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주몽
최항기 지음, 한동주 그림, 김용만 감수 / 함께읽는책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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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보려던 책을 이제야 보게 됐다. 처음에는 이런 책이 나온지도 몰랐다. 저번 휴가때 김용만 선생님에게서 선생님이 감수한 책이 있는데 한번 보라는 얘기를 듣고 이제야 보게 된 것이다. 일단, 책을 처음 접한 소감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역사, 누구나 쉽게 저할 수 있는 역사에 대해서 썼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저자는 책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 고주몽을 기억하며 잃어버린 강토를 언젠가 수복하자는 3류 극우주의를 부추기자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우리의 역사를 딱딱하지 않게 얘기하고 토의해 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

솔직히 이 책을 보는 사람들 중 일부는 미리 알고 있겠지만 일부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역사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주인장이 이 책을 두고 부대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고주몽'이 뭔지 아냐고 말이다. 고구려의 시조라고 답변하는 사람들도 몇 있었지만 모르는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았다. 후임병 중 한명은 혹시 술 잔뜩 취한 '고주망태'를 말하는게 아니냐고 했다가 주인장의 분노섞인 역사 얘기를 꽤 오랫동안 들어야만 했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이 고구려사를 알리는데 더 한층 일조하기를 바란다.

전체적으로 스토리는 기본 역사에 충실하게 전개된다. 부여에서 탈출한 왕자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고 유리명태왕에게 왕위가 넘어가는 순간까지 흔히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나온 기존 사실을 토대로 전개된다. 물론 역사 소설이라는 점때문에 작가 특유의 사관도 엿볼 수 있었으며 참신한 해석도 주목할만 했다. 또한 삼국사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특징을 최대한 살려 등장시킨 자체가 보기 좋았다. 삼국지연의에만 재미있는 영웅들의 이야기와 역사가 살아 숨쉬는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하겠다. 정사(正史)에 한줄 혹은 몇단어로 설명이 끝나는 인물들을 수십쪽에 걸쳐 살과 뼈를 붙여 하나의 인간상으로 만드는 작업은 언뜻 보면 쉬워보이지만 상당히 어려움을 요하는 작업이 아니라 할 수 없다. 그런데 저자는 이 책에서 극히 자료가 희박한 고구려 건국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을 뼈와 살이 있는 인간으로 재생시킨 것이다.

삽화까지 그려넣은 이 책은 한편으로는 동화책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동화책은 아니다. 이 책은 단순히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재미만을 주는 책이 아니다. 저자는 중국이 고구려를 자신의 역사로 편입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는 지금! 이 책을 썼다고 강조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고구려 초기사를 조명한 소설 자체가 출판됬다?것이 큰 의의를 지니고 있고 그게 어렵지 않고 쉽게 접할 수 있게끔 구성되어 있어서 더욱 괜찮은 것 같다. 아무래도 일반인들이 보기에 역사라는 분야는 아직까지 딱딱하고 고리타분한 학문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역사 해석에 있어서 주인장과 생각이 다른 면도 있겠지만 이건 아니다~싶은 것도 있었다. 먼저 월군녀와 소서노라는 명칭 중에서 월군녀를 택한 부분이다. 그는 전자가 이름이고, 후자는 부족명으로 봤지만 삼국사기를 비롯한 각종 사서를 보면 오히려 소서노가 이름으로 더 잘 어울린다. 월군녀는 월군 지배자의 딸이나 여식 정도로 이해하는게 옳을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기록들은 추모왕이 고구려 건국시 연합한 세력을 두고 소서노, 졸본부여의 둘째 딸, 월군녀 이렇게 3명으로 적고 있는데 보다 비중있는 기록들은 소서노를 지칭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만 하다. 고대 여인들의 이름이 사료를 통해서 확인되는 길은 극히 드문데 국조태왕의 어머니가 단순히 부여 출신 여자라고만 적혀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소서노는 고구려, 백제 2국 건설에 지대한 공을 세운 이 시대 최고의 여걸이었기 때문에 그 이름 3자 정도는 충분히 남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딱히 이 정도를 제외하면 내용적인 면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없다. 부분노와 부위염 등 인물 설정에 있어서 주인장의 생각과 맞지 않는 부분도 간혹 있지만 그것은 각자의 주관적인 입장 차이일 뿐이기에 넘어가고, 그 밖에 부분에 있어서는 대부분 실제 사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내용면에서는 충실하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다. 아울러 저자는 책을 쓰면서 앞부분에 이렇게 밝혔다.

- 우리나라 최초의 벤처 창업가 고주몽,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막는 것은 물론이고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인간경영을 배운다 -

동명성왕의 벤처 창업가적 면모,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능력에 대해 말하려고 했지만 그런 면의 묘사에 대해서는 부족한 것만은 사실이다. 딱딱한 역사 기록을 대화체로 바꾸고, 살을 붙여 내용을 만들어내는 데에 자료 부족의 한계가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자료가 허락하는 한, 그 시대 인물들의 입장이 되어 그 느낌을 최대한 살리는데는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소설적 재미와 역사적 사실 전달이라는 두가지 중에서 결국에는 소설적 재미 부각에 치중한 흔적이 강하다.

