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발해인 - 강인욱의 북방 역사 기행
강인욱 지음 / 주류성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얼마 전에 온라인 까페 회원분과 부여 및 옥저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분은 최근 부여와 옥저의 위치, 역사적 환경 등에 대해 기존 통설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여러 자료를 찾아 공부 중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필자 역시 몇몇 자료를 찾아 같이 공부해 보고, 여러 가지 정보도 주고받으면서 나름의 생각을 다시 정리하게 되었다. 그런데 부여야 예전에 공부하면서 정리했던 적이 있지만, 옥저에 대한 부분은 제대로 마음먹고 공부한 적이 없어서 생각보다 내가 한국 고대사에 대해 많이 모르는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그러던 차에 읽게 된 책이다.

저자인 강인욱 선생님은 필자의 학교와 연구소에 한동안 계셨기 때문에 친분이 깊은 사이다. 개인적으로 강인욱 선생님의 연구방법이나 접근법, 연구 분야 등은 필자 역시 관심이 많거나, 본받고 싶은 부분이 많다. 예전 학부 수업때 선생님이 얘기해 주시는 흉노 고고학과 같은 생소한 분야는 필자를 포함한 주변 학우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알려주는 것처럼 신선할 정도였다. 러시아어에 특히 능통하신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선생님은 러시아에서 학위를 받으셨는데, 최근에도 부경대 교수로 있으면서 매년 러시아에 발굴조사를 나가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결과가 결코 적지 않으니, 지금 선생님은 제한적이지만 행복한 생활을 하시는 것 같다. 이 책은 그러한 선생님의 북방역사기행을 에세이 형식으로 담아낸 책이다(필자가 개인적으로 국내에 나온 고고학 서적 중 손꼽는 것으로 『김병모의 고고학 여행』 1~2권이 있다. 이 역시 그와 비슷한 책이지만, 북방역사기행이라는 세부 테마로 꾸며진 점, 젊은 나이에 작성한 점이라는 면에서는 차이가 있겠다).

일단 제목이 눈길을 끈다. ‘춤추는 발해인’이라? 이 책의 첫 장에 등장하는 콕샤로프카 성지에서 출토된 무용수들이 새겨진 토기와 관련된 것이다. 마치 강강술래와 같은 모습인데, 이러한 발해의 춤을 ‘답추(踏鎚)’라고 한단다. 첫 장부터 흥미있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책의 구성은 저자 스스로 말학 있듯이 크게 발해, 간도와 연해주, 옥저 및 선사시대로 구분되어 있는데, Ⅰ부에서는 발해에 대해서(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자료, 특히 고고자료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Ⅱ부에서는 근대 이후 고려인과 러시아, 중국인의 군상을, Ⅲ부에서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옥저와 읍루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Ⅳ부에서는 구석기시대부터 기원전 4세기까지 선사시대 연해주와 연변 지역의 다양한 유적과 유물을 소개하고 있다. 미리 얘기하지만 전체적으로 책의 구성은 조금 미흡한 면이 없지 않나 싶다. 이 책이 에세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고고 · 역사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만큼 어떤 일관된 흐름에 맞춰 내용을 서술해야 하지 않나 싶다.

예를 들면, 이 책의 제목에서도 그렇고 발해가 강조되었다 하더라도 발해의 내용이 굳이 책 처음부터 나올 필요가 있을까 싶다. 차라리 시대적으로 구석기시대부터 기원전 4세기, 옥저 및 읍루, 발해, 이후 여진족과 만족의 삶을 서술하면서 자연스레 연해주 · 시베리아 지역의 근현대사를 언급하는 것은 어땠을까 싶다. 아니면 발해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시간적인 흐름대로 놓고 싶었다면, Ⅱ부의 내용을 차라리 제일 뒤로 빼서 에세이적인 파트만 한데 모아놨다는 느낌을 줘도 좋았을 것 같고. 그도 아니면 발해에 대해서만 따로 파트를 나눠 설명하고, 나머지 장들은 시간적인 순서 혹은 특정 주제로 묶어 차라리 재구성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이런 것들을 고민하다가 지금의 목차가 나왔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지만, 암튼 이만하고 넘어가자.

