으로 칸나에를 소개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실제 ‘빠르게 행동하고 빠르게 끝내라’ 테마에서는 광개토태왕을 소개하고, 뒤이어 알렉산드로스를 부차적으로 소개하는 구성을 선보였지 않은가? 그런데 왜 뒤에서는...).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저자가 전쟁이나 전투에 대해서는 그닥 최신 정보를 갖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유명한 고려 말 요동정벌과 같은 경우도 4대 불가론에 대해 찬반 논쟁이 있는 만큼 다양한 견해를 다뤘으면 했는데, 그런 것 없이 이성계의 회군 그 자체에 주목한 면이 강했던 것 같다. 또한 신립의 오판에 대해서도 찬반 논쟁이 있는데, 기존의 통상적인 견해에 주목한 것 역시 그러했다. 부여 대소왕의 죽음은 기록이 워낙 적다보니 意譯한 면이 적지 않았으며, 사지를 선택한 계백의 전략 부분에서도 백제군과 신라군의 병력, 진형, 전투진행과정 등에 대해 다양한 연구 성과가 있음에도 이를 반영하지 않은 것은 아쉬웠다. 필자 생각에는『손자병법』이라는 원저의 인용과,『한국사 전쟁의 기술』이라는 책의 제목에 걸맞으려면 오히려 앞서 언급했던 정치사적인 내용이나 처세술에 대한 것보다는 이런 전쟁 · 전투에 대한 부분이 더 강조되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 한 것이 가장 아쉬웠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나쁜 점을 언급하고 마무리하자. 확실히 저자가 고대사 전공자가 아니라는 측면에서 고대사 부분에 취약한 면모가 많이 보였다.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광개토대왕을 광개토태왕이라고 칭하지 않은 점(광개토태왕이 태왕호로 불렸다는 것은 이미 학계의 정설이다)이 먼저 눈에 거슬렸다. 또한 고국원태왕(이미 태왕호는 그 이전부터 사용했다는 것이 학계의 대세)이 모용황과의 대결에서 패한 것은 그가 과거에 승리한 경험과 선입견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는데, 이는 오히려 아주 일반적인 전장에서의 잘못된 전술 채택일 뿐, 고국원태왕 개인의 오만이나 만용과는 상관이 없는 부분이라고 보는 것이 낫다. 차라리 이런 얘기를 하려면, 수-당과의 수십 년에 걸친 육상전에 따라 고구려가 천리장성을 쌓고 방어력을 강화하는 사이(왜냐하면 고구려는 그렇게 해서 계속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므로), 당에서는 수군을 강화해서 해로로의 直攻을 계획했던 사례를 소개했으면 어땠을까? 그거야말로 거듭된 승리로 인한 경직된 전략 · 전술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또한 모본왕에 대해 소개할 때 당시 고구려가 북평, 어양, 상곡과 태원까지 점령하여 황하의 동쪽 지역을 차지했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이는 굉장히 위험한 서술이다. 왜냐하면 고구려는 점령전을 펼친 것이 아니라 제한적인 약탈전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왜 이런 부분들을 필자가 아쉬운 점(이미 저자의 전공이 고대사는 아닌 것 같다는 언급을 했었다)으로 추려내지 않고, 나쁜 점으로 추려냈는가 하면...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은 현재 논란이 되고 있어서 다양한 견해가 나오는 부분 혹은 해석상 얼마든지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는 부분들을 추려냈지만, 여기에 언급한 점은 필자 개인적인 판단에 잘못 해석할 여지가 적은 것들을 한번 골라봤다. 기존의 연구와 다른 견해를 내놓는 것이 나쁜 점은 아니다. 하지만 충분한 근거 없이 기존 연구와 다른 얘기를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전공서적도 아니고 교양서적 같은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고 본다(각주도 없고, 연구사도 없으며, 치밀한 논지 전개가 서술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손자병법』을 우리식대로 해석한 이 책에 필자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분명 우리의 옛 선조들도(아마 삼국시대 이전부터가 아닐까?)『손자병법』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며, 중국에서 흔히 말하는 古典들을 인식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과거 시험에 필요한 禮書 종류 이외의 兵書, 醫學書, 技術書 등은 이른 시기부터 수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과거 시험은 안 봐도 상관없지만, 전쟁을 치루고 아픈 사람을 고치고,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은 민족의 自尊에 중요한 부분이니 말이다. 그 당시 우리 선조들도 아마『손자병법』을 우리식대로 이해하고 공부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을 주해하고, 새롭게 해석을 붙여 글로 남긴 자료는 확인되지 않지만 말이다. 그렇게 봤을 때 이 책은 현대 한국인이『손자병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좋은 지표가 될 것 같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전체적으로 책은 400쪽이어서 두껍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내용이 쉽고 재미있는데다가 각 파트가 끝나면 뒤에『손자병법』원문+해석을 같이 첨부하고 있어 책의 요지를 이해하기 쉬운 구성으로 해 놨기 때문에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안 읽어보신 분들이 있다면 한번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읽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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