이처럼 책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민할 2가지 소재가 바로 이것이다. 소설적 재미를 추구하다보면 자연히 책의 무게는 가벼워질 수 밖에 없으며 역사적 사실 전달을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자연스레 아쉬움을 남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대표적인 책이 유현종의 '연개소문'이 아닐까 한다. 역사적인 사실과는 거리가 먼, 오직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책이 바로 이것이다. 물론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이 책은 고구려에 대해서 무한한 상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갖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소설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었다가는 역사를 잘못 알게 되는 더 큰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양자는 병행할 수 없는 양날의 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주인장이 부대 안에 있으면서 글을 쓴게 하나 있다. 제목은 '유리명태왕과 초기 고구려에 대하여 - 유리명태왕과 그의 친족, 외척을 중심으로 본 지배계층 고찰' 이다. 마침 이 글을 쓸때 이 책을 봤기 때문에 더욱더 주인장이 쓴 글과 비교했던 면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주인장이 이 책을 읽고 부족했던 점, 추모왕의 인간적인 면과 경영적인 면에 대해서 적은 부분을 간략하게 여기에 옮겨볼까 한다.

- 개인적으로 주인장은 추모라는 인물에 대해서 대단하다고 느낀다. 그가 고구려의 시조라는 사실을 떠나서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는 정말 대단하다.
우선, 그는 젊은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대단히 치밀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부여에서 지낼 때 대소를 비롯한 다른 왕자들의 시기와 질투, 견제에도 불구하고 그는 꿋꿋히 자기 세력을 키우며 겉으로 표시내지 않았다. 물론, 그가 마굿간에서 일하며 지낼 때도 마찬가지다. 흡사 유비가 유황숙으로 불리며 皇都에서 지낼 때 조조의 눈길을 피하려고 야채나 기르며 悠悠自適, 지내던 것과 비슷하다. 그렇게 지내면서 유화부인의 지혜를 빌려 名馬를 골라내고 훗날을 기약하며 지내는 그의 인내심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대단하다고 느끼게끔 한다. 그가 부여를 탈출할 때 집안 기둥 밑에 부러진 칼조각을 묻어놓고 떠나는 대목에서 그의 치밀함은 극에 달한다. 반드시 훗날 大成하겠다는 결심과 후계자를 위한 배려까지. 목숨이 위급한 상황에서도 추모는 앞날까지 생각해둔 셈이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부여를 떠난 그의 곁에는 3명의 충신이 함께 하는데 이들은 아마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재능을 가지고 있던 추모를 믿고 모든 것을 맡겼을 것이다. 그렇게 추모는 자신을 따르는 일행을 데리고 남하하는데 중간에서 여러 소규모 세력을 흡수하기에 이른다. 그의 정책 수립에 있어 衆臣들의 힘도 컸겠지만, 그 본인의 능력이 그만큼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고 주인장은 생각한다. 이미 부여를 떠날 때 후계자에 대한 생각까지 해 뒀던 그가 재혼을 했다는 사실은 그 혼인이 政略的이었음을 암시한다. 하물며 자기보다 8살이 더 많은 자식이 하나 딸린 과부와 혼인했다는 사실은 더욱 그런 확신을 뒷받침한다 하겠다. 그렇게 고구려를 건국하고 왕좌에 오른 그는 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과감한 팽창정책을 실시한다.
건국하자마자 주변에서 말썽꺼리였던 말갈을 정복해 굴복시키고, 비류수 상류의 터줏대감이었던 비류국과 오랜 기간동안 대립한 끝에 결국은 비류국마저 고구려의 발 아래 무릎 꿇리는데 성공한다. 그러면서 비류국을 제후국으로 삼고, 졸본 세력을 견제하는데 이용한 것을 보면 과연 그가 23세의 청년이 맞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다. 오녀산성이라는 거대 성곽 도시 건설을 주도한 때의 그의 나이가 25세임을 감안한다면 그의 놀라운 지도력에 혀를 내두르고 싶다.
마지막으로 어린 나이에 남이 오르지 못할 높은 지위에 오른 그가 각 정벌지에서 얻은 부인과 재물이 산더미처럼 쌓였을텐데, 부여에 두고 온 부인과 자식을 잊지 않고 죽기 직전까지 후계자를 위한 배려를 해가며 初心을 잃지 않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살펴보면「高句麗本紀」에 적혀있듯이 유리와 예씨 부인이 고구려로 왔을 때 추모가 기뻐하며 그를 태자로 맞이하는 당시 상황이 눈에 선하다. 얼마나 기뻤을까? 주인장은 설사 그의 기록들이 과장되고 신격화되었다고 해도, 그가 살면서 보여준 치밀함과 인내심, 끈기, 놀라울 정도의 지도력, 문무를 겸비한 뛰어난 재능, 먼 앞날까지 예측하는 銳智力 등은 분명 그가 한시대의 英雄이었음을 다시 한번 刻印시켜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

위의 내용이 바로 주인장이 추모왕에 대해 간략하게 묘사한 부분이다. 아마 최항기도 그의 책에서 이런 부분들을 강조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미 역사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집필에 임하면서 이런 부분이 쉽게 묘사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약간의 사론을 더 붙여보도록 하자. 당시 동명성왕과 유리명태왕은 오늘날로 치면, 최고의 벤처 창업가로 CEO에 오른 거물이다. 치밀함과 끈기, 과감한 결단력, 뛰어난 정세 판단 능력과 수많은 참모진들을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리더쉽과 안목. 정말 지도자로서의 모든 것을 갖췄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게 불과 20대 중반의 두 사람이 보인 능력이라는 점이다. 그런 두 사람이 고구려를 차례대로 다스리면서 이후 고구려는 1세기초, 동북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벤처 창업가로서의 동명성왕을 부각시키고 싶었다면 그런 세밀한 부분에 대한 묘사가 더 있었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그런 부분이 부족했던 것이다.