서평을 전개해 나가는데 있어 이 책의 내용을 일일이 서술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고(워낙 다양한 부분을 다루고 있다. 그런 면에서 『김병모의 고고학 여행』이 <소년탐정 김정일>을 보는 느낌이라면, 이 책은 <명탐정 코난>을 보는 듯 한 느낌이 든다. 뭐 둘다 필자가 좋아하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몇몇 인상깊은 부분을 언급하고 그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적어보도록 하겠다.

먼저 발해에 대해서 저자는 철저하게 고고자료 위주로 설명하고 있다. 즉, 일반 역사책에서 보는 것처럼 발해가 몇 년에 세워졌고, 누가 세웠고, 그 도성터는 어디이며, 무슨 무슨 성이 있는데 이 성은 역사기록의 어디에 해당하고 (불라불라) 이런 내용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그저 발해인 혹은 발해의 群像을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내용들을 유기적으로 나열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는 뒤의 Ⅲ, Ⅳ부를 서술할 때도 비슷하게 확인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찌 보면 衆口難防이다,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게 오히려 적절하다 싶기도 하다. 왜냐하면 발해, 옥저, 읍루에 대해서 우리는 오늘날 중국 24사의 열전기록 일부를 토대로 정리한 역사 정도밖에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발해는 후대에 쓰인 유득공의 『발해고』가 있지만). 즉, 정확하고 세부적인 연대기나 주요 인물을 비롯해 문화적 요소 세부적인 것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기존의 서술틀에 박혀 서술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파격적인(?) 구성을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Ⅰ부에서 재밌었던 것은 ‘칫솔을 발명한 발해 유민들’과 ‘북한과 중국이 발굴한 발해유적’이라는 파트였다. 친 톨고이 성터에서 발견된 칫솔은 처음 본 것인데, 신기했다. 이걸 보면서 칫솔이 언제부터 쓰였는지 궁금해지기도 했고, 칫솔을 쓴 집단과 안 쓴 집단의 차이는 뭘까? 도 고민해봤다. 암튼 재밌는 상상을 하게 해 줬던 파트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또한 북한과 중국이 발해유적을 같이 발굴했던 것도 처음 알았는데, 특히 환상의 보고서로 불렸다는 ‘중국 동북 지방의 유적 발굴 보고’라는 책 필자도 한번 보고 싶어졌다. 대체 어떤 내용들이 담겨져 있길래 당시 이를 구한 일본 고고학자가 감탄을 했을까. 예전에 연구소에서 발해 고지를 답사했을 때 따라가지 못 한 것이 책을 읽는 내내 후회가 됐다.

Ⅱ부는 연해주의 근현대사와 그 지역의 민속사례를 정리한 부분이랄까? 암튼 국내에서 쉽게 접하지 못 하는 내용들인데다가 재밌는 부분도 많기 때문에 Ⅰ부의 발해 여행이 다소 지루하셨다면, 여기에서 잠시 餘毒을 푸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 싶다. 여기에서는 러시아 신부 비추린과 푸쉬킨에 대한 얘기가 굉장히 이채로웠으며, 데르수 우잘라에 대한 부분도 신선했다. 또한 ‘120년 전 한국에 고고학을 소개한 서양선교사’ 부분은 필자의 머리를 땡! 하고 치는 듯 한 느낌을 받게 했다. ‘아니! 우리나라에 고고학을 최초로 소개한 나라가 일본이 아니라 러시아야?’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한국 근대상 있어 일본 못지 않게 러시아도 우리와 상당한 연관성이 있구나~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또한 그 뒤에 나오는 명태 이야기와 폭탄주 얘기도 재밌었다. 강인욱 선생님을 처음 봤을 때 술을 잘 못 하실 줄 알았는데, 러시아에서 장기간 활동하신만큼 역시 상당한 酒黨이었다. 그때 러시아식 폭탄주 문화를 배워 지금도 종종 학우들끼리 하는데 좋은 추억거리이다.