하지만 고구려 건국사를 배경으로 쓴 최초의 역사 소설이라는 점에서 봤을때 그런 아쉬운 부분들을 제쳐두고서라도 충분히 가치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덮으면서 이런 책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뿐이었다. 주인장도 늘 말하지만 오늘날 국가 위기를 맞이해 우리는 선조들에게서 삶의 지혜를 얻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선두에 고구려가 있음을 항시 명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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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 - 상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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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서두를 꺼내야 할까? 이 책을 막 읽고난 지금 주인장의 기분은 들떠있다. 뭐랄까? 대단한 걸 접하고 난 다음의 희열감이랄까? 맨 처음 이 책을 본건 신문에서였다. 우리 부대에서 보는 조선일보 - 아마 전군이 이 신문을 보지 않을까 한다 - 에서 매주 토요일이면 '조선BOOKS'라고 하는 조그만 정보지가 곁들여져 나오는데 거기에는 신간 도서에 대한 것과, 그런 책에 대한 다양한 내용들이 실려있다. 거기에서 황석영에 대한 소개와 함께 나온 책이 바로 이 심청이었다. 한 여인네의 운명을 통해 본 민족적 애환이라고 해야할까? 뭐 그런 내용이란다. 솔직히 주인장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주제요, 스타일의 책이었다. 황석영도 그 이름이 유명하고 그의 작품도 몇몇 읽어봤지만 - 최근에는 그가 쓴 삼국지를 4권까지 읽었다 - 그의 문학 세계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기에 그냥 책 잘쓰는 유명한 사람 정도로만 알고 있는게 전부였었다.

그런데 왜 이 책을 보게 됐나? 지금은 전역하고 없지만 선임병 중 한명이 이 책을 보고 있는 걸 우연히 본 것이다. 어떤 내용이냐, 재미있냐 등등 물어봤을때 그 선임병이 한말은 "야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보게 됐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남자들만 있는 군대라는 집단에서 그런 류의 정보는 상당히 인기가 있다. 하지만 다 읽고난 지금은 상당히 기분이 좋다 -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기를, 그런 쪽으로 기분이 좋다는게 아니니까 - 동기야 어쨌든 - 황석영님한테는 죄송하지만 - 읽고나니 이 책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책이 대단하다기보다는 쓴 사람이 대단하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지만 말이다.

심청 하권을 다 보면 이 책에 대해 어떤 사람이 쓴 비평이 실려있고, 작가 자신이 쓴 후기도 담겨있다. 모더니티니, 자본주의니 뭐니 별의별 말이 다 나오지만 주인장은 그런 어려운 말은 잘 모르겠고, 그저 책을 읽은 그대로 느낀 것만을 여기에 한번 적어보고 주인장 나름대로의 생각도 같이 곁들일까 한다.

내용은 15세의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지는 조건으로 공양미 3백석을 받아가는 뺑덕어미와 심봉사,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심청의 우여곡절, 80세가 다 되어 겨우 조선으로 돌아와 삶을 끝마칠때까지 한 여인네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주인장이 가장 신기해했던 것은 황석영이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을 구체적으로 - 그것도 상당히 자세히 - 설정해 놓았다는 사실이다. 구한말, 더 자세히 말하면 서양 열강들이 동점해 중국을 난도질하고, 러-일 전쟁, 청-일 전쟁 후 일본이 조선을 강점할 때까지 반세기, 그야말로 역동의 반세기 이상을 청이는 겪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심청이에 관련된 소설이 여럿 있었다고 하는데 주인장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욱 흥미로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심청은 인당수에 던져졌다가 다시 건져졌고 렌화 - 연화의 중국식 발음 - 라는 이름으로 중국 부잣집 할아버지의 시첩으로 팔린다. 당시 중국 상인들이 조선의 가난한 집 딸들을 이런 식으로 사다가 뱃사람들의 제물로 쓰고, 또 다시 부잣집 시첩으로 팔아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던 모양이다. 여기서부터 심청은 더 이상 조선땅에서 태어나자란 심청이 아니다. 그녀는 '렌화'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것이 그녀의 첫번째 변신이다. 그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녀는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그녀는 우선 난징으로 갔다가 다시 진장으로, 다시 타이완의 지룽으로 흘러가고 그 곳에서 만난 외국인의 첩으로서 싱가풀로 가면서 다시 로터스 - 연화의 영문식 표기 - 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여기서 그녀는 '로터스'라는 사람으로 다시 한번 태어난다. 또한 그 곳에서 다시 돌아와 류쿠를 거쳐 나가사키로 가기까지 심청은 렌카 - 연화의 일본식 발음 - 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그렇게 일본으로 가면서 '렌카'로 다시 태어난 심청은 일생동안 4개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분명 그녀는 한명의 자아체다. 그리고 렌화-로터스-렌카 역시 연화, 연꽃이라는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개의 자아에 3~4개의 명칭, 이것만으로도 그녀의 삶의 애환을 대표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그렇게 여러개의 명칭을 얻기까지 그녀 자의적인 의지라기보다, 외부에 의한 타의가 대부분이었다는 점이 더욱 보는 이로 하여금 절실한 심정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다양한 삶을 살던 그녀는 나중에 고향으로 금의환향하면서 비로소 심청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기까지 무려 65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흘렀고 이미 고향땅은 자신이 예전에 보고 듣고 자라던 그런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세계의 흐름에 부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편안하게 삶을 마감할 수 있었다. 그동안의 고생에 보답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자세한 시대적-공간적 배경의 제시는 이 소설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 이상 판소리, 전래동화의 한 종류로만 느끼게 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작가의 의도였겠지만 구한말 격동의 시대만큼 여인의 애환을 그려내기 쉬운 배경도 없었을 것이다. 그 수많은 우여곡절은 한 여인의 삶을 통해 당시 조선이 처했던 상황, 아시아가 처했던 상황을 잘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그 시대의 중심에 심청이 서 있는 것처럼 느끼게끔 해준다. 그로 인해 독자는 현실성있게 그녀를 이해하는 것이리라. 막연히 조선시대에 살던 한 여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구한말 격변하는 시대에 살던 한 억센 여인의 이야기로서 말이다.

보면 알겠지만 '매춘'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청이의 삶은 흘러간다. 어린 나이에 늙은 할아버지의 회춘용 시첩이 되고 그 할아버지가 죽자 그 셋째 아들에게 몸을 허락하는 대신 그를 따라간다. 그리고 그녀가 배운건 일급 창기로서의 자세였다. 아울러 심청은 남자라는 존재에 대해 그녀의 생각을 정립해 나간다. 그녀는 세상을 힘이 지배하는, 격동하는 존재로 인식했으며 그 세상을 지배하는 건 남자, 그리고 그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바로 여자라는 간단한 원리를 깨닫는다. 이제 남자는 그녀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이용해야 할 존재다. 능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 심청이 살아가면서 성숙해지면서 점점 드러나는 그녀의 성격이 바로 이것이다.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인 그녀의 삶은 보는 이로 하여금 대단하다고 느끼게끔 한다. 하물며 남자가 봐도 이럴진대 같은 여자가 보면 어찌할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책 중간에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남자는 돈 버는 것에 매달려 허덕인다. 그 짓밖에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뭐 대강 이런 대사인데 심청이 세상에 대해 내뱉은 강렬한 비난같이 들린다. 마치 권상우가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영화에서 "대한민국 학교! 다 X까라 그래!"라고 외치는 것처럼 말이다. 주인장은 예전에 '노는 계집 창'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역시 신은경이 나오는 야한 영화였기에 본 거였지만, 볼수록 신은경이라는 여자가 점차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무슨 메세지를 남기려는 듯 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미군 기지 부근에서 양공주를 했던 여자가 썼던 자전적 소설도 본 적이 있었다. 한결같이 밑바닥에서부터 살아온 여인의 삶을 통해서 사회에 대해 뭔가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렇게밖에 자신이 살 수 없게 된 사회와 그 사회를 그렇게 만들어낸 남성들에 대한 강한 저항감, 여자의 위대함에 대한 부분이 아닐까 한다. 세상 모든 것의 어머니, 대지의 여신이라고 불릴만큼 무한한 포용력을 가진 그런 여자의 위대함 말이다.

심청은 여기서 더 나아가, 포용력에서 끝난게 아니라 남자를 주도할 수 있는 적극성, 강한 개척 정신까지 내포하고 있다. 그 표현이 바로 심청이 싱가폴과 류쿠에서 실시한 고아원 설립이다. 지룽에서 기녀 생활을 하면서 창녀가 낳은 자식이 어떻게 길러지는지 깨달은 심청은 자신이 아끼던 동생이 애를 낳다가 죽자, 그 아이를 자신의 딸처럼 기른다. 그리고 양인의 첩으로 싱가폴에 가서 살면서 그녀는 고아원을 짓는다. 주인장은 왜 하필 고아원 사업일까하고 생각해봤다. 그것은 바로 아이와 모성애로 대변되는 여인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함일 것이다. 심청은 20대가 되면서 성숙한 여인의 내면을 다질 수 있겠 됐고, 그러면서 여인의 본성을 깨닫게 된 것 같다.

자신의 버려진 처지, 먼 이국땅에서 몸과 마음을 원하지 않는 타인에게 빼앗긴 그녀는 자신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들의 삶을 다독거려 준다. 여기서 여자의 포용력이 극에 달한다. 자신의 상처를 뛰어넘어 남의 상처까지 다독거리며 끌어안을 수 있는 그런 포용력 말이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책을 읽는 독자는 황석영이 심청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게 무엇인지 느낀다. 거기다가 시대적 배경에 맞는 심청의 삶은 당시 한국인과 아시아인의 삶마저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서양인의 잣대, 서구주의가 팽만한 세상에 마치 경종을 울리듯이 말이다.

심청은 상처입은 소녀에서 성장해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아가씨,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겪으며 그것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여인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며 세상 속에서 잊혀져가는 노부인으로 그 모습을 변모시킨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삶의 굴곡은 근대화 시기, 아시아와 그 아시아를 노리는 서양인의 모습과도 잘 들어맞는다.