연구소에 정기적으로 러시아에서 유학생이 오는데, 얼마 전까지 있다가 발해토기로 석사학위를 받고 다시 돌아간 친구(막심)가 있다. 예전에 아차산에서 고구려 보루를 발굴할 때였다. 비가 억수로 내리는 바람에 오전에 숙소에서 막걸리를 간단하게 마시자는 것이 결국 후배 2명과 필자, 막심 이렇게 4명이서 하루 종일 술을 마시게 됐다. 한국 막걸리를 대접하자, 그 친구 가방에서 러시아 꼬냑이 나오고, 우리가 다시 소주를 대접하자 그 친구가 맥주와 함께 먹는 폭탄주 방법을 알려줬다. 물론 우리의 쏘맥 문화도 알려주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결국 우리들은 한국 남자의 자존심을 살리지 못 하고 쓰러졌다. 그런데 부스스 눈을 뜬 우리에게 막심이 건넨 것은 가득 따른 시원한 맥주 한컵! 허걱! 우리는 “그래! 우리가 졌다, 졌어! 너가 우리보다 술 잘 마신다!”라고 외치면서 거부했는데, 알고 보니 러시아에서는 해장으로 아침에 시원한 맥주를 마신단다. 예전에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선배에게 영국에서는 해장으로 자기가 늘 가는 까페에 가서 커피를 마신다는 얘기를 듣고 웃은 기억이 났다. 암튼 새록새록 추억을 꺼내가면서 Ⅲ부로 넘어갔다.

Ⅲ, Ⅳ부는 개인적으로 북방사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파트가 아닐까 한다. 물론 옥저, 읍루에 대해 기존에도 간략하게 소개된 부분이 많이 있었지만 여기에서는 그것을 고고자료와 함께 재미있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필자가 요즘 부여 및 옥저에 대한 공부를 하다 보니 필자는 오히려 이 부분은 좀 더 학술적인 내용을 다뤄줬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만의 욕심일테고~나름 공부를 했다고 했지만, 모르는 내용이 많아서 더 신선했다. ‘옥저인들도 아편을 알았을까’와 ‘흉노가 좋아했던 옥저인의 온돌’ 부분은 ‘오호라~’하면서 절로 미소 짓게 만드는 내용들이었다. 저자의 앞선 논고를 보면 알겠지만, 저자는 중국에서 한국, 일본으로 문화가 전파되었다는 획일적인 시각에 상당히 의심을 갖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기존 통설을 깡그리 무시한단 뜻은 아니고, 새로운 자료들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기존 시각의 비평하려고 노력한다고나 할까? 그런 점이 필자에게도 많은 자극이 되는 것이 사실이고 말이다. 이 책에서도 전체적으로 이런 저자의 시각이 곳곳에 담겨 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 고고자료로 증명된 것들이기에 우리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당시 시대상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Ⅳ부는 ‘해운대에 온 매머드 사냥꾼’이라는 제목인데, 해운대에 무슨 매머드가 있었겠는가...힘 빠졌을 것 같다, 사냥꾼이. ㅋㅋㅋ 제목마냥 내용도 약간은 쳐진다고나 할까? 어떻게 보면 보다 포괄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는데다가 앞의 내용에 비해 긴장감면에서 좀 떨어지는 것이 많다. 굳이 따지자면 ‘번데기, 그리고 곡옥’과 ‘두만강 유역의 석기사냥꾼들’이 좀 신선했는데, 그것 말고는 이미 많이 알려진 내용인데다가 북방사를 넘어서는 상식적인 정보가 많아서 개인적으로는 별로였다. 그래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앞부분으로 이 장을 뺐으면 어땠을까 하고 말했던 것이다. 마치 내내 화려한 액션과 거대한 스케일로 관객을 압도하다가 끝에 좀 허무하게 끝나는 그런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랄까? 그런데 따지고 보면 어쩔 수 없었던 것도 같다. 연해주 일대에서 옥저가 정치체화되기 전에 살았던 선조들의 삶을 과연 한국사와 얼마만큼 직결시킬 수 있을까? 라는데 생각이 미치다보니 내용이 일반적거나 좀 포괄적인 것까지 다룰 수 밖에 없었겠구나~싶기도 했다.

어쨌든, 국내에 몇 되지 않은 북방사 전공 고고학자가 썼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學史的으로 가치가 있으며 내용면에서도 너무 어렵거나, 아니면 너무 개설적인 면에 치우치지 않았기 때문에 충분히 추천할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하나의 테마를 갖고 평생을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러울 따름이며, 그러한 자신의 이야기를 한권의 책으로 정리할 수 있을 만큼이 되었다는 것도 부러웠다. 비록 읽은 건 책 1권이지만, 필자에게는 책 수백권 이상의 자극을 주었던 책이라는 것을 밝히면서 이만 글을 줄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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