상권은 중국과 타이완 등이 배경이지만, 하권은 류쿠, 나가사키 등 일본이 주무대다. 수많은 남자들, 심청이 만난 수많은 남자들이 대표하는 공간적 배경은 우리들에게 색다른 느낌을 준다. 일반적으로 이 책을 본 사람들은 하권이 상대적으로 재미없고 지루하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야한 내용들이 상권에 많이 있기도 하지만 일본 문화가 우리들에게 익숙한 것이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한 일본이 유일하게 서양식 근대화에 성공해 아시아 각지를 침입했다는 사실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일본의 사회적 환경은 상당히 엄격하고 절제되어 있으며 통제된 사회였다. 그녀의 운명을 예견이라고 하는 것일까? 일본에서의 그녀 역시 중년 부인의 절제되고 완벽한 어머니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일본에서의 삶도 마무리하고 개항기를 맞이한 조선으로 돌아온다. 그녀에게 조선이란 고향은 그렇게 가고 싶었던 곳이건만, 정작 이 책에서 고향인 조선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이 여겨진다. 조선이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한 것은 책의 맨 처음과 제일 마지막 일부분일 뿐이다. 심청은 3개의 이름으로 3개국을 거쳐 살았지만 그녀가 마지막에 당도한 곳은 결국 심청이 태어나 자라던 조선땅이었다. 우리 민족의 애환이랄까? 심청을 통해 본 이 사회는 가슴아픈 역사의 한 장면이었다. 내가 심청이었다면 과연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그녀에게 무한한 경외심을 표하고 싶을 뿐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이 느껴지는 건 유독 주인장만이 느끼는 감정일까?

주인장이 이런 문학 작품을 즐기지 않아서 있는 감정, 느낀 그대로를 두서없이 썼는데 부족한게 분명 있을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주인장에게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행여나 주인장이 쓴 글이 이 작품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깍아내리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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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평! 1 - 명을 치련다 길을 내어라
방기혁 지음 / 비봉출판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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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平)' 저자는 책의 제목이 평수길 - 풍신수길의 원래 이름 - 의 평, 혹은 평화라는 것을 평범하게 서술하고자 하는 바램에서 이렇게 정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우매한 독자가 생각하기에는 그 의미말고도 임진왜란에 대해 평(評)했다는 의미도 하나 추가시켰으면 한다. 그 이유는 이 책이 그만큼 임진왜란, 정유재란이라는 7년간의 대전(大戰)에 대해서 잘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주인장은 조선사를 굉장히 싫어한다. 특히 조선 후반기의 역사는 증오하기까지 한다. 왜란과 호란으로 얼룩지고 당쟁으로 뒤덮인 시기, 이 시기를 주인장은 조선사의 암흑시대라고 생각한다. 그 암흑시대가 있었기에 '영조-정조의 르네상스' - 주인장의 중학교 국사선생님의 표현, 그 분은 조선사에서 태종-세종 시대가 아닌 이 시기가 가장 번영하고 발전했다고 보셨다 - 가 찾아왔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그 시기만큼은 부끄러운 역사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 연유로 인해 조선사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약간의 개요만 알고 있을 뿐, 체계적이고도 구체적인 이해는 없던 것이 사실이었다. 물론 임진왜란에 대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임진왜란 하면 이순신과 조선 수군에 대한 책 몇권을 읽어봤을 뿐이며 기타 유명한 전쟁에 대해서 약간의 지식을 섭렵했을 뿐이었다. 또한 당쟁사를 공부하며 임난 당시의 정치판을 수박 겉?기 식으로 ?어봤을 뿐이며 - 이마저도 그나마 학교다닐때 교수님이 지시한 리포트만 아니었으면 전혀 공부를 안 했을 것이다 - 송시열에 대한 평전 하나로 조선 시대의 정치판에 대한 공부는 끝내다시피 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임난 전반적인 것에 대해 서술한 이 '평' 이라는 책은 주인장에게는 상당히 많은 도움을 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렇게 서평을 쓰는데 주관적인 선입견이 상당히 작용할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 것이다. 일단, 이 책은 역사적인 사실에 상당히 충실하면서도 저승세계에서의 재판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빌어 서술한 역사 소설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역사 개설서로 봐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임진왜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예전에 '한사모'에서 어떤 회원분이 삼국시대 말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재판이라는 형식을 빌린 극을 써야 한다길래 김춘추와 이세민 등이 원고측, 연개소문, 의자왕 등이 피고측으로 등장하는 극 개요를 대강 잡아준 기억이 생각났다. 그때 학교 숙제였었다는데 잘 해갔는지 모르겠다.

암튼 다시 돌아와서 이 책에서 얻은 또 하나의 도움은 임진왜란에 대해서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됐다는 점이다. 일단, 주인장이 조선사에 대해서 잘 몰랐던 것도 있겠지만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많은 지식들을 얻었다는 것에 충분히 만족하고 또 고마워하고 있다. 후금의 누루하치가 조선에 보냈던 국서가 위조돼 이덕형이 추진한 명나라와의 교섭에서 활약했다는 사실이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정벌 이전에 류쿠 - 오키나와 - 일대를 복속시켜 명나라를 양면공격하려 했다는 사실이나, 명-일본-조선 3국간의 미묘한 외교 심리 등에 대해서 말이다. 책에서 저자가 밝혔듯이 자세하지 않거나 잘 모르는 곳, 사료에 나오지 않는 곳은 저자 스스로 상상력으로 메꿨다고 했는데 주인장이 뵈에는 저자 나름대로의 가설이 많이 작용한 것 같다. 많은 관련 서적과 자료를 섭렵한 후에 이 임진왜란, 정유재란 7년사를 총정리했는데 그러면서도 저자 스스로의 사관(史觀)이 세워진 것이라 생각한다.

임진왜란의 전체적이고도 자세한 서술, 인물 하나하나에 집중한 스토리 전개 - 데프콘이라는 가상 전쟁 소설을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 소설은 그런 스타일의 소설이다 - , 저승세계에서의 재판이라는 특이한 소재, 비록 소설의 형식을 빌렸지만 역사에 근접한 자세한 서술 등, 일반인이나 전문인(?)에게 좋은 서적이 될 것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어설프게 독자들에게 소설이라는 것을 알리려는 듯한 대화체 문구나, 저자 본인이 말하고 싶었다는 세가지 즉, 첫째, 국방에는 남녀노소가 없다. 둘째, 조선의 전근대적 사회제도 때문에 초반에 고전했다. 셋째, 자주 국방의 중요성 설파에 대해 역설하려는 의도는 약했다는 것을 지적해두고 싶다. 앞서 말했지만 주인장이 조선사를 잘 알지도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평은 주인장에게 단순한 지식 전달 이상의 역할은 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소설이라고 분류하기보다도, 일반 역사 개설서로 불리는게 더 나을 법했다는 생각도 한다. 즉, 소설적 재미보다는 역사적 사실에 더 근접하다 보니, 본래 자신이 원하던 바를 얻지 못 했고, 아울러 저자가 바라던, 알리고 싶었던 세가지도 제대로 알리지 못 하게 된 것이다.

재미와 지식 전달, 두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가 다 놓쳐버린 격이랄까? 하지만 그 시도 하나만큼은 좋았다. 적어도 주인장이 느끼기에는 그렇다. 어쨌든, 주인장에게는 여러모로 좋은 도움이 된 책이었으며 임진왜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책이라고 말하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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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맨 처음 이 책을 봤을때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 옆에 적히 부제 - 어느 살인자의 이여기 - 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무슨 로맨틱 소설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무슨 살인에 관련된 책이었던 것이다. 추리소설? 스릴러물? 심리소설? 무슨 소설인지 몰랐다. 모르면 직접 읽어보는 수밖에. 결국 책을 펼쳤고 한장씩 읽어나간 이 책에 대해서 지금부터 소개할까 한다.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책을 다 읽은 지금까지도 이 주인공이 실존인물인지 가공인물인지 헤깔리고 있다. 그 정도로 이 책의 재미는 강하게 날 빨아들이고 있었다. 마치 추리소설의 마니아들이 셔록 홈즈나 괴도 루팡을 실존인물인듯 여기면서 숭배(?)에 가까운 존경을 보내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의 주소재는 제목처럼 '향수'다. 향수하면 번뜩이는 것은 아름다운 것, 은은한 것, 뭐 이 정도가 연상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향수가 등장한다. 그래서 제목이 그렇게 정해진 것이겠지만 여기에서의 향수는 단순히 그런 미적 소재가 아니다. 한 인간 그 자체이며, 그 인간의 전부이며 그 인간이 평생을 두고 매진한 목표이자 또한 그의 죽음까지 장식한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향수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에서 살아가는 한 향수 광신도(狂神道)의 일대기를 그린 책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무리가 없을 듯 하다.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곳에서 태어나 몸에서 체취 하나 품지 못하고 살아가는 주인공. 한 여인의 사생아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파리 뒷골목에서 잡부 생활을 하며 성장해나간다. 그러면서 그 자신의 숨겨진 재능에 대해서 주인공은 깨닫기 시작한다. 정작 자신은 향기 하나 없는 몸으로 태어났건만 그의 코는 슈퍼 컴퓨터처럼 세상의 모든 냄새를 진공 청소기처럼 빨아들여 정확히 분석해내 국립도서관의 책들처럼 완벽하게 정리해나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그 자신이 스스로 말하듯 '세상 모든 냄새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독특한 소리, 독특한 시대적 배경, 향수가 왜 만들어졌는지 아는 사람들은 향수 사용에 대해 결코 환영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18세기 프랑스, 궁정문화가 한없이 발달하고 세상 - 유럽인들의 눈에 비친 유럽과 간접적인 접경 지역에 국한된 - 에서 가장 화려하다는, 문화의 중심지 프랑스의 수도 파리, 어마어마한 인구가 모여사는만큼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지저분한 곳이 또한 이 곳이다. 수천년전 고대 인도나 각종 고대 문명국들이 완벽한 상하수도 시설을 완비했던 것에 비해 수천년 뒤의 프랑스는 그와는 정반대였다. 베르사유 궁전, 그 완전하고도 화려한 궁전에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화장실'이다. 하이힐과 향수의 발달사는 그 근본적인 더러움에서 출발해 아름다움을 찾는 미의 연구로 승화된 것에 불과하다.

그 18세기 프랑스 파리. 그 곳에서 태어난 그루누이는 정말 귀신같이 냄새에 대해 예민하다. 세상 모든 것을 냄새로 분류하고 냄새로 판단할 정도다. 그런 그의 목표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아름다운 향수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향수는 바로 아름다운 女人의 향기였다. 25번의 살인사건, 그렇게 죽인 여자의 머리카락과 몸에서 얻은 향수는 25병의 향수병에 차곡차곡 채워져 빛을 발하게 된다. 엽기적인 25번의 살인사건, 이 책은 그루누이라는 천재적인 살인마의 탄생부터 성장기를 거쳐 죽음에 이르는 그의 일대기를 주욱,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그 중간중간 나오는 향수에 대한 얘기들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아~이렇게 향수를 만드는구나, 하는 전문적인 지식들도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묘사한 18세기 프랑스 파리와 역시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묘사한 각종 향수에 대한 이야기들은 지금 책을 읽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이 마치 18세기 프랑스 파리의 한가운데에 있게끔 착각마저 들게 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독자들은 직접 주인공인 그루누이가 되어 그의 내면 세계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정작 세상의 모든 향기와 냄새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자신만의 향기는 갖고 있지 않는 자. 자신의 향기가 없어서 황당해하고 걱정하면서 인간의 체취를 만들어 자신에게 뿌리고 다니며 만족해하는 그루누이를 보면서 단순히 어린애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살인을 저지른다. 그렇지만 그 살인을 저지르는 그 행위조차도 너무나도 단순한 살인 동기와 행동때문에 어린아이의 소꿉장난 같기만 하다. 이 모든 것들이 그루누이라는 사람의 운명을 말해주듯이 그는 자신의 본질, 즉 자아를 잃어버린채 향기만을 광적으로 좇는 미치광이로 그 운명을 마치게 된다. 가장 순수한 것이 때로는 가장 본능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까나?

책의 마지막 부분으로 넘어가면서 우리는 극적 결말을 맞이하며 놀랄 것이다. 25명의 소녀를 죽인 살인마는 결국, 자신이 만들어낸 최고의 향수를 선보임으로서 사형장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연민을 느끼게끔 하며 극도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 뒤 유유히 사형을 면하고 사형장을 빠져나온다. 다소 극적이어서 황당하기까지 한 후반부는 사실적인 묘사와 향수라고 하는 가공할 물건의 특성상 극적 재미를 더 해준다. 정말 향수 몇방울로 그 정도까지 가능한가? 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그러나 그의 최고의 향수는 결국 거리의 부랑자, 깡패, 거지 등 파리에 살고 있는 최하층민들로 하여금 동경과 외경심을 불러 일으켰고 결국 그들은 그루누이를, 최고의 향수로 엄청난 향기를 내뿜는 그루누이를 토막쳐 생으로 삼키고는 속안에서 넘치는 행복으로 주체를 못 하게 된다. 자신들이 지금 살인을 저지르고 인육을 날로 먹었음에도 자신들의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사랑과 행복의 느낌에 스스로 의심할 겨를도 없이 빠져드는 것이다. 마치 그루누이가 자신의 순수한 동기에서 살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 것처럼 말이다.

책을 덮는 순간, 18세기 프랑스가 떠오르면서 소설 속의 시대적 배경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파리의 최하층에서 태어나 전 프랑스를 뒤흔들며 위명을 떨친, 향수의 천재, 악마적 천재 그루누이는 그렇게 다시 최하층으로 사라졌다. 무에서 무로 돌아간 것인가?

다소 엽기적일 수도 있는 소설이지만 소설 속 묘사나 자세한 내용 전개는 책을 결코 황당하게만 이끌어나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읽는 이들로 하여금 소설 속으로 빨려가게 하는 흡입력이 느껴진다. 마침 주인장이 이 글을 쓸때 즈음 주인장의 여자친구도 읽어보고 재미있다고 했다. 하지만 단순히 이 책은 재미만을 추구하는 소설이 아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물품인 향수라는 매개물을 통해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직설적으로 표현한 책이 아닌가 싶다. 향수. 한번 주위 사람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할만한 소설이라고 생각하며 이만 글을 마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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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플렉스의 나라 일본
김영명 지음 / 을유문화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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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책이 없을까 해서 부대 도서함을 봤을때, 주인장의 눈에 들어온 것이 이 책이다. 눈병에 걸렸다가 막 나았던 터라 주인장이 갖고 있던 두꺼운 전문서적보다 가볍게 읽을만한 그 무언가가 필요할 때였다. 제목이 참 재밌지 않은가? 콤플렉스의 나라 일본...호기심 반, 기대 반에 책장을 넘겼다.

이 책은 일본에 객원 연구원 자격으로 1년간 가 있던 저자가 일본에 대해 적은 책이다. 그 1년간 적은 초고를 귀국후 약간의 보충 후 출판한 책이라고 한다. 일단, 이 책, 아니~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때면 주인장은 항시 전제조건을 깔고 본다.

'이 책의 전부가 진실은 아니다.'

왜냐하면 주인장이 직접 일본에 가 보지 않은 이상 단편적인 지식 습득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생명체는 자신이 직접 해 보지 않은 일,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항상 자기 현 시점, 배경을 위주로 한 주관적인 판단이 앞서기 때문이다. 주인장이 사회에 있을때로 그랬고 물론 군대에서도 이런 현상은 비일비재하다. 그런 생각을 갖고 봐야 그나마 이런 류의 책을 읽는데 주인장 나름대로의 생각과 판단이 서기에 이번에도 역시 그런 마음가짐으로 책장을 계속 넘겨봤다.

책의 첫 내용은 '일본의 첫인상 : 미국같은 소도시' 였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유행과 패션의 선두 주자이자 서구화가 가장 빠른 아시아권 나라임을 느끼게 했다. 일본이라는 곳을 한번도 안 가 봤고, 별로 생각해 보지도 않았기에 주인장이 처음 느낀 일본은 조금 이상하게 여겨졌다. 미국에 놀러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미국의 소도시(변두리의 도시)들은 참 푸근하고, 듬성듬성 들어서 있는 건물들도 정겨워 보인다. 주인장의 친척이 사는 곳도 앨러바마 주의 한스빌이라는 작은 소도시의 외곽 거주지다. 그런데 일본이 그런 느낌이라니 조금 이상했다. 왠지 어울리지 않는 그런 거리의 풍경이 느껴졌다. 뭔가 서로 맞지 않는 위화감의 나라, 일본. 이 책 첫면에서 접한 느낌이다.

안 그래도 다음 내용은 '모순의 나라 일본' 이었다. 더 잘 어울리는 표현같다. 경제 대국의 빈약한 국민 생활, 그래~정말 일본은 그런 것 같애, 딱 맞는 말 같다. 예전에 학교에서 스페인史를 배울때가 생각났다. 펠리페2세 치하의 스페인은 강성대국이었으나 중공업 위주의 부국 정책으로 인해 그 나라 국민들은 결국 가난했다고 말이다. 스페인은 결국 어떻게 되었나? 웃음이 나왔다. 내심 주인장이 그렇게 바라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 밖의 내용들은 참신한 것들이 많았다. 예전에 '일본은 없다' 라는 책을 봤을때 그냥 흘려 봤었는데 그런 류의 책을 이번에 다시 보니 또 색다르게 느껴졌다. 책 전체적으로 主가 돼는 내용은 일본인의 정신적인 빈곤에 대한 것들이다. 주인장도 이 표현을 좋아하게 됐는데 물질만능주의, 고도 경제성장에 따른 정신적 황폐화, 정신적인 소극적 자세, 서구화에 대한 막연한 외경심, 모순으로 가득찬 생활...막연히 알고 있었던 일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돼는 내용들이었다.

저자는 말하고 있다. 한국도 크게 잘난 건 없고 일본도 잘난 건 없다. 그러니 서로서로 잘 하자...라고 말이다. 어차피 동북아시아가 전체 아시아의 주요 지역(HUB)이라고 할 수 있고, 결국 한-중-일 3국으로 그 범위는 좁혀진다. 문제는 이 3국이 합심할때 그 주도 세력이 누가 돼느냐에 따라 아시아의 경영 방향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물론 주인장은 한국(되도록이면 통일한국, 최소한 남-북 연합국가라도)이 그 주도국이 되기를 바란다. 아니, 최소한 주체자로서 다른 2국에게 있어 꿀리지는 않아야만 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저자의 이런 바램은 바람직한 것이겠지만 이 책이 3년 전에 나왔고, 이런 국제 정세가 한두해 지속된 것이 아닌걸 감안한다면 일본인에 비해 한국인은 고요속의 외침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관료 통제 사회 일본, 야쿠자가 정경계를 지배하는 좀 특이한 사회, 그런 일본인들과 같이 걸어나가야 할 한국인, 과연 어떤 대처가 필요한 것일까? 강한 힘? 주인장이 보기에는 강한 힘을 기반으로 하는 강경 외교가 적합하지 않나 한다.

늘 느끼는 거지만 이 책을 보면서도 느끼는 것은 일본의 이런 치부를 드러내고 아무리 속내를 파헤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 저자가 쓴 내용은 자신의 저서(이 책 말고 이전에 나온 다른 책)가 일본측에서 번역, 판매돼는 과정에서 완전히 왜곡당하고 뒤틀려 버렸으며 오히려 번역자에게 훈계까지 들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주인장과 같은 독자들은 다 이 부분에서 화가 났을 것이다. 하물며 그 당사자야 어련하겠는가. 물론 저자는 법적 대응까지 불사했지만 일본측에서는 묵묵부답, 요즘 표현으로 그냥 쌩 깠다는 것이다.

역설적이지 않은가. 일본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서 좋은 점고 있고, 나쁜 점도 있지만(물론 나쁜 점이 더 많아 보인다) 같이 나아가자~라고 취지를 잡아놓고는 마지막에 일본의 만행(이건 만행이다)을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책을 다 읽은 독자들은 누구나 책장(마지막)을 넘기고 책을 덮으면서 느낄 것이다. 역시 일본놈들은 이렇다니깐~하면서 가식적인 전범 처리나 위안부 보상 문제를 떠 올릴 것이다. 주인장 역시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보다 실질적인 것이 필요하다.

계몽적인 자세는 솔직히 큰 도움이 못 된다. 보다 현실적인 책이 되어야 한다. '일본은 있다' '일본은 없다' 가 한창 한국 독서계를 뜨겁게 달군 적이 있었다. 그때도 그랬고, 그 이후에 독도문제(이건 뭐 수년간 계속된 것이니 두말할 필요도 없겠다), 교과서 문제때도 그랬다. 아니, 늘 그랬다. 냄비 정신이라고 불리는 그 현상은 언제나 그랬다. 마치 월드컵 분위기마냥 말이다. 평소 국민들의 인식 속에 이런 불나방같은 사상이 얼마나 더 처박혀 있을까? 한번만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올 것이다. 왜? 국민들이 평소 이런 것들을 생각할리 없다.

이 책을 보면서 주인장은 다시 생각한다.

보다 실질적인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이 괜찮은 책이기는 하지만 책은 지식 전달에만 그치면 안 된다고 본다. 역사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이 책의 단점일 수는 없다. 이 책은 분명 일본에 대해서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부분은 이 책에 일관성을 부여하며 나아가 신빙성을 부여한다. 주인장이 이 책을 읽음으로서 얻은 사실들은 많다. 그럼에 느낀 부분 역시 많다. 하지만 실질적인 대책(?)이랄까, 그건 역시 얻을 수 없었다. 약간의 아쉬움이겠지만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생각하고 이만 글을 마